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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자기계발 서적에 나온 대로 연애하려는 남자

by 무한 2014. 12. 10.

자기계발 서적에 나온 대로 연애하려는 남자

정우씨 어제 내가 카톡으로 화내서 미안해. 정우씨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답답해서 어쩔 수 없었어. 어제 내가 그랬잖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이야. 사연 제보자에게 저런 얘기를 한 건 처음이었는데, 그건 정우씨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져서인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도 자꾸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야. 어제도 얘기했지만 정우씨의 주장은 계속 이전의 자기 이야기를 뒤엎고 있거든.

 

ⓐ이러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좋은 순간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이해하고 넘기기 힘든 부분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허나 그녀는 제게 멘토였고, 그녀와의 사랑엔 아무 후회도 없습니다.

 

이건 뭐 그렇다 쳐. 그런데 정우씨는 새로 만나려는 사람에 대해서도

 

ⓐ저는 누군가를 좋아 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이미 새로운 관계는 시작 되었다고 봅니다. 그녀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 정우씨가 봐도 이상하지 않아? 상반되는 두 주장이 다 들어가 있는 거잖아.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이나 관계를 돌아보는 건 좋아. 그런데 그 중 명확한 '내 생각과 선택'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러면 그냥 회색분자인 거잖아. 이솝우화 속 박쥐처럼 말이야. 어느 땐 날개가 있으니 새다, 어느 땐 쥐처럼 생겼으니 동물이다 하면서 두 노선에 전부 다리를 걸어두는 모습..

 

 

1.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단점을 고치도록?

 

<바쁘니까 셔틀이다>류의 자기계발서적을 많이 읽은 이십대 중반 솔로부대원들 중엔, 연애까지도 자기계발을 하듯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있어. 그들은 "이 경험도 저의 밑거름이 될 것이며…. 그것으로 저는 더 강해져서…." 따위의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자꾸 그렇게 계속 강해져서 대체 뭐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싶어. 철인 29호라도 되고 싶은 건지.

 

여하튼 그들은 관심 있는 여자에게 들이대다가 그녀가 부담스러워 할 경우, 마지막까지도 부담을 주고 끝내려는 듯 아래와 같은 걸 묻곤 해.

 

"내 어떤 부분이 싫은 건지를 말해줘. 그래야 나도 알 수 있잖아."

"네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을 알려줘. 그걸 나도 고쳐보고 싶어."

"왜 나는 안 되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 내 문제가 뭔지 나도 궁금해."

 

만약 저 물음에 상대가

 

"음, 오빠가 계속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는 게 좀 부담스러워요."

 

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또

 

"그럼 내가 연락을 줄이고 만나자고 조르지 않으면,

나에게도 가능성은 있는 거야?"

 

라는 질문을 하곤 하지.

 

늘 얘기하지만 연애나 사랑은 로직이 아니야. 단순하게 식으로 나타낸다 하더라도 언제나 미지수 x나 y가 포함되지. 때문에 남이 대입해서 정답을 구한 숫자를 집어넣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다른 까닭에 정답이 되긴 힘들어.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걸 참고할 순 있지만, 뭘 넣었느냐를 보고 베낄 순 없는 거야. 그런데 저 대원들은 뭘 더해야 하냐거나 빼야하냐는 것만 묻고 있잖아. 나머지 숫자를 다 지워도 미지수 x나 y는 여전히 남는데 말이야.

 

난 오래 전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선 커피 전문점도 아닌 D사의 커피가 1위를 했더라고. D사는 당시 해마다 치러지는 그 테스트에서 몇 년 째 1위를 했다고 해. 근데 커피 맛이 그렇게 좋다는 D사는 왜 S사에도 밀리고, C사에도 밀리고, T사나 A사에도 밀리는 걸까?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서? 그럼 D사가 앞으로 커피 전문점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발표를 하면, 순식간에 다른 커피 전문점들을 제치고 그 업계에서 1위를 하게 될까?

 

더 나아져야 한다, 고쳐야 한다, 경험을 만들어 밑거름을 쌓아야 한다, 라는 생각들에 너무 함몰되지 않기를 난 권해주고 싶어. 모 랩퍼가 3년 가사 공부, 3년 음악 공부, 3년 공연 공부, 이렇게 도합 9년을 공부하곤 음악을 발표했어. 그럼 모두가 그 랩퍼에게 열광할까? 힙합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10년을 공부했든 20년을 공부했든 그의 랩엔 관심이 없겠지.

 

"장기전으로 가야 되는 거 별로 부담스럽지 않아요.

제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채 배려하다 보면,

언젠가 서로 좋아지는 순간이 올 거라 믿고 있어요."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시간이 무작정 다 해결해 주는 건 아니야. 그게 줄 서서 기다린다고 될 것 같으면 나도 이런 매뉴얼 발행하는 대신 새벽부터 나가서 줄 서라고 권하겠지. 사연을 최대한 공개 안 하면서 이야기 하려니 힘드네. 여하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

 

 

2. 피하면 책임지지 않아도 될까?

 

어제 내가 정우씨의 사연을 다룰 수 없다고 말했었잖아. 그 이유는, 정우씨가 '어떻게든 합리화, 정당화 하려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이었어. 어제 잠깐 정우씨랑 대화한 것 중에,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다고 생각한 지점을 말해줄게.

 

정우 - 호감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죠.

          다만 그 호감을 밖으로 꺼내 보일 수 없었던 건,

          당시 제가 연애 중이어서 못 했던 거죠.

무한 - 아까는 구여친과 이별했을 때만 해도 이 분에게 호감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그러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이 분에게 호감이 생겼다고 했고요.

정우 - 네. 호감이 없었던 건 맞지만,

         사람의 호감은 순간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 아닌가요?

         시간이 지남으로서 좋은 감정이 생긴 건데요.

         무슨 이론도 아니고 이래서 저래서 좋아하는 이유가 과연 존재할까요?

 

사람이 일관성이 없잖아. 자꾸 피하거나 물러나려 하지 말고, 뭐가 뭔지를 확실하게 이야기 해야지.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면 어쩌자는 거야. 이건 마치

 

무한 - 어제 빌려준다고 했던 카메라 렌즈 오늘 좀 빌릴 수 있을까?

친구 - 카메라 렌즈? 나 렌즈 없는데?

무한 - 어제 네가 85.8 있다고 빌려준다고 했잖아.

친구 - 빌려 준다고 말한 건 맞아.

         그런데 난 85.8 렌즈가 없어.

         없는 걸 빌려줄 순 없잖아?

 

라는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잖아.

 

정우씨가 이 여자 분 이전에 들이댔던 A라는 여자. 그 여자와의 관계도 그래. 정우씨는 내게

 

"A에게 들이댈 땐 이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땐 A에게 호감이 있었다.

지금은 이 아이에게 호감이 있다. A에겐 관심이 없다."

 

라고 말하는데, 그게 나에게 그렇게 정당화해서 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매뉴얼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동호회 찝쩍남'이야기 들어본 적 없어? A에게 들이대다 안 되면 B에게 들이대고, 그래도 안 되면 C에게 들이대는 남자.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도 정우씨가 하는 말과 같아.

 

"대시하던 그 순간은 정말 진심이었다."

 

진심이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진심이 계절 하나도 버티지 못 할 정도로 유효기간이 짧다는 게 문제야. 정우씨 말대로 무슨 이론이 있어서 '얼마간의 들이댐은 진심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호감의 이유가 이러이러한 조건에 맞을 정도로 타당하면 그건 진심으로 인정한다.'라는 조항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이러다 더 마음에 드는 '다른 이성'을 만나게 되면 정우씨는 어떻게 할 거야? 이 여자 분을 향한 호감을 정리하고 새로운 여자 분에게 호감을 펴기 시작할 거야? 그러면서

 

"그 여자 분, 이제 그녀를 B라고 하죠.

제가 사연을 드릴 때만 해도 B에게 호감이 있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C에게 호감이 있습니다. B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럴 거야? 신중하게 생각한 뒤 결정하고, 결정을 했으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 나야 정우씨가 말하는 합리화나 정당화를 2박 3일이라도 들어줄 수 있겠지만, 내가 그걸 듣고 정우씨 편을 들어준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정우씨의 그런 태도들을 목격한 당사자들이 고개를 저으면, 정우씨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자기변호를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는 거고 말이야. 정우씨가 현재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봐.

 

 

3. 어떻게 다가갈까?

 

정우씨가 그녀와의 관계에서 보이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이전 매뉴얼들에서 설명한 적 있는 것들이야. 그러니 짧게만 설명하도록 할게.

 

우선, '기-승-전-언제 시간 돼?'라는 문제가 있어. 정우씨는 상대와 말이 잘 통한다고 했는데,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어. 상대는 정우씨의 이야기에 대답을 해주는 것 정도고, 정우씨는 사소한 이야기로 말을 건 뒤 '만날 약속'을 잡으려 기회만 노리고 있지. 상대와 카톡으로 대화 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 그러니 대충 몇 마디 하다가 언제 시간 되냐고 묻지만 말고, 말 그대로 대화를 해봐.

 

그리고 저 문제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문제'를 불러 일으켜. 상대가 뭐라고 하든 이쪽에서는 만날 약속을 잡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으니, 자연히 상대의 말에 호응을 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지. 대화를 봐봐.

 

상대 - 저 1월에 일본 다녀오려고요~

정우 - ㅎㅎㅎㅎ 좋겠네.

정우 - 해외는 처음 나가는 건가?

정우 - 기내식 사먹을 돈 꼭 챙기고~ 그거 돈 내고 먹는 거야 ㅎㅎ

상대 - ㅎㅎㅎㅎㅎ 저 몇 년 전에 미국 갔다왔어요 ㅋㅋ

정우 - 난 얼마 전에 청도 갔다 왔는데 거기가 참 좋았지.

정우 - 거기 가면 맥주공장 있는데 ㅎㅎㅎ

정우 - 내가 거기 맥주공장 가서 어쩌고저쩌고….

 

내가 만약 정우씨였다면, 난 저 대화를 통해 그녀가 일본에 왜 가는지, 일본 어디에 가는지, 그리고 미국 어디를 다녀왔는지, 언제 누구랑 다녀왔는지, 미국 다녀온 느낌은 어땠는지, 지금도 생각나는 추억이 있는지 등을 알아냈을 거야. '알아냈을'이라고 하니까 너무 계획적인 듯 느껴지긴 하는데, 억지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정말 궁금하니까 물어봤을 거야. 내 공쥬님(여자친구)은 나랑 사귀기 전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했는데, 난 공쥬님과 함께 간 건 아니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랑 갔는지, 뭘 먹었는지, 그곳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느낌이 어땠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을 다 알고 있어. 궁금하니까 자연히 묻게 된 거고, 그러다 보니 그곳 시장에서 어떤 냄새가 났는지 까지를 알게 된 거지.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좋아서 그녀가 정우씨의 여자친구가 되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여자친구가 필요해서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 내가 보기에 정우씨는

 

"난 마음에 들면 포기하지 않는다."

"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대시하는 타입이다."

"난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대 놓지 않는다."

 

라며 스스로를 열심히 도끼질 하는 나무꾼처럼 이야기 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자신이 왜 거기서 도끼질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거든. 추격 본능 때문에 앞에서 뭔가가 뛰면 쫓아가긴 하는데, 달리면서도 자신이 왜 쫓아가는지를 모르는 거야. 혹 지금의 이 상황도 그런 건 아닌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정우씨가 설명한 그녀와의 딱 한 번뿐인 사적만남을 살펴보면, 거기서 그녀는 그냥 동호회 어떤 오빠와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거든. 그런데 정우씨는 그 만남에서 그녀와 말이 잘 통하며 그녀에게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고 했지. 그러고는 현재 다시 한 번 만날 기회를 엿보며 이 기다림이 얼마가 되든 인내심을 가지고 도끼질을 해보겠다고 이상할 정도로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 중이고. 때문에 난 정우씨가 까닭 없이 너무 절실해져 뛰어가기 보다는, 현실에 발맞춰 편안하게 걸었으면 좋겠어.

 

 

정우씨, 괴로움을 참고 견뎌가면서까지 억지로 썸을 타려 하거나 연애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이건 정우씨의 연애관이

 

'희생, 배려, 인내'

 

라는 키워드로 이루어진 듯해서 하는 얘기야. 연애는 수요일 저녁에 돼지갈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랑 해야 하는 건데, 정우씨는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상대의 이미지를 벽에 걸어 놓고 기도를 드리려 한단 말이야. 상대는 정우씨의 종교가 되고, 정우씨는 마치 스토아학파의 수도자처럼 절제된 자세로 <언제 시간 돼 수행>을 시작하지.

 

그러면서 동시에 '그 순간의 진심'을 지인에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까닭에, 나중에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자신이 한 말들에 발목을 잡히기도 해.

 

"그녀와도 친한 친구에게 제 마음을 밝히고 피드백을 받았죠."

 

피드백은 당사자들끼리만 주고받자고. 이러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새로운 이성 C라도 나타나면, 정우씨는 또 저 친구에게까지 지조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마는 거니까. 그리고 잘 생각해봐. 그 친구가 해준 게 정말 피드백 맞아?

 

친구 - 뭐, 노력하면 걔가 마음 알아주겠지. 힘내.

정우 -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이거 완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피드백이네? 정우씨, 그러지 말자고. 근거 없는 응원의 말이라도 한 마디 들어야 힘이 난다는 거 나도 모르는 거 아닌데, 맹목적인 희생, 배려, 인내라는 긴 길을 걸어가기 위해 남들에게 응원을 부탁하진 말자고. 자 그럼,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정우씨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를 확인해 보길 바라. 과거의 정우씨나, 미래의 정우씨가 아닌, 현재의 정우씨가 누군질 봐봐.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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