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이별통보를 반송하고 싶은 여자 외 2편
이별통보를 받으면 그 즉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당장 내게 사연을 보내자. 상대에게는 잠시, 이쪽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반응 없음'을 통해 상대를 궁금하게 만들 것이고, 고민 역시 상대가 하도록 만들 것이다. 날 조금이라도 신뢰한다면 제발 이 말을 따라주길 바란다. 이별이 확정되는 것은 대개, 이별통보를 받은 직후 진흙탕 싸움을 하거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할 말 못할 말 다 해버리는 것이 원인이 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이별사유의 8할은, 상대의 입장에서 이 연애를 계속 하기엔 자신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상대에게 이쪽에서 매달리고, 애원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버리면, 상대의 '내가 아깝다'는 생각은 더욱 단단해질 뿐이다. 또한 상대는 이미 이쪽의 한계를 자신의 마음대로 설정해 버리곤 딱 그것밖에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중일 텐데, 그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이쪽에서 움직여 버리면, 상대가 마음대로 설정한 이쪽의 한계를 이쪽에서 증명해 버리는 모양이 되어 버린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바로 이때 필요한 거다. 그러니, 마치 상대가 찍은 마침표로 인해 이쪽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듯, 일단 상대에겐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말자. 경추나 척추를 다친 사람을 다룰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당장 일으켜 세우려고 막 잡아당기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더 큰 후속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모든 걸 일시정지 시켜둔 채 내게 사연을 주길 바란다.
1. 남자친구의 이별통보를 반송하고 싶은 여자.
며칠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헤어질 때 나눈 대화와 헤어진 이후의 카톡만 내게 보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건 마치 병원에 그저 전화를 해 "설사를 계속 해요. 그래서 다리에 힘도 없고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어떻게 사귀어 왔는지, 둘의 연애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포함되어야지, 정말 절실하게 재회를 원한다는 얘기만을 책 한 권 분량으로 작성해 보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N양이 보낸 사연이 그렇다. 그래서 구체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해주기가 어렵고, 이별 후에 벌어진 일들의 문제와 예상되는 결말에 대해서만 짧막하게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럼 먼저, N양이 이별 후 상대에게 보낸 카톡을 하나 보자.
"혼자 결론짓지 말고 있으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어쨌든 나 아직 오빠 여자친구고 이건 우리 문제예요.
부탁 아니고 명령이에요.
언제 시간 괜찮을지 정해지면 말하고,
그 전에는 연락 안 해도 좋아요."
환자의 동맥을 잇는 것에는 분명 성공했지만, 수술 중 수혈도 하지 않고 환자 체크도 하지 않아 결국 환자가 목숨을 잃게 된 수술을 보는 것 같다.
난 '연애'에 임하는 N양의 태도 전반이 저런 식이지 않았나 싶다. 얼핏 보면 논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억지인 주장이라고 할까. 만약 재회를 하더라도, 둘의 사정 상 내년 한 해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오빠가 바람만 안 피면 난 다 괜찮다'고 말하는 N양이 좀 신기할 정도다. 간판이 걸린 게 중요하지 그 가게가 영업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이별이 N양의 탓으로 벌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이별은 90% 이상이 남친 탓이다. 그는 애초부터 '단기간 여친'을 사귈 생각으로 이 관계를 시작했던 것 같다. N양이 사는 곳에 6개월 정도 머물 줄 알고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절반만 머물게 되어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게, 말이 되는 이별사유인가?
또, N양은 그가 '스킨십 진도'에 대해 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난 그걸 부정적으로 본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스킨십 진도 때문에 N양을 만나는 게 아니라는 걸 그가 그렇게 자주 말 할 필요가 없다. 이걸 N양은 '오빠가 너무 급격히 진행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챘는지'라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던데, 난 그게 '행위'로만 보면 분명하게 보이는 걸 그가 희석하기 위해 계속 '말'로 변명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만날 때마다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이거 어쩌다 보니, 내가 꼭 만날 때마다 돈 얘기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네."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N양이 보낸 사연을 가지고는 난 이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 달 사귀는 동안 두 번의 마찰이 있었는데 그게 다 '스킨십 진도'때문인 거고, 남친은 N양이 사는 지역에 좀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이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니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헤어진 지금은 N양이 톡을 보내면 답은 해주고 있지만 그건 N양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받아주는 것일 뿐 헤어지겠다는 그의 결심은 확고하고…. 행위들만 놓고 보면, 그가 파견된 곳에서 외로움을 느껴 연애를 좀 하다가, 이제 복귀해야 할 때가 되니 손 털고 올라가려는 듯 보인다. 자존심 강한 N양은 자신의 사연이 절대 이렇게 가벼운 연애가 아니었다고 말하겠지만, 난 미안하게도 행위들만 놓고 보면 그저 딱 이 정도의 사연이라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
2. 노력한다면서 계속 방치하는 남친.
오늘 사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유독 이기적인 것 같다. S양의 남자친구인 이 남자 역시,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어.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좋으니까.
내 진심은 이래. 그만큼 네가 좋아. 넌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고.
그러니까 날 믿어줘. 힘들어 하지 마. 힘들게 안 하도록 노력할게.
날 더 믿고, 어디 안 가니까 힘들어 하지 마."
라고 말은 참 잘 하는데, 폰으로 다른 거 할 시간은 있으면서도 S양에게 연락은 잘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사연은 남친이 몸이 아프며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 S양의 연락으로 인해 남친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할 정도면 헤어지는 게 맞다. 그는 이제 자신도 모르겠다며 "네가 알아서 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몸이 아파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여자친구가 불만을 말하니 그 상황마저 버겁다는 건 이해하지만, S양이 나가서 뭘 하든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면 이 연애는 그만 두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고시 준비하는 남친'과 관련된 사연을 읽다가 분노하는 부분 중 하나가, 남친이 시간은 지가 허투로 다 써놓고 나중에 여자친구가 일주일 168 시간 중 두 시간만 내달라고 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처럼 말하는 거다.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참고, 눈치까지 봐가며 가만히 있으니,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나중엔 지가 엉망으로 보낸 시간들도 모두 여자친구 탓인 듯 이야기를 한다. 월요일에 당구 치고, 화요일에 게임 하고, 수요일에 티비 보고, 목요일에 친구 만나고, 금요일에 드라마 보느라 공부 못 했으면 그게 지 탓이지 어떻게 여자친구 탓인가. 그런데도 이 괴상한 부류의 몇몇 사람들은
"이번 주에 해야 할 공부를 못 해서 나도 지금 마음이 다급한데,
너까지 왜 나에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거냐.
내가 공부 하느라 시간이 부족한 거지 네가 싫어서 안 만나는 게 아니잖느냐."
따위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에겐, 그저 시험에 꼭 합격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며 손을 흔들어 주길 권한다. 그 곁에서 막 400일, 500일 벙어리 우렁각시 하고 있다간 주름살만 늘 뿐이다. 남친이 고시생이어도, 그가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경영해 나가는 까닭에 행복한 연애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만나지만, 그 한 번 만남으로도 앞으로 나머지 일주일을 살아갈 힘이 충분히 충전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알아서 살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방치만 해 둘 뿐인 남자에게선, 벗어나길 권한다. 세상에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그러고 있는가.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지 않으면 결국 잃게 된다는 걸 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그 관계는 그만 놓길 바란다.
3. 마음에 드는 소개팅남, 근데 그는 흥미를 잃은 것 같아요.
소개팅남이랑 나라씨의 코드가 너무 달라요. 나라씨가 '신사임당'이라면, 소개팅남은 '신동엽'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건 성향이나 성격의 문제인 까닭에 누가 문제라고 확실하게 이야기를 할 순 없는데, 제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나라씨가 좀 '직구만 받는 타입'이 아닐까 싶습니다. 던지는 것도 나라씨는 정직하게 직구만 던지고요.
나라씨는 <고대 로마의 건축과 미술>이라는 다큐 같은 느낌입니다. 알아두면 뭔가 좋긴 할 것 같은데, 60부작인 그 다큐를 보긴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워요. '로마', '미술', '건축'이라는 코드가 맞으면 60부작이라도 끝까지 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지치잖아요.
그 다큐가 좀 예능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최근의 미술과 고대 로마의 미술을 비교한다든지, 아니면 로마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최근에 건설한 건물들을 이야기 해준다든지 하면 흥미를 가질 순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진짜 '정통 다큐'의 방식으로 미술과 건물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거라면, 아무래도 진짜 '마니아'가 아닌 이상 그걸 다 보긴 힘들 겁니다. 소개팅남이 나라씨에게 흥미를 잃은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나 가져와 볼게요.
소개팅남 - 근데 카톡하다가 느낀 건데, 난 웃자고 말해도 답은 꽤나 진지해요. ㅋㅋ
이것도 꾹 성격 누르고 있는 건가? ㅋㅋ 내가 잘못 느꼈을 수도 ㅋㅋ
나라씨 - 아 ㅋㅋ 제가 문자나 카톡에 약해서 이모티콘 같은 것을 잘 안 써서 그럴 거예요.
대화 하면서 웃고 있어요.
음, 아니거든요. 그는 대화가 자꾸 다큐가 되거나 정극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이상한 걸 느낀 거예요. 제가 나라씨의 카톡을 전부 보면서도 느낀 게, 나라씨는 진지하거든요. 그래서 만약 제가,
"며칠 전에 회를 먹었는데, 우럭이 섹시해 보여서 우럭을 선택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해도, 나라씨는 '무슨 얘길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아, 맛있게 드셨어요?"라고만 받을 것 같아요. 상대가 이상함을 느낀 부분도 바로 저 지점이에요. 분명 10개 정도 드립을 던지면 적어도 하나는 터져야 하는데, 나라씨는 안 터져요. 농담도 다큐로 받아 버리거든요.
이게 극복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에요. 만나서 어울리며 친해지다 보면, 현실과 다른 서로의 이미지만 떠올리며 하는 대화보다 매끄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해지죠. 그런데 문제는, 나라씨가 능동적으로 그런 만남을 이끌어 낼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나라씨는 저에게
"그가 저를 다시 좋아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요?"
라고 묻고 있거든요. 그는 나라씨를 좋아한 적 없어요.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나라씨를 알아가려고 했던 거예요. 하지만 나라씨는 그간 남자 쪽에서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서 시작한 연애만을 해왔기에, 그냥 다 그가 알아서 다시 들이대길 바라고 있는 거죠.
잘 되길 원한다면 약속을 잡고 만나세요. 문자로 대화를 하는 게 아무래도 어색하고 자신 없으면 전화를 하시고, 나라씨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궁금해 한다는 걸 보여주세요. 지금까진 그의 관심을 받기만 했으니까요. 그렇게 다가가면 잘 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두 밤만 더 자고 나면 2015년이다. '2015'년이라는 게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오는 년도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다니 놀랍다. 내일은 2014년의 말일이자 DAUM의 VIEW 서비스 최종 종료일이라 소감을 좀 적고 싶었는데, 밀린 사연들이 많아 아무래도 매뉴얼을 발행하게 될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매뉴얼이라 좀 특별해야 할 것 같아서, '2015년 연애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매뉴얼을 작성해 볼까 한다.(아직 여유가 있는 꼬꼬마 대원들 보다는, 명절에 친척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은 대원들 위주로 쓸 생각이다.)
자 그럼, 다들 묵은 해 보내고 새 해 맞이할 준비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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