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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상사병을 앓고 있는 모태솔로녀 외 1편

by 무한 2014. 9. 13.

상사병을 앓고 있는 모태솔로녀 외 1편

'많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 아니냐고 묻는다'는 B양의 사연을 읽다 보니, 나도 외국인으로 오해 받았던 일이 기억난다. 공쥬님(여자친구)이 네일아트를 받는다고 해서 따라갔을 때의 일이다.

 

거기선 공쥬님이 고객이었지만 공쥬님의 직장에서는 그 샵의 원장 아줌마가 고객인 사이라, 공쥬님과 원장 아줌마는 둘이 깨알 같은 수다를 떨었다. 나는 굳이 공쥬님과 원장 아줌마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저 말없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손질을 받고 나가던 한 고객이 문에 손을 부딪쳤는데, 그 잠깐 사이에 매니큐어가 벗겨졌다며 곧바로 A/S를 받는 일이 벌어져 그 구경도 하고, 여자친구와 같이 온 한 남자가 신이나선 관리사에게 자기 여자친구를 개그소재로 삼아 안티행각을 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공쥬님이 매니큐어 바를 색상을 나와 함께 고르려 할 때 처음으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원장 아줌마가 놀라며,

 

"어머, 한국사람이셨어요?"

 

라고 말했다. 샵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말을 한 마디도 안 하고, 게다가 생김새도 한국사람 같지 않아서 외국인인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공쥬님은 빵 터져선

 

"어느 나라요?ㅋㅋㅋㅋㅋ 어늨ㅋㅋㅋ 나랔ㅋㅋㅋㅋ"

 

라고 물었고, 원장 아줌마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같이 웃기만 했다. 다른 직원들과 손님들도 내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는데, 열심히 웃음을 참는 게 느껴졌다. 일산 웨돔에 있는 그 네일아트샵 원장 아줌마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알로하.

 

 

1. 상사병을 앓고 있는 모태솔로녀.

 

B양이 그의 옆 창구 직원에게 은행 업무를 볼 때에도, 그가 자신의 앞에 다른 손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B양에게 말을 거는 것은 '관심'으로 봐도 무방하다. 대화 내용을 밝히지 말라고 요청한 까닭에 여기다 적을 수는 없지만, 그가 B양에게 한 말들 역시 일반적인 은행원이 고객을 대할 때의 그것보다는 훨씬 사적인 영역으로 많이 들어가 있는 말들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가 나중에 여행에 대해 묻는다며 B양의 명함을 받고서도 연락을 한 번도 안 했다는 점이다. 평소 과감한 그의 태도로 봐선 연락하는 걸 두려워하거나 B양에게 답이 없을까봐 망설일 타입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없다는 건 한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 유부남이거나, 여자친구가 있거나.

 

이건 사실 B양이 'And you?'를 사용할 줄만 알았어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인데, B양은 모태솔로인 까닭에 '나한테 저런 걸 왜 묻지?'라는 생각을 하기에 바빠 안타깝게도 묻질 못했다. 그가 B양에게 주말에 뭐 했냐고 물었을 때, B양은 자신이 주말에 한 것들만 이야기 했던 것이다.

 

"행남씨는 뭐 하셨어요?"

 

정도의 이야기만 했더라도, 그의 상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And you?'를 사용하는 건, 상대가 이쪽에게 보이는 관심만큼 이쪽에서도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는 방법이니 앞으로 애용하길 권한다.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 한 독자 분께서 달아주신 댓글을 잠시 보자.

 

"협력체 직원분이 추석 때 웹발신 문자를 쭉 돌렸는데,

저는 그 문자에 대한 답문자를 직접 그 분 이름을 넣어서

항상 감사드린다며 써서 보냈어요.

그랬더니 당장 어제 엄청나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시던데요 ㅎㅎ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것 으쌰으쌰 감동 받고 그러는 듯."

 

- '으음'님의 댓글 중에서.

 

B양은 신청서에

 

"제가 계속 웃으며 대답한다면 발전이 있을까요?"

 

라고 질문을 적어주셨는데, 인터뷰 하듯 웃으며 대답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질문도 해 보고, 위에서 말한 'And you?'라는 '질문 돌려주기'도 사용해 보길 바란다. 그가 솔로부대원임이 확실하다면 이 관계는 연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B양은 스스로 모태솔로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사연을 보면 B양은 상대에게 물건을 빌릴 줄도 알고, 칭찬도 할 줄 알며,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할 줄 아는 등의 센스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친해지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분이 저한테 다가오게 하는 방법이 가장 궁금합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선 B양 역시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현재 두 사람은 앞으로 하루 이틀 보고 말 것도 아니고 주마다 몇 번씩 봐야 하는 사이니, 그가 갑자기 폭풍연락을 하며 B양에게 매달리기를 바라기 보다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친해지길 권한다. 지금보다 상대에게 좀 더 많은 질문을 하며!

 

그리고 상대가 솔로부대원인지, 아니면 커플부대원인지는 나도 정말 궁금하니 후기를 꼭 좀 메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2. 마음 여린 육식녀, 지영이.

 

지영아 안녕. 내가 고교시절에 롤모델로 삼았던 S형이라는 사람이 있어. S형과 가장 비슷한 연예인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컬투의 정찬우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능청스러우면서도 필요할 땐 진지해질 줄 알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그걸 유머로 승화시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

 

S형은 기타, 드럼, 피아노도 칠 줄 알고, 자동차 정비도 할 줄 알며, 축구도 잘 하고, 농사도 지을 줄 알았어. 경운기도 몰 줄 알았지. 농촌마을의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할까. 어느 날 S형이 알타리 캐서 리어카에 싣고 돌아오다가 날 만났을 때,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알타리를 까서 줬던 게 기억나네. 입이 매웠지만 달달해서 세 개나 먹었었는데.

 

S형과 난 교회에서 처음 만났어. 그때 그 형은 중고등부 학생이었고, 난 주일학교 학생이었지. 그러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며 중고등부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때 S형이 기타를 가르쳐줬어. 교회니까 당연히 찬송가로 기타를 가르쳐줬어야 하는데, S형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연주음악'을 내게 알려줬지. 이걸 계기로 난 중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사랑과 우정사이>와 <Yesterday>를 기타 치며 부르기도 했었어. 올마트러블씸쏘퐈러웨이, 추억 돋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S형은 청년부가 되었어. 그런데 농촌에 있는 개척교회 특성상, 그렇게 연령에 따라 나눠놓긴 했어도 인원이 일정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그냥 뭉쳐 버리거든. '학생·청년부'식으로 말이야. 그래서 계속 S형과 함께 지낼 수 있었지. S형이 독식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어. 예배는 뒤풀이를 위한 훼이크였다, 라고 할까. S형은 예배가 끝나면 나머지 학생들을 데리고 PC방에 가거나, 놀자며 드라이브를 시켜줬지.

 

이거 얘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여하튼 S형의 리더십은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온라인 테트리스 게임도, S형과 함께라면 더 없이 즐겁게 할 수 있었거든. 당시 같이 어울리던 사람 중엔 '낯가리는 소심한 누나'도 한 명 있었는데, S형의 리더십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기피하던 이 누나가 PC방 가자고 먼저 이야기를 할 정도였어. 다들 청년부 예배가 있는 토요일만 손꼽아 기다렸지. S형과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말이야.

 

내가 지영이의 사연을 다루며 S형의 이야기를 꺼낸 건, S형은 한 번도 "뭐 하고 싶어? 뭐 좋아해?"라고 묻지 않고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야. 내 생각엔, 오히려 그래서 더 즐거웠던 것 같아. 전에 내가 어느 남성대원의 사연을 다루며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잖아.

 

"그녀가 좋아하는 걸 하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주려는 남자 보다,

자신이 상상도 못한 걸 경험하게 만드는 남자에게 더 끌리니까요."

 

라고 말이야. 지영이는 여자지만 육식녀라서 먼저 들이대고 상대를 리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가

 

"저는 최대한 그 친구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부하는 시간에 연락을 자제하고,

대화를 할 때에도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관심 있는 주제'로 대화하려 합니다."

 

라는 거야. 이러면 곤란해. 이러다가는 그냥 지영이가 상대의 비위 맞추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고, 지영이 스스로도 억지로 '그를 위한 대화'를 하는 까닭에 '겉만 핥는 대화'를 할 수 있거든. 진심으로 흥미를 느껴서 달려드는 대화가 아니라면, 그 대화 어디쯤에서 '연극'하고 있다는 게 분명 드러날 수 있으니까.

 

"공부하다 배고프면 이 누나가 호랑이 기운 나는 밥 사줌 ㅋㅋ

배고프면 연락해ㅋㅋ"

 

지영이의 저 멘트도 나쁜 멘트는 아닌데, 멘트를 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막연해. 난 차라리 저 얘기를 서로 연락을 하게 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서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야?"라며 운을 띄운 뒤 "그래? 그러면 놀라운삼겹살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 주말에도 학원 가?"정도로 이어갔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 근데 지영이는 서로 연락을 하게 된 다음 날 다짜고짜 저 얘기를 했거든. 그 다음날은 또

 

"시험 끝나면 같이 공연 보러 갈래?"

 

라며 더욱 들이댔고 말이야. 지영이는 이런 태도를 취하면서 내게

 

"지금 같은 가랑비 작전을 계속 써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었는데, 저게 어떻게 가랑비야. 소나기지. 또 지영이는

 

"여자라고 해서 남자가 먼저 연락하고 고백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특히 전 성격도 급한 편이라 먼저 말 걸고 들이댔으면 들이댔지 기다리진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지영이가 뭐라고 생각하든, 성격이 어떻든 간에 쌀이 익어야 밥이 되는 거야. 지영이의 태도는 좋게 보면 적극적이고 과감한 거지만, 나쁘게 보자면 심심하고 외로우며 연애가 급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거든. 지영이는 상대와 연락이 닿자마자 갑자기 폭풍연락하며 밥 먹자, 공연 보자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어제 우리 집에, 명절에 못 만난 친척 분들이 잠시 다녀가셨어. 그 분들이 오시면서 도넛, 볶음밥, 족발, 빵, 과일, 추석음식 등을 한보따리 싸다 주셨는데, 난 빵과 도넛을 잔뜩 먹고 나니까 다른 음식들을 더 못 먹겠더라고. 할머니께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 사 온 족발이라며 먹어보라고 하셨는데, 난 족발을 좋아하지만 배가 불러서 못 먹었어. 때문에 할머니께서 좀 서운해 하셨지.

 

왜 갑자기 저 얘기를 꺼냈냐면, 지영이가 '상대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퍼주는 사랑'을 하려 하기 때문이야. 연락이든 만남이든 아침 먹은 게 다 소화되어 배고파질 때 쯤 점심을 먹는 것처럼 해야 하거든. 그런데 지영이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한꺼번에 준비한 뒤 상대보고

 

"이것도 좀 먹어봐. 저것도 좀 먹어보고. 배불러? 그래도 맛있는 거니까 더 먹어봐."

 

라며 계속 권하려 해. 오늘만 날이 아닌데 지영이는 오늘만 날인 것처럼 상대에게 다가가거든. 한 번의 대화에 안부도 묻고, 데이트 약속도 잡고, 상대가 이쪽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까지를 알아내려 하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가 원하는 주제의 대화를 하거나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주려고 하니, 자칫 잘못하면 나쁜 남자를 만나 '쉬운 여자'로 이용당할 수도 있어. 이번 썸남은 나쁜 남자가 아닌 까닭에 "널 그저 어떻게 한 번 해보려는 나쁜 생각이 든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지영이의 요구에 응해주는 척 하며 연애의 즐거움만 맛보고 잠수를 탔을 수도 있지.

 

지금처럼 일주일 안에 결판을 내려고 하지 말고, 좀 길게 보며 만나봐. 누구라도 이성이 나타나면 너무나 외로웠던 사람처럼 24시간 붙잡고 그와 대화하려 하지 말고, 때가 되어 배고프면 식사하듯 대화를 해봐. 하루에 세 번 정도만 연락해도 충분해. 뭔갈 해주겠다, 뭘 사주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고 말이야. 그럼 오늘부터 아무리 연애하고 싶어도 혼자서만 전력질주는 하지 않는 걸로, 나랑 약속.

 

 

사연모음답게 사연을 하나 더 다루려고 했는데, 다음 주에나 올 줄 알았던 새 헬멧이 방금 도착했다. 재활 라이딩을 가야하는 까닭에 서둘러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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