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어머니가 극성 엄마, 어떡해? 외 3편
놀라운 소식을 하나 접했다. 매뉴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난 몇 해 전부터 하드 디스크 하나에 <애태우는 디스크>라는 이름을 붙인 채 복구를 꾀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 하드가 먹통이 된 채
"사용하려면 포맷해야 합니다."
라는 메시지만 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하드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내가 찍은 사진이 전부 들어 있는 하드였다. 갑자기 돌연사 한 이 하드디스크를 두고 난 지금까지 생각이 날 때마다 복구시도를 했는데 전부 실패했다. 그러다 어제 웹에서 어느 글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글에는
"시게이트 바라쿠다 7200.11 시리즈는 언제든 멈출 운명을 지닌 하드입니다.
제조사에서도 불량을 인정했고,
특히 ST3500320AS 모델에서 이 같은 증상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내 하드의 모델명을 보니 ST3500320AS로, 바로 저 제품이었다. 언젠가 'A/S피플'이라는 글에서 밝혔듯, 난 꼭 이런 것에 당첨이 잘 되는 타입이다. 생수를 샀더니 내가 산 생수에 발암물질이 들었다는 뉴스가 딱 나오고, 크랜베리가 들어있는 플레이크를 사다 먹었더니 내가 산 바로 그 제품에 대장균 들어 있다는 뉴스가 딱 나오고….
여하튼 MAX3232 칩을 사용한 RS232보드로 TTL통신을 해서 살려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문돌이인 나는 잘 모르겠고, 일단 필요하다는 장비들을 모두 주문해 놓은 상태다. 하드에서 PCB 기판을 분리한 후 TX와 RX핀에 연결하고 어쩌고저쩌고 해야 한다는데, 사진을 보며 따라해 볼 생각이다. 내가 구입했던 저 하드는 당시 판매량 1위였던 하드인데, 나처럼 하드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 그저 보관만 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면 [링크]를 클릭해 살펴보시길 권한다. 저 시기에 생산된 동일 제조사의 다른 하드들도 문제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자 그럼, 내 이야긴 여기까지 하고 바로 '밀린 사연 모음' 출발해 보자.
1. 남친 어머니가 극성 엄마, 어떡해?
이건 남친 어머니도 극성이시지만, 남친이 중간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니 A양은 본인이 나서서 남친 어머니와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남친의 귀를 잡고 끌어서라도 그 현명하지 못한 태도를 고치게 만들길 권한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 오면 그냥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그래도 우리 엄마가 뭐라고 하면 앞으론 전화 받지 말고 답장도 하지 말아버려."
남친의 저 조언을 따르면, A양은 남친의 어머니와 치킨게임을 하게 될 것이다. 둘 중 하나가 패배를 인정하고 떠나기 전까진 끝이 나지 않는, 생명을 건 싸움 말이다. A양이 '여자친구'를 포기하거나, 남친 어머니가 '어머니'를 포기해야 끝나는 건데, 그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나 마나 A양이 패배할 게 뻔하니 그런 싸움은 애초에 시작하지 말자.
이런 '극성 엄마'들로 인한 사연 때문에 나도 참 머리가 아프다. 자기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카톡 친구신청을 하고, 아들 SNS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로 아들 여자친구를 추궁하는 행동. 내 메일함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사연이다. 아들 여자친구에게
"너희 아직 결혼도 하기 전인데,
그렇게 여행 간 사진 막 올려도 되겠니?
우리 막둥이는 아직 그런 거 잘 모르기도 하고,
또 네가 여자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거잖아.
너희 사귀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사귀는 사이면 서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이상한 소문 돌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 막둥이 5월에 시험 있는데…(생략)."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연락했다고 찬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했니?
넌 어른이 얘기를 해도 왜 그렇게 다 흘려듣니?
찬수가 너한테 얘기 듣고 집에 와서 이런 행동을 하길 바라고 말 한 거니?
내가 너한테 연락해서 이야기를 한 게 그렇게 억울했어?"
라며 '일 대 일로 붙자'는 맞장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개 남친이 나이를 먹어서도 부모님의 돈과 도움으로, 부모님이 시키는 것을 하며 살 경우 발생한다. 매뉴얼을 통해 늘 이야기 했던 '정신적,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청년이 되어서 까지도 계속 둥지에 머물고 있다가, 이제야 뒤늦게 둥지를 벗어나기 위한 날개짓을 하며 새로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부모님께
"나도 이제 성인이야. 이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놔둬."
등의 이야기를 해, 부모님으로 하여금 배신, 배반, 쿠데타의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걸 그 부모님은 이게 다 '악의 축'인 '아들 여자친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까진 순종적인 아들, 착한 아들, 바른 아들이었는데, 그 여우같은 여자애를 만나 지금 아들이 타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처럼 아들이 집에 들어와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여우같은 여자애한테 홀려 밖으로만 나다니고 있으니…, 하면서.
이거 너무 얘기가 길어져서 큰일이다. 여하튼 결론을 내자면, A양에게 남친 어머니가 연락을 해 온 것은 A양 남친이 중간에서 어머니를 시험에 들게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 남친에게 "우리 사춘기 시절 반항하듯 그러지 말고, 다음 일까지 내다보며 움직이자."라는 이야기를 하길 권한다. 난 A양이 거기서 그걸 다 온 몸으로 겪으며 남친과 남친 어머니의 사회화를 돕는 걸 권하고 싶진 않지만, A양이 절대 헤어질 순 없다고 하니 이렇게만 적어둘까 한다. 어른과 맞서서 싸워 이겨봐야 '버릇없음'이라는 트로피만 받게 될 뿐이니, 당장 남친 어머니께는 누르면 누르는 대로 들어가는 스펀지 같은 태도로 대하며, 남친이 현명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돕길 권한다.
2. 매일 대화까진 하게 되었는데요, 여기서 더 어떻게…?
이 사연 읽으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내 친구 중에 모태솔로인 S군이 있는데, 어느 날 모 여성 댄스 동아리와의 뒤풀이 자리에 S군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 동아리에는 K양이 있었는데, K양은 처음 본 남자에게도 마치 연인처럼 대해주는 탓에 상대로 하여금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켜 거대한 어장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여자였다. K양은, 처음 본 남자에게도
"오빠, 나 목걸이 좀 걸어줘."
라며 자신의 목걸이를 상대에게 주고, 등을 돌린 채 머리를 쓸어 올려 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술을 마시다가는 옆에 앉은 남자에게 자신이 스킨십을 좋아한다며 손을 잡아달란 부탁을 하기도 했고, 노래방에서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 하고 있는 이성에게
"오빠도 노래 좀 불러봐. 나 오빠 노래 들어보고 싶어."
라며 상대의 본능을 눈 뜨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그렇게 요청하고서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 노래를 하는 걸 듣듯, 턱을 괴고 그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상대가 노래를 잘 할 경우에는 신청곡이라며 자신이 예약한 후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수고했으니 음료수를 마시라며 주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셀 수 없이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대시를 했다.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여자도 흔하지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그녀의 호의는 '관심'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그녀와 가까워진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고백했다. 물론 그녀는 그들과 사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털털하고 개방적일 뿐인데, 왜 그걸 이성적인 관심으로 해석하는지 상대방들을 답답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물론 난 저 K양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라는 걸 안다. 난 S군이 그녀와 나눈 대화를 본 적 있는데, 그녀는 그 대화에서 계속 '여지'를 남기고 있었으며, 소심한 S군이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귈까봐 걱정하며 이야기를 꺼내자 'Y나 H와는 사귈 일 없다'라는 식으로 안심시키기도 했다. 뭐 이것도 그냥 사실을 말 한 것일 뿐이라면 할 말 없는 거지만, 그래놓고도 Y나 H와 역시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노력한 것을 보면, 그녀가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타입이 아니라, '프로 어장관리자'에 가까웠다는 걸 알 수 있다.
글이 또 길어질 기미가 보이니 정리하자. 위의 저 K양과도 '매일 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들은 자리 뜨면 사라질 가벼운 농담이나 드립일 뿐이며, 대화가 길어지는 건 그녀가 심심해서 수다를 떨고 싶을 때나 그저 푸념을 늘어놓고 싶을 때, 또는 그녀가 이쪽의 관심을 받으며 인터뷰하듯 이야기 할 때뿐이다. 게다가 그 대화들에서 그녀는 '여지'를 남기는 듯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쪽과 사귈 마음 없음'이라는 것도 장난스럽지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연을 보낸 J군의 경우는 어떤가? 미안하지만 난 J군의 상황이, K양에게 퇴짜 맞은 내 친구 S군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고 본다.
3. 연상남과 연하남, 둘 중 누구와 어떻게?
아이고 서희씨, 그렇게 연애를 1mm 단위로 하려 들면 머리 터져. 그리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거잖아. 찌개 한 번도 안 끓여 봤어? 된장찌개 다 끓여 놓고 나중에야 고기 안 넣었다고 다시 고기 넣고 끓이면, 채소들이 다 물러 터져버리는 거잖아. 감자, 호박, 다 녹아 버려서 된장 죽처럼 되어버린단 말이야.
서희씨의 연애가 그래. 1mm로 재단해서 완벽하게 맞추려다 보니 타이밍은 다 지나가고, 두 마리 토끼는 토끼 굴로 다 들어가 버리고, 뭐 그렇단 말이야. 서희씨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는 붙임성도 좋고 원만하다며. 그럼 연애도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그게 '연애'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평소보다 몸에 힘을 주거나,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며 빡빡하게 대하지 마. 서희씨가 그래버리니까 잘 안 되는 거야.
"연상남에게 저는, 이성으로서의 발전이 없다면 만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에겐 고민이나 고충을 나눌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러자 그는 오빠동생 사이로 지내보다 결정하는 건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가 지금 그 역할을 해줄 수 없다면 안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그냥 제 주변에서 찾겠다고요."
서희씨는, 서희씨 연상님이 서희씨와의 관계를 관찰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 그런데 서희씨도 잘한 건 없거든. 서희씨는 흥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저 말을 꺼내기 전까진 "나 믿고 선입금 할 거냐?"라는 걸 물었던 것과 같고, 저건 "선입금 할 거냐, 안 할 거냐. 둘 중 하나로만 답해라."라고 말한 것과 같아. 내가 저 남자의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사귈 건지 아닌지 대답 안 하면 다른 남자한테 가겠다는 여자.'
를 붙잡진 않았을 것 같아. 내가 안 할 거면 다른 사람에게 배역을 주겠다고 말하는 느낌이거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어떤 남자가 서희씨한테, 지금 자신과 이성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 그러면서 동시에 그게 없는 거면 다른 여자에게 가겠다고 해. 서희씨라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겠어? 그는 사귀다가도 수틀리면 언제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연하남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야. 이건 뭐 한 번 만나는데 무슨 두 달씩이나 걸려? 일단 만나서 얼굴도 보고 같이 놀아야 친해지는 건데, 서희씨는 '연애'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방어적인 계산모드로 바뀐단 말이야.
"전에는 아무리 늦어도 두 시간 이내로 대답하던 연하남이,
어느 순간부터는 제 톡을 하루 지나 확인할 때도 있더군요."
서희씨는 카톡 알람에 신경 쓰는 게 싫어서 꺼놓고 산다며? 상대만 보지 말고 자신을 봐봐. 결과는 '연하남의 연락 성실도 하락'이지만, 그 원인제공은 서희씨가 한 거야. 연하남이 서희씨한테 매달리며 언제나 선연락 하며, 또 서희씨가 늦은 확인과 답장을 해도 그는 열정적으로 계속 카톡보내야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는 서희씨의 불성실한 태도에 맞춰서 자신도 불성실하게 변한 것뿐이야.
뭔가를 좀 해, 뭔가를. 서희씨 다음 주 중에 편한 시간이 언제야? 지금 일이 많으니 이번 주말이 되어야 다음 주 오프를 알 수 있지? 그럼 오프가 정해지면 그걸 딱 말해줘야 하는 거야. 그런데 서희씨는 그렇지 않거든. 서희씨는 주말쯤에 말해주겠다고 하고선, 내가 다시 묻지 않으면 본인도 말 하지 않는 타입이야. 그러면서 또 혼자 속으로 상처를 받지.
'주말쯤 날짜 정하자고 한 건 그냥 빈말이었나? 다시 묻질 않네….'
라면서 말이야. '아쉬운 여자'가 안 되어야 하는 건 분명 맞는데, '아쉽지 않은 여자'랑 '아무 것도 안 하는 여자'랑은 분명 다른 거야. 상대와의 만남, 그리고 나아가 연애를 원하면 서희씨도 성의를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 왔으면 왔다고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누르든 노크를 하든 해야지, 아무 것도 안 한 채 상대의 현관문 앞에 가만히 서서는 여기까지 참 어렵게 용기내어 왔는데 상대는 문 열어 줄 생각 안 하는 것 같다고 슬퍼할 거야? 잘 생각해 봐. 그건 왔다는 기색도 하지 않는 서희씨 잘못이지 상대 잘못이 아니잖아? 게다가 저런 '썸남'들은 카탈로그에 딱 박힌 채 언제든 재고가 넘쳐나는 게 아니라서, 서희씨가 저렇게 멍하니 서 있는 동안 품절이 될 수도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연하남의 태도로 봐서는 그도 새로운 썸을 타게 된 것 같고 말이야.
버스 탈 거면, 버스 올 때 손을 들자고. 손 안 들면 서희씨가 탈 건지 안 탈 건지 운전사는 몰라. 그래서 서희씨가 그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상태라 해도 운전사는 그걸 모른 채 그냥 갈 수 있지. 그러니까 그렇게 버스 여러 대 보내지 말고 눈앞에 왔을 때 손을 들고 올라타자. 어려운 거 아니야. 손만 들면 돼. 친구랑 이번 주말에 만나서 닭갈비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할 때처럼, 그렇게 정하면 되는 거야.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쳐서 서희씨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다 막아 놓지 말고, 상대가 잘 찾아올 수 있게 표지판을 만들어 봐봐. 아무 표지판도 해 놓지 않은 채 '잘 찾아올 수 있나, 없나 보겠다.'라고 하고 있다간 신선이 될 수 있어.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 오늘부터는 상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며 서희씨에게 오는 길을 알려줘 봐.
4. 절 친한동생으로 생각한 건가요? 썸은 아니었나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은씨. 내가 제일 다루기 힘든 사연들이 바로 하은씨 사연 같은 거거든.
"이러이러했는데, 그건 큰 상관없었어요."
"그걸로 좀 다투긴 했는데, 잘 풀렸어요."
"그런데 그 후에 연락 못 할 거라고 하더군요. 왜죠?"
이렇게 결과만 적어서 보내면 나도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 거야. 잘 봐봐. 누군가가 하은씨한테 이런 말을 해.
"28더하기 2는 30이잖아요. 그래서 30이라고 썼는데 틀렸다네요."
저렇게 말하면 하은씨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야. "그 분이 실수 하신 것 같네요. 30이 맞아요."라는 거. 그런데 만약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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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고 하면, '30'이라는 답이 왜 틀렸는지를 알 수 있잖아. 이거랑 똑같은 거야.
"오빠는 장난스런 카톡도 많이 하고, 또 저랑 노는 게 제일 좋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오빠 마음이 변한 거죠? 공부해야 할 것 같다면서….
저랑은 썸을 탔던 게 아니었나요? 아님 저한테 다가왔다가 아니다 싶어서 떠난 건가요?"
라고만 적으면 나는 알 방법이 없는 거야.
"싸운 일은 없어요. 서로 장난이 심해서 삐치는 정도만 가끔 있었고."
그런데 그 '삐치는 정도의 일'에서도 정이 떨어지거나 마음을 접을만한 일이 발생하곤 하거든. 전에 이런 사연이 있었어. 한 커플이 재미있게 부산여행을 잘 다녀와서는 헤어진 거야. 사연을 보낸 여자는 분명 즐거운 여행까지 와서 왜 그가 이별을 고했는지 이해하질 못 했어. 이별할 생각이 있었으면 왜 부산까지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한 건지도 의문이라고 했고.
당연히 그렇게만 적어두면 나도 알 수 없기에 이것저것 물었거든. 그랬더니 그녀는 여행가서 거의 접대를 받듯이 있었고, 사소한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땐 손도 안 잡고 말도 안 하고 그랬더라고. 그녀가 보자고 한 것을 남친이 시간 없으니 보지 말자고 해서, 그걸로 서울 올라올 때까지도 잠시 동안 남남처럼 있기도 하고 그랬대. 이렇게 다 말해줘야 나도 알 수 있는 거야. 처음에 그녀가 사연을 보냈을 때처럼
"아무 문제도 없고 좋기만 했는데, 여행 잘 다녀와서 왜 그런 거죠?"
하면 나도 "그러게요…." 할 수밖에 없어.
여하튼 하은씨 사연에 적힌 대로만 보자면, 상대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을 하은씨와의 만남으로 정한 것 같아. 그저 소비만 가득한 만남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여기서 시간과 돈 버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 하은씨도 그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 하은씨와 같이 안 논다고 속상해 하지만 말고, 그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듯 하은씨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일들을 시작해봐. 하은씨는 한 달에 책 몇 권 정도 읽어? 최소한 읽는 책이 한 권은 있어야 해. 아니면 잘 하지 못 하는 걸 잘 하려고 배우고 있거나 말이야. 그런 것 없이 그저 '킬링타임'만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다 보면, 상대에겐 전혀 생산적인 부분이 없는 여자로 보일 수 있으니 말이야.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에게 하은씨도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해줘. 그리고 그가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까닭에 하은씨 영어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모르는 거 있을 때 물어보겠다고 말해봐 봐. 그러면서 그가 가르쳐 주면 그 보답으로 밥도 한 번 사고, 뭐 그렇게 만나다 보면 다시 친해질 수 있는 거니까. 지금처럼 그냥 부르면 나가서 밥 먹고 술 먹고 평소엔 심심하게 있다가 카톡으로 수다만 떠는 것에서 벗어나서, 하은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고. 알았지?
위의 사연들 외에
"구남친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걸 안 갚는다.
갚으라고 하니 원하는 걸 들어주면 갚겠다고 한다."
"남친과 헤어지고 싶은데 남친이 망나니다.
전에 파출소 가서도 경찰에게 행패부린 적 있는 남자다.
헤어지자고 했다간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다."
"구남친과 사귈 때 구남친이 찍은 영상이 있는데,
지금 그걸 공개하겠다며 날 협박한다.
돈 주고 사든 자기가 원하는 걸 들어주든 하라는데,
정말 돈을 주면 끝낼 수 있는 거냐. 복사의 위험도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사연들도 있었다. 늘 얘기하지만 병원이나 법원, 경찰서로 가야 하는 사연들은 노멀로그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정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그 절박함은 알겠지만, 당장 불타고 있는 집에 있을 때는 책이 아니라 소화기가 필요한 것처럼, 저런 경우엔 의술이나 법의 도움이 더 시급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정도 속도로 나가면, 이번 주 내로 작년 사연들을 모두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 까지는 '밀린 사연 모음' 특집이라 생각하시며 노멀로그를 즐겨주시길 부탁드린다. 아, 그리고 1월 분 사연부터는
- 발행 완료
- 발행 불가
- 발행 보류(내용 부족)
등의 알림서비스를 하고자 하는데, 혹 이런 기능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조언을 좀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본인의 사연이 언제 발행 되는 거냐고 계속 물어 오시는 분들 때문에 글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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