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을 훼방 놓는 여자사람 친구, 어떡해? 외 1편
S군은 몇 달 전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여자사람 친구 B양의 권유로 나가게 된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나가게 된 교회에서, S군은 운명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여기서는 편의상 A양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S군은 A양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A양은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또래와 달리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화장도 기초화장만 합니다. 그런데 예쁩니다. 웃는 건 더 예쁩니다."
이로써 우리는 S군이 A양에게 완전히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S군을 교회로 인도했던 B양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녀는 S군에게
ⓐ 걔는 내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아이다. 꿈도 꾸지 말아라.
ⓑ 만약 너희 둘이 사귄다면 교회 어른들도 알게 되고, 그럼 곤란해진다.
ⓒ 난 너를 연애하라고 교회에 데리고 온 게 아니다.
ⓓ 만에 하나 네가 그녀에게 고백하거나 그녀와 사귄다면, 난 너와 절교할 것이다.
라는 선언을 했다. 내가 만약 S군이었다면 그런 얘기를 하는 B양에게
"요한 1서 4장 11절이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아멘."
이라고 대답한 뒤 절교했겠지만(응?), S군은 우정도 지키고 사랑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있으니, 어떤 방법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자.
1. 썸을 훼방 놓는 여자사람 친구, 어떡해?
S군은 포수 타입의 남자다. 투수 타입의 남자가 유머를 적재적소에 꽂아넣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면, 포수 타입의 남자는 누가 어떤 드립을 던지든 다 받아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타자 타입의 남자도 있다. 타자 타입의 남자는 누군가가 꺼낸 화두를 아무도 상상 못한 곳까지 날려 보낸다는 점에서 매력적인데, 여기선 전부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우선 넘어가자.
포수 타입의 남자는 사람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대개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막 던지는 타입이 아니라 핫이슈가 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성실한 리액션과 유쾌함으로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으로 평가 받는 경우가 많다. 전국노래자랑의 송해선생님이나 무한도전의 유재석씨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B양에게 S군은 '첫 이성친구'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가 하자고 하는 걸 같이 할 수 있는 친구. 그러다 B양의 요청에 S군이 승낙해, 교회까지도 함께 다니게 되었다. S군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회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B양은 S군이 'B양 친구'로서 호평을 받는 것이 기뻤을 것이다. 함께 교회를 다니며 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S군과 A양 사이에서 연애전선이 형성될 것 같은 기운이 감돌자, B양은 내가 열심히 까놓은 땅콩을 남이 홀랑 집어 먹어 버리려고 하는 듯한 위기감이 들었을 수 있다. 자칫하다간 S군이, 'B양 친구'가 아닌 'A양 남친'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S군은 A양과 친해진 뒤 둘이 선물까지 주고받았는데, 그걸 보며 B양은 자신이 조연이나 들러리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수 있다. 둘이 가까워지지만 않았어도 S군의 관심과 친절과 호의는 분명 B양을 향했을 텐데, A양과의 썸 때문에 자신의 몫을 빼앗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더불어 B양의 살짝 과한 지배욕도 찾아볼 수 있다. "난 너를 연애하라고 교회에 데리고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보면, 그녀는 사람들을 마치 자신의 인형들을 다루듯 하려는 것 같다. 사실 이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언젠가 난 TV에서 일반인 지원자들이 모여 살림을 꾸려가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 중 한 사람이
"지금 나한테 반항하냐?"
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같은 참가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자신이 생각한대로 움직이지 않자, 그 사람은 결국 밥을 먹다 말고 상대에게 젓가락을 던졌다. 내가 받는 사연들에도 이런 모습들은 종종 등장한다. 자신이 엮어 준 두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주선자라든지, 자신이 진심을 다해 한 충고인데 그걸 듣지 않았다고 상대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친구라든지 하는 모습들로.
난 S군에게, 누군가의 폭투까지도 다 받으려 하는 포수의 모습에서 벗어나길 권해주고 싶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포수 타입의 사람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혹시 당나귀를 팔러 가던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당나귀를 팔러 장으로 가는 길, 마을을 지나며 마을 사람들에게 타고 가면 되는데 왜 끌고 가냐는 말을 듣자 아빠는 당나귀를 탔다. 그 다음 마을에서는 아들이 타야지 왜 아빠가 타고 가냐는 말을 듣고는 아들을 태웠다. 또 그 다음 마을에서는 둘 다 타면 될 걸 한 사람만 타고 간다는 말을 듣자 두 사람 모두 탔다. 그러다 다음 마을에서 당나귀가 불쌍하다는 말을 듣자 둘은 당나귀를 이고 갔다. 폭투를 하고 있는 B양의 공을 다 받아내려 하다간, S군이 당나귀를 이고 간 저 부자와 같아 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B양에게 S군의 감정도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S군도 B양만큼이나 진지하다는 것, 또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절교 하겠다'는 선언은 우리의 관계를 인질로 삼는 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해보길 권한다. S군은 현재 B양의 절교 예고에 잔뜩 긴장해 다른 사람을 통해 B양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그 행동은 즉시 그만두자. B양도 바보가 아니라서 S군이 다른 사람 시켜 떠보는 거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늘 얘기하듯 '인간 메신저'는 이야기를 더하거나 빼서 전하는 경우가 많으니 거기에 기댔다간 훗날 더 큰 화를 입게 될 수 있다.
또 S군은 B양의 선언으로 인해 A양에 대한 마음을 접을 생각도 하고 있는데, 친구의 협박 때문에 반평생을 같이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놓치진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내가 바라는 것'까지 전부 접거나 양보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나'는 없이 '좋은 관계'만 남은 인생이 무슨 의미 있겠는가.
2. 남들과 달리 특이한 남자?
소개팅 사이트에서 올 초에 만나 지금까지 사귀어 온 커플이다. 이건 L양의 질문 위주로 풀어가 보자.
Q.그는 애정표현도 잘 안 하고 날 좋아하는지, 왜 만나는지 모르겠습니다.
'L양이 그를 좋아해 주니까 만난다'는 대답을 해드리고 싶다. L양은 과거 연애에서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엔 상대에게 맞춰주는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상대도 별로고 방법도 별로다. 둘의 카톡대화 초반을 보면 L양이 그를 '보통의 남자와 다른 남자'라고 여기며 띄워주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서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믿어주고, 또 열심히 리액션을 해준다.
여기다 옮겨 적기도 민망할 정도의 이야기들에까지 L양이 호응을 해주니, 그는 L양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을 것이다. 보통의 여자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자뻑이나 허풍,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야기들로 여기며 웃고 말았을 텐데, L양은 그걸 '역시 천재성이 있는 사람들은 비범한 삶을 사는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사귀는 동안에도 그가 약속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말만 번지르르 한 것을 모두 '비범하기 때문에'로 해석해 버렸다. 카톡대화를 봐도 무슨 그를 대상으로 하는 L양의 '명사와의 인터뷰'를 보는 느낌이다.
Q. 이 사람이 특이하고 표현력이 약한 거니까 이해해야 할까요?
상대가 대체 얼마나, 그리고 뭐가 그렇게 특이한 사람이기에 그걸 그의 말과 행동을 합리화 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미친 짓을 많이 하면 그냥 미친 사람으로 보는 게 맞다. 비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일상이 다르기만 하면 비범한 게 아니잖은가. 창의적인 사람 중에 대학 중퇴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역으로 대학 중퇴한 사람이 창의적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L양의 행동은, 보통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직종이나 분야에 있는 사람에게 환상을 덧씌울 때 보이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된 문장이 랩퍼 UMC의 오래 전 노래에 나온다.
"랩은 못해도 (사람들이)잘 모르지만, 농구는 못하면 확 티나."
상대가 랩퍼든 농구선수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바라보길 권한다. 상대가 남들보다 암기력이 뛰어나 지하철 노선표를 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L양을 기만하거나 협박만 일삼는다면 그 사람은 못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표현력이 약하다'는 그의 변명을 철석같이 믿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말길 바란다. 둘의 초반 카톡대화를 보면, 상대는 표현을 잘 한다. 그러던 상대는 후반으로 갈수록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L양을 일찍 재우려 하거나 L양의 입을 막으려 한다.
Q. 계속 만나도 되나요? 아니면 제가 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는 건가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상대의 협박이 시작된 4월 초 이후로, 앞으로 남은 건 L양이 정신적인 고문을 당할 일 뿐이다. 이제 상대는 "네가 지금 그러는 것 때문에 난 네가 싫어지려고 한다."라는 말 등을 하며 L양 벙어리 만들기에 들어갔다. 웃긴 건, 저 다툼이 나오게 된 이후가 L양 남자친구의 늦잠 때문이라는 거다. 그는 약속시간을 30분 남겨두고도 잠을 자고 있을 정도로 약속과 관련된 부분이 형편없다. 때문에 L양은 그에게 화를 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역으로 화를 내며 판을 뒤집어 버린다. 이전에 매뉴얼에서 소개한 적 있는,
"이미 늦었는데 어떡하냐. 나도 늦어서 너에게 미안해하는 중인데,
이런 나를 그렇게 타박해야 하겠냐.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면 넌 기분이 좋아지냐.
오늘 우리 만나지 말자. 난 지금 너 보면 폭발할 것 같다.
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라."
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L양의 남자친구는 위와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며 다음 날로 만날 약속을 미뤘다는 건데, 다음 날도 그는 자고 있었다. L양이 또 싸울까봐 따지지도 못하고 부드럽게 말하자 그는,
"어제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오늘 너랑 약속한 것도 기억할 틈이 없었다."
라는 변명을 했다. 이쯤 되면 얼른 그에 대해 파악하곤 고문실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L양은 현재 그의 단답 카톡을 받으며 또 싸우게 될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뿐이다. 결혼 생각 없다는 남자 만나서 연애만 할 거면 즐겁거나 뜨겁기라도 해야지, 거기서 고문만 당하고 있으면 어쩌잔 말인가. 아이고 두야.
어제도 새들과 친해지려 공원에 나갔다 들어왔다. 어제는 특별히 삶은 계란을 가지고 가서 녀석들을 유혹했는데, 한 마리도 넘어오지 않았다. 새 소리 어플로 직박구리 울음소리를 재생했다가, 직박구리들에게 쪼여 죽을 뻔 한 일만 벌어지고 말았다. 직박구리들의 반응이 엄청났기에 조만간 동영상으로 그 현장을 담아볼까 한다.
공원 탐조와는 별개로 집 발코니에서도 새들을 유혹하고 있다. 설치해 둔 지 삼일이 지난 시점부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준비해 둔 사과와 삶은 계란, 그리고 땅콩을 녀석들이 모두 먹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녀석들은 카메라를 설치해 두면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직 카메라가 있다는 소식을 못 듣고 눈치 없이 왔던 녀석 하나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 땅콩 먹으러 왔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나보다 더 놀라 도망가는 녀석.
효과를 보려고 임시로 설치해 둔 먹이통의 검증을 끝냈기에, 주말쯤엔 새로 제작을 해 볼 생각이다. 오늘도 공원 탐조를 나갈 예정인데, 새들이 밀당을 그만하고 먹이통에 와서 먹이를 좀 먹어줬으면 좋겠다.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 "새랑 친해져서 뭐하시게요?" <세상에 이런일이> '파주 새 총각'편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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