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모자란 것 같아서 매달리는 여자 외 1편
지영씨 1966년 미국에서는 시간당 15만개의 사자자리 유성우가 떨어졌다고 해. 요즘엔 유성우가 시간당 120개 정도만 떨어져도 '대박 우주쇼'라고 하는데, 당시엔 시간당 15만개가 떨어졌다고 하니 밤하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잠을 못 이룬 게 당연한 일이겠지. 말 그대로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을 테니까.
그때 그 우주쇼를 본 사람 중 지영씨의 나이와 동갑인 솔로부대원이 있었다면, 그 대원은 지금 일흔넷일 거야. 다음 사자자리 대유성우가 찾아오는 날은 2032년 11월 18일 전후로 예측되고 있는데, 그때 지영씨의 나이는 마흔넷일 거고 말이야. 아, 그리고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은 2061년이 되어야 볼 수 있는데, 그때 지영씨의 나이는…, 일흔셋일 거야.
1. 자신이 모자란 것 같아서 매달리는 여자.
지영씨는 헤어진 남자친구를 붙잡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난 왜 뜬금없이 저런 유성우나 핼리예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내가 생각하기에 지영씨에게 당장 필요한 건 '남자친구'나 '연애'가 아니라, 지영씨의 삶은 유한하다는 '거대한 사실'앞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야.
현재 지영씨는 과거와 현재에 함몰되어 있어. 그래서 이십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처럼 현재의 시각에서 인생을 요약정리 하려하고, 널려 있는 가능성들과 우연이라는 변수들은 모두 제외한 채 지금의 상태로 미래를 예측해. 이제 갓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이,
'내가 한 달에 132만원 받으니까, 이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려면….'
이라는 계산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진급하게 되고, 또 연봉이 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 현재의 상황을 가지고 미래까지도 전부 계산해 버리는 거야. 때문에 자연히 시무룩해지고, 자신의 미래는 캄캄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며 위축되고 마는 거지.
더불어 사람들은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탓'을 하려고 하는데, 지영씨 역시 현재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이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저 하나만 놓고 보면 떨어지는 게 없는데…."
라며 가족들이나 가정환경을 짐, 또는 걸림돌로 여기고 있거든. 내가 지영씨의 그 말을 전부 부정하려는 건 아니야. 실제로 자신의 집안이 '밑 빠진 독' 같아 부어도 부어도 시궁창 같은 현실만 겨우 유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남들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충격과 공포의 일들도 연례행사처럼 겪을 수 있으며, 가족들이 도움이 되긴커녕 늘 일만 벌이는 까닭에 이른 나이에 탈모가 찾아와 버리는 경우도 있거든.
여하튼 내가 지영씨에게 묻고 싶은 건,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라는 거야. 여기에 먼저 대답할 수 있어야 삶이든 연애든 제대로 살거나 할 수 있어. 생각도 계획도 목적도 희망도 없는 사람은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배와 같거든. 그래서 파도가 치는 대로 흔들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며, 다른 배를 잠시 따라갔다가도 다시 길을 잃고 말아. 폭풍이 불어도 닻 내리고 쉴 곳 없기에 힘들고, 어디서부터 뭘 해야 좋을지 몰라 그 근처만 빙글빙글 돌기도 하지.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비슷한 내일,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십 년이 지나서도 지영씨는 같은 말을 하겠지.
"저 하나만 놓고 보면 떨어지는 게 없는데…."
라고 말이야. 지영씨 역시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다른 애들은 시집을 가더라도 집에서 도와줄 것이고…."
"저보다 어리고 예쁜데다 조건까지 좋은 애들이 많으니 남자친구도 그녀들에게…."
"어릴 때 봐 온 가정환경, 그리고 주변의 참혹한 결혼생활 하는 지인들 때문에
저 역시 결혼에 대해선 불안감이…."
라는 이야기들만 하고 싶진 않을 것 아냐. 그때가 되어서도 지금과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지 않으려면, 훗날의 지영씨를 지금의 지영씨가 도와야 해. 내가 얼마 전에 월식 찍으러 갔을 때, 메모리 카드에 다른 파일들이 가득 차 있어서 애먹었다는 얘기 했었나? 전에 그 카메라를 사용한 '과거의 나'가 파일을 전부 컴퓨터로 옮기고 난 뒤 안에 들어 있는 파일들을 지웠어야 하는데, 귀찮고 피곤하니까 그냥 그대로 놔둔 거야. 덕분에 월식사진을 찍으러 간 '미래의 나'는 고생할 수밖에 없었지. 달의 모양이 급격하게 변하는 까닭에 시작은 촉박한데, 사진을 하나하나 다 지우고 있어야 했으니까.
지금의 상황이 미래까지도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암울한 예측을 하거나 패배감에만 젖어 있지 말고, 지영씨의 삶은 유한하며 지금 '미래의 나'를 돕지 않으면 '미래의 나' 역시 지금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을 거라는 걸 생각해 봐. 지영씨 엑셀 잘 다뤄? 포토샵 할 줄 알아?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어? 다룰 수 있는 악기는? 그림은? 사진은? 수영은? 춤은? 노래는? 이런 걸 못 하는 건 남의 탓이 아니잖아. 가족이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까닭에 가족에 대한 불평을 하는 건 나도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에 대한 책임까지 가족이나 가정의 탓이라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연애나 남자친구가 지영씨를 구원할 순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난 이렇게 글을 쓰고 있기 보다는 "미팅 하십쇼. 소개팅 하십쇼. 회사도 그만두고 SNS로 이성을 만나십쇼. 그렇게 만난 이성이 당신을 구원해 줄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지영씨가 갈 곳을 정하는 게 먼저야. 그래야 지금처럼 잠깐 스치듯 만난 사람과 함께하다, 그가 자신의 목적지로 가려고 지영씨에게 작별을 고할 때 그저 나 좀 데려다 달라고 매달리지 않을 수 있어. 다시 누군가를 만났을 때에도 그가 지영씨보다 학벌, 외모, 조건 좋은 사람에게 갈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고 말이야. 지영씨가 갈 길에 대해 먼저 생각해. 연애는 바로 그 길을 상대와 함께 가는 거니까.
2.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정균씨, 얼마 안 있으면 수능이잖아. 수능 끝나고 나서 성적표를 받아든 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딱 100일 전에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할 걸.'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받고 싶었던 점수는 이게 아니야.'
'1년만 더 시간이 있다면 그땐 진짜 공부에만 매달려서….'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야. 그 중엔 재수를 할 형편이 안 되기에 '1년'을 더 공부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재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후회를 두 번째 하는 까닭에 '진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시험에 비유하자면 정균씨는 5수를 한 거야. 여자친구와 5년을 사귀었지만, 당시에 둘이 꾸던 '꿈'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을 뿐이지. 정균씨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이게 다 제 업보라는 거 압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참 답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그렇게 뼈저리게 느끼고 잘못한 걸 인정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건 정균씨가 해야 할 '후회'의 영역인 거고, 아직 감당해야 할 '책임'의 영역이 더 남아 있거든. 자신의 잘못을 열거하는 고해성사를 마쳤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정균씨가 인정을 한 건 인정한 거고, 인정한 그 부분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거지.
"저는 제 미래에 대해선 불성실했으나, 여자친구에게는 항상 성실했습니다."
"작은 거 하나하나 배려해 왔고, 여전히 그러는 중입니다."
여자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어버이날에 꽃 달아 줄 아들 같은 남자친구'가 아니었어. 정균씨가 여자친구에게 한 행동들을 보면 대부분 '어린 아들'같은 행동이지 '남자친구'같은 행동이 아니거든. 정균씨의 사연에선 여자친구가 정균씨를 양육하고, 정균씨는 그런 그녀에게 재롱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 보여. 그걸 정균씨는 '그녀에게 난 성실했다'거나 '작은 거 하나하나 배려해 왔다'고 말하는데, 난 그게 잘못된 역할에 정균씨가 충실했던 것이라고 생각해. 회사에 비유하자면, 디자인 회사에서 정균씨를 디자이너로 뽑았는데 정균씨가 5년 다니다가 짤리게 되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아.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다. 난 정말 업무를 배워서 하려고 생각했었다.
업무시간에 몰래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던 건 내 잘못이라는 걸 인정한다.
기한 내 업무를 못 마친 것, 요청 받은 서류를 안 보낸 것,
거래처에서 요구한 이미지를 수정하지 않은 것 등 전부 내 잘못이다.
하지만 난 정말 성실하게 회사를 다녔다.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고, 조퇴도 한 적 없다.
책상정리도 늘 해서 내 책상은 다른 어느 사원의 책상보다 깨끗했고,
블라인드에 있는 먼지 아무도 안 닦을 때 닦은 것도 나다.
제발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길 부탁한다. 그럼 정말 열심히 배워서 업무를 하겠다.
나 며칠 전엔 거래처에서 주말에 보낸 메일도 바로 확인하고 답신해줬다."
정균씨가 내게 말하는 건, 저 예시에 등장한 '성실한 출근', '충실한 청소'와 같은 거거든. 출결상황이나 청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업무잖아. 그런데 정균씨는 그 업무와 관련해선 낙제점을 받은 상황에서,
"저희 부모님은 여자친구를 굉장히 예뻐하셨고,
여자친구도 저희 부모님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따위의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거든. 그건 마치 회사에다가
"제가 업무에서는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회사 사람들, 특히 물류팀 사람들과는 정말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고…."
하는 얘기를 하는 것과 같아. 문제는 '업무'인데 정균씨는 계속 다른 부분들을 예로 들며 그걸 퉁 치려고, 또는 문제를 희석시키려고 하는 거라고.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며 정에 호소하면, 아무래도 상대 역시 사람이니까 마음이 약해질 순 있겠지. 그런데 그것도 몇 번 반복되고 나면 결국 상대도 거기에 면역이 되고 말거든. 정균씨는 여자친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냐'고 계속 확인하는 것 같은데, 그걸 앞으로 몇 번 더 묻고 나면 여자친구의 마음은 더욱 단호해져 정균씨를 자신의 마음에서 차단시키고 말 거라고 적어둘게.
난 형의 마음으로, 정균씨에게 핑계 대지 말고 해야 할 것부터 좀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연애에 집중하느라 군대를 아직 못 갔다면 군대부터 가. 그리고 여자친구가 진지하게 얘기한 적도 없이 지나가는 말로 몇 번 싫은 소리하다가 이별을 통보했다고 억울해 하지 말고, 왜 이별통보를 받는지 그 항목들을 생각해 보고 지금부터라도 그걸 하나씩 지워나가.
돌려 말하면 너무 빙 돌아가야 하니까, 이 부분은 직설적으로 말을 할게. 정균씨는 여자친구와 사귄 이후 지금까지 인생을 거의 마취상태로 보내온 거야. 여자친구가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도 당연해. 이제 둘은 꼬꼬마가 아니잖아. 두 사람 또래 중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런데 여자친구는 자신이 월세를 내며 정균씨와 함께 살고 있어. 정균씨는 상황이 다급해지니 이제 막 알바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 전까진 집에서 게임 아이템 맞추고 있었고 말이야. 그러는 동안 여자친구는 점점 정균씨에 대해 실망과 포기를 했을 거야. 물론 이걸로 계속 싸우게 되진 않아. 정균씨가 데이트나 이벤트를 준비하고, 또 다른 부분으로 주의를 돌리면 그녀는 현실을 잠시 잊고 거기에 만족했을 테니까. 바로 그게 내가 생각하는 '마취'라고. 잠시 잠드는 거지 해결되는 게 아니야. 마취에서 깨어나고 나면 다시 똑같은 부위에서 전과 마찬가지의 통증이 시작되지.
"제가 더 잘 하겠다고 해도,
여자친구는 제가 충분히 잘해줬고 더 잘해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합니다."
내가 위에서 말했잖아. 그녀에겐 정균씨의 '핀트가 어긋난 헌신과 배려'가 필요한 게 아니라고.
"저는 지금 상황에선 정말,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얘기도 하지 마.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절박하다면, 그 전에 먼저 코피가 날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해봐. 알바 시작했다고 정균씨가 완전히 변한 거 아니고 그녀로부터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나도 그게 정균씨에겐 정말 큰 한 걸음을 내딛은 것과 같다는 걸 알아.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엔 그게 당연한 일이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까.
연애를, 또는 그녀를 핑계로 정균씨가 해야 할 걸 하루라도 미루지 마. 그렇게 미뤄두면 미뤄둘수록 정균씨는 그녀에게 '떠나야 할, 대책 없는 남자'로 여겨질 거고, 그녀가 떠나려 할 때 정균씨가 '이건 우리 공동책임'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해봐야 그녀는 더욱 정균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단단해질 뿐이니까. 내가 정균씨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낮엔 편의점, 밤엔 대리운전, 주말엔 주말알바까지 해가며 내 의지를 보여줬을 것 같아. 그렇게 해서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게 아니라, 내 결심과 생활력, 책임감을 상대에게 행동으로 증명하는 거지. 그럼 그걸 보는 상대도 내가 말 뿐이 아니라는 걸, 정말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줄 수 있는 거잖아. 겨우 파트타임 자리 하나 잡아서는 '이제 난 달라졌네.'하고 있는 것보다는, 내가 온 힘을 다해 달라지려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것 같아. 힘들다는 얘기는 그만 하고, 안 힘들어 지려면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
자전거 국토종주 할 때 먹었던 '밤 막걸리'의 감동을 못 잊어 밤 막걸리를 주문했다. 종주 중 내가 먹었던 막걸리와 다른 제품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고된 페달질을 마치고 마시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그때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낱개로 판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스로 구입했으니, 이번 주말에는 지인들과 나눠 마시며 간만에 건배를 좀 해야겠다.
막걸리 얘기를 꺼냈더니 부산 출신의 지인이
"금정산성 막걸리 무 봤나?"
하길래, "무를 봤냐고요?"하며 못 알아듣는 척을 좀 해줬다. 난 막걸리를 좋아하는 까닭에 전국 유명 막걸리들을 전부 마셔본 후 소감을 정리해둘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랬다간 <알콜중독탈출매뉴얼>을 쓰게 될 것 같아서 시작하진 않았다. 뭐,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독자 분들 중 '이 막걸리는 꼭 마셔봐야 한다'고 추천해주실 만한 막걸리를 알고 계신 분이 있으면, 댓글로 살포시 남겨주셨으면 한다.
자 그럼,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니 다들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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