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호의, 호감일까 아니면 그냥 친절일까? 외 1편
오늘은 국토종주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아직 찍어 온 사진들도 정리가 안 된 까닭에 매뉴얼을 발행하기로 했다. 일주일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그간 또 수많은 사연들이 도착했다. 사연이 계속 밀리게 되면 사연을 보내신 분들은 타이밍을 놓쳐 곤란해지고, 나는 나대로 밀린 사연들에 부담을 느껴 마음이 급해지게 되니, 불꽃 포스팅으로 밀린 사연들을 하얗게 불태워 보자.
1. 그녀의 호의, 호감일까 아니면 그냥 친절일까?
나와 손인사 하며 지내는 사이고, 서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퇴근하고 같이 치맥 한 잔 하는 게 그리 부담스러운 일이 아닌 이성이 있다면, 좋은 거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그런 관계로 지내는 '친한 이성'이 직장에 한 명, 동네에 한 명, 동창 중에 한 명, 모임에 한 명, 뭐 그렇게 있다고 해서 쇠고랑 차는 것 아니잖은가. '모르는 사이'나 '안 친한 사이'에서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이성이 있다고 해서 그 이성과 무조건 연애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많은 대원들이 이 지점에서 넘어진다. 앞서 말한 대로 이성과 조금이라도 친해진 것 같으면, 그 관계에서 '상대와 사귈 수 있는 가능성'만을 열심히 찾거나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게 맞는가?'를 알아보려고 들이대다 망치고 마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엔 그저 퇴근 후 파전에 동동주 한 잔 같이 할 약속을 잡은 뒤 가족이나 시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데, 혼자 마음이 급해진 까닭에 상대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계속 상대를 시험하거나, 카톡으로 어쭙잖게 떠보다가 사이가 멀어지고 만다.
사연을 보낸 A씨도 후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의 질문들을 보자.
- 이 여자가 저와 사귀고 싶을 정도로 좋은 감정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저에게 호감이 있는 그린라이트 일까요?
- 사실 대면할 땐 말도 많고 서로 얘기도 좀 많이 하긴 하지만
카톡으론 또 길게 얘기도 못 하고 그러는 상태인데,
이런 거 보면 또 절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맞나요?
난 A씨에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날 좋아한다, 또는 날 안 좋아한다'라고 딱 두 가지 선택지로만 상대를 평가하지 말자. 그런 태도로 누군가를 채점하기 시작하면, 기대와 실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 밖에 남지 않는다. 평소 상대에게서 긴 답장이 오면 행복해하다가도, 만나자는 제안에 상대가 선약이 있다며 거절하면 이상한 배신감까지를 느끼게 될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는 '그녀가 날 싫어하는 건 아니다'정도의 생각을 갖는 게 적절하니, 상대 마음의 해답지를 몰래 훔쳐보려 자꾸 떠보는 일은 이 시간 이후로 멈추길 권한다.
둘째, 뒤쫓지 말고 앞서 가자. 디테일한 부분들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해서 여기다 적을 수는 없는데, 여하튼 난 사연을 읽으며 A씨가 '돌다리 두드려 보다가 못 건너고 마는 병'같은 것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둘이 만나 식사할 수 있는 자리에 (분위기를 띄워 줄)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는 모습이라든지, 속뜻이 '그럼 넌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라는 질문들을 돌려 말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을 읽을 때 난 암에 걸릴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남자라면 퇴짜를 맞아도 내가 맞겠다는 생각으로 어깨 펴고 들이대 봐야지, 혹시 입을지도 모르는 상처가 두려워 남을 앞세우거나 숨어서 간만 보고 있으면 사람이 작아 보이는 법이다. 남들은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서도 가능성을 만들어 내려 애쓰는데, A씨는 가슴까지 차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까지 차지 않았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A씨는 그녀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혼자 머릿속으로만 둘의 관계를 점치고 있지 않았는가. 그러는 동안 부지런한 다른 남자들은 그녀와 수다를 떨고, 그녀와 한 뼘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혹시 그녀가 저한테 관심은 없고,
그냥 같은 회사 직원이니까 이미지 관리하는 것일까요?"
그녀가 하는 게 이미지 관리든 뭐든 다 괜찮다. 중요한 건 그쪽에서 보이는 게 형식적인 호의라고 해도 그걸 활용해 좋은 관계로 지내는 거지, 그 호의의 순도를 검증하겠다며 혼자 연구하거나, 일단 호감이라고 믿어보겠다며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하는 게 아니다.
가까이 가 보자. 표지판도 멀리선 잘 안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 업무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아직 이렇다 할 카톡대화 한 번 한 적 없는 사이를 두고 '호감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려 들지 말고, 그녀의 취미나 좋아하는 색깔, 즐겨보는 TV프로가 뭔지 부터 알아가 보자. 집에서 출퇴근하기는 어떤지,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어릴 때 어디에 살았는지부터 알아가 보면 된다. 호구조사 하듯 문답만 하지 말고 대화 중 자연스레 하나 둘 꺼내 알아가다 보면 없던 호감도 생길 수 있는 법이니, 계속 뚜껑 열어가며 간만 보는 건 그만하고 진득하게 둘의 관계를 좀 끓여보자.
2. 헤어지자고 해놓곤,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남자?
글쎄요. 이건, B양의 해석과 제 해석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전 B양의 남친이 이별 후 다시 만났을 때 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말한 것을 '매정한 사람'으로 남지 않으려고 결정을 유보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B양은 그걸 진지한 고민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연을 다루는 게 개인적으로 좀 힘들긴 합니다. 마음은 이미 떴는데 헤어지자고 하면 미안하니까 계속 질질 끌게 되는 사연 말입니다. 불만이 있으면 속 시원히 말을 해 버리거나 결정을 했으면 확고히 그 결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는데, 자꾸 무슨 '생각할 시간'같은 걸 갖자고 하며 이도저도 아닌 사이로 지내게 되고 헤어지자고 했다가도 이쪽에서 다시 부드럽게 말하면 그 결정을 금방 바꾸는 까닭에 지칩니다.
저는 이 관계가 몇 달 전에 이미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건, 남친의 우유부단함과 '미안한 소리'를 못 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매뉴얼을 통해
"격한 감정에 헤어지자는 얘기를 한 뒤에도,
다시 만나면 그 말을 무효로 하고 다시 만날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경험한 이별의 피로도는 계속 축적됩니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지 않습니까? B양이 평소에 불만을 표현한답시고 "이럴 거면 헤어지자.",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왔다면, 그 얘기는 고스란히 상대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상대는 그때마다 마음의 문을 조금씩 닫았을 것입니다. B양은 사연에
"오빠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심정이나 마음을 그냥 내뱉더라구요.
제가 초반에 오빠한테 했던 것처럼요."
라고 적으셨는데, 저는 그게 '미안한 소리'를 못 하는 그의 '최대한의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나도 상처를 받는다. 그 부분은 좀 주의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유부단한데다가 '을'의 입장이었던 그는, B양의 태도를 흉내 내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반항에 B양이 더욱 격한 화를 내면, 다시 그는 '을'로 돌아가 사과를 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 연애가 끝난 원인에 대해
- 브레이크가 없었던 남자의 질주.
- 질주가 즐거워 그냥 옆에 탔던 여자의 불만족.
이라고 생각합니다. B양은 신청서에 '남친에게 처음엔 전혀 관심 없었던 것', '남친이 대시하고 잘해줘서 사귄 것', '남친과 결혼 할 생각도 없었던 것'을 강조해서 적지 않았습니까? 사연을 보면 B양은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남친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B양은
"제가 오빠 부모님 챙긴 거는요?
제가 오빠 선물 사러 돌아다닌 거는요?
제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노력한 게 없다는 건가요?"
라는 이야기를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선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상대의 사정을 살피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가 보름 가까이 야근을 해서 지쳐있을 때도 B양은 그에게 '불만족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심통을 부렸습니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기도 하고 카톡 보고 답도 안 해주며 말입니다. 이게 B양이 상대를 정말 좋아하는데 상대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기에 B양이 삐쳐서 한 행동은 아닙니다. 신청서에
"오빠 키가 저랑 비슷해서, 전 구두 신고 싶은데 못 신어서 짜증났어요."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이 없어 기억은 안 나고…."
"맨날 출퇴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던 오빠는 오지 않았고…."
라고 B양이 작성한 부분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헌신적이며 멋진 남친상'에 남친이 부합하지 못했기에 짜증을 내고 심통을 부린 것에 더욱 가깝습니다. 뒤늦게 B양도 남친에게
"원래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래.
누군가 지쳐 있으면 잡아주고 이끌어주고 서로 도와가면서
부족한 것 채워주고 하는 게 사랑이야.
우리 노력해보자. 잘할게 내가."
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만, 그 말과 둘의 관계가 좀 맞질 않습니다. 여전히 남친에게 불만인 부분, 짜증나는 부분들을 마음에 품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전 B양에게 이별을 권해드립니다.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이 슬픈가, 아니면 내가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이 슬픈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후자에 가깝다면 방향 없는 미련은 내려놓으시길 권합니다. 속으로는 '내가 이런 사람을 왜 만나야 하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이 슬프기 때문에 슬퍼하면,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세월만 보내는 모양이 되고 맙니다. 때문에 전 다음번엔 '잘해주는 남자' 말고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 연애하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갑-을'이 아닌 동등한 관계로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말입니다.
끝으로 매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사연을 보내는 J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매뉴얼을 마칠까 한다. 난 J씨에게, 먼저 다가온 이성이 있다 하더라도 J씨가 가진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으면 피하길 권해주고 싶다.
노멀로그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나도 새벽에 이상한 여성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무한씨가 그동안 날 지켜줬잖아. 그런 거 아니었어?"
라고 말씀하시던 분이었는데, 저 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라도 그건 호기심으로 남겨두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J씨는 만나는 이성이 없던 차에 어떤 여성분이
"왜 좋아~ 변태예요? 풉."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다가오니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되도록 피하자. 여기서 보기에 그녀는 J씨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두고, 자신의 판타지들을 J씨에게 늘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J씨가 정상적인 얘기를 하면 그녀는
"당신은 피상적이에요."
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그녀와 뭔가 교감 된다는 느낌이 없다면 아무리 그녀가 적극적으로 들이대도 쉽게 응하진 말자. 먼저 다가오는 이성이 있다고 마냥 들떠선 안 된다. 그간 연애사연을 받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이 관계는 J씨가 여성분의 이상한 모습들을 계속 발견하다가 J씨가 피하려고 해도 그녀가 막무가내로 다가오게 되는 수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당장 상대가 다가온다고 해서 막 만나기보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선문답 같은 이상한 대화없이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으며 굿나잇 인사를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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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원 덕분에 무사히 국토종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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