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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어느 부산 사나이, 상남자의 답답한 썸

by 무한 2014. 11. 10.

어느 부산 사나이, 상남자의 답답한 썸

어제 공쥬님(여자친구)과 영화를 보러 갔는데, 우리 뒤에 앉은 -썸 타는 사이로 보이는- 커플 중 남자가 광고시간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여자랑 영화 본 게 <놈놈놈>이 마지막이었어.

여자랑은 영화 볼 일이 없어서 그냥 집에서 다운 받아 봤는데,

이렇게 영화 보게 되었네. 하하하."

 

난 마음 같아선 그 남자의 귀에 대고

 

"저기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겁니다.

지금 하시는 얘기 하나도 재미있지 않아요.

옆에 앉은 분도 "아…, 네." 정도의 반응만 하잖아요.

그냥 이 영화관 이상하게 추우니까,

무릎 덮을 수 있도록 자켓 정도만 벗어 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나친 오지랖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기에 그냥 두었다. 이게 아무래도 직업병인 것 같은데, 딱 하나만 알면 다툴 일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몰라서 싸우고 있는 커플이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본능대로 그냥 다 펼쳐 놓는 솔로부대원을 보면 자꾸 참견하고 싶어진다.

 

내게 사연을 보내는 분들 중에도 썸녀와 데이트 중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 입고 나온 거야."

"내가 모쏠이라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네가 리드해 줘."

"친구들이 오늘 데이트 하고 와서 경과보고 해달라고 했어."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상대가 이쪽에 대해 가지고 있을 환상을 그렇게 있는 힘껏 깨버리진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심한 경우 상대에게 "나 그동안 여자에게 차이기만 했어. 너도 나 차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곤 하는데, 자기 자신을 재고품처럼 소개하며 부정적인 질문을 해 상대가 그걸 부정해 주길 기다리고만 있진 말길 권한다. 내가 우리 동네에 놀러 온 친척 여동생 동네구경 시켜주듯 만나라고 그렇게 얘길 했거늘…. 여하튼 이건 훗날 관련 매뉴얼에서 더 다루도록 하고, 오늘의 사연 출발해 보자.

 

 

1. 내 고참 K에 대한 이야기.   

 

K씨의 사연을 읽다 보니, 군인시절 부산출신 고참 K가 생각난다. K는 딱딱하고 간결한 말을 주로 사용하는 상남자였는데, 그게 서울출신 고참과는 아래와 같은 차이를 만들었다.

 

[고참이 일하고 있는 걸 후임이 지켜만 보고 있는 경우]

서울고참 - 고참 일하는 거 보니까 재미있어?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지?

부산고참 - 니 뭐 보는데?

 

후임이 자기 몫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내무실(학교로 치면 교실)에서 편지를 쓰고 있을 때에도, K는 짧고 간결하게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니 뭐 하는데?"

 

그래서 K가 원하는 것을 한 번에 파악하기가 후임들에겐 쉽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후임들은 '아, 슬리퍼가 정리 안 되어 있는데 지금 내가 편지를 쓰고 있으니 그걸 지적하는 거구나.'라는 걸 알아채곤 정리했지만, 눈치가 없는 후임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냥 하얗게 얼어서는 눈만 꿈뻑꿈뻑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K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리퍼 안 보이나?"

 

라는 말을 했다.

 

+ 이렇게만 적어두면 부산고참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적어둘까 한다. K는 무뚝뚝한 고참이었지만, 그러다가도 PX에 다녀올 때면 '꿀땅콩'같은 걸 하나 사 와서는 별 말 없이 스윽 내밀던 고마운 고참이었다.  

 

 

2. 고참 K와 사연의 주인공 K씨의 공통점.

 

이성을 대하는 K씨의 태도가, 내 군대 고참 K가 후임들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그냥 한 마디 툭 던져 놓고, 상대가 다 알아서 하길 바라고 있다고 할까. K씨가 신청서에다 억울하다는 듯 적은 말을 보자.

 

"솔직히 어느 정도 대화가 일단락되면,

그쪽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 내지는

최근에 영화 본 거 뭐 있냐고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연애가 그렇게 쉽게 시작될 것 같으면 내가 뭐하러 이렇게 긴 글을 작성하고 있겠는가. 그냥 K씨처럼 밖에 나가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말 걸고, 커피 한 번 사주라는 얘기나 하지. K씨의 논리대로라면 이쪽에서 말을 걸었으니 상대도 나에게 말을 할 것이고, 이쪽에서 커피를 사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상대가 커피를 사서 건넬 테니 말이다. 

 

K씨가 이번에 한 행동들을 짧은 대화로 요약해보자.

 

K씨 - 남자친구 없어요?

상대 - 네 없어요.

K씨 - 이상형이 뭐예요?

상대 - 어깨가 넓은 사람?

K씨 - 수영선수 만나셔야겠네.

상대 - ㅎㅎㅎ

(며칠 후)

K씨 - 나 팔굽혀펴기 100개씩 하고 있어요. 어깨 넓히려고.

상대 - 아…, 네.

K씨 - 이 커피 마셔요.

상대 - 아녜요. 괜찮아요.

K씨 - 부담스러우면 이거 마시고 다음에 사주면 되잖아요.

상대 - 네.

(며칠 후)

K씨 - 영화 좋아해요? A랑 B랑 다 봤어요?

상대 - 네 봤어요. 친구랑.

K씨 - 친구? 남자?

상대 - 여자요.

K씨 - 여자 둘이서 보기엔 A와 B모두 무서운 영화인데~

상대 - ㅎㅎㅎ

(며칠 후)

K씨 - 나 커피 사줘요.

상대 - (연락 없음)

 

이런 와중에 K씨는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음."

 

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저 위의 대화식 요약을 가져다 설명하자면, K씨는 상대에게 이상형을 물었는데 상대는 K씨에게 이상형이 뭐냐고 안 물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영화에 대해 말을 꺼냈는데 상대는 반문을 하지도 않고 'ㅎㅎㅎ'로 대화를 끝냈다는 것 때문에 좀 화가 난다는 식이다. K씨의 이런 특이한 논리는 상대에게 '따지듯 묻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3. 따지듯 묻는 문제.

 

아, 위에서 미처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 최소한 어디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예의상으로라도 저에게 반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되묻는 것이 전혀 없더라고요."

 

라는 K씨의 말이다. 난 K씨에게

 

"되묻는 것이 전혀 없어서 상대에게 실망했으면

그냥 마음도 접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걸 두고 상대에게 '넌 이상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시고요."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K씨는 상대와 대화를 하다가

 

"근데 저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요?

저 같으면 먼저 연락처 물어보고 밥 먹자고 하는 사람이

사기꾼인지 다단계인지 그게 궁금해서라도 물어볼 것 같은데

저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라는 이야기까지 꺼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내가 해 본 적 없는 '발상의 전환' 같은 거여서, 솔직히 나도 뭐라고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번호를 묻곤 연락했는데, 그 후에 그녀에게

 

"내가 왜 번호를 물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난 그쪽이 궁금한데, 그쪽은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내가 뭐 하냐고 물었으면

최소한 나에게 뭐 하냐고 반문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 하면서

어떻게 내가 커피 한 잔 하자고 할 때 승낙한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상대에게 내가 보자고 해놓곤, 만나서는 내가 보자고 했을 때 왜 나왔냐고 상대를 다그치는 이런 '발상의 전환'을 난 해 본 적이 없다.

 

다행히 K씨도 지금은 저런 태도가 둘의 관계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으리라는 걸 조금은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K씨는

 

"제가 그녀에게 했던 말들을, 입장을 바꿔 제가 들었다고 생각해보니

'그래서 어쩌라고 인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도 K씨의 그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여기서 보기에도 K씨는 상대를 초대해 놓고는 '넌 우리 집에 왜 왔어?'라며 취조를 하듯 행동했다. 초대했으니 내 할 일은 다 한 거고 이젠 상대가 알아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든 질문을 하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어디 앉으면 된다는 말도 없이 상대를 세워둔 채 "내 초대를 받아들여 우리 집에 온 이유가 뭐야?"라고 물으면, 상대는 그냥 뒤돌아 가버린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4. 집착한 것도 아니고, 구걸한 것도 아닌데요?

 

K씨는

 

"노멀로그의 사연들을 쭉 읽어보니까

제가 들이댄 건 들이댄 축에도 못 끼는 것 같던데

그녀가 과연 부담을 느낀 걸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그녀에게 답장이 없기는 하지만, 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매달린 것도 아니니 아직 희망의 불씨는 모두 살아있지 않냐는 투다. K씨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그녀가 질색을 할 만한 행동은 안 한 것 같다며

 

"솔직히 제가 미저리처럼 집착한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구걸한 것도 아니니

그녀에게 혐오의 대상까지는 아직 가지 않은 것 같은데….

아직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난 K씨에게, 물론 K씨가 말한 그런 행동은 없었지만 그것 외에 다른 부분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여러 번 만들어 졌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장 먼저 K씨가 계속 그녀를 떠본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런 남자는 주변에서 찾아야 해요. 주변에서 한 번 잘 찾아보세요. ㅎㅎ"

"어떤 여자가 남자 어깨를 본다고 해서 팔굽혀펴기 하고 있어요. ㅎㅎ"

"남자친구 없어요?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저에 대해서 궁금한 거 없어요?"

 

K씨가 상대에게 한 말들이다. 이건 누가 봐도 K씨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멘트들인데, 저걸 직접 "나 그쪽한테 관심 있어요."라는 말로 하지 않았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며 합리화 하지 말자. 대화를 할 때마다 K씨는 꼭 끄트머리에서 저런 멘트를 하며 상대를 떠보지 않았는가. 그러니 자연히 상대는 K씨와의 대화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K씨는 뭐 하냐고 말을 걸어서는 "나는 남자친구로 어때요?"라고 묻듯 대화를 마무리 지었으니 말이다. K씨의 말대로 이게 집착은 아니지만, 이건 그것만큼이나 좋지 않은 '멀리서 돌 던지기'에 해당한다는 걸 기억해 두자.

 

다른 하나는 K씨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했다는 점이다. K씨는 상대와 밥을 먹기 위해, 상대가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고 했을 때

 

"왜 친구 집에 가서 민폐를 끼치느냐.

깔끔하게 내가 사는 밥 먹으면 끼니 해결할 수 있는 걸."

 

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같은 말이라도 좀 더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들 중에는 "아, 그거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걸, "너 바보냐? 이거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K씨에게선 후자의 모습이 보이니 갑자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상대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부분에 있어 주의하길 권해주고 싶다.

 

 

긍정적인 해석을 하자. 상대는 K씨의 연락을 피한 적 없고, 단답이긴 하지만 K씨의 수다에도 전부 반응해줬다. 게다가 K씨의 만남요청에 승낙했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같이 같다. 이건 전부 다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K씨는 그런 수많은 긍정의 신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단답을 했다."

"그녀는 내게 궁금한 게 없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그녀가 활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라며 부정적인 해석만을 해왔다. 내가 K씨의 자리에 있었다면

 

'아, 이 사람은 낯을 좀 가리는 구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 부분에서도, K씨는 실망과 함께 좌절했던 것이다. 더불어 K씨는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였던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낯을 가리는 성격을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네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원래 K씨의 모습'을 그대로 상대에게 보여주길 권한다. 어색함을 감추려 아무 얘기나 막 던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레 어색한 게 낫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아 상대도 K씨와 비슷한 성격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 부분에서 둘의 공감대를 찾는 게 나은 거지, 억지로 "그 옷 어디서 샀어요?"라며 누가 봐도 힘겹게 질문을 만들어내는 듯한 물음을 던질 필요는 없는 거다.

 

하나 더. 태도를 분명하게 하자. K씨는 현실에서 상대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는 듯 들이대고 있으면서, 내게는

 

"어차피 전 내년부터 그녀와 이렇게 만날 기회가 없어집니다.

내년이면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그녀와 사귀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단순한 친구라도 좋으니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들이댈 대로 다 들이대 놓고 갑자기 그게 그런 건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 K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바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라고 내가 오래 전부터 부탁하지 않았는가. 그녀에게 아무 요구도 하지 않고 다가가면 K씨가 원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승-전-떠보기'는 그만 내려두고, 그녀가 낯을 가리면 낯을 가리는 대로 만나보길 권한다. K씨가 상상하는 '올바른 썸녀의 모습'과 그녀가 다르다고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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