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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없으면 연애하기 힘든 세 가지 필수요소

by 무한 2010. 6. 30.
전화오는 이성이라곤 이제껏 금융상품이나 통신상품 등을 권하는 상담원이나 부모님이 전부였다는 솔로부대고위간부들이나,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었지만 몇 달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는 커플부대 전역자들의 사연들을 읽으며 난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연애하려면 필요한 세 가지 필수요소'라는 건데, 이건 식물생존의 필수 3요소인 빛, 물, 공기와 같은 작용을 한다. 언젠가 '허브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책상이나 방 안에 허브화분 하나씩 가져다 놓던 때가 있었는데, 나 역시 '레몬밤'을 사다가 쉴새없이 향기를 맡곤 했다. 한 일주일 정도 나에게 관심을 받던 레몬밤은 결국 방안에서의 부족한 광량과 물 주는 걸 잘 잊는 내 건망증 덕분에 누렇게 녹아버렸다.

연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 이번 매뉴얼에서 이야기 할 연애 필수 3요소 친구, 취미, 직업은 아직 학생신분의 대원들이 아닌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원들이 대상임을 밝혀둔다.

"사랑에 무슨 필수요소 같은 게 있나요,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다면, 나 역시 '레몬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필수요소를 충족하지 못했기에 결국 누렇게 녹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닭이 먼저냐 오리가 먼저냐(응?)는 지루한 얘기는 그만두고, 필수요소들이 왜 중요한지 함께 살펴보자.


1. 친구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


메일을 통해, "여자들을 웃길 수 있는 개그 좀 알려주세요." 라거나 "전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대화하다 끊길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같은 질문을 하는 대원들이 있다. 유머 몇 개를 알려주거나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 떡밥 몇 개을 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건 당장 벼락치기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자기 모습을 바꾸려 하거나 비법 같은 것을 알아내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하지만, 대인관계엔 답을 써 내는 것보다 많이 풀어보는 게 중요하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학창시절 누가 말만 걸어도 얼굴이 빨개지고, 조용히 할 일만 하며, 내성적으로 보이던 K양이다. 졸업한 지 6년 쯤 지났을 때, 난 가구점에 의자를 사러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K양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K양은 내게 반갑다며 먼저 인사하고, 의자들의 성능 및 가격을 비교해주고, 간간히 농담도 던질 만큼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손님을 대하며 익힌 미소와 화술로 능숙하게 나를 대했다.

종종 "제 성격은 원래 내성적이에요. 이건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건 핑계다. 성격도 한 몫 했겠지만, 그동안 겪어 온 상황들이 지금 당신의 모습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좀 다른 얘기지만, '영어회화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많은 글들을 보자. 단어나 문법같은 것을 잠시 접어두면, 그들이 강조하는 공통적인 부분은 크게 소리내어 읽거나 말해보고, 주변 사람들과 주저 없이 영어로 대화를 해 보라는 것이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이 아들 내외와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옥난(72세, 시애틀)할머니도 미국에 13년동안 거주하며 지금은 생활에 큰 지장 없을 정도의 회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이다. 인간관계나 처세술이 부족하다고 백날 자기계발 서적을 읽어봐야, 실천이 없으면 아무 변화도 없다는 얘기다. 이 글에서는 '친구'라고 적어놨지만, 그건 나이가 같은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 영향을 끼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쉽게 생각해보자.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에게 내가 며칠동안 '운전하는 법'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까지 만들어 보내줬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아는 것과 실제 시동을 걸고 도로에 나가는 일 사이에 있는 그 어마어마한 차이을 다들 알지 않는가.

되도록 온라인 상에서의 친구보다는 오프라인 상에서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거나 함께 뭔갈 같이 하며 우정을 나누길 권한다. 몇 가지 기술을 익혀 당장 이성에게 써먹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대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몸에 새겨지도록 만들라는 얘기다. 연애란 상대에게 당신이 아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를 보여주는 일이니 말이다.  


2. 취미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
 

상대와 비슷한 취미를 익혀서 공감대 어쩌구 하는, 사타구니 긁는 진부한 얘기가 아니다. 취미가 당신에게 자신감을 만들어 줄 수 있고, 그게 쓸데 없는 것이라고 해도 당신을 전력투구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이 취미라고 해 보자. 그게 단순히 카메라를 이용하는 기술만 익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장비병 같은 것에 빠져 있는 일이라고 해도, 알고자 하는 것을 찾고 모르는 것을 묻고 누군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 주게된다. 이게 어느 대학의 교과목이고 시험도 준비되어 있다면 지겨움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일을, 취미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거다.

회사에 출근하고, 별 일 없이 집에 돌아와 불면을 막아주는 술 몇 잔 마시고 자고,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이런 무료하고 단순한 일상 가운데, 취미는 당신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장작이다. 이렇게 '열정'을 불태울 창구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창구 없이 그저 코딱지 같은 일상만 반복했다면, 연애를 시작할 때 목숨을 걸게 된다. 그간 억압되어 있던 열정을 사랑이나 연애에 다 쏟아붇는 다는 얘기다. 이 하얗게 불태우는 연애가 왜 위험한 지는 주변 커플부대 전역자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대 외에는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 뭐 이런게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상태는 무럭무럭 자라나 집착이 된다. "내가 너라면 그 일보다 내가 먼저 일거야." 라거나, "날 사랑한다면 그런 건 포기할 수 있잖아."로 변하고, 자신과 사랑을 불태워야 하는 상대가 회식자리에라도 가 있으면 미친듯이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며 수시로 전화를 걸고, 무작정 찾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취미는 당신이 사랑이나 연애에 목숨을 걸거나, 앞 뒤 안가리고 올인하는 것을 막아 줄 것이다. 취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익히는 과정에서 당신에게 '지식'이나 '노하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걸 상대와 공유하거나 상대에게 알려주며 당신의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고 말이다. 취미를 상대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는 게 아니라면, 연애에서 취미는 분명, 꼭, 필요하다.


3. 직업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민감한 돈 얘기부터 하자. 세속적이며 속물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연애를 하려면 돈은 무조건 필요하다. 연애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없이 살기 힘들다. 연 봉 몇천 이상 이런 얘기가 아니라 스스로 '밥벌이'는 할 수 있어야 한단 얘기다.

당장 뭔가를 준비하고 있거나, 다른 루트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연애보다 '밥벌이'부터 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말로는 금방 어디서 금광이라도 발견할 것 처럼 이야기 하면서, 현실에선 어디 면접보러 가는 것도 두려워 하는 상태라면 분명 밥벌이가 우선이다.

밥벌이 하지 않아도 당장 연애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돈'문제가 고개를 든다. 결혼도 일종의 취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에겐 뭐 별로 할 말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분명 밥벌이가 있어야 한다. 꼭 먹고 살고 연애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백수생활은 정신건강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청년 4명 중 1명이 백수라는 이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참 미안하지만, 백수생활을 오래하면 사람이 얼마나 쪼그라들 수 있는 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누구를 만날 때에도 돈에 신경써야 하고, 뭔가 하나 사려고 해도 '이게 꼭 필요할까'라는 자기비판을 거쳐야 한다. 간단히 말해, 3만원을 들고 백화점 갈 때와 30만원을 들고 백화점 갈 때의 차이처럼,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라면 매장 직원의 친절마저도 부담으로 느끼게 된단 얘기다.

게다가 '취미' 부분에서 이야기 했던 '집착'의 문제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귀는 상대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경우, 이쪽의 여유로운 시간과 달리 상대는 업무로 바쁠 수 있다. 직장인이 퇴근시간에 느끼는 그 후련하면서도 몽롱한 기분을 모르기에 "회사 끝났어? 우리 뭐할까?" 라며 열정만 들이댈 수도 있다. 더 길게 얘기하면 너무 슬프니까 이쯤에서 줄이자.

놀고 싶어서 노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대원들에겐, 이 부분은 높은 청년실업 때문인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백수'인 까닭에 가슴아픈 과정을 거쳐 이별한 커플대원들의 이야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저 비판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열등감이 만든 날카로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하며, 상대에게 도움받는 것에 길들여진 모습때문에 헤어진 커플들, 그 슬픈 사연들이 더는 안 왔으면 좋겠다. 


쓰고 나니까 드럽게 우울하다. 좀 더 힘 빼고 쨉, 쨉, 라이트, 이런 기분으로 쓰고 싶었는데 채도가 없는 사연들을 골라 읽고 작성하다 보니 그 회색빛이 여기까지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연애는 '해결사'가 아니며, 연애한다고 지금의 푸석푸석하고 근지러운 상황이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다.

무좀이 있다면 연애를 시작해 간지러움을 잊을 생각 하지 말고, 무좀약을 바르자. 무좀이 치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냥 긁다가 끝날 수 있다. 무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 얘기가 나오면 항상 생각나는 여자분이 있다. 친구 생일 날, 친구의 대학교 동창이라며 우르르 몰려왔던 여자분들 중 한 명인데, 얼핏 봤을 때 한효주를 닮았다고 생각 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분이었다.

호프에서 술이 좀 취해 2차 노래방을 갔을 때, 내 우측에 앉아 있던 그 여자분은 구두를 다 벗어놓고 아예 쇼파 위에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회색양말을 보면 '저 색은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여자분이 회색양말을 신고 있었다. 유심히 본 이유는, 이상할 정도로 그 여자분이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기 때문이다. 마치 손으로 엄지와 중지를 튕겨 '딱'소리를 낼 때 처럼, 계속 엄지발가락을 꼼지락 거렸기에 난 자꾸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분의 손까지 내려와 발가락들의 움직임을 돕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긁고 있었다. 완전범죄(응?)를 하겠다는 듯 발가락을 만지는 척 하면서 지능적으로 긁고 있는 것이었다. 시원함을 느끼는 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뗐다가 몇 분 후 다시 그렇게 발가락 만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곤, 

'앜ㅋㅋㅋㅋ 코 만지는 척 하면서 냄새 맡고 있어ㅋㅋㅋ'

지금도 무좀 얘기나 발가락양말 얘기가 나오면 그때 그 여자분이 보여준 '발가락 몰래 긁고 코 만지는 척 하며 냄새맡기'장면이 떠오른다. 너무 심각한 것 같아 주제와 별 관련 없는 이 일화를 집어 넣은 까닭은, 어두운 얼굴 하지 말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심각할 거 뭐 있나. 가려우면 긁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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