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인기 많았던 선배 오빠 외 2편
지선씨, SNS에 달리는 댓글 숫자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게 대인관계의 승패나 빈부를 증명해주는 건 아니니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 밤을 새워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하나만 있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는 생각해.
SNS에 달리는 댓글은, 지선씨가 지금부터라도 '좋아요 품앗이', '댓글 품앗이'를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야. 지선씨가 올리는 글에 댓글이 하나, 두개 밖에 달리지 않는 이유는 지선씨와 친한 사람들이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은 것, 그리고 얼굴만 아는 정도의 사람들에게 지선씨가 먼저 댓글을 달지 않은 것 때문이거든. 오늘부터라도 짬나는 시간에 지인 SNS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 버튼 등을 누르다 보면, 연말쯤에는 지선씨가 찍어 올린 트리 사진에도 풍성한 댓글이 달릴 거야.
물론 난 그걸 권하고 싶진 않아. 정말 그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품앗이에 참여하는 것도 그저 폼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는 일일 수 있거든.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건 서로의 앞에서 폼 잡고 번갈아가며 박수 쳐주는 친목계 같은 건데, 큰 친목계에 들었다고 더 기쁜 것도, 친목계에 들지 않았다고 슬픈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큰 친목계에 들어도 박수 받는 거 공짜가 아니야. 그만큼 지선씨도 돌아다니며 박수 치고 다녀야해. 누군가
"오빠가 사 준 블루베리~ 내 눈 걱정까지 해주는 건 역시 오빠 뿐♥"
따위의 글을 올리면, 거기 가서 일단 '좋아요'버튼 한 번 누르고, 별로 달고 싶지도 않은 "우와 부럽다~ 나도 블루베리 먹고 싶어~"같은 댓글을 달아야 하거든. 그럼 또 상대는 "나중에 놀러와~ 요거트에 타 먹으면 엄청 맛있어. 같이 먹자♥"같은 답글을 남기겠지. 그렇게 해서 정말 둘이 만나 블루베리 요거트에 타 먹는다면 모르겠는데, 대개 저런 경우 그저 서로 친한 척 하는 액션일 뿐일 때가 많거든. 그냥 '나 이정도로 친한 사람 많다'라는 걸 좀 내보이고 싶으니까 안 갈 거 알고, 안 올 거 알면서도 그냥 한 소리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런 대화를 보며 '쟤들은 저렇게 만나며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놀러 오라고, 놀라 간다고 말 할 사람도 없이 이렇게 홀로 외로울까.'하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1. 대학생 때부터 인기 많았던 선배 오빠.
그런데 말이야. 저런 '품앗이'에는 참여 안 하더라도 지선씨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챙길 줄 알아야 해. 저렇게 얕고 넓게 살기가 싫어서 다 팽개쳐 둬버리면, 리액션 기능은 퇴화하고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속으로만 생각하게 될 수 있거든. 특히
'나랑 통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라는 자세로 삶을 대하면, 지선씨의 말대로 대부분의 일에 무신경 해지고 타인의 일에 무관심해질 수 있어. 그러다 보면 제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훗날 남자친구가 생겨도 그에게까지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게 될 수 있거든. 그렇게 된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점이,
'아무튼 그게 어떻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고,
그래서 나한테는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라는 거야. 예를 들자면, 남자친구가 이번에 친구 결혼식 사회를 맡게 되었다고 말을 했어. 그러면서 주말에 좀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말이야. 그럼 그에게 어떤 친구가 결혼하는지, 어떻게 사회를 볼 생각인지를 물어보는 게 일반적인 진행이거든. 그런데 무신경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사람은 그런 질문 없이
'그럼 이번 주말에 연습하느라 나 못 만난다는 거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 '그의 상황'이 어찌되었든 간에 '나와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 버리게 되니까 말이야.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보게 된 그는 뭘 입어야 하는지, 헤어스타일은 이번 기회에 바꿔 보는 게 좋은 지 등을 고민할 텐데, 그것마저도 이쪽에서는 철 없는 모습이나 혼자 들뜬 모습으로 보게 될 수 있지. 그 모습들이 이쪽에겐 전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니까.
내가 이런 얘기들을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지선씨에게 건강한 연애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인기 많은 선배 오빠'와 잘 되기 위해서도 이 두 가지는 꼭 필요한 거고 말이야. 그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위에서 말한 '얕고 넓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패배의식, 또는 피해의식 같은 걸 떨쳐버리는 거야. 지선씨가 SNS에서 품앗이는 하지 않지만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열 명 정도 된다고 했잖아. 그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야. 게다가 유년기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있다며. 그 정도면 우정을 패션처럼 내보이지만 않고 있을 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거야.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는 거고, 또 마당발이라는 게 대인관계의 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스스로 그 부분에서 실패했다 생각하며, 대신 다른 부분에서의 가능성을
"그래도 오빠와 대화를 나눌 때,
오빠가 결혼은 부모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말해서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전 어른들께는 평가가 좋고,
사회적인 기준으로도 신붓감으로 꽤 괜찮은 편이라서…."
라는 이야기로 말 할 필요는 없어. 지선씨가 하려는 건 연애지 입학이 아니잖아. 게다가 서로 생일축하 한 번 해 준 적 없는 현시점에서 단순히 저 말 때문에 희망을 갖는 건, 김칫국 드링킹일 뿐이야.
"이십대 초반 처음 남친을 사귀기 전에는 저도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자신만 바라보길 원했고,
그 결과 저와 학교 사람들, 그리고 저와 친구들과의 관계가 차차 끊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간 적 없을 정도로…."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다시 만나.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구남친에게 길들여진 것에 대한 하소연만 하며 계속 그 그늘에 있으면, 남들은 "아이고, 어쩌다 그런 일이…."라고 말은 하겠지만 그냥 그게 전부일 거야. 그 얘기를 듣고 "그래, 네 사정은 다 알았으니 앞으로는 네가 나에게 연락도 안 하고 밖으로만 돌아도 난 계속 널 붙잡아 줄게."라고 말 할 사람은 없어. 넘어졌으면, 일어나서 걸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잖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제가 왜 넘어졌냐면요…."라는 이야기만 풀어내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계속 그 자리일 거야. 일어나. 일어나지 않으면 누군가와 만나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할 뿐, 겉으로는 상대에게 손톱만큼의 애정도 표현하지 못 할 수 있으니까.
그 다음으로 지선씨에 필요한 건, 양보와 인내, 그리고 희생이야. 지선씨의 시간과 돈과 관심을, 하루 중 10분이라도 남에게 베풀어. 내가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학창시절 내 친구가 집을 나왔을 때 "집 나와 봐야 고생만 해. 얼른 들어가."라고 말했던 거야. 그 얘기를 하더라도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사면서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은데, 난 당시에 문자메시지로만 저 얘기를 했거든. 그 친구는 내가 집을 나왔을 때 자기 세뱃돈 까지 다 들고 나와 밥을 사주고 남은 돈을 내게 줬는데 말이야.
논리적으로 보면 그 친구가 한 행동이 바보짓이긴 하지. 돌려받을 약속도 하지 않고 준 것이니 다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세뱃돈 절반만 가지고 나왔으면 도움도 도움대로 주고 본인이 사려고 했던 것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집에서는 나를 재워줄 수 없는 까닭에 임시로 잘 곳이라도 알아보라며 세뱃돈을 다 내게 줬던 거야. 참 바보짓인데, 그 친구의 저 바보짓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그 친구를 은인으로 생각하게 만들거든. 여기다 적을 순 없지만 공쥬님(여자친구)이 내게 한 행동 중에도, 평생을 살아가며 갚아나가고 싶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했던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고맙다고 말하며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런데 개인플레이에 익숙해진 지선씨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 수 있거든. 지선씨는 똑똑하고 논리적이잖아. 그래서 손해를 안 봐. 아쉬운 소리를 하지도 듣지도 않는 스타일인데, 그러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수는 있겠지만 둘 사이의 끈끈한 감정 또한 만들어지질 않게 되거든. 이번 '선배 오빠'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지선씨는 그와의 대화를 두고
"대화하며 제가 먼저 티내거나 조급해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맞아. 태내거나 조급해 하진 않았어. 그런데 그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이게 뭐랑 똑같은 거냐면, 내가
"어머니와 저 사이에 특별히 불화나 갈등이 있진 않았습니다."
라고 말은 하는데, 알고 보니 집 안에서도 나와 어머니는 서로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던 것과 같은 거야. 불화나 갈등은 물론 없었지. 대화를 한 적도 없으니까.
이거, 둘이 겨우 3분간만 카톡을 나누는 와중에 "오빠도 얼른 결혼 해~"라는 말을 해서 한 번 떠보고는 조만간 보자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해버리고 있으면 방법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뭐라도 좀 해서 일단 '계기'를 만들어봐. 내가 권하는 건, 연애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하면서 상대와 가까워지는 거야.
지금 지선씨를 보면 상대의 이상형이나 상대의 과거 연애사, 또는 상대의 소개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물어 보려 하거든. "오빠가 결혼은 부모님이 원하는 여자랑 하려 한다는 얘기를 했다. 체크.", "이러이러한 성향의 여자를 싫어한다고 한다. 체크."라며 '시험에 나올 문제' 받아 적듯 하고 있어. 그러지 말고 다른 얘기를 해. 자전거 얘기, 영화 얘기, 노래 얘기, 축구 얘기, 로또 얘기, 꿈 얘기, 할 거 많잖아. 연락이 닿았을 때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봐. 지선씨가 먼저 연락해서 물어도 되는 거고. 야구장 가봤냐고 슬그머니 질문 던져볼 수도 있는 거잖아. 지선씨가 지금보다 여섯 배 정도 적극적으로 이 관계에 임해도, 그건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까 걱정 말고 연락을 해. 단, 앞서 말했듯 자꾸 '상대의 연애 뒷조사'를 하려고 연애에 관한 질문만 하는 일은 피하고.
하나 더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이건 꼭 이러라는 건 아냐. 다만 지선씨가 현재 너무 딱딱하기에 좀 유쾌한 모습도 보여주길 바라며 권하는 거야. 상대를 따라 해. 카톡을 보면 상대가 쓰는 독특한 표현이라든지 특유의 말투가 보이잖아. 예를 들어
"피쓰!"
하며 말을 끊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지선씨도 "피쓰!"로 화답해줘. 지선씨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수고해."로 끝내지 말고 말이야. 둘 만의 유행어를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상대가 자주 쓰는 표현을 따라해 봐. 지선씨는 상대가 장난을 걸어도
"?????"
라는 식으로 딱딱하게 받고 말거든. 그러지 말고 살짝 오버한 투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라고 받거나, 확고한 대답에 "오빠 혹시 단호박 좋아해?" 등의 표현으로 받아 봐봐. 그럼 대화가 좀 더 즐겁고 길어 질 수 있어. 면접관이랑 대화하는 거 아니잖아. 긴장을 좀 풀고 같이 논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해봐봐. "왜? 오빠 그 얘기 할 때 눈이 반짝였던 것 같은데ㅋ"라고 할 수 있는 말을, "응. 알았어."라고 받지 말고. 알았지? 화이팅!
2. 친언니가 해 준 소개팅, 그런데 친언니가 결사반대.
사실, 은아씨의 이 '친언니와 엄마를 설득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는 사연을 다뤄야 하나 꽤 고민했습니다. 사연과 카톡대화를 전부 읽은 후, 저는 은아씨가 언니와 어머니를 설득하더라도 남자친구와는 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은아씨 언니나 어머니께서 반대하시는 것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저는 은아씨의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은아씨가 남친을 '못 생겼지만 나보다 안정적이고 나한테 잘 하는 남자'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아씨는 언니와 어머니께서 그의 집안과 건강상태까지 보는 걸 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은아씨도 또 다른 형태로 남자친구의 조건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개팅 자리에 현남친이 아니라, 또 다른 '안정적이고 나에게 잘 하는 남자'가 나왔다면 그와의 연애도 시작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남친이 잘 생겼지만 속 썩이던 나쁜 남자 였으니, 현남친이 못 생기고 착한 게 오히려 낫다는 이야기가 저는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실제로 그가 현재 헌신하고 있기에 은아씨가 만족하고 있다는 게, 제가 이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가 항상 태우러 오고, 태워다 주고, 또 도시락까지도 직접 싸가지고 오기에 은아씨는 '이 정도의 남자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는 일방적인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연애 초반이니 그가 묵묵히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오가겠지만, "태우러 오는 오빠에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약속시간 늦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은아씨의 태도를 그가 언제까지고 계속 이해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아씨는 "콩깍지가 벗겨져도 우리가 잘 사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도 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선 '미안하니 그러지 말라고 할 것'과 '감동적인 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상대가 전력질주 한다고 박수만 칠 게 아니라, 은아씨가 그의 페이스조절을 도와야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은아씨가 이 연애의 각본을 혼자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건, 은아씨가 그와 사귀는 도중 언니가 주선한 다른 소개팅도 했다는 것입니다. 은아씨가 현님친을 '못 생기고 착하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남자'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더불어 은아씨는 언니와 어머니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 위해 남친에게 협조를 구할 생각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내가 말하면 따라줄 테니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만약 결혼 후 거짓말은 전부 들통 나고 남자는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던 게, 나에겐 정말 상처였다."라고 말하며 은아씨의 손바닥에서 벗어난다면, 그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건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남친이 은아씨에게 인간적인 실망을 하는 순간 은아씨에게 베풀던 헌신과 애정 등을 모두 거둘 텐데, 그때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네 번째 이유는 은아씨가 그에게 오로지 '오케이'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아씨는 사실 그가 자꾸 교외로 드라이브 가려는 것도 싫어하고, 그가 취미로 가지고 있는 것들에도 아무 흥미를 못 느끼며, 그가 재미있어 하는 장르의 영화도 싫어합니다. 물론 전혀 티는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를 망치거나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 '좋아하는 척'을 할 뿐입니다. 이게 바로, 이전 매뉴얼들을 통해 말했던 '연인 코스프레'의 모습입니다. 정말 그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저 '난 연애 중이다'라는 게 좋은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다섯 번째 이유는, 은아씨가 아닌 남친에게 있습니다. 은아씨는 "오빠가 그런 말을 해서 기분이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금사빠인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는데, 제 생각도 은아씨와 같습니다. 게다가 들뜬 마음에 회사 사람들에게 은아씨와의 일을 말하는 것도, '너무 가벼운 행동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그와 같은 직장, 다른 부서에 있는 은아씨의 언니에게까지 그 일들이 전부 알려질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의 가족사, 그리고 가정사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은아씨의 언니가 알게 된 것 역시, 천천히 생각해 보면 전부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게 은아씨 언니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은아씨는 가족들에게, 아직 몇 주 만나지도 않은 남자친구에 대한 보증을 스스로 서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걸 전 좀 말리고 싶습니다. 그가 여자나 술로 문제 일으킬 사람 아니며 착하고 일 밖에 모르는 남자라는 걸, 아직 둘이 첫 눈 한 번 맞아본 적 없고 명절 한 번 보내본 적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쉽게 보증하려 드시면 곤란합니다.
이런 얘기 다 듣기 싫고, 그저 언니와 어머니를 설득하는 방법만이 궁금하신 거라면, 은아씨가 신청서 '자유작성' 맨 마지막 부분에 적은 이야기만 하시면 됩니다. "만난 지…(중략)…일 년 정도는 시간을 주세요."라는 부분 말입니다. 첫 문단에 들어간 내용들을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이나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집안의 장점들에 대한 부분 말입니다. 특히 은아씨 집안에서 걱정하는 것과 달리, 제가 알기로 남자친구 집안의 경우는 많은 혜택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알아 본 뒤 얘기하면, 은아씨 언니와 어머니께서도 수긍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단, 중간 문단에 있는 내용들은 꺼내지 마시길 권합니다.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은 좋지만, 그게 오히려 은아씨가 적당히 타협해서 낸 결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아씨가 그를 보증하겠다고 말하는 것 역시 언니와 어머니의 불안함만 증폭시킬 것이고 말입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다만, 언니와 어머니께서 보고 계시는 부분을 다 충족해도 사람 됨됨이가 별로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 그리고 은아씨 역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를 하시면 될 겁니다.
이럴 땐, 언니나 어머니께 상처를 내가면서까지 맞서 쟁취할 게 아니라, 겉으로 동의하며 은아씨가 원하는 결과만 가져오면 되는 것입니다. 언니와 어머니의 말에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잖아?"라고 맞서봐야, "얘가 또 뭐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니, 은아씨도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거 지금 당장 내일 결혼할 생각으로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거 아니라는 대답을 하면 됩니다. 남자를 만나봐야 은아씨도 남자에 대해 알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면, 무작정 얼른 헤어지라는 언니와 어머니의 압박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언니와 어머니께는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끝으로 [결혼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라는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의 최신 사연을 다룰까 한다. Y양은 매뉴얼에 있는 조언에 따라 그와 사계절을 더 보내본 후, 더욱 가까워져 올 가을 결혼을 한다고 한다. 축하드린다.
결혼선물로 난 Y양에게, "그 자리에서 시작하세요. 그리고 감사한 부분을 더욱 유심히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Y양이 고민되는 부분들을 지인에게 이야기 했을 때, 지인이
"내 예전 남친이 그래서 나도 고민이었는데, 이번 남친과는 그런 문제가 없어."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거기에 흔들리지 말길 권한다. 과감한 남자는 당장 박력 있어 보이지만 훗날 그 과감함으로 인해 치는 사고들이 문제될 수 있고, 돈을 아끼려는 남자는 당장 구두쇠 같아 보이지만 훗날 탄탄한 가정경제를 이룩할 수 있다. 남친이 가진 단점이 없는 남자는, 반대로 남친이 가진 장점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출발해야지,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이 사람에게 없지만 다른 사람에 있는 것'을 찾거나, '과거 구남친들의 장점'들을 생각하며 비교하면 곤란하다. 그런 생각으로 예비신랑인 남자친구를 닦달하면, Y양에 대한 그의 마음이 돌아서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말이다. 사실 난 이게 제일 걱정된다. Y양은 현재 남자친구의 행동 중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삐치거나 토라지거나 화가 나선
"결혼해도 이럴 거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결혼을 앞두고 예민해진 까닭에 그럴 수 있다는 걸 난 이해할 수 있지만, 저 질문을 받는 남자의 입장에선 앞으로 Y양의 입맛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무거워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더불어 Y양의 꿈과 로망을 그가 모두 이루어주길 앉아서 바라고만 있지 말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Y양의 돈으로 살 생각도 하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Y양이 먼저 주도해서 하기도 하자. 바꾸고 싶은 게 있으면 Y양이 준비를 해서 바꾸기도 하자. 지금처럼 남친이 하는 것에 대해 평가만 하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남자친구가 얼마 전
"대체 왜 우는 거야? 그게 그렇게 내가 잘못한 일이야?"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제 그도 늘 Y양이 '피해자가 된 듯이 구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내용을 적지 말라고 부탁한 까닭에 다른 일에 비유하자면, 남친이 Y양에게 차를 사줬는데 그게 새 차가 아니고 '중고 경차'라고 해서 기분 상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답이 없는 거다. 수많은 사연을 읽은 내가 장담하는데, Y양은 상위 30%에 드는 행복한 연애와 결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리는 건, 인생을 아예 상대의 등에 업힌 채 살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빠에겐 자기계발에 열정적인 모습이 부족해서
제가 자극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게 아쉬워요."
정말 오빠가 나를 위해 희생도 해야 하고, 헌신도 해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하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날 챙겨줘야 하고, 거기다 나아가 나에게 좋은 자극까지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농담이 아니라 좀 심각한 상황이다.
"오빠는 성실하고, 알뜰하고, 한결 같고, 긍정적이고, 세심하고,
이성관계 깔끔하고,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다정다감하고 로맨틱한 모습이 없어요."
완전한 황무지도 아니고 그 정도로 개간된 '비옥한 땅'같은 남자를 만났으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키우는 것 정도는 Y양이 해야 할 것 아닌가. Y양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알아서 꽃 피고 열매 맺기를 바라고만 있지 말자. Y양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막연하고도 답답한 그 감정을 느끼는 건, 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에게 말로 주문해서 다 해결하려 하는 Y양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높다. 설마 나중에 아이에게도 "난 네가 수학을 좀 더 잘 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국영수 외에 예체능도 잘 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교과목 외의 부분들에도 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배워갔으면 좋겠어."라고 주문만 할 생각은 아닐 것 아닌가. 기념일에 기분 내고 싶은 데 남자친구가 밥 값 아낀다며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 데리고 갔다고 불평하지 말고, Y양이 한 번이라도 먼저 '기분 낼 수 있는 곳'을 예약해 보길 권한다. 남친이 데려간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남친 기분 안 상하게 잘 얘기해서 맞춰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라고 묻지 말고,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연애를 보살피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길 권한다. 아, 남자친구가 눈치가 부족한 까닭에 선물을 하고도 "이거 포장 안 뜯은 신동품으로 완전 싸게 산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선물 주고도 기분 망치는' 단점이 있긴 하던데, 그건 "오빠, 난 그걸 몰랐다면 더 기쁘고 감동했을 것 같아. 내가 오빠에게 선물을 주면서 '원래 이거 말고 다른 거 사려고 했는데, 마침 이게 세일해서 가격 대 성능비 좋길래 얼마 주고 산 거야'라고 말하면 오빠도 기쁨이 반감 될 수 있잖아."라는 식으로 가르쳐 주면 된다. 단,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오빤 이런 점이 참 단점이야."라곤 말하지 말길 권한다. 그렇게 말하면 그는 그 일로 인해 뭔가를 배우기보단, 다음부터는 선물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테니 말이다. 아무쪼록 입엔 쓰지만 몸엔 좋은, 이 결혼선물로 인해 행복한 부부로 거듭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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