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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다시 볼 생각 없게 만드는 여자 외 2편

by 무한 2013. 12. 13.
[금사모] 다시 볼 생각 없게 만드는 여자 외 2편
지금 외모가 평균 이상이든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은 적 있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S양이

'다시 볼 생각 없게 만드는 여자'


에 속한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남자를 애처럼 대하는 것과 영혼 없는 대화.'


라고 말하겠다. S양은 마음에 지문방지 필름, 미러 필름, 강화 필름, 향균 필름 이렇게 네 가지 필름을 붙여 놓고 있는 것 같다. S양의 사연부터 출발해 보자.


1. 다시 볼 생각 없게 만드는 여자.


남자는 애가 아니다. 애들에게는 의식적으로

"우와 이거 힘찬이가 그린 거야? 잘 그렸네~ 또 그려서 선생님 보여줘~"


라고 해도 호랑이 기운을 내며 그림을 그리겠지만, 예비군도 끝난 남자를 저런 식으로 대하면 그는

'얘 왜 이래? 무슨 선생님병 같은 거 걸린 거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S양에게 이런 엄청난 단점이 있다는 걸 S양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확실히 알려줄까 한다. S양의 거의 모든 멘트는 '질문-짧은 할 말-바람'으로 이루어진다.

ⓐ운전하느라 피곤하셨죠? 전 덕분에 잘 왔어요. 잘 자요~
ⓑ월말이라 바쁘셨죠? 그래도 내일 쉬셔서 좋겠네요. 푹 쉬세요~
ⓒ오늘 날씨 참 좋죠? 저는 배고프네요. 점심 맛있게 먹어요~



대화를 하려고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무슨 '대화 패키지 상품'같은 걸 전달하는 느낌이 든다. 상대가 감기에 걸려 그것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에도, S양은 저 패키지 대화법을 사용한다.

"병원엔 다녀오셨어요? 날이 정말 춥네요. 얼른 나으세요~"


애플의 'Siri'도 저렇게 기계적으로 말하진 않을 것 같은데, S양은 시리와는 다르게 또 시리보다 빠르게(응?)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새로 알게 된 친구가 S양을 저런 식으로 대한다면, S양이 어떤 느낌이 들지를 떠올려 보면 된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말하자, 친구가 

"오늘 아침에 혼난 거야? 많이 속상했겠다. 그래도 힘내고 좋은 하루~"
 

라고 답한다면, S양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상대가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자 S양은 그에게 다녀와서 여행기 들려달라고 말하는데, 이게 난 안 봐도 어떻게 진행될 지 알 것 같다. 분명 아래와 같은 대화가 될 것이다.

S양 - 호주요? 다녀와서 여행기 들려주세요. 재밌게 놀다 오세요~
썸남 - 네 ^^ 잘 놀다 올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썸남의 여행 후)
썸남 - 돌아왔습니다! 전 호주 수도가 시드니 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ㅎ 
          자연에서 뛰노는 동물들도 보고, 여하튼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S양은 저 없는 동안 한국을 잘 지키고 계셨나요?
S양 - 재밌게 놀다 오신 건가요? 저는 잘 있었죠 ^^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대화에 영혼이 없다. 웃는 낯으로 이야기 한다고 그게 '좋은 대화'가 되는 게 아닌데, S양은 살짝 강박적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의 얘기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이라며 당황하기도 하고, 얘기가 슬프다면 심각한 표정도 지어야 하는데, S양은

^^

위와 같은 표정으로 모든 대화를 하려 한다. 때문에 대화는 재미도, 감동도 없어지고, 상대는 S양에게 무슨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진다. 차라리 미용실에 가서 헤어디자이너에게 여행 썰을 푸는 게, 더 풍부한 리액션을 받는 일일 테니 말이다. 

아직 친하지 않으니 지금처럼 거리를 둔 채 웃는 얼굴로 대하다가, 사귀고 나면 애완견 미용한 얘기까지 다 풀어 놓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상대를 친구라 생각하며 대화해 보길 바란다. 지금처럼 S양이 겨우 기계적인 리액션만 하던 상황에서 "고 할까요? 스톱 할까요?"라고 묻는 건 아무 의미 없다. 지금 S양이 할 수 있는 건 고, 스톱이 아니라 광 파는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아직 판은 벌어지지도 않았다.


2. 분석의 여왕 K양.


K양의 사연 82.7%가, 짝사랑 중인 썸남에 대한 분석이다. 썸남에 대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 받을 것도 아닌데 이게 대체 뭐하는 일인가 싶을 정도다.

우선 난, K양에게

"K양이 다섯 살 쯤 더 먹으면,
그 남자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실 겁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내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보이는 선배가 하나 있었다. 그 선배는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으며, 자신이 비범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캠퍼스 잔디밭에서 하루 종일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당시엔 내게 그 선배의 행동들이 마치 '기인'들의 생활처럼 여겨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직 군대도 안 간 꼬꼬마의 '중2병'에 지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아마 지금쯤 그 선배도, 자신이 부활절 다음 날

"아브락사스. 세상을 깨고 나와.
태어나고 싶다면 한 세상을 깨뜨려야 해."



라며 후배들에게 교회에서 받아 온 삶은 달걀을 나눠 주던 일을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건 '이보다 더 오글거릴 순 없다' 수준의 오글거림이니까.

K양의 썸남은 그냥 K양 보다 '네 살 많은 남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가자. 그는 모임의 사람들과 아직 별로 친한 편이 아니니까 조금 조심하는 중일 수 있고, 이렇다 할 계기가 없으니 어울리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걸 두고 그를 초식남, 철벽남, 또는 내성적인 남자라고 단정 짓는 건 너무 성급한 결론이 될 수 있다. 그가 K양과 안면을 튼 뒤 자연스레 캔커피를 준 걸 보면 초식남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으니, K양 혼자 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짝사랑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분도 코를 팔 것이고, 그 분도 화장실을 갈 것이니 말이다.

"저는 그 분에게 제 호감과 관심을 확실하게,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게 전하고 싶어요."



마주치면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사람 만난 얼굴로 인사를 하고, 편의점에 갔다가 두개 묶음 상품으로 파는 걸 보면 사서 상대에게 하나 나눠주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사는 중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된다. 그런데 이건 K양이 썸남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주변사람들이 눈치 챌까봐 '아닌 척'하고 있어서 못 하는 일 아닌가.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쓴 채 말도 잘 걸고, 커피 마시자는 약속도 잘 잡는데, S양 혼자

'지금 나 쳐다봤어. 분명 나 본 거야. 이쪽에 나밖에 없어.
어떡하지. 이쪽으로 온다. 하아….'



하고 있으니 친해지지 못하는 거다. 현실에선 이렇게 뒤에 숨어 분석만 하면서, 뒤에서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뭘 자꾸 표현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앞에서 하자.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여자에게 "감히 네가 날 좋아해?"라며 온 힘을 모아 명치를 주먹으로 칠 남자는 없으니, 긴장 좀 풀고 이성친구 진호랑 놀듯이 가까워져 보길 권한다.


3. 재호야.


재호야 그거 아냐? '불우한 어린시절'이 예술가들에겐 가장 큰 재산이라는 걸. 난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집행 직전에 풀려난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그 이후 도끼로 내면을 찍어 내려가는 듯한 그런 소설은 못 썼다고 본다. 또 확실한 건 아니지만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왕따'의 경험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건 쓸 수 없었다고 보고. 행운아라고 여겨지는 괴테조차도

"세상 사람들은 나를 특별한 행운아라고 말한다.
나 역시 거기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지나온 행로를 불평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고난과 노력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었다."

- 괴테,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중에서


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지.

나도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이고, 그 주어진 날들을 살아가는 것, 혹은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의 내 발자취를 인생이라 부르는가 보다.

재호 네가 어떤 발자국을 남기든 그건 네 몫이고 네 책임일 테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과거에 몇 번 넘어진 적 있다고 해서 두고두고 그 얘기만 하는 건, 열심히 걷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넋 놓고 뒤 돌아볼 시간이 없을 테니까.

내 경험을 예로 들어 너를 위로하고 싶지 않다. 짧게만 적어두자면, 너에겐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심각한 일이, 남에게는 자신의 지갑을 잃어버린 것보다 한참이나 더 사소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관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너의 한탄은 타인에게 옆집 아이의 징징거림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를 위해 내가 운다고 해도, 난 너를 짐작하며 우는 것이지 온전히 네 감정을 이해하며 우는 건 아니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오죽 ~했으면 제가 ~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단다. 그들은 이해를 강요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타인이 해줘야 할 '이해'라는 몫까지 자신이 스스로에게 베풀어 합리화를 한 뒤 동정을 바라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행위를 하느니 차라리 팻말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너는 그냥 너다. 불쌍한 재호, 가엾은 재호, 안타까운 재호가 아니라 그냥 이재호다. 과거에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내가 널 만난다면 현재의 이재호를 만나는 거다. 그리고 그 이재호가 내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는 네가 날 만나 어떤 태도를 취하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내게

"대충만 말하면 이렇고, 구체적인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술자리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해 드리지요."



라고 말했는데, 난 너의 과거가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를 듣느라 내 귀중한 인생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네가 지금 그 문제로 울고 있는 사람이라면 난 곁에 앉아 귀를 기울이겠지만, 난장판이었던 과거를 무슨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내걸고 있는 사람과는 인사도 하고 싶지 않다. 만약 네가 날 붙들고 과거의 얘기를 풀어낸다면 난 "그 얘길 왜 나한테 하지?"라고 너에게 물을 것 같다.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얘기는, 오늘의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일의 넌 뭘 할 예정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네가 짝사랑 중인 상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살던 집이 얼마나 낡았는지 물도 잘 안 나오고, 방풍도 안 되고, 보일러도 자주 고장 났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특히 "그런 집에 살아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다."라는 징징거림은 더더욱.

난 네가 그 SNS로 만나 짝사랑하게 된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이어지는 것보다, 앞서 말한 것들을 체크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해를 구하고 말하자면 현재의 네 짝사랑은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온라인연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넌 과거에도 게임에서 만난 여자와 온라인 연애를 한 적 있다고 했는데, 난 네가 오프라인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그저 맹목적인 칭찬과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 사귀기로 하는 건 '이재호'가 아니라 '이재호의 아바타'가 하는 연애니까.

오늘부터는 뒤보다 앞을 좀 보면서 걸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재호는 지금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해 그 쪽으로 나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목적지를 정했으면 뒤는 그만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채플린의 말대로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 아닌 인생은 하나도 없으니, 그걸 대단한 것처럼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재산인 그 과거들을 조금씩 아껴서 필요할 때 꺼내 그리길 바란다. 그렇게 붓이 마르는 줄도 모르고 그리다 보면, 지금보다 한 뼘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행운을 빈다.


독자 분들께 사연을 보내주실 때 최대한 자세히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던 건, 내가 개인정보 같은 걸 이용해 신상을 파악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난 오로지 사연과 카톡, 메일, 문자 대화 등으로만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쏙 빼놓고 사연을 보내주시거나, '답정너'가 되도록 각색해서 보내주시면 나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제가 남자친구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해서 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라는 사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난 '사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하고 얼마쯤 더 만났어요.
그런데 남친이 그 이후로 완전히 저를 휘두르려고 해서 헤어졌답니다.
사실 남친이 완전 가부장적인데다, 저한테 욕도 한 적 있었거든요.
잘 헤어진 것 같아요."



라는 메일을 받으면 힘이 빠진다.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매뉴얼을 발행한 이후 사연을 주신 독자분이

"무한님이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그 얘기가 다가 아닙니다.
제가 신청서에는 적지 않았지만 이러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있어요.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겁니까? 걔가 먼저 이래서 제가 그랬던 것입니다."



라며 항의를 할 때에도 난감하다. 이건 마치 "저 선녀랑 결혼했는데, 선녀가 집을 나갔어요."라는 사연을 보내고, 매뉴얼이 나온 다음에야 "근데 제가 날개옷을 감춘 적 있고, 나중에 집에 보내주겠다고 말하긴 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서로 곤란해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연은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되도록이면 많은 첨부파일들과 함께 보내주시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기 바라며!



▲ 사연은 꼭 공지(http://normalog.com/notice/1339)를 확인하신 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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