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지겹도록 해봤다는 이십대 초반의 그녀 외 1편
혜은씨, 난 해외 직구를 알게 된 이후 지나(china)국에서 만든 제품들을 열심히 구입한 적이 있어. 한국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제품인데, 중국 쇼핑몰에서는 1/2, 1/4 가격밖에 안 하는 제품들이 많았거든. 배터리를 예로 들자면, 18650배터리가 국산은 하나에 만 원 정도 하는데, 중국산은 만 원에 다섯 개야. 게다가 배송도 무료배송이었고 말이야.
카메라 필터 같은 것도 중국산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했어. 사람들이 주로 쓰는 독일제나 일제는 필터 하나에 7~8만원 정도 하는데, 중국산은 만 원이야. 그래서 난 거의 '풀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성을 중국산 제품들로 맞추기도 했지.
그런데 물건을 받고 보니 문제가 생겼어. 외형은 비슷하게 생겼는데, 성능이 달라. 위에서 말한 18650배터리만 하더라도 국산과 중국산은 그 차이가 분명했어. 난 그 배터리를 자전거 라이딩 할 때 LED라이트에 넣고 썼는데, 최대밝기로 국산은 8시간 정도 가는 것에 비해 중국산은 2시간도 채 못 가. 카메라 필터는 사진이 심하게 뭉개지는 화질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말이야.
그쪽의 사정을 잘 아는 분과 대화해 봤더니, 첫 번째로는 부품 자체가 '묻지마 부품'을 써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수율'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다 판매를 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고. 왜 도자기 만들 때 보면 장인이 이상한 건 바로 깨 버리잖아. 근데 중국산의 경우는 깨서 버리는 것 없이 전부 판매하는 것과 같은 거야. 그래서 뽑기를 잘 하면 중국산의 경우라도 쓸 만한 제품을 만날 수 있지만, 잘못 뽑으면 그냥 버려야 하는 물건 하나 갖게 되는 거지. 부품으로 장난치는 건, 쇠로 기둥을 대야 할 곳에 나무로 기둥을 대 버리는 것과 비슷한 거고 말이야.
1. 연애는 지겹도록 해봤다는 이십대 초반의 그녀.
혜은씨가 지금까지 해왔다는 연애는, 내 '중국산 제품 직구'와 비슷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당장 연애가 가능하면 사귄 거고, 이쪽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냥 다 만나 본 거야.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시간이나 서로의 친밀함을 형성할 시간도 없이, 방금 알게 된 사람이 오늘 저녁 만나자고 하면 나가서 만난 거지. 상대가 첫 눈에 반했다며 사귀자고 하면 사귀고 말이야.
특히 혜은씨는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이성을 만났다고 했는데, 그건 마치 웹상에다
"저 지금 자본금 1억 있는데 투자 조언해주실 분~"
이라는 글을 올려서 조언자를 만나려는 것과 비슷해. 간단하게 생각해 봐. 그런 글을 투자에 성공한 사람이 읽고 조언을 해주려 다가오는 경우가 많을까, 아니면 그 1억을 어떻게든 뺏어 보려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을까?
"제가 이번 달에는 한 달 사이에 일곱 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그렇게 한 달에 일곱 명의 남자를 만난 거랑, 저렇게 한 달에 일곱 명의 조언자를 만난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거야. 혜은씨는
"피부가 정말 하얗다는 얘기를 했다."
"연예인 누구누구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나 같은 애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겠냐는 말을 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얘기를 천 번 만 번 들었으면 뭐 해, 결국 그 남자들은 전부 자신의 목적을 취하면 이 관계를 팽개치고 가 버렸잖아.
이성이나 연애에 타는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인 경우가 많아.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게 지금 화장실을 사용료 만 원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하면, 그는 비싸다 싸다 따질 처지가 아니니까 어떻게든 지불하고 사용할 가능성이 높잖아. 혜은씨가 이성을 만난다는 그 스마트폰 만남 어플에는, 외로움과 심심함의 밀도가 높은 사람들이 많아. 때문에 당장 그걸 해소해 준다고 하면 당장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구는 경우도 많지.
혜은씨는 주로 외롭고 심심할 때 그 어플에 접속할 거 아냐. 그 어플에 접속하는 상대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이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혜은씨 혼자만 외롭고 심심한 사람이고, 그 어플에 있는 다른 이성들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그들도 혜은씨와 별반 다를 게 없어. 그럼 생각해 봐. 위에서 말한 대로 1억을 들고 '재테크로 대박을 내고 싶은 사람 모임'에 가서 조언자를 찾으면, 조언자를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엔 혜은씨와 비슷한 생각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혜은씨는 내게
"전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인데,
벌써 썩을 대로 다 썩어버린 느낌이에요.
제가 진짜 남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생각도 안 나고,
이젠 누구를 만나도 설레거나 기대되지도 않는데…."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까 당장 사귀는 게 목적이 아닌 사람을 만나 봐봐. 연애를 목적으로 둔 건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 하냐고? 꼭 연애를 목적으로 둔 것이 아니라면 언제 만날 수 있느냐는 것보다는 혜은씨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할 거고, 만나서는 스킨십 진도를 빼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혜은씨에게 집중할 거야. 잘 모르겠다면 최소한 사귀기 전 한 달의 시간을 함께 보내봐. '급한 남자'에게는 지구력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에, 시간을 길게 두고 보면 보일 거야.
"'얘 이제 나 안 좋아하나? 그럼 나도 다른 남자랑 연락하지 뭐.'
하면서 포기하는 것도 빨라지고,
스킨십과 관련해서도 이제 제가 합리화를 해 버려서,
진도를 나간 후에 상대에게 연락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사실 전 아직도 상처 받기를 무서워하고 있어요.
이런 어장관리도 정말로 하기 싫고요."
'베스트 프렌드'라는 게, 서로 베프 하기로 약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내가 오늘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선, 내가 올린 글에 가장 찬란한 댓글을 달아 준 사람과 베프가 되기로 했다고 쳐봐.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당장 나에게 달콤한 댓글을 달아주었으니 베프가 되기로 약속 한 거야. 이렇게 맺은 우정이 과연 오래 갈까? 얼마쯤은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를 연기할 수 있겠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실제로 함께 의미를 부여한 추억도 없기에, 우린 겉으로 '베프'인 관계지만 서로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겠지. 혜은씨가 연애를 할 때에도 이것과 비슷했잖아. 한 달에 일곱 명이면, 상대의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 것 같은데, 안 그래?
혜은씨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집에서 놀다가 폰 어플로 만난 이성과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사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하도 뻥을 튀겨나서 대단해 보이는 거지, 실제로는 그것에 무감각해질 때가 많으며 그렇게 만들기 위해 내 노력과 인내와 양보와 반성을 부단히 해야 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혜은씨 아버님이 '딸바보'라고 하셨고, 혜은씨 역시 아버님과 지금도 데이트를 할 정도로 정말 친하다고 했는데,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난 혜은씨에게 눈을 하나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혜은씨 아버님께선 망설임 없이 당신의 눈을 내어주실 거라 생각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래. '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그렇게 되어줄 수 있는 관계가 된 것.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선 '그래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 가야 할까? 찾고 고르는 건 지금까지 실컷 했으니까, 오늘부터는 누군가와 진득하게 만들어 가봐.
2. 헬스장 강사를 좋아하는 깔대기 그녀.
사실 난 이 사연을 그냥
"네. 그는 이쪽에 관심이 없고
그저 회원 관리 차 서비스 하는 건데,
J양이 그걸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라는 답변을 하는 걸로 짧게 끝낼까 했다. 그런데 J양이 상대의 반응에 화를 내는 지점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 건 J양이면서 당황스럽게도 '회원님'의 입장에서 강사인 상대를 하대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 발행하게 되었다.
우선 J양의 말투에서, 주로 아주머니들에게서 발견되는 '반말 인듯 반말 아닌 반말 같은 말'을 찾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좋네~ 좋아ㅋㅋㅋ"
"좀 그런 마음이 생기게 하죠 내가 ㅋ"
"너무 겸손하신데ㅋㅋ 받아야겠다는 맘 생기면 말하시구요~"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있는 상대에 비해, J양은 마치 그의 '아는 누나'라도 되는 듯 상대를 대한다. 만약 그 상황이 반대라면,
여자 - 죄송해요 선배님. 그 날은 제가 약속이 있어서….
남자 - 뭘 그렇게 튕겨~ ㅋㅋㅋ 시간 좀 내봐.
정도의 느낌이 드는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이건 J양이 육식녀 타입이라 벌어진 일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대놓고 들이대다가, 상대가 받아주지 않자 분노하는 J양의 태도는 좀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끊는 듯한 대답에 열이 확 받았어요.
아니, 관심이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자꾸 끊는 문자를 보내는 거냐고요.
내가 귀찮게 한 것도 아닌데. 연락을 달라고 했어 뭘 재촉하기를 했어!"
'회원-강사'의 관계인 헬스장에서야, J양이 고객이니 그가 J양이 무슨 얘기를 하든 웃으며 반응해 줬겠지만, 밖에서까지 그가 J양을 '알아서 모셔야 하는' 사람은 아니잖은가. 내가 이렇게 적으면 그가 정말 매정하게 끊는 대답을 해서 J양이 그런 줄로 오해할 독자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는 2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자기 할 말'을 하는 J양에게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양이 화가 난 건,
"번호를 먼저 물은 것도 저고,
이런 상황이면 어떤 남자든 관심이 있다고 눈치를 챌 것 같은데
별다른 리액션이 안 나오는 걸 보면…."
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J양이 남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다니든, 연예인 누구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든, 그런 J양이 먼저 관심을 나타냈다고 해서 상대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무릎부터 꿇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보통의 여자사람이 J양의 입장에 있었다면, 그녀는 상대의 나이나 사는 곳을 물었을 것이다. J양처럼 다짜고짜 "가르쳐준 게 고마우니 보답으로 뭘 사주겠다."라는 떡밥을 던지는 대신 말이다. 이건 지난주에 발행한 매뉴얼 중 '떡밥만 적극적으로 던지고 수동적인 태도로 구경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 매뉴얼이 있으니 참고하길 권한다.
J양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접으려고 했다가, 그가 다시 헬스장에서 말을 먼저 걸어오자 그걸 '날 흔들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연락을 할 준비 중이다. 난 J양에게
"헬스장은 J양이 운동하러 가는 곳이지만 그에겐 직장이잖습니까?
직장에서 고객이 왔는데 그냥 모른 체 하며 소 닭 보듯 할 순 없지요.
게다가 그가 말을 걸자 J양은 그에게 '교육'을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대충 성의 없이 알려주면 J양이 헬스장에 클레임을 걸 확률이 높으니,
개인강습식의 지도를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J양이 낸 회비가 곧 그의 월급이니, 월급 받고 일한 거지 흔든 게 아닙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이 이야기들이 J양에게는 참 잔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J양은 계속 J양의 지인들이 했다는
"그 남자가 원래 말을 길게 안 하는 성격 아닌가?"
따위의 코끼리 다리 긁는 소리들만 들을 수 있으니, 이걸 계기로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연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많은 커플들이 무더기로 헤어졌는지, 현재 내 메일함 꼭대기에는
"오늘 마지막으로 보기로 했어요. 급합니다."
"시간을 갖기로 한 상태라 빠른 조언이 필요합니다."
"파혼 직전입니다. 도와주세요."
등의 제목을 한 긴급한 사연들이 대기 중이다. 아직 지난주와 지지난주의 사연도 다 못 봤는데 이런 긴급 사연들이 와 있어서 마음이 급하다. 얼른 마무리 하고 또 사연을 읽으러 가야겠다. 다들 즐거운 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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