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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중매로 만난 남자 외 2편

by 무한 2013. 11. 29.
[금사모] 중매로 만난 남자 외 2편
난 중학생 시절 미술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여자 선생님은 차가워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차갑게 수업을 진행했다. 한 번도 학생들에게 칭찬을 한 적 없으며, 기계적으로 수업하고 로봇처럼 채점을 했다. 유쾌한 구석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이 우울증 같은 걸 앓고 있던 건 아니었나 싶은데, 여하튼 삶에 대한 기쁨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누굴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준비물을 안 챙겨온 학생들에게 벌을 세우지도 않았다. 평소점수에서 깎기 위해 이름만 적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장난을 잘 치는 몇몇 학생들이 그 선생님께 농담을 건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땐 의무적인 리액션만 살짝 할 뿐이었다.  

물론 수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 시기에 만들어야 할 거 다 만들었고, 그려야 할 거 다 그렸으며, 배워야 할 것도 그 선생님은 다 가르쳐주었다. 다만 학생들로 하여금 미술에 '흥미'를 갖게 만들지 않았을 뿐인데, 개인적으로 난 그게 수업과 평가 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 중매로 만난 남자.


사연을 보낸 M양에게서, 난 저 '미술선생님'의 모습을 봤다. M양은 소개팅과 선으로 복근이 단단해 진 까닭에 상대에게 '흠 잡힐 일'같은 건 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상대에게 맞추는 편이며, '무난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정형화 된 리액션을 한다.

이걸 어떻게 비유해야 좀 명쾌할지 지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수동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능동적이지도 않은 여자라고 할까. 나쁘게 말하자면 '소개팅 머신'같다. 만약 M양과 중매로 만난다면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 -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저녁 같이 할까요?
M양 - 네. 그래요.

(두 번째 만남 후)
M양 - 왜 사귀자는 말씀을 안 하시죠?
남자 - 아, 그게 우리 나이에 언제부터 사귀기로 하고 그러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M양 - 네.

(다섯 번째 만남 후)
남자 - 손잡아도 될까요?
M양 - 사귀기로 했고, 다섯 번째 만남이니까…, 네. 손잡는 건 괜찮아요.

(일곱 번째 만남 후)
M양 -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나요?
남자 - 아, M양 얘기를 제가 좀 했더니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M양 - 그럼 이제 저는 결혼 준비 하면 되는 건가요?



좀 과장해서 적긴 했지만, 저런 '비지니스'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얘기다. 아래는 M양이 내게 한 질문이다.

"제가 마음을 열고 잘 했더라도 달라질 게 없는 관계였던 건지 궁금합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남들이 추천한 순대볶음집이 M양의 입에도 맞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결과를 알고 싶다면 가서 먹어봐야 한다는 거다. 직접 가서 먹어보지는 않고 남들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식당소개만 보고 있으면 영영 알 수 없다.

M양은 완전히 잘못된 태도로 소개팅남, 중매남들을 만나고 있는 거다. M양이 심사위원이고 상대 남자들이 오디션 보러 온 사람은 아니잖은가. 솔직히 내가 가장 경악했던 부분은, M양이 상대에 대해

"음식이 다 식을 때까지 상대가 말을 많이 하더군요. 좀 피곤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도, 그가 한 달 넘게 만나면서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에게 또 '감점'을 한 부분이다. 이건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결혼할 사람을 뽑으려는 것 같다. 집까지 데려다 주면 플러스, 담배를 피우면 마이너스. 그 이전에, 손톱만큼의 호감이나 관심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가?

이거 이러다 진짜 난감해 질 수 있다. 선보러 나갔다 들어와선 어머니, 언니와 함께 품평회만 하고 있다간, '결혼이 급해서 결혼할 여자 찾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맺어지기 힘들다. M양이 가서 로봇처럼 행동했다는 부분을 쏙 빼 놓은 채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지인들은 "그 남자가 소심한 것 같다, 너에게 마음이 없어서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간 보는 것 같다."따위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걸 두고 또 M양은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며 복수한답시고 "그럼 민준씨는 혼자 사셔야겠네요."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면…, 하아. 진짜 대체 왜들 그러는가!


2. 준현아, 어장 물 안 차갑냐?


착각할만 해. 준현이가 아주 강적을 만났어. 그건 그렇고 준현이가 보낸 사연에 등장하는 '물고기들의 강제 정모'가 난 참 인상 깊었어. SNS가 발달하니까 그렇게 정보교환도 하는 구나.

물고기1 - 넌 어장 어디까지 가봤니?
물고기2 - 뭐야, 너도 있었어?
물고기3 - 니들은 뭐야? 난 걔 썸남인데.
물고기2 - 썸남 좋아하네. 너 걔 알바 하는 거 알아?
물고기3 - 알바? 무슨 알바?
물고기1 - ㅋㅋㅋㅋㅋ 걔 알바 안 해. 너 속았구나.
물고기2 - 걔 거기서 알바 하거든?
물고기1 - 멍청한 놈. 알바 핑계 대고 너 떼어낸 거야. 걔 알바 안 해.
물고기2 -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서 간 적도 있다고 했는데?
물고기1 - 그게 걔 전용 핑계라고. 걔 알바 같은 거 안 해. 내가 확인했어.
물고기2 -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뻥쳐서 경쟁자 제거하는 걸 수도 있지.
물고기3 - 뭐가 진실이야?
물고기1 -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물고기 자식들.
물고기2 - 너도 물고기잖아. ㅋㅋㅋㅋ



여하튼 순도 100% 어장이야. 더 의심할 것도 없어. 어장관리를 하는 그녀가 꽤 적극적인 까닭에, 이번 어장엔 물고기들도 참 많은 것 같아. 준현이 너에게도 그녀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잖아. 그녀는 오는 고기만 잡아 가두는 게 아니라, 직접 픽업까지 해서 가둘 정도로 적극적인 여자 같아.

만나자는 약속을 해도 당일에 극적으로 취소되고, 또 언제 꼭 보자는 이야기를 해도 지켜지지 않잖아. 그런지가 벌써 1년이야.

"오빠 나 진짜 거절하는 거 아니야. 상황 때문에…. 이해해줘서 고마워."


물고기들을 달래는 것도 수준급이야.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기프티콘을 보낸 적도 있고, 아무튼 강적이야. 준현이가 직구를 던지면 그녀는 몸을 살짝 갖다 대곤 데드볼로 걸어 나가기도 하잖아. 이건 뭐 작정하고 그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녀가 자기 셀카사진을 보내는 건 '자뻑' 때문에 그런 것 같고, 기프티콘을 준 건 "그간 떡밥이 없어서 속상했지? 자, 이거 한 잔 마시고 다시 충성하도록."하면서 뿌리는 것 같아. 딱 그 행위만 보지 말고 전후 상황도 좀 봐봐. 걔는 너에게 말을 놨었는지 존대를 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네가 얘기했던 걸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뭔가 '다른 이야기들(다른 오빠들이 한 것으로 추측되는 말)'까지 섞여 있고 말이야. 게다가 걔는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을 뿐인데, 준현이 넌 거기에 감동해서 그 이후로 심심하면 기프티콘을 보내고 있잖아.

또, 그녀가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래. 말만 하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 딱 한 번, 일 년 전에 만난 적이 있긴 한데, 그녀는 밥만 먹은 뒤에 서둘러 집에 돌아갔어. 준현이 넌 "최근 카톡대화를 봐도 그녀와 제가 잘 될 가능성이 안 보이시나요?"라고 물었는데, 전혀 안 보여. 그런 식으로 레벨이 계속 올라도 결국은 '아는 오빠'일 뿐이야.

그녀의 구남친이라는 남자조차 어장관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고, 또 그녀의 거짓말에 치를 떨 정도인 것 같은데, 이거 그냥 접으면 안 될까? 그녀의 핑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고, 네가 뜸하면 먼저 연락해서 밥 얘기 꺼내는 것도 그렇고, 악질이야. 사람 잔뜩 부풀려 놓곤 미루고, 거절하고, 파토내지. 정 놓지 못하겠으면 앞으론 너도 일단 똑같이 행동하길 권할게. 걔가 언제 한 번 봐야지, 하면 너도 그래 언제 한 번 봐야지, 하고 답해봐. 아쉽지 않은 남자가 되면, 그녀가 널 아쉽게 만들기 위해 좀 더 다가올 수 있거든. 물론, 개인적으론 비추야. 철새와 가까워지면 철이 바뀔 때마다 울 일이 생기게 되니까.

아,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진짜 알바 하나 안 하나 확인하러 몰래 다녀왔을 것 같아. 내가 가기 좀 그러면 친구에게라도 가서 알아 봐 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고. 어려운 거 아니잖아. 머리 빠지게 혼자 고민만 하지 말고, 가서 보고 눈으로 확인해.


3. 썸남에게 다가가려는 H양에게.


수지야, 남의 눈 무서워하면 연애 못 해. 넌 '이 바닥이 좁아서 호감을 표시했다가 알려지면 어쩌나.'하는 고민을 하는데, 그 바닥이 좁아도 다들 연애하고 결혼하잖아. 안 알려지는 대가로 평생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실버타운 독거노인 동으로 들어갈래? 인어공주 봐봐. 왕자랑 밥 한 번 같이 먹겠다고 목소리 내주고 다리 얻잖아.

"하지만 인어공주는 비극이잖아요? 결국 물거품이 되는….
그리고 밥 한 번 먹자고 목소리 내준 게 아닌 걸로 아는데요."



지금 내가 목소리 내주라는 게 아니잖아. 소문? 너 호감 표현한 게 평생 주홍글씨로 남아서 사람들이 눈 감는 날까지

"수지가 그때 고백을 했었지…."


할 것 같아? 전혀 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그냥 잠시 남의 얘기 하는 걸 즐길 뿐이지, 그걸 두고 평생 네 오점으로 삼지 않아.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게 오점이 될 일도 아니고 말야.

그리고 너 혹시 쌈디의 'Control'들어봤어? 그 노래 첫 마디가

"회사는 잠깐 뒤로 빠져있어."


거든. 네 연애에서도 딱 그 태도로 가는 거야. 분위기 잘 띄우는 그 동기 끼워서 썸남이랑 만나려고 하지 마. 내가 늘 얘기하잖아. 아무도 네 연애에 못 끼어들게 하라고. 당장은 푼수 짓도 살짝 해 주면서 계기를 마련해주는 동기가 '해결사'로 느껴지겠지만, 그러다가 썸남과 동기가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 또, 당장은 동기가 들러리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마울지 몰라도,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 판을 엎는 경우도 있어. 셋이 어울리다 둘만 어울리니까 걔 딴에는 심술이나 질투가 날 수도 있지. 셋이 만났다가 오히려 네 수동적인 태도가 더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고 말야.

썸남과 가까워지고 싶으면 그에게 질문과 부탁을 해. 그가 도와주거나 대답해 줄 수 있는 걸로. 썸남이 선배직원이라며. 일과 관련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너랑 나만 사람이고 썸남은 무슨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할 말이 있어서 내게 사연을 보낸 것처럼, 썸남과도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내가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건, 수지 네가 너무 빨리 대화를 마무리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급하게 끝인사 하지 마. "네. 또 봬요.", "주말 잘 보내세요."하고 급하게 끊지 마. 말 꼬리를 좀 잡아도 괜찮거든. 상대가 "~하시겠네요."했을 때를 보자.

"네 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X)
"네. 그런데 ~하는 게 좀 걱정이에요."(O)



무슨 얘긴지 알겠지? 얼른 대화 마치고 어디 가야 하는 사람처럼 끊지 말라고. 내가 후배라면 선배에게 근처 식당을 추천 받거나, 사무실 필수 용품을 추천 받거나, 회사 생활 노하우를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럼 자연히 대화가 이어지거든. 상대가 추천해 준 거 산 뒤에 사진 찍어서 보내면, 그걸 계기로 또 대화가 이어질 수 있고 말야. 일단 이렇게 다가가 봐. 가다가 막히면 또 내게 사연 보내면 되니까, 걱정은 좀 내려놓고 가 봐. 알았지?


매뉴얼을 통해 주로 '주의해야 할 부분'들을 적다 보니, 운전대를 잡고 '이제 뭘 주의해야 하지? 이거? 저거?'하며 긴장만 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제가 솔로부대원이라면,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다 해볼 것 같습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3년 전 알고 지내던 썸남에게 연락을 해봐도 될까요?"


따위의 질문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하면 된다. 그가 내 구원이 되기를 바라며 매달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도로 위에서 '사고주의 표지판'만 찾진 않았으면 한다. 가다가 그게 보이면 주의하면 되는 거지, 그것만 찾으려 도로 위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진 말자. 그러면 몸과 마음 모두 피곤해지고 만다. 벌써 몇 번째 하는 얘기지만, 2062년 다시 핼리혜성이 찾아올 때 그대나 내가 지구에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청춘은 그보다 더 짧다. 그런데 왜 망설이고만 있는가? 불금의 힘으로 도전해 보길 권한다. 도전!



▲ 사연은 꼭 신청서(http://normalog.com/notice/1339)에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추천은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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