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릴 수 있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달라는 사연이 왜 이리 많은 지 모르겠다.
"조카 크레파스 18색이야."
아, 이런 욕이 아닌가?(응?) 아무튼, 블로그에 대 놓고 욕은 할 수 없고, 대략 위의 멘트로 위안 삼으시길 바란다. 사실, 욕을 듣거나 자극을 받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스스로 해결책을 세워보고, 주변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밀어붙여 보는 것이다.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서 최악의 카드만 내밀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그 헛발질을 탈모가 진행되는 나이에도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 경험이 당신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누구나 '연애의 사춘기'를 한번쯤 경험해야 하고, 그 시기를 겪으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니 말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온전히 자신의 연애를 책임지며 밀어 붙이는 사람들보다 발만 담그거나 간만 보며 그 "연애의 사춘기"를 손쉽게 보내려는 대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에 '근대문학'과 관련한 자료를 찾으려 고등학생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료는 과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부에 자극이 되는 영상'이거나 '책상 위에 앉게 만드는 글'이었다. 뭐, 그런 자료들을 보며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좋은 일이지만, 수학을 잘 하고 싶으면 문제를 풀어야지 백날 자극만 찾고 있으면 곤란한 것 아닌가.
정신 안 차려도 좋으니 당신의 연애를 구경하지 말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길 권한다. 실패해도 좋다. 그건 마치 '수두'같은 거라서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을 경험하고 나면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독하게 앓고 나면 당신은 더 큰 마음의 방을 가지게 된단 얘기다. 오늘은 온 몸으로 참여하진 못하고 발만 담그듯 떠보다가 망치는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남자대원들의 사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떠보기' 키워드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대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라 성공률도 낮진 않다는 거다. 그러니 성공한 대원들은 '이게 바로 연애의 마스터키'라며 주변에 전파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솔로부대원들은 실행에 옮긴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이런 메일을 보낸다.
그녀가 제게 고민거리나 속깊은 얘기들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혹시 그냥 절 친구로만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같이 길을 걷다가 손이 자주 마주쳤는데.. 그 틈을 타 손을 잡았습니다.
당황한듯 하며 뿌리치더군요... 그러더니... 자기 손에 땀이 많이 난다고...
농구하다가 블로킹을 당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전 좀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 날 저녁,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 길... 그녀가 춥다고 하더군요..
점퍼를 입고 있던 게 아니라서 옷을 벗어줄 순 없고..
전 다시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겸 어깨동무를 해줬습니다.
가만히 있더군요.. 그렇게 연인처럼 걷다가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어깨동무를 뿌리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저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데..
전 더 확신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려 하는데..
그녀가 놀라며 저를 밀어 내더군요... 그리곤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전 도대체 그녀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궁금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니.."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하... 그냥 친구 였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거절하진 않았겠죠... 이대로 포기하긴 너무 아쉬운데...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아 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뭔가 빠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당신은 그녀에게 당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다. 손을 잡으려 하거나 입을 맞추려는 행동 만으로 마음을 전달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지 모르지만, 그런 건 오늘 밤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도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학창시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등 수 많은 시험을 경험하며 이미 배우지 않았는가? 채점은 당신이 답을 써 낸 뒤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근데 왜 연애에서는 상대에게 답부터 알려달라고 하는가? 상대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기 전에, 나에게 상대는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말해주라는 얘기다. 답을 적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해답을 먼저 볼 수 없냐는 질문에는 해 줄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다시 한 번 해답을 물어볼 것이 아니라, 내 답을 적어 보여주란 얘기다. 그럼 더 고민할 필요 없이 해답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남자대원들에게 '스킨십'이라는 키워드가 있다면, 여자대원들에겐 '소개팅'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정말 괜찮은 애 있는데, 너 소개팅 할래?"라며 은근슬쩍 떠 봤다가 상대로부터 "응. 누군데?"라는 대답을 듣곤 급하게 소주를 찾는 대원이 한둘이 아니다.
반대로, 상대에게 "나 소개팅 시켜줘."라며 떠본 후 급하게 소주를 찾는 대원들도 있다. 자신에게 마음이 있으면 소개팅 시켜달라는 말에 고백이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지만, 상대는 알았다며 소개팅을 주선해 준 것이다. 있지도 않은 '다른 남자'까지 지어내며 '질투심 유발'작전을 쓰다가 자멸하는 대원들도 있다. 아프다고 문자를 보내놓고 약 사오나 안 사오나 지켜보고 있는 대원들도 있고 말이다.
여자의 떠보기가 위험한 이유는, 대부분 그 떠보기의 도구가 '부탁'이라는 것이다. 매뉴얼을 통해 늘 얘기하지만, 남자는 '부탁'에 약하다. 마음이 있든 없든 '아는 여자'의 부탁은 들어주기 마련이다. 그걸 계기로 둘의 관계를 좀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은 훌륭한 방법이지만, 부탁을 들어주거나 실수를 용서해 줬다고 해서 무턱대고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블링블링한 연애사연 모집'에 도착했던 커플부대원의 사연 중, 어정쩡하고 애매한 관계를 연인사이로 만든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었다. 이게 참 애매한데, 개인적으론 '칭찬'을 활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떠보기'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여성대원이 사용한 멘트는 아래와 같았다.
오빠 여자친구 될 사람은 정말 든든할거야."
이 정도의 멘트라면 마음 작기로 유명한 소심남이라 할 지라도 나주평야 만한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새벽에 무슨 일이 생겼다며 나와줄 수 있냐고 물은 후 뒤에서 채점표를 들고 있지 말고, 상대가 용기를 낼 수 있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날 좋아하는 지 안 좋아하는 지 알아내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자. 정말 중요한 건, 날 좋아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좀 뜬금없지만, 잠시 우리집 어항 이야기를 좀 하자면 우리집 어항엔 '걸이식 여과기'를 쓰고 있다. 어항의 물을 여과기의 모터가 끌어 올려 여과기에서 거른 후 다시 어항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여과기다. 걸이식 여과기를 사용할 때 꼭 알아둬야 하는 점은, 최초 사용시 어항은 물론이고 여과기 본체에도 물을 채워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과기 본체에 물을 채워 놓지 않고 가동시키면 모터는 공회전만 반복하다 타버린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아래에 등장할 멘트들 역시 둘의 감정이 충분히 자랐을 때 사용한다면 연애로 이어질 수 있으나, 성급하게 사용한다면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 조금 있던 호감마저도 비호감으로 바꿔버리는 멘트, 뭐가 있는 지 살펴보자.
"내가 만약 사귀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거야?"
이건 꼬꼬마들이 자주 쓰는 멘트고, 나이가 먹을 수록 응용버전을 만들어 나간다. 그냥 귀엽게 여길 수 있는 멘트지만, 상대가 이쪽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을 할 경우, "그냥 장난이었어." 따위의 멘트로 이어진다. 진지하게 대답한 상대를 순식간에 바보로 만든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멘트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틈새만 보이면 떠보려 하기 때문에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중이야. 매력있는 사람이 되려고."
"응. 화이팅"
"내가 그렇게 되면.. 너도 내 마음 알아주겠지?.."
컷. 충무로에서 이런 대사 쳤다간 감독한테 따귀맞기 딱 좋다. 이건 주로 연애경험 없는 솔로부대원들이 관심있는 상대에게 들이대다가 하는 헛발질인데, 한 번 떠 봤다가 결과가 좋지 않자 혹시 이번엔 다를까 싶어 다시 한 번 알아보고자 벌이는 일이다. 그냥 딱 봐도 저건 엄청난 질량을 가진 부담 아닌가. 이전에 나눴던 대화들마저 형편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떠보기'다.
"내일 소개팅 한다고 들었어. 잘 하고 와~"
"응. 고마워"
"넌 치마보다 바지가 잘 어울리니까 바지 입고, 웃을 땐 미소가 예쁘니까 괜히 입 가리지 말고, 머리는 묶었을 때가 가장 예뻐.... 그리고..."
자꾸 영화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자꾸 비련의 주인공 역할을 맡으려 그리 애쓰는 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상대가 마음을 돌려 "어머, 너 그동안 날... 날...좋아한 거였어? 근데 왜 말 안했어? 나도 사실 널..." 이런 대사를 쳐주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응. 고마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용기가 없어 상대를 붙잡지 못한 걸, 상대를 나쁜사람 만들어 책임전가 하지 말자.
이번 매뉴얼을 마무리 짓기 참 어려운 이유가, 상대방을 떠보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보여주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 이야기를 하면 북북서로 진로를 급변경해 다짜고짜 고백해 버리는 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조급증'이 있으니, 고백이냐 떠보기냐, 아니면 사귀느냐 남남이 되느냐, 같은 두가지 경우 밖에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좋다. 매뉴얼의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 꼭 한번 경험해야 할 '연애의 사춘기'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신의 간절함이 큰 만큼 결과에 상관없이 그 사람은 마음 속에 별이 되어 계속 반짝반짝 할 테니, 연애의 지름신(응?)이 찾아왔다면 떠보기 보다는 당신의 마음을 알리는 쪽을 선택하길 권한다.
연애의 사춘기는 한참 전에 지났는데, 마음속에 별들만 늘어난다는 분들은 이어질 '조급증'관련 매뉴얼을 참고해 주시길 바란다. 이 '떠보기'는 습관화되어 연애를 하게 되어도 기대와 실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자, 그럼 내일 '조급증'매뉴얼에서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오늘 매뉴얼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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