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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바쁘고 힘든 일이 있는 남자와의 연애

by 무한 2014. 9. 12.

바쁘고 힘든 일이 있는 남자와의 연애

며칠 전 우리 단지 내 슈퍼에서 도둑이 잡혔다. 계속 물건이 없어지는 걸 눈치 챈 슈퍼 주인아저씨가 날을 잡아 잠복을 했고, 이십대 초반의 범인이 가림 천막을 뚫고 들어갔다가 잡혔다.

 

그런데 도둑을 잡은 주인아저씨가 신고해 경찰이 왔을 때에는, 주인아저씨 또한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분한 마음에 범인을 사정없이 때렸던 것이다. 주인아저씨는 경찰에게

 

"얘가 뭘(흉기) 들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데,

그런 와중에 어떻게 손목만 잡고 있어요?

얘가 도망가려고 생난리를 치는데,

그럼 일단 저항을 못 하게 때려서라도 붙잡아야 하는 것 아녜요?"

 

라고 항의했지만, 도둑은 절도, 주인아저씨는 폭행으로 엮여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들었다. 동네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엔 언제나 내가 있는 까닭에 나도 경찰이 올 때까지는 지켜봤는데, 주인아저씨가 정말 사정없이 때리긴 했다. 주인아저씨는 그간 술들이 없어졌던 것에 대해서도 그 범인에게 엮으려고 했는데, 경찰이

 

"이건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가두어서 훔칠 수 없잖아요?"

 

라고 하자 "어버버버."하며 당황하기도 했다.

 

 

1. 혓바닥이 긴 남자.

 

A양이 내 여동생이었다면, 난 A양의 남친에 대해

 

- 말만 잘하는 남자라 불합격.

 

이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말해줬을 것 같다. 그간 내가 말 보단 행동을 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혓바닥이 긴 남자들이 늘어놓는 변명과 핑계, 그리고 합리화와 자폭연기에 휘둘리고 있는 대원들이 많아 안타깝다.

 

A양 남친의 말과 행동을 냉정하게 가려보자.

 

[말]

- 난 (사귀면)할 게 없어도 매일 봐야 하고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다.

- 난 우리가 사귀게 되면 네가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고 싶다.

- 같이 반지를 만들거나 케이크를 만드는 등의 데이트를 해보고 싶다.

- 어제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연락을 못 했다. 정리되면 전화하겠다.

- 난 널 진지하게 생각하며 만나고 있다. 중요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 다른 여자 있는 것도 아니고, 널 장난으로 만나는 거 아니다.

- 주말에 같이 맛있는 거 먹자.

-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집안에 일이 좀 생겼다.

- 연락 문제로 힘들게 한 것에 대해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행동]

- 사귀기로 한 후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번 만났음.

- 말도 잘 하고 사과도 잘 하지만, 주말에 뭐 하자고 해놓고는 연락 없음.

- A양이 화를 내면 새로운 약속을 잡으며 달래지만, 결국 약속은 모두 취소.

- 전화를 잘 안 받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통화가 안 되고 카톡 답장도 보내지 않음.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그가 한 말들 중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게 확실히 보이지 않는가? 그의 말들은 정치에 비유하면 '허위공약'이고, 광고에 비유하면 '허위광고'다.

 

"전 그가 한 말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일이 꼬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제가 힘들어 하며 울자, 그 역시 울며 사과한 적도 있고요.

자신도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상황이 이래서 너무 힘들다고…."

 

A양 믿음의 근거 역시 그의 '말'이라는 생각은 혹시 해본 적 없는가?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건 하나도 없다. 눈물? A양은 그가 통화하며 울었다고 해서 그 역시 괴로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눈물은 증거가 될 수 없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모 가장(Y씨)의 경우를 보자.

 

Y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이십대 중반에 애가 둘이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결여되어 있는 까닭에 일 년 중 일하는 날 보다 쉬는 날이 더 많다. 그는 학력과 경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은 까닭에 일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그와 별 다를 것 없는 그의 아내는 적은 돈이지만 마트에 나가 꾸준히 일을 하고 있다.

 

Y씨는 누군가가 소개시켜 주지 않는 이상 어딘가에 먼저 찾아가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용직 일을 하는데, 그마저도 사장이 싫다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이 싫다거나, 일이 보수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거나, 대우가 별로라거나 하는 핑계들로 하다가 그만 둘 때가 많다.

 

Y씨가 누군가의 소개로 처음으로 일을 나가게 될 때는 가정이 화목하다. 그는 아내에게도 앞으로 힘든 일 안 하고 집에서 쉬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커피숍을 하나 차려줄 테니 알바 쓰면서 편하게 일하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때는 참 희망차고 화기애애한데,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가 판을 엎어버리면 그때 함께 그 분위기도 엎질러져 버린다. 5년이 다 되어가도록 늘 같은 일이 반복되자 그의 아내도 지쳤는데, 그럼 그땐 Y씨도

 

"상황이 이런 걸 어떡하냐. 나도 진짜 너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큰소리만 친 건 절대 아니다. 나도 정말 그럴 생각으로 마음잡고 시작했던 거다."

"나 만나서 네가 고생만 하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못난 아빠 만나서 어디서 얻은 옷 입고,

중고 유모차나 타는 게 마음 아프다."

 

라는 이야기를 하며 울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그때일 뿐, 며칠 지나면 Y씨는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거는 노름에 빠져 빌린 돈을 걸고 있거나,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고 있다. 그런 모습에 또 아내가 화를 내면, 역시 "나도 괴롭다.",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냐."라며 자기 괴로운 점만 앵무새처럼 늘어놓을 뿐이고 말이다.

 

말이나 눈물, 맹세나 약속, 마음이나 의도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질 않는다. 위에서 말한 Y씨가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겠다며 손가락 하나를 잘라도,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예전처럼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면 여전히 무책임 한 거다. 허풍을 떨거나 지키지 못 할 약속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훗날 진실이 다 드러났을 때 '마음'이나 '의도'를 강조하며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학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그 불편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익숙하다. 난 A양이, '나중에 만나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그의 말만 붙잡은 채, 이 소중한 2014년을 다 보내진 않았으면 좋겠다.

 

 

2. 쌍방과실?

 

위에서 한 이야기와 달리,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자는 정말 A양과 잘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알면 알수록 별로인 A양의 모습들로 인해 점점 실망해 결국 마음이 뜬 것이라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A양에게서 상대를

 

- 내 연애를 빛내 줄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다치든, 곤란한 상황에 처하든, A양은

 

'그래서 나랑 만나기로 한 약속 미루겠다는 거네?'

'태풍으로 발이 묶여서 이번 주말엔 못 만난다는 거네?'

 

하는 생각을 하며 실망하거나 분노한다.

 

이것과 비슷한 일 때문에 내 친구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적 있다. 전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는데, 그 친구와 내가 다른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계속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죽은 친구와 다른 친구들 사이보다 가까웠기에 마지막 날까지 있다가 돌아갈 거라고 대답했는데, 여자친구는 왜 그래야 하냐며 화를 냈다. 그 중에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하고 있던 날에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실망감도 이해는 가지만, 상실감으로 넋이 나가있는 친구에게 "뭐하러 그렇게 오래 있냐."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분명 치명적인 실수였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공감능력의 결여'로 인해 발생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응급실에 간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지금 내가 가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회사 끝나고 들르겠다."

 

라며 지독히도 논리적인 대답을 했던 이야기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의사들은 뭐라고 하는지를 묻지도 않은 채 '지금 간다, 못 간다'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 한 까닭에 남자친구는 결국 차이고 말았다.

 

다시 A양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남자 입장에선 A양과의 만남이 리드도 해야 하고, 돈도 내야하고, 차로 모시러 가야 하는 데이트다. 그러던 중 약속을 취소하면 A양이 불같이 화를 내는 까닭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러 온 적도 있는데, 그렇게 만난 뒤 돌아가는 일에 남자는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기도 했다. 자세한 대화가 첨부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정확하겐 알 수 없지만, 신청서에 있는 A양의 태도로 봐서는 남자의 사고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 같다. 다른 일로 인해 남자의 이가 부러졌을 때에도 A양은

 

'이가 부러져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에 만날 수 없다고? 약속 취소하는 거?'

 

라며 분노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A양의 냉정한 친구였다면,

 

"걔가 왜 너랑 사귀어야 하지?

넌 마치 네 다리가 아프면 걔보고 네 발마사지 해달라고 발을 내밀면서,

걔 다리가 부러졌다고 할 땐 신경도 안 쓸 것 같은 사람인데?"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A양은 상대가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다친 상황일 때 상대의 아픔보다도, 약속이 취소되어 속상한 자신의 아픔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약속을 취소하는 건 그가 절 우습게 보는 거란 생각이 드는데,

왜 이러는지 그의 심리를 전혀 모르겠어요."

 

예전에 내가 참석했던 장례식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조문객 중 한 사람이 고인에게 150만원을 빌려준 게 있었는데, 그걸 못 받을까봐 장례식에 와서는 육개장이 나오기도 전부터 '150만원 타령'을 해댔다. 눈치가 있고 사회성이 있는 사람 같으면 그런 건 장례식이 다 끝난 후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술이 들어가자 고인의 가족들을 불러 돈 얘기를 했고, 결국 고인의 동생에게 맞으며 장례식장에서 쫓겨났다.

 

'약속을 취소하는 건 그가 날 우습게 보는 것'이란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먼저 좀 파악하길 A양에게 권해주고 싶다. A양도 유럽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으면, 그녀를 붙잡고 "그럼 못 가는 거야? 못 가겠네. 그런 몸으로 어딜 가. 이거 그냥 환불해야 겠다."라는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 아닌가. 이성과의 관계에도 그런 태도로 임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상대에게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니까 약속 취소하는 거 내가 한 번 봐준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건 잘못된 거다. '약속취소에 대한 용서 스코어'로만 따지면 그건 A양에게 1점이 부과되는 것이겠지만, '인간적인 모습'으로 따지면 A양이 -1점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늘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말라고.

 

 

서두에 적은 슈퍼 주인아저씨와 도둑의 이야기를 비유해서 A양의 사연을 풀어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잘 맞지 않는 비유인 것 같아 접어두었다. 접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접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응?)

 

A양 폰이 두 개라, A양이 남친이 모르는 폰 번호로 남친에게 보고 싶다는 등의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었다는 부분에서 난 할 말을 잃었다. A양은 그랬다가 만약 남친이 연락해 오면

 

"아 참, 이 번호 모르지? 나 폰 두 개야. ㅎㅎ"

 

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는데, 앞으로는 사람을 그렇게 허술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상대를 시험해 본 뒤 실수였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A양에겐 대수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대에게는 A양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고 A양에게 실망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 사람이 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고 말이다.

 

하나 더. 상대에 대한 증명을 주선자에게 받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주선자가 아무리

 

"걔 그런 애 아닌데. 이상하네. 오해일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런 일을 저질렀으면 그런 사람인 거다. 그리고 주선자를 통해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주문한다거나, 그의 마음을 돌리려는 행동도 하지 말길 바란다. 옆에서 바람 백 날 넣어봐야, 그게 구멍 난 풍선이면 다 헛수고일 뿐이다. 상대의 말이나 주선자의 평가 보다는 A양이 보고, A양이 경험한 것을 믿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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