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전등을 꺼 놓고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쓰는 글이다. 낡은 선풍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돌고 있고, 어항 여과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쉼 없이 재잘거린다. 이 시간이면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레드와 그린, 그리고 블루와 옐로우 중 레드가 나오는데, 이게 안 웃겨?
아무튼 오늘은 레드카드를 좀 들어보자. 메일로 도착하는 사연 중, 매뉴얼로 소개하기 좀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정도의 느낌으로 모았다. 몇몇 사연은,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반칙이 있었는데도 레드카드는 들지 못하고 옐로카드만 들어버린 친구에게, 맥주 한 잔 따라주는 기분으로 적을 예정이니, 씁쓸하더라도 무 하나 집어 아작아작 씹으며 레드카드를 들어보자.
이게 참 애매하다. 홀로 마음을 키우다 이제 상대를 못 보게 될 상황에 꺼낸 물음이라면 "달려가서 공을 차세요! 후반전 3분 밖에 안 남았잖아요!"라며 격려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런 질문이 담긴 사연은 스스로 둘의 관계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린 뒤에 보낸다.
가슴아프게 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 '진흙탕'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상대의 손발을 로그아웃 시킬 정도의 얘기들을 한 게 수 차례, 애정표현이라며 들이댄 스토킹에 이미 상대는 겁을 먹었고, 이쪽의 이름만 들어도 상대의 표정이 굳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요인에는 소문내기, 연락 구걸하기, 무작정 찾아가기, 만나자고 조르기, 나와달라고 매달리기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예전 매뉴얼에서는 '물방울 작전'이나 '가랑비 작전'에 대해 이야기 한 적도 있고, "냇가에서 놓쳤다면, 바다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대원에게는 "포기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왜 그럴까? 위의 질문을 하는 대원들 대부분이 이전 매뉴얼에서 한 이야기들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전화해서 집 앞인데 잠깐 보자고 조르고, 거절당한 뒤 며칠 후 다시 전화해서 주말에 만나자고 하는 게 어떻게 '가랑비 작전'인가. 그건 그냥 소나기다. 게다가 냇가와 바다에 대한 매뉴얼을 읽었다는 어느 대원은 상대에게,
"난 더 괜찮은 사람이 될거야. 그럼 그땐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 줄거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담임 선생님한테 확인 받는 것도 아니고, 왜 꼬꼬마처럼 찌질한 모습을 보이냐는 거다.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예정이면, 그렇게 되고 난 뒤에 얘기를 하자. 지금 우리가 하는 건 주먹을 펴는 연습이다. 그리고 혼자 꽉 움켜쥔 주먹을 펴게되면, 그 때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으면 되는 거다. 주먹을 쥔 채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유행 다 지난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치며 도박하듯 고백하지 말고, 주먹을 펴자.
이러한 사연을 보내는 것은 90%가 솔로부대 여성대원이며, 그 사연이 착각이거나 말도 안되는 끼워맞추기 인 경우가 또 90%다. 난 사연들을 읽다가 솔로부대 여성대원들의 상상력에 깜짝깜짝 놀란다. 도서관에서 펜이 떨어졌다며 주워 준 남자가 자기에게 관심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대원이 있는가 하면, 해외출장 갔다 온 직장상사가 열쇠고리선물을 줬을 뿐인데 그 날 잠을 못 이루는 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변 친구들은 "그래서? 그래서 그 남자랑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라며 상상의 증축공사를 돕고, 친구들의 부추김을 받은 여성대원은 당장 내일 결혼이라도 할 기세로 "내 옆에 지나가면서 나 들으라는 건지, '흠흠' 이런 소리를 내더라고." 라며 장판 깔고 도배를 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며 남사당놀이를 하고 나선, 나에게 "근데 왜 저에게 더 다가오지 않을까요? 이럴 땐 여자가 먼저 다가가야 하나요?"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 김덕수씨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을 정도다.
북과 장구는 잠시 내려놓고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라는 영화를 한 편 감상하길 권한다. 끝까지 다 볼 필요는 없고 2/3 정도 까지만 보면 된다. 시간이 없는 대원들은 도입부 5분만 봐도 좋다. 결말이야 백설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강해진 인어공주 이야기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무어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마이클 무어고, 영화를 볼 5분의 시간도 낼 수 없는 분은 영화제목만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남자가 관심있는 상대에게 보내는 신호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신호보다 훨씬 강력하다. 마음을 빙빙 돌려 말하는 것 때문에 헷갈릴 수는 있지만, 어떻게든 그 신호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추측하거나 추리 할 필요 없이 당신은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 "혹시...그 사람 저에게 ~한 게 아닐까요?" 라는 심증은 그만 넣어두자. 좀 다른 얘기지만, 나도 낚시 가면 고기가 물어서 찌가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바람이 불어서 그런건지, 물살에 흔들리는 건지, 착시현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찌가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보다 좀 올라와 있는 것 같기도 해 애를 먹지만, 고기가 물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게 진짜 신호란 얘기다.
궁합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 지 안다면 놀랄 거라 생각한다. 그 사연들을 읽으며, 노멀로그 슬로건으로 "궁합 따지는 집은, 사귀기 전에 궁합부터 봅시다."라는 문장을 적어놔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이게 진짜 안타까운 이유는, 궁합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 중 '오래 사귄 연인'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인 두 사람이 아닌, 집안 어르신들만 궁합을 따질 경우 커플생존률(응?)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연인 둘 중 한 사람까지 궁합을 따질 경우, 커플생존률은 제로에 가깝다. 둘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벌어질 경우 그 원인을 '안 좋은 궁합'에서 찾는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만약 오늘 노멀로그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은 7월 한 달간 흰색을 피하세요." 라고 적었다고 치자. 이제부턴 이 마수에 걸려드는 거다. 흰색 차를 몰다 딱지를 끊거나, 흰색 상의를 입고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 흰색 컵으로 커피를 마시다 키보드에 쏟게 되면, 저 문구가 떠오를 것이다.
꼭 앞으로 벌어질 것들만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도 모두 '궁합'에 연관시켜 생각한다. 성격차이, 언쟁, 권태기 등등 그동안 훌륭하게 잘 넘겨온 것들도 그 원인이 궁합 때문에 벌어졌던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 얘기하듯 연애는 오래달리기인데, 오래달리기 할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참 미안하지만, 상대의 부모님과 상대까지 궁합의 마수에 걸려들었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은 0.1% 미만이라고 생각한다.
"무한님.. 안녕하세요..예정대로라면 이번 주말에 결혼했을 여잡니다..."
이런 사연을 보내는 여성대원에게 나도 힘을 보태주고 싶지만, 궁합때문에 헤어지자는 상대에게 레드카드를 들라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다. 세상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가 어떻게 궁합을 보고 나서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그럴 수 있다. 자전거로 치자면 뒷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인데, 그런 상태에선 아무리 페달을 밟아 봐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전거라도 말이다.
아, 그러니까, 이게, 참,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건지 괜춘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서 머뭇거려 지는데, 자전거 좋아하세요? 는 훼이크고, 부적 좀 써드릴까요? 는 농담이고, 궁합 때문에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헤어진 것이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다시 궁합을 봐서 잘 나온 거 가지고 다시 찾아갈 거라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솔직히 그거 그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알지 않는가. 열 곳에서 궁합을 봤는데, 아홉 군데는 천생연분이라고 말했지만, 한 군데서 "이 여자랑 결혼하면, 남자가 뒤질랜드"라고 하면 이거 또 껄쩍지근하고 찝찝하며 기분 드럽고 우중충한 거 아닌가. 당신보다 궁합을 더 사랑하는 상대 때문에 울지 말고,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뿌리며 레드카드를 들어주자.
매뉴얼을 적다보니 좀 극단적인 부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 같은데, 그 점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내 주변사람들의 경우 이보다 더 강한 뉘앙스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난 하고 후회할래."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고백한 뒤 결국 상대방과의 인연을 깨끗하게 잘라낸 사람이 있었고, 상대가 이쪽의 전화번호를 스팸번호로 등록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관심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목을 보고 이미 눈치 챈 대원들이 있겠지만, 이 매뉴얼은 '토막 사연'들을 엮어서 연작으로 발행할 생각이다. 다음 발행분까지 이미 사연을 정리해 놓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대원들이 normalog@naver.com 으로 사연을 더 보내주시면 3부 이상으로 연재를 늘려 발행할 예정이다. 사연을 보내실 때에는 최대한 자세히 써 주신다면 내 마음속 블루(응?)가 빙의되어 읽기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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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은 레드카드를 좀 들어보자. 메일로 도착하는 사연 중, 매뉴얼로 소개하기 좀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정도의 느낌으로 모았다. 몇몇 사연은,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반칙이 있었는데도 레드카드는 들지 못하고 옐로카드만 들어버린 친구에게, 맥주 한 잔 따라주는 기분으로 적을 예정이니, 씁쓸하더라도 무 하나 집어 아작아작 씹으며 레드카드를 들어보자.
1. 마지막으로 고백을 해볼까요?
이게 참 애매하다. 홀로 마음을 키우다 이제 상대를 못 보게 될 상황에 꺼낸 물음이라면 "달려가서 공을 차세요! 후반전 3분 밖에 안 남았잖아요!"라며 격려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런 질문이 담긴 사연은 스스로 둘의 관계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린 뒤에 보낸다.
가슴아프게 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 '진흙탕'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상대의 손발을 로그아웃 시킬 정도의 얘기들을 한 게 수 차례, 애정표현이라며 들이댄 스토킹에 이미 상대는 겁을 먹었고, 이쪽의 이름만 들어도 상대의 표정이 굳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요인에는 소문내기, 연락 구걸하기, 무작정 찾아가기, 만나자고 조르기, 나와달라고 매달리기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예전 매뉴얼에서는 '물방울 작전'이나 '가랑비 작전'에 대해 이야기 한 적도 있고, "냇가에서 놓쳤다면, 바다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대원에게는 "포기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왜 그럴까? 위의 질문을 하는 대원들 대부분이 이전 매뉴얼에서 한 이야기들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전화해서 집 앞인데 잠깐 보자고 조르고, 거절당한 뒤 며칠 후 다시 전화해서 주말에 만나자고 하는 게 어떻게 '가랑비 작전'인가. 그건 그냥 소나기다. 게다가 냇가와 바다에 대한 매뉴얼을 읽었다는 어느 대원은 상대에게,
"난 더 괜찮은 사람이 될거야. 그럼 그땐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 줄거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담임 선생님한테 확인 받는 것도 아니고, 왜 꼬꼬마처럼 찌질한 모습을 보이냐는 거다.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예정이면, 그렇게 되고 난 뒤에 얘기를 하자. 지금 우리가 하는 건 주먹을 펴는 연습이다. 그리고 혼자 꽉 움켜쥔 주먹을 펴게되면, 그 때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으면 되는 거다. 주먹을 쥔 채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유행 다 지난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치며 도박하듯 고백하지 말고, 주먹을 펴자.
2. 그 사람, 저에게 ~한 게 아닐까요?
이러한 사연을 보내는 것은 90%가 솔로부대 여성대원이며, 그 사연이 착각이거나 말도 안되는 끼워맞추기 인 경우가 또 90%다. 난 사연들을 읽다가 솔로부대 여성대원들의 상상력에 깜짝깜짝 놀란다. 도서관에서 펜이 떨어졌다며 주워 준 남자가 자기에게 관심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대원이 있는가 하면, 해외출장 갔다 온 직장상사가 열쇠고리선물을 줬을 뿐인데 그 날 잠을 못 이루는 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변 친구들은 "그래서? 그래서 그 남자랑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라며 상상의 증축공사를 돕고, 친구들의 부추김을 받은 여성대원은 당장 내일 결혼이라도 할 기세로 "내 옆에 지나가면서 나 들으라는 건지, '흠흠' 이런 소리를 내더라고." 라며 장판 깔고 도배를 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며 남사당놀이를 하고 나선, 나에게 "근데 왜 저에게 더 다가오지 않을까요? 이럴 땐 여자가 먼저 다가가야 하나요?"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 김덕수씨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을 정도다.
북과 장구는 잠시 내려놓고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라는 영화를 한 편 감상하길 권한다. 끝까지 다 볼 필요는 없고 2/3 정도 까지만 보면 된다. 시간이 없는 대원들은 도입부 5분만 봐도 좋다. 결말이야 백설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강해진 인어공주 이야기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무어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마이클 무어는 마이클 무어고, 영화를 볼 5분의 시간도 낼 수 없는 분은 영화제목만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남자가 관심있는 상대에게 보내는 신호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신호보다 훨씬 강력하다. 마음을 빙빙 돌려 말하는 것 때문에 헷갈릴 수는 있지만, 어떻게든 그 신호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추측하거나 추리 할 필요 없이 당신은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 "혹시...그 사람 저에게 ~한 게 아닐까요?" 라는 심증은 그만 넣어두자. 좀 다른 얘기지만, 나도 낚시 가면 고기가 물어서 찌가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바람이 불어서 그런건지, 물살에 흔들리는 건지, 착시현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찌가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보다 좀 올라와 있는 것 같기도 해 애를 먹지만, 고기가 물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게 진짜 신호란 얘기다.
3.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궁합
궁합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 지 안다면 놀랄 거라 생각한다. 그 사연들을 읽으며, 노멀로그 슬로건으로 "궁합 따지는 집은, 사귀기 전에 궁합부터 봅시다."라는 문장을 적어놔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이게 진짜 안타까운 이유는, 궁합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 중 '오래 사귄 연인'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인 두 사람이 아닌, 집안 어르신들만 궁합을 따질 경우 커플생존률(응?)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연인 둘 중 한 사람까지 궁합을 따질 경우, 커플생존률은 제로에 가깝다. 둘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벌어질 경우 그 원인을 '안 좋은 궁합'에서 찾는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만약 오늘 노멀로그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은 7월 한 달간 흰색을 피하세요." 라고 적었다고 치자. 이제부턴 이 마수에 걸려드는 거다. 흰색 차를 몰다 딱지를 끊거나, 흰색 상의를 입고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 흰색 컵으로 커피를 마시다 키보드에 쏟게 되면, 저 문구가 떠오를 것이다.
꼭 앞으로 벌어질 것들만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도 모두 '궁합'에 연관시켜 생각한다. 성격차이, 언쟁, 권태기 등등 그동안 훌륭하게 잘 넘겨온 것들도 그 원인이 궁합 때문에 벌어졌던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늘 얘기하듯 연애는 오래달리기인데, 오래달리기 할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참 미안하지만, 상대의 부모님과 상대까지 궁합의 마수에 걸려들었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은 0.1% 미만이라고 생각한다.
"무한님.. 안녕하세요..예정대로라면 이번 주말에 결혼했을 여잡니다..."
이런 사연을 보내는 여성대원에게 나도 힘을 보태주고 싶지만, 궁합때문에 헤어지자는 상대에게 레드카드를 들라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다. 세상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가 어떻게 궁합을 보고 나서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그럴 수 있다. 자전거로 치자면 뒷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인데, 그런 상태에선 아무리 페달을 밟아 봐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전거라도 말이다.
아, 그러니까, 이게, 참,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건지 괜춘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서 머뭇거려 지는데, 자전거 좋아하세요? 는 훼이크고, 부적 좀 써드릴까요? 는 농담이고, 궁합 때문에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헤어진 것이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다시 궁합을 봐서 잘 나온 거 가지고 다시 찾아갈 거라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솔직히 그거 그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알지 않는가. 열 곳에서 궁합을 봤는데, 아홉 군데는 천생연분이라고 말했지만, 한 군데서 "이 여자랑 결혼하면, 남자가 뒤질랜드"라고 하면 이거 또 껄쩍지근하고 찝찝하며 기분 드럽고 우중충한 거 아닌가. 당신보다 궁합을 더 사랑하는 상대 때문에 울지 말고,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뿌리며 레드카드를 들어주자.
매뉴얼을 적다보니 좀 극단적인 부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 같은데, 그 점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내 주변사람들의 경우 이보다 더 강한 뉘앙스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난 하고 후회할래."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고백한 뒤 결국 상대방과의 인연을 깨끗하게 잘라낸 사람이 있었고, 상대가 이쪽의 전화번호를 스팸번호로 등록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관심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목을 보고 이미 눈치 챈 대원들이 있겠지만, 이 매뉴얼은 '토막 사연'들을 엮어서 연작으로 발행할 생각이다. 다음 발행분까지 이미 사연을 정리해 놓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대원들이 normalog@naver.com 으로 사연을 더 보내주시면 3부 이상으로 연재를 늘려 발행할 예정이다. 사연을 보내실 때에는 최대한 자세히 써 주신다면 내 마음속 블루(응?)가 빙의되어 읽기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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