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반응의 남자 강사, 어떻게 다가갈까? 외 2편
그간 대답하지 못 하고 그냥 지나쳤던 댓글들에 대한 답을 먼저 적어둘까 한다. 먼저, '과학의 날'행사에 했던 OX퀴즈 <상자 속 새가 상자 바닥면에 앉아 있다가 날아오를 경우, 상자의 무게는 변화가 있을까?>의 답은 <X, 무게 변함없음>이었다. 문돌이인 내가 혼자서 저 문제를 맞힌 건, 과학적 지식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만약 상자 무게의 변화가 있다면, 물리선생님이 저 문제를 냈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그때 KFC에서 문화상품권으로도 햄버거를 구입할 수 있었기에 친구들과 햄버거를 무더기로 주문해 사치를 부렸던 생각이 나는데, 여하튼 그랬다.
그 다음으로는, '연애의 온도'에 대해 발행한 매뉴얼에 달린 "저건 성향의 차이라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까 한다. 난 매뉴얼을 통해 '존중'과 '책임감'을 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건 둘에게 '관심'과 '이해'라는 측면이 바탕에 깔린 사이일 때를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친구와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만났는데, 친구가 "나 지금 여기 오다가 사고 날 뻔 했어."라는 이야기를 하면, 자연히 "왜? 무슨 일 있었어?"라는 반응을 하기 마련 아닌가. 이게 없이 곧바로 "아 그래? 그래도 사고 안 나서 다행이네. 우리 뭐 먹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건 누구에게라도 '관심'이 없다는 증거로 보일 것이다. 사연 속 주인공이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는 잘 하고 있는 걸 남자친구와 하지 못 하는 까닭에 '연애의 온도'이야기를 한 것이라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자 그럼, 전기장판 온도를 한 칸 더 올려야 할 정도로 갑자기 추워진 오늘, 연애 때문에 마음이 더 추운 대원들의 사연을 함께 살펴보자.
1. 건조한 반응의 남자 강사, 어떻게 다가갈까?
상대는 '남(타인)'이며, 이쪽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기억하자. 나도 언젠가 호프집에 갔다가 문성근씨를 본 적이 있는데, 당시 문성근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한 까닭에 그 프로그램 애청자인 나는 문성근씨를 보곤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하고 말았다. 내 인사를 받은 문성근씨는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내 인사를 받아 주었다. 나 역시 '아, 저 사람은 나 모르지….'라는 걸 그 순간 뒤늦게 깨닫곤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L양의 사연을 보자. L양은 상대의 강의를 들으니 상대가 말하는 걸 늘 들으며 그가 수업 중간 중간에 말한 에피소드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L양은 어떤 존재일까? 현재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는 듯 생각하고 있는 L양에겐 미안하지만, 그에게 L양은 '수강생'이다.
이거 얘기하다 보니 과거 일이 하나 더 떠오르는데, 꼬꼬마시절 난 모 놀이동산에 갔다가 연세대 농구팀을 본 적이 있다. 놀이공원 초청으로 그 선수들이 참여하고, 관람객은 그들의 수다를 들으며 사은품을 타기도 하는 행사였다. 이때 난 농구에 흠뻑 빠져 있었던 까닭에 행사 시작 전부터 앞줄에 앉아서는 끝날 때까지 구경했다. 그런데 행사 내내 서장훈 선수가 나와 눈을 마주쳐 놓고는 싸인볼을 관객에게 주는 시간에는 공을 관객석 맨 뒤로만 던졌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그렇게 여러 차례 나와 눈을 맞추고선 싸인볼을 줄 때 엄한 곳에 던진 서장훈 선수에게 미운 감정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저 때의 나와 지금의 L양이 좀 비슷한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L양은 상대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상대 입장에서는 뜬금없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해놓고는 반응을 기다린다.
"제가 거기 가서 찍은 사진 세 장을 카톡으로 보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걸 다 보시고도 답장은 안 하시더라고요."
L양은 저걸 두고 상대가 '건조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아니 건조하고 습하고를 떠나서 지금 대체 L양이 왜 그러는지를 상대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 아닌가. L양은 내가 여기에
"이사 갔어요. 그 집은."
이라는 문장을 적어두면, 그걸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당연히 별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저건 내가 L양에게 이야기 한 적 없는 내 습작기 소설 <개미>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의 내용 다 자르고 맨 마지막 부분만 상대에게 던지면, 상대는 뭔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할 뿐더러 이쪽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제가 제 또래 친구들 만나는 것처럼 영화 보러 가자거나
같이 밥 먹자는 말을 해도 좋을지…."
당연하다. 상대가 두 손으로 세야 할 만큼 L양보다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L양은 상대와 만나고 싶은 거지 무슨 상대를 모시며 효도하고 싶은 게 아니잖은가. 그러니 마음으로만 상대를 공경하며 크리스마스에 효도신발 같은 걸 사드릴 생각하지 말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불러내 함께 재미있게 놀길 바란다.
2. 참치가 말해줍니다.
저는 참치사건이, 둘의 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A양 - 배고파 ㅠ.ㅠ
상대 - 참치 먹을래?
A양 - 참치 회? 웬일로 참치 회를? 좋아~!
상대 - 아니. 캔. 집에 남은 거 있어.
A양 - 참치 캔…. 내가 불쌍해서 주고 싶은 거야?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대는 떡 줄 생각 없는데 A양은 김칫국 사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카톡대화가 신청서에 첨부되지 않은 까닭에 그 이유를 확실하겐 알 수 없지만, 현재 A양은 그에게
'내가 도와줘야 할 동생이자 놀아줘야 할 동생.'
정도의 사람인 건 거의 확실합니다.
상대 - 놀고 싶어?
A양 - 응!
상대 - 놀아줄게 다음에.
라는 대화를 보더라도, 이 관계는 A양이 주장하는 '썸'이 아니라 '타지에서 만나 알고 지내는 동향사람'의 관계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A양을 챙겨주고 A양에게 연락했을 순간들을 돌아보면, 전부 A양이 그와 가까이 있었을 때 아니었습니까? 그러다가도 A양과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그의 연락이 끊어지는 것에 대해 A양은
"그는 호감을 표현하며 다가오다가도 갑자기 잠수를 타요."
라고 말하는데, 그건 사실 '잠수'가 아닙니다. 전 몇 년 전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우연히 같은 군대에서 복무했던 고참을 만났는데, 훈련 내내 그 고참과 딱 붙어서 수다를 떨었고 밥도 같이 먹었습니다. 전부 다 낯선 사람들인 가운데 아는 사람을 만났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예비군 훈련 종료와 함께 다시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는데, 다음 예비군 훈련에서 만났을 때에는 또 반가워하며 훈련 내내 붙어 있었습니다.
상대와 A양의 관계는, 바로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저와 제 고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A양 친구가 "그 오빠한테 소개팅 시켜달라고 해봐."라는 이야기를 해서 A양은 그에게 소개팅 부탁을 하기도 했고, 또 그에게 여러 가지를 기대하며
"그가 바빠진 건 알지만,
출퇴근길에 카톡 하나 못 하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멀어지게 된 것이고 말입니다. 그리고 A양이 상대를 향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요약하면 "제가 그 오빠에게 의지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서운하게 만드니 좀 실망스럽습니다."라는 건데, 상대에게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길 바라는 건 A양의 욕심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상한 작전으로 상대를 떠보라고 조언하는 친구에겐 더 둘의 관계를 털어 놓지 마시고, 오늘부터는 '타지에서 만난 동향사람'의 관계에서부터 상대와 연락하며 지내보시길 권합니다. A양에게도 열 개의 손가락이 있으니, 그의 연락을 기다리지만 말고 선톡도 좀 먼저 해가면서 말입니다.
3. 재은아 이건 호박이잖아.
재은아, 얼마 전에 내가 TV를 보는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는 학생들이 나와서 경합을 하고 있더라. 그 중 한 학생이 모델에게 메이크업을 했는데, 모델의 각진 턱을 감추려고 섀도우를 엄청 썼어. 난 남자라 메이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아, 저건 좀 이상하긴 한데, 원래 저 정도까지 메이크업을 해야 하나 보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심사위원이
"턱 부분이 너무 과하죠? 너무 과해서 구레나룻처럼 보여요."
라고 얘길 하더라고. 그 학생은 심사를 받는 자리니까 평소처럼 섀도우를 살짝 줬다가, 이 정도면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좀 더 했다가, 이왕 하는 김에 확실히 각진 부분을 죽이자며 엄청 공 들여서 터치를 했는데, 그게 결국은 구레나룻처럼 보이게 되는 역효과를 부르고 만 거야.
왜 여자들 사이에선 "화장도 너무 공 들이면 잘 안 된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내 주변만 봐도 중요한 날 눈썹 잘 그려야 한다고 눈썹에 매달려 있으면, 나중에 결국 짱구 눈썹 되고 그러는 것 같더라고. 지우고 다시 하고, 또 지우고 다시하고 하다 보니 결국 다각형처럼 눈썹이 그려지고 마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네가 사연 신청서에 적은 말들을 봐봐.
"제가 '을'처럼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제게 이성적 호감이 있어서 연락한 걸까요?"
"너무 쉬워 보이는 여자로 보여 지고 싶지 않습니다."
재은아, 걔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는데? 아무 것도 안 했어. 연락해서 토익 잘 보란 얘기하고, 또 영화 좋아한다고 하니 같이 보자고 한 것뿐이잖아. 남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이게 웬 떡이냐!'할 거야. 심남이가 선톡도 보내고 영화도 보자고 하잖아. 근데 넌 심남이에게
"근데 나 사실 중학교 친구 중에 연락하는 친구가 너밖에 없어…. 하하…."
따위의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거든. 이건 재은이 네가 스스로를 이상하게 설명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걔한테 쉬워 보이는 여자로 보여 지고 싶지 않습니다."따위의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아. 이러지 말고 그냥 만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상대에겐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즐겨 하는 것,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을 해. 내가 늘 얘기하지만,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법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법이거든. 그러니 <깊고 무거운 얘기 한다면서 우울증 진단서 같은 얘기하는 것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만나서 웃으며 같이 영화보고 밥 먹고 해.
"그가 만나자고 던지는 떡밥을 제가 너무 성실히 무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니까? 그럼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지금 만나자고 하는 건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크리스마스에 보자고 하면 그건 또 너무 의미 있는 날이니까, 내년 설 지나서 만나자고 할까? 이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것과 같은 거야. 첫사랑을 토익학원에서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야? 그리고 그 이후에도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 오는 게 흔한 일이야? 그러니까 아직 같이 밥도 한 번 안 먹은 상황에서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기회를 잡아.
"5년 만에 만나는 거라, 무슨 얘기를 나누고 어떻게 할지도 막막합니다."
부모님 잘 계시냐고 묻고, 중학교 친구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 있나 물어봐. 그럼 상대가 알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 놓을 거야. 그럼 그 중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골라서 다시 묻기도 하고, 또 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도 물어봐. 동아리나 동호회 활동은 뭘 했는지 물어보고, 전공을 택한 이유도 물어봐봐. 그리고 동네가 같으면 주로 어디서 뭘 하고 노는지도 물어봐봐. 그럼 또 거기서 연결되는 대화거리가 수두룩하거든. 대화는 이런 방식으로 이어가면 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와 만났을 때 무조건 환하게 웃는 거야. 재은이의 경우는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상대와 만났을 때 생각하느라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수 있거든. 그러니 재은이의 내적 자아와 만나는 시간은 나중으로 미루고, 앞에 치킨이 있다고 생각해.(이건 재은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요즘 추우니까, 만약 상대가 집에 바래다준다고 하면, 센스 있게 따뜻한 커피나 두유를 하나 사서 주며 손에 쥐고 가라고 하면 돼. 종종 이때 그냥 후딱 들어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한 번쯤 돌아서서 손 흔들어 주고. 알았지? 그럼 다녀와서 후기 보내줘!
이 매뉴얼을 쓰기는 아침에 다 써놨는데, 블로그 내부의 문제로 인해 댓글들을 좀 지우느라 시간이 늦었다. 스팸 댓글 수천 개쯤 지우다가, 안 끝날 것 같아서 다시 와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한다.
2013년 결산을 여태껏 못 한 이유는 블로그 데이터를 백업할 수 없어서였다. 티스토리 측에 문의를 해서 백업파일을 몇 번 받긴 했는데, 그게 전부 일정 기간 이후로는 데이터가 없는 불완전한 파일이었다. 이 문제를 고객센터에 몇 달 간 말해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아 아예 손 놓고 있다가, 이대로라면 2014년 결산도 못 하게 될 것 같아 며칠 전 다시 문의를 했다. 그래서 파일을 또 받았는데, 역시 불완전하다.
대체 이런 문제가 왜 생겼는지를 되짚어 가다 보니, 이상한 문자로 남겨진 스팸문자들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백업파일을 만지다 보면
"'r', 16진수 값 0x01은(는) 잘못된 문자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검색해 보니 언어와 관련된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스팸문자들을 찾아내 하나씩 손수 지우고 있는데, 이게 천 개 이천 개가 아니다 보니 엄청나게 시간이 걸린다. 여하튼 오늘 누가 이기나 근성으로 지워볼 생각이다. 얼른 가서 댓글과 방명록의 스팸들을 처리해야 하니, 오늘 글은 여기서 서둘러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오늘 나가보니 우리 집 냉동실보다 바깥이 더 차가운 것 같던데, 모쪼록 별 탈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시길 바란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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