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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항상 힘들어하는 여친 때문에 힘들다는 남자

by 무한 2014. 11. 4.

항상 힘들어하는 여친 때문에 힘들다는 남자

성태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내가 이십대 중반에 목격했던 지인의 연애가 떠올랐어. 내 지인도 성태씨와 마찬가지로 여자친구를 웹에서 만났지. 댓글로 대화를 나누다가 문자와 전화로 발전하고, 그러다가 경기도와 강원도라는 지역차이를 극복하며 둘은 실제로 만났어. 만나서는 어색할 시간도 없이 둘이 딱 붙어선, 서로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밥까지 먹여주는 연인이 되었고 말이야.

 

둘의 연애는 사귀기로 한 날로부터 정확히 73일 지속되었어. 사실 이건 다 나중에 내가 그 지인에게서 전해들은 얘기고, 당시에 난 둘이 사귀고 있는 줄도 몰랐지. 지인은 둘이 썸을 타던 시기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선 잠수를 탄 채 오직 그녀에게만 빠져 있었으니까. 내가 지인의 연애에 대해 알게 된 건 지인이 그녀와 헤어지고도 몇 주가 지났을 때였어. 난 오랜만에 와퍼가 먹고 싶어서 버거킹이 있는 마두역에 갔는데, 거기에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한 지인이 앉아 있더라고. 포장한 죽 봉투를 든 채 말이야. 내가

 

"어? 너 여기서 뭐해? 나 기다린 거야?"

 

라며 다짜고짜 능청스런 개그를 치며 들어갔는데도 지인이 웃질 않는 거야. 이게 이렇게 적어두면 안 웃기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서 능청스럽게 말하면 '피식' 정도의 헛웃음쯤은 나와 줘야 하는 거거든. 하지만 지인은 "어. 안녕."정도의 대답만 했어. 그런 지인의 반응을 보는 순간 난 그가 어딘가에서 영혼까지 털리고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여기다 다 적으면 서두가 너무 길어지니까, 아래에다 소제목을 달아 적어둘게.

 

 

1. 사랑, 아니 헌신했지만.

 

세세하게 다 적으면 신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까, 최대한 간략하게만 설명할게. 지인과 사귄 그 여자는 스물 셋의 나이에 가장이 되었어. 그녀는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두 동생과 살고 있었는데 당시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내시는 바람에 일을 하실 수 없는 몸이 되셨고, 피해자에게 돈도 물어줘야 했지.

 

그래서 그녀는 취직을 위해 기술을 배우게 되었어. 지인이 그녀를 온라인에서 만나게 된 건, 그녀가 학원에서 돌아와 남는 시간에 인터넷을 할 때였지. 지인은 당시 그녀에게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해. 웹상에서의 그녀는 밝고, 긍정적이며, 감성적인 말들로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여하튼 서로에게 빛과 같던 그 만남으로 인해, 둘은 한 달쯤 꿈같은 시절을 보냈어.

 

물론 그 한 달의 기간 동에도 지인의 여자친구에겐 살짝 '불안증'의 모습이 보였다고 해.

 

"나 시험 떨어지면 어떡하지?"

"합격하더라도 취직이 안 되면 어떡하지?"

 

정도의 모습이 보였던 거지. 하지만 저 정도의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지인은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며 힘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해줬고, 그녀 역시 "오빠 말을 들으니 힘이 난다.", "오빠가 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등의 말로 감사하게 받았어. 지인은 그녀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동네까지 찾아가 깜짝 이벤트를 하기도 했고, 그녀가 보고 싶다고 하면 복학생이었던 지인은 다음 날 학교를 가지 않을 작정을 하고 그녀를 찾아가기도 했어.

 

그런데 지인이 그녀를 위로해주고, 그녀에게 힘이 되려 노력하고, 그녀를 기쁘게 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그녀의 저런 태도는 점점 심해졌어. 자신의 상황을 비하하거나 자신을 자학하는 듯한 말을 하나 둘 꺼냈고, "오빠도 결국엔 날 떠나게 될 거다.", "나 같은 여자를 오빠 부모님이 환영하지 않을 거다." 따위의 한계를 긋는 말들도 하게 된 거야. 지인도 복학생 신분이라 매주 그녀를 보러 갈 수는 없었는데, 그걸 두고 그녀는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이럴 때 오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럴 때 오빠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그러면 그녀가 실망이나 포기를 할까봐 겁을 먹은 지인은 새벽에라도 가장 가까운 대중교통편을 찾아 그녀에게 가기도 했고 말이야. 그것도 처음엔 지인이 그렇게 가면 그녀가 울며 안기곤 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중엔 지인이 간다고 해도 그녀가 오지 말라고 하고, 가서 전화를 걸어도 그녀가 돌아가라며 전화기를 꺼두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

 

사귄 지 한 달이 지나 그녀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을 때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어. 그녀는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하며 지인을 위협했고, 어느 날은 헤어지자고 말을 한 뒤 하루 동안 잠수를 탔다가 다음 날 연락을 하기도 했지. 지인은 계속 그녀를 어르고 달랬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지인이 절대 이해해줄 수 없을만한 일들까지 저지르며 지인을 괴롭게 만들었어. 여기다 적을 순 없지만, 아무튼 그녀가 벌인 '어떤 일'로 인해 지인이 낙심해 있을 땐 또 그녀가 아프다며 동정심을 자극해 왔지.

 

지인이 마두역에서 날 만났던 그 날도, 그녀가 죽을 것처럼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지인이 그녀에게 가려던 거였어. 그녀에게 가려면 전철로 화정역까지 가서 고속버스를 탔어야 하는데, 지인이 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오지 마. 오면 난 다신 오빠 안 볼 거야."같은 이상한 얘기를 하고 폰을 꺼 버린 거지. 갈 준비를 했던 지인은 그래서 죽만 사 놓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었던 거고.

 

성태씨는 이런 내 지인의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2. 난 사실 이별을 권하고 싶어.

 

성태씨의 연애가 내 지인과 같은 수준의 '막장'은 아니야. 하지만 성태씨도 내 지인처럼 여자친구에게 헌신하고 있으며 여자친구는 이제 그 헌신에도 만족하지 못 한 채

 

"넌 나를 담기에는 그릇이 작아.

그리고 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 이쯤 되면 이건 '연애'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어. 연인이라면 서로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게 맞아. 그런데 그게 '서로에게'지 '여자친구에게만'이 아니잖아. 현재 여자친구는 성태씨의 헌신이나 위로, 응원이 모두 부질 없는 일이라는 듯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녀의 그 말에만 자책하지 말고 그럼 그녀는 성태씨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 내가 보기에 그녀는 '성태씨에게 기대려는 사람'일 뿐이거든.

 

"그녀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많이 좋아하지만 저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말도 합니다.

제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러다가도 자신은 원래 그런 여자라며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 쳐. 그런데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라는 부분을 보면, 그녀는 성태씨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성태씨를 샌드백으로 생각하며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또, 그녀는 성태씨에게 이별통보를 하고 난 다음 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해오기도 했잖아. 이런 행동들은 정서적 폭력이야. 엄마가 꼬꼬마에게

 

"너 내일 일어나면 모르는 아저씨 집에 갖다 줄 거야.

그 아저씨랑 살아. 엄마는 너랑 못 살아."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거든. 더욱 놀라운 건, 그녀는 현재 성태씨와 예전처럼 연인으로 지내고 있으면서 공식적으로는 '헤어진 사이'라고 말 한다는 거야. 성태씨와 사귈 때 그녀는 '전남친들'과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성태씨가 '전남친들 중 한 명'이 되어 그녀와 연락하고 지내게 된 거지.

 

성태씨의 연애에서 사람만 바뀐 듯한 사연들을 난 꽤 많이 접했어. 남자의 '보호본능'과 '동정심', 그리고 '추격본능'을 자극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성태씨도

 

"여자친구 주변에는 이상한 남자들이 정말 많이 꼬입니다.

여자친구와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도,

제 여자친구에게 '도화살'이 붙어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제가 한 적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자세히 해보도록 할게.

 

 

3. 정말 '도화살' 때문일까?

 

성태씨의 여자친구는 초반에 성태씨에게 먼저 호감을 표시했고, 또 적극적으로 다가왔어. 그리고 성태씨가 말한 것처럼, 성태씨와 사귀는 중에도 그녀 주변에는 '아는 남자'가 많이 있었고, 구남친들과도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그녀는 이성을 대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지.

 

그녀가 이성을 대하는 방식은 좋게 말하면 적극적이며 활달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쉽게 여지를 주며 상대에게 금방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주는 거야. 물론 이걸 전부 머리로 계산해가며 그런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그녀 자신도 금방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이성을 대하면 연애를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기에 이 방법으로 이성을 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녀는 표현도 세련되게 하는 편이야.

 

"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 중에 가장 탐나는 사람이야."

 

정도의 표현을 할 줄 알거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호감이 있다는 말을 살짝 돌려서 저런 식으로 하면 이쪽에선 춤추지 않을 수 없잖아.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걸 별로 어려워하지 않아. 보통의 경우라면 혹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자신에게 누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그녀는 전부 해 버리거든. 그렇게 자신의 치부를 먼저 드러내며

 

"너에겐 이런 이야기들까지 다 하게 된다."

 

라며 다시 한 번 칭찬을 하면, 이쪽에서는 '특별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보호본능'이 작동할 수밖에 없어. 기꺼이 헌신과 위로와 응원을 담당하겠다며 팔 걷어 부치고 나서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이제 그 관계는, 오로지 상대의 기분에 따라 요동치게 돼. 이쪽에 대한 존중? 믿음? 배려? 그런 건 전혀 없고, 그냥 그녀 기분이 나쁘면 이쪽에서 눈치 보며 알아서 기어야 하고, 그녀가 우울해 하면 그녀를 그 우울에서 건지기 위해 재롱을 떨어야 해. 그녀가 둘의 연애를 인질로 삼아 이별로 협박을 하면 이쪽에선 백기를 든 채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사정해야 하고 말이야.

 

"여자친구가 만약 저에게 기다리라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해도,

저는 그녀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말에 따르고 싶습니다.

(중략)

시간이 가고 그녀를 알면 알수록

그녀는 알게 모르게 저를 점점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속상함을 풀어주기 위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자친구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그냥 마냥 위로해주고 기다리는 게 답일까요?"

 

성태씨가 현재 저런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게, 이미 이 관계는 끝났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성태씨의 맹목적인 헌신과 이해, 그리고 위로는 그녀의 심통과 심술까지도 다 받아주게 된 것이거든. 혹자는 뭐 그래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난다면 행복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매일 치킨만 먹으면 행복할 거라는 이야기랑 별 반 다를 바 없는 거야. 실제로 현실에서 '다 받아주는 남자'를 만나면 급격히 흥미를 잃으며 권태로워질 뿐이거든.

 

내가 누군가에게 지금 우리 집에 와서 화장실 청소나 하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가 정말 와서 화장실 청소를 하면, 난 그것에 감동하기는커녕 그를 하인취급 하게 될 거야. 심지어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리라는 이야기까지 할 수 있겠지. 난 성태씨가 그녀에게, 안타깝게도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해.

 

 

성태씨라는 사람 자체로는 그녀에게 별 의미가 없고, 그저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느냐'로 판정을 받아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선, 이 관계를 놓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해. 현재 그녀는 이제 누군가가 물으면 남자친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성태씨에게는 연락해서 본인 상황에 대한 하소연이나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나아가 신경질까지 부리고 있거든. 그래서 성태씨가 위로를 하려고 들면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이건 내 문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난 잠수를 탈거다."

 

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야. 그간 성태씨는 그녀가 그럴 때마다 계속 위로하려 하고 또 힘을 주려 했으니까, 이번엔 그냥 두어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놔둬. 그녀가 인간관계 다 끊고 잠수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 그러라고 두는 거야. 그래선 안 된다거나, 그러지 말고 이겨내자는 이야기도 하지 마. 그녀의 그 말이 성태씨의 보호본능을 자극해서 그냥 두기가 힘들겠지만, 그녀 몫의 인생은 그녀가 살도록 놔둬. 그래야 그녀도 '주저앉아 심술을 부려 봐도 해결되는 건 없구나'라며 일어서서 다시 걷는 거지, 지금처럼 성태씨가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밥이랑 간식 등을 가져다주듯 헌신하면, 배불러진 그 순간에 잠시 괜찮아 질 뿐 소화가 다 되어 다시 배고파지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야. 어제 그녀를 겨우 달래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계속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해야 하던 일들, 성태씨 한두 번 겪은 거 아니잖아.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성태씨 여자친구의 경우는 그녀가 습관적으로 자폭할 때, 자폭하도록 그냥 두는 게 그녀를 도와주는 일이 될 거야. 그녀는 현재 자폭하기 전에 자신이 자폭할 거라는 걸 성태씨에게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내 알리고 있는데, 그걸 보며 계속 쩔쩔매지만 말고 그냥 둬봐. 지금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자폭하려는 그녀를 감싸려고 들면, 그녀가 폭발할 때 성태씨만 다칠 뿐이야.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자폭 후 아무렇지 않게 그 현장에서 걸어 나와선 "무슨 일 있었어?"라는 듯 행동할 거고 말이야. 늘 안절부절 하며 언제나 상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건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라는 걸, 난 성태씨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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