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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이별한 여자들이 하게 되는 몇가지 행동들

by 무한 2010. 9. 29.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끄지 않고, 강제종료를 자주 했더니 결국 어제 오전 8시 45분부로 컴퓨터는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있을 때 잘할 걸, 들릴 때 외칠 걸. 내가 행복하게 해 준다고 기다리랬잖아.(응?) 아무튼 이 컴퓨터의 죽음을 연애의 교훈으로 삼아 상대방과 대화하다 '강제종료'하지 말길 권한다. "됐어."라거나 "알았다고."따위의 이야기로 강제종료를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훅, 갈 수 있다. 

강제종료는 강제종료고, 포맷을 하다 보니 '여자사람 컴퓨터 포맷해주며 친해지기'작전을 쓰다 부작용을 겪은 대원의 사연이 생각났다.

"포맷하면서 컴퓨터에 있는 거 다 지워지는데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해 놓곤, 포맷 완료 하니까 자기가 받아놓은 미드랑 음악 다 어디 갔냐고 화를 내네요. 지워도 된다고 분명 말했으면서요. 포맷해주며 가까워지려 했다가 2주째 연락 안 하고 있습니다."


불법 다운로드 한 그 여자분을 신고하라는 건 훼이크고, 왜 쓸데없는 책임공방을 하고 있는가. '감사'를 받아야 하는데 '추궁'을 받고 있으니 짜증이 날 만 하지만, 우선 '사과'로 상대의 기분을 좀 달래자. 상대에게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당장 징역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컴퓨터를 포맷하게 되면 처음 샀을 때처럼 멍한 표정의 바탕화면만 나온다고 얘길 해 주자. 그런 까닭에 포맷 전 혹시 지워지면 안 될 파일이 있는지 물어봤던 거고, 복구 프로그램들이 있으니 다시 되살려야 하는 파일을 살려보겠다고 말하자. 그렇게 복구를 해도 되살아나지 않는 파일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엔 필요한 파일이나 프로그램들을 최대한 구해주겠다고 하자. 이 간단한 방법으로 '책임공방'을 '감동'으로 만들 수 있다.

상대 컴퓨터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묵묵히 일만 하진 말길 권한다. A/S센터 직원도 아니고 뚝딱뚝딱 해놓곤 "다 되었습니다. 고객님."이라며 손 털지 말고,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인터넷을 하며 축적된 노하우나 흥미로운 사이트들을 설명해 주며 대화를 나누자. 오로지 상대 컴퓨터 최적화에만 목숨을 걸지 말고 말이다.

자, 재미없는 컴퓨터 얘기는 집어치우고, 오늘은 이별 후 계속 "도와주세요."라는 구조요청을 하는 여성대원들을 위한 매뉴얼을 함께 살펴보자. "제 사연은 정말 달라요."라고들 말하지만, 사람만 바뀐 같은 시나리오가 내 메일함에 가득하다. 비슷비슷한 그 루트,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주의 깊게 보자.


1.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야?


아름다운 역설법의 귀재들. 그러니까,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뭐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 대원들이 있다. 처음 보게 되는 상대의 차가운 모습과 철문 닫는 소리 같은 상대의 목소리로 인한 충격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진 말자.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다고 그 상황이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의 삶만 일시정지 되어있을 뿐, 상대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대원 중에는 '확인사살'을 받고 싶어 하는 대원들도 있다.

"확실하게 얼굴 보고, 정말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는 건지 듣고 싶어요. 그 사람이 솔직하게만 말해준다면 저도 마음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정리가 얼굴 보고 얘기 나눈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대원들을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랑싸움 하다 잠시 멀어진 경우가 아니라 상대가 인연의 끈을 놓아 버린 거라면, 얼굴을 보든 안 보든 후회하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냉전 상태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적극 권장하지만, 배에서 떨어뜨린 칼을 뭍에 내려 찾으려하는 '각주구검'의 상태라면 마음 정리는 스스로 해야 한단 말을 해 주고 싶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고 당신의 '아쉬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듯, 상대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마음정리가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저도 정말 끝났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어요. 머리로는 그게 되는데, 마음으로는 그게 안 돼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정... 추억... 다 저에게 남이 있어요..."


감정과 추억, 그거 내려놓으면 되는데, 그거 내려놓으면 차암 편한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응?) 농담이고, 감정과 추억 다 들고 있어도 좋으니 어서 2010년 9월 29일로 뛰어오기 바란다. 혼자 4월 며칠쯤에 서서 "아아. 4월은 잔인한 계절."따위의 얘기만 하지 말고, 우선 현실로 복귀하란 얘기다. 그래야 다시 인연의 보수를 하든 마음정리를 하든 할 것 아닌가. 집에서 오래 놀다보면 취업을 위해 구인광고 보고 전화하는 것에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처럼, 혼자 만들어 놓은 무인도에 오래 살다보면 연애세포가 딱딱해지고 현실감이 떨어지니 말이다.

그동안 받은 사연 중, 최장기간의 '무인도 생활'이야기를 들려주신 허숙희(가명, 35세)양의 사연이 생각난다. 숙희양의 남자친구는 2001년 6월, 숙희양과 헤어진 지 세 달 만에 다른 여자 분과 결혼을 했고, 그 시간부로 숙희양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2010년 8월에 도착한 사연에서도 숙희양은 2001년 6월의 이야기만 했다. 3번 문제에서 막혔다면, 4번 문제부터 풀어보는 건 어떨까? 시간은 계속 지나 이제 뒷면을 풀어야 하는데, 계속 3번 문제만 붙잡고 있다간 나머지 문제를 모두 빈 칸으로 놔두어야 하지 않는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모르는 문제에 별표 해 놓고 넘어가면, 아는 문제 푸는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 미련이 만든 미저리


영화 <미저리>에서 애니가 펭귄인형의 방향이 바뀐 것을 보고 폴이 움직였다는 걸 알아차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티븐 킹 이 장난꾸러기, 어떻게 이런 장치를! 그러나 일부 여성대원들이 보낸 사연은 스티븐 킹의 이런 장치를 애교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 미니홈피 BGM을 바꿨더군요... DOC의.. 부치지 못한 편지... 저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뜻 아닐까요?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제가 먼저 연락을 해 봐도 괜찮은 걸까요..."


의미부여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매뉴얼들에서도 수차례 했기 때문에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잘 알 거라 생각한다. 꼭 이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하는 모든 행동을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상대는 물론 자신의 인생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상대가 올려놓은 노래 제목과 대화하는 일은 그만 두자. 이렇게 '사이버 스토킹'을 시작하게 되면,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3년 째 구남친의 블로그를 드나들며 고통을 호소하는 한 여성대원의 사연을 보자.

"나 없이도 잘 살고 있나..
첨엔 그런 궁금증으로 헤어진 남친의 블로그를 들어갔었죠..
사는 모습을 자세히도 올려 두더군요..
예전에는 저도 '아는 사람'이었던.. 남친의 친구들 사진도 올라오고..
어색하지 않은 그의 차 사진..
항상 동네에서 만나 놀았기에.. 뻔한 술집과 음식점들 사진...
그리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 이야기..
남친의 강아지 '스파르타'가 새끼 난 이야기..
그렇게 3년을 들락날락 거렸더니.. 이제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제 저도 이 구질구질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 중인데..
그 사람 블로그를 끊으니까.. 금단현상이 나타납니다..
출근해서 확인하지 않으면..회사에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저녁에 확인하지 않으면.. 잠도 안 와요...
미치겠습니다... 아쉬움이 남거나.. 막 이별한 것 때문에 힘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블로그 들어가는 걸 끊질 못하겠습니다..
제발 해결방법 좀 알려주세요.."



이건 마치 담배를 끊으려 금연껌을 씹었더니, 담배는 끊었지만 이제 금연껌을 끊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어느 연예인도 6년간 금연껌을 못 끊었다고 하니 앞으로 3년만 더 그 구남친의 블로그를 들어가라는 건 훼이크고, 이처럼 다마고치 키우듯 상대의 근황을 확인하면 연애에 있어 자신은 '구경'만 하게 되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금단현상을 극복하려는 대원이 있다면 '동기'를 먼저 마련하자. 3년 후에도 사이버 스토킹만 하고 있을 본인을 떠올려 본다면 사이버 스토킹을 극복할 좋은 '동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3. 복수는 나의 것?


이별의 슬픔이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바뀌어 복수를 준비 중인 대원들도 있다. 지인들에게 상대에 대한 루머를 퍼트려 상처를 내려 하거나, 지금보다 훨씬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상대에게 후회를 선물하려 하거나, 어떻게든 다시 관계를 이은 뒤 자신이 먼저 차 버리려 계획하기도 한다.

계획은 예상과 친하지 않아 어긋나기 마련이다. 루머나 폭로를 도구로 한 복수는 다른 사람들의 위로나 동정을 얻으며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남들에겐 '남의 일'일 뿐이다. 그것으로 인해 상대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을 진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속에서 이별을 후회하거나 당신을 향한 죄책감이 들진 않는단 얘기다. 오히려 자신이 한 이별이란 선택이 값진 일이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훨씬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복수하겠다는 계획 역시, 스스로에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상대에겐 별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 아름답게 치장해 상대의 마음을 흔든다 해도 '이별'과는 별개의 자극일 뿐이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고, 쉬운 마음으로 다가온 상대에게 다시 휘둘릴 가능성도 크다. 형편없는 상대라면, 당신에 대해 "쟤 예전에 내가 찼던 애야."따위의 말을 훈장처럼 달고 다닐 수도 있고 말이다.

다시 사귄 뒤 먼저 차버리겠다는 계획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하는 연애가 아니라면 언제 끝나도 이상할 것 없으며, 헤어진 후에도 마음에서 포스트잇처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법이다. 누가 먼저 차는가, 따위는 아무 상관없어진 상황이란 얘기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복수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했는데, 상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제일 데미지가 클 것 같은가? 바로, 당신과 했던 연애가 별 일 아니었던 것처럼 싹 접은 채,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당신의 연락을 일부러 피하거나 마음의 문 닫았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지도 않은 채 다른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을 때, 당신은 참을 수 없는 옛 사랑의 가벼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대략 200년 전에 지구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극작가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가 이런 말을 했다.

극단적인 슬픔은, 오래는 지속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지 슬픔에 지고 말든가,
그것에 익숙해지든가 어느 쪽의 하나다.

- 메타스타시오


그러나 슬픔을 지속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계속 감정과 추억을 떠올리며 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도록 후벼파는 게 첫 번째 방법이고, 두 번째는 현실의 상대를 상상으로 옮겨 계속 그 사람과 연애를 해 나가는 것이다. 익숙해지겠다 싶을 때면 현실의 상대에게 연락을 해 그 둘의 괴리감으로 온 몸을 적시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계속 '난 슬프다.'라는 자기최면을 거는 거다. 이 방법은 효과가 뛰어나 모든 상황을 슬픔으로 변형시켜 받아들이게 된다.

계속 확인 받으려 질문을 하는 대원들이 답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답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거나, 그 답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누군가로 하여금 정당성을 확인 받고 싶은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사실 답을 구하고 싶다기 보다는 그냥 손에 잡고 있을 어느 지표가 필요하다거나 말이다. 

위와 같은 시기를 거쳐 간 대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충고는 "일단, 살아보면서 생각해도 돼."라는 거다. 예측하며 계획을 잡거나, 미리 겁을 먹곤 동굴에서 나오지 않거나, 이 슬픔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 앉아 있지 말고 일단 살아보라는 거다. 전에 이야기 했듯, 나 역시 어렸을 적 침대에서 라면을 먹다가 엎고 나선 이제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어린마음에, 침대에 라면 쏟은 걸 엄마가 알기 전에 가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 심각한 상황이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바뀌지 않았는가. 일단 살아보면서 생각해 보자. 바로 지금이,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다.




▲ 자전거 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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