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로 쓰고 있는 방 한 가득 선물이 쌓인 것을 보니 추석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라는 건 훼이크고 선물로 받은 물건들도 메모가 들어있나 확인 한 뒤 다시 선물로 내보내야 하는 물류교환센터 직원이 되었다. 이건 뭐, 남는 건 마음밖에 없다.
마음은 마음이고, 또 추석은 추석이고, 집착의 병을 앓고 있는 대원들에겐 추석이 그저 원활하지 않은 연락 때문에 똥줄 타는 것을 느껴야 하는 시즌이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오랜만에 친척들 만나서 재미있나 보네. 즐거운 시간 보내..."따위의 메시지로 실망을 덕지덕지 발라 전송하는 시기 아닌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의 늪에 빠지게 되면 상대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뾰족한 가시 박힌 말을 건네거나, 너도 맛 좀 보라며 치졸한 복수극을 꾸미기도 한다. 마음에 손바닥만한 여유도 들어갈 공간 없이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으니, 누가 카운트다운이라도 하고 있는 듯 급한 마음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집착하게 되는 지 함께 살펴보며 오늘은 마음에 쉼표 하나 찍어 놓자. 이 긴 연휴에, 참지 못하고 둘의 사이를 엉망으로 만들 대원들을 말리기 위해 준비했다. 달려보자.
식물생존 필수 3요소에 빛, 물, 공기가 있는 것처럼, 집착의 필수 3요소엔 불안, 불신, 불확실이 있다. 또한 빛, 물, 공기가 충족되었을 때 식물이 비료를 맛있게 먹으며 자라나듯 집착은 당신이 '사랑하기 때문에'라며 벌이는 모든 행동들을 기반으로 자라난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벌일 수 있는 자빠링에 대해서는 외부 연재 글 [커플을 갈라놓는 가장 무서운 병, 집착]에서 이미 소개해 두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호감이 있는 상대와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 중 연애경험이 없는, 즉 '연애사춘기'를 지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집착'은 2차성징처럼 찾아온다. 이야기로만 접하던 '연애'를 자신이 직접 체험할 때, 아니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펼치려 할 때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집착을 택하는 것이다.
집착의 길로 접어들면 자연히 연애의 중추신경이라 할 수 있는 '타이밍'과는 멀어진다. 이번 주 수요일 대화역 3번 출구에서 오후 3시에 만나, 라는 정확한 약속은커녕 아마존 정글 속에 홀로 떨어진 듯 어디가 동쪽인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도어아이로 내다보고 있다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인터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춰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문을 발로 차고 있다. 어서 열라고 윽박지르거나 애원하는 모습에 상대는 더 불안해 보조키까지 잠그게 되는 것 아닌가.
상대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문을 열어준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구상한대로 집을 리모델링을 하고, 갈 데가 있다며 상대의 손을 급하게 잡아당긴다.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는 선한 마음으로 벌인 일이지만, 상대에겐 무섭고 답답한 일이 되어 버린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연애에는 신호등이 필요하다. 괴로워 질 걸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악셀을 밟아대는 대원들에게 윤상의 <한 걸음 더>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이 소제목만으로도 내게 도착한 '짝사랑사연'의 8할 정도는 대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좀 잔인한 답변이지만, 기둥 없이 상상이나 공상으로만 만들어 낸 사연들엔 그 '근본'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남자분의 사연을 잠시 들여다보자.
사연 주신 분을 만나서 순댓국에 소주 한 잔 같이 하고 싶은 글이다. 깍두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니, 희진씬가 하는 여자사람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지금 뭐 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다.
위와 같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대원들을 모으면 대학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그 대원들이 보낸 사연들도, 중간부분만 떼어내면 당장 스릴이 가득한 추리 연애영화 한 편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탄탄하다. 특히 "남자사람이 보낸 문자 이모티콘에 대한 72가지 해석"이 담긴 여자분의 사연을 읽을 땐 손에서 땀이 나 마우스를 놓쳤을 정도다.
그러나 이 사연들이 공통적으로 포함한 가장 큰 오류는 '사실의 부재'다. 현실에서의 상대와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일이 아닌, 상상 속 상대와의 일을 얘기하고 있다는 거다.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이미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놓곤, 왜 답은 '그 사람'에게 얻으려고 하는가.
저 문장만 놓고 보면 순애보와 풋풋함에 응원을 보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간 주인공이 현실의 그 사람에게 벌인 잔혹하고 엽기적인 일들을 안다면 그 응원은 쏙 들어갈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부재중 전화 남기기, 방금 무슨 뜻으로 농담한 거냐며 추궁하기, 예의상 한 인사말을 둘이 한 약속이라고 여기기, 질투심을 유발한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하기 등등, 그렇게 둘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왜 마지막까지 고백이란 이름으로 부담만 떠넘기려 하는가. 그렇게 떠 넘겨놓고 받아주지 않는 상대를 계속 저주하며 괴롭히고 있는 대원들을 모으면 또 학과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만 하자.
지난 주, 번호이동으로 주문한 핸드폰을 기다리며 '추석택배 희망고문'을 당했다. 매뉴얼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대전물류센터에 묶여 있는 핸드폰 때문에 배송조회 새로고침으로 며칠간 하루를 열고 닫았다. 같이 신청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폰을 받은 상태라 조급함이 더해졌다. 혹시 배송 중 분실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택배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신세계를 발견했다.
그 커뮤니티에는 '택배'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택배가 오지 않아 시작된 불안은 무럭무럭 자라나 그들의 생활을 좀먹고 있었다.
어느 분이 한 시간 간격으로 남긴 글들이다. 불안이 상상력과 만나 시나리오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상상 속 이야기'를 '사실'과 혼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혼동은 '불안'을 '불만'으로 만든다. 그리고 상대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불만'이 '저주'로 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욕설이나 막말이 옵션으로 따라붙는다.
결국, 이러한 사이클을 마친 후에는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애원하게 되는 것이다. 택배를 먼저 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택배가 빨리 오면 행복할까? 빨리 받았다는 놀라움이나 기쁨은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한 행복감은 휘발성이 강해 금방 사라진다. 초점은 '택배'에서 '받은 물건'으로 넘어가 새로운 감정들을 발굴하니 말이다.
상대가 문자의 답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또는 메일에 대한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상상력을 증폭시키며 의미부여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이 사이클에 대입해 보기 바란다.
현재 위의 사이클을 경험하고 있는 대원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는 절대 상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중요한 선택들도 보류해 두길 권해주고 싶다. 이 사이클은 현재 당신이 마음을 쏟고 있는 것에서 한 발짝만 물러나면 흔적도 없이 부서질 '공상'이다. 택배가 오지 않을 때에는 온 신경이 택배로 쓰였지만, 물건을 받고 나니 택배와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존슨(38세, 무직)과 나의 관계처럼 된 것 아닌가.(아무 관계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집착에 시달릴 경우, 커플부대원이라면 상대와 대화를 통해 도움을 구하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지만 솔로부대원의 경우 상대에게 "그러니까 내가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딱 말해."라며 울상이 된 얼굴로 협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 집착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 역시, 잠이 오지 않을 때 자려고 애쓰면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 때에는 자신의 상황을 '주인공시점'이 아닌 '관찰자시점'에서 바라보길 권한다. 상황에 대처하는 입장을 바꿔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나'와 '상대'만 생각하며,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서운함은 그만 드러내고 둘과 전혀 관계없는 제3자가 되어서 자신의 모습과 둘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온통 마음이 쓰이는 상대 말고, 새로운 관심거리 찾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이 결국 '관심의 전이'를 설명하고 있듯, 한 발로 서 있기 위태위태한 집착을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게 집착에 '다른 관심'이란 다리를 달아주는 것이다. 앞에 놓인 문제를 그저 방치한다거나 회피할 생각으로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다.
관심을 측정해 물건 구매하듯 하는 연애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관심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는 것 보다 당신에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더 가지게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손에 염려와 불안과 의미부여라는 카드만 든 채 연애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그 카드를 버리지 않는 한 연애는 계속 어려울 테니 말이다.
▲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결혼 언제 하냐고 누가 물으면, 도와 달라고 하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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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마음이고, 또 추석은 추석이고, 집착의 병을 앓고 있는 대원들에겐 추석이 그저 원활하지 않은 연락 때문에 똥줄 타는 것을 느껴야 하는 시즌이며,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오랜만에 친척들 만나서 재미있나 보네. 즐거운 시간 보내..."따위의 메시지로 실망을 덕지덕지 발라 전송하는 시기 아닌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의 늪에 빠지게 되면 상대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뾰족한 가시 박힌 말을 건네거나, 너도 맛 좀 보라며 치졸한 복수극을 꾸미기도 한다. 마음에 손바닥만한 여유도 들어갈 공간 없이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으니, 누가 카운트다운이라도 하고 있는 듯 급한 마음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집착하게 되는 지 함께 살펴보며 오늘은 마음에 쉼표 하나 찍어 놓자. 이 긴 연휴에, 참지 못하고 둘의 사이를 엉망으로 만들 대원들을 말리기 위해 준비했다. 달려보자.
1. '연애사춘기'에 포함되어 있는 집착의 모습
식물생존 필수 3요소에 빛, 물, 공기가 있는 것처럼, 집착의 필수 3요소엔 불안, 불신, 불확실이 있다. 또한 빛, 물, 공기가 충족되었을 때 식물이 비료를 맛있게 먹으며 자라나듯 집착은 당신이 '사랑하기 때문에'라며 벌이는 모든 행동들을 기반으로 자라난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벌일 수 있는 자빠링에 대해서는 외부 연재 글 [커플을 갈라놓는 가장 무서운 병, 집착]에서 이미 소개해 두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호감이 있는 상대와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 중 연애경험이 없는, 즉 '연애사춘기'를 지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집착'은 2차성징처럼 찾아온다. 이야기로만 접하던 '연애'를 자신이 직접 체험할 때, 아니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펼치려 할 때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집착을 택하는 것이다.
집착의 길로 접어들면 자연히 연애의 중추신경이라 할 수 있는 '타이밍'과는 멀어진다. 이번 주 수요일 대화역 3번 출구에서 오후 3시에 만나, 라는 정확한 약속은커녕 아마존 정글 속에 홀로 떨어진 듯 어디가 동쪽인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도어아이로 내다보고 있다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인터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춰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문을 발로 차고 있다. 어서 열라고 윽박지르거나 애원하는 모습에 상대는 더 불안해 보조키까지 잠그게 되는 것 아닌가.
상대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문을 열어준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이 구상한대로 집을 리모델링을 하고, 갈 데가 있다며 상대의 손을 급하게 잡아당긴다.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는 선한 마음으로 벌인 일이지만, 상대에겐 무섭고 답답한 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연애에는 신호등이 필요하다. 괴로워 질 걸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악셀을 밟아대는 대원들에게 윤상의 <한 걸음 더>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2.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왜 그래요?
이 소제목만으로도 내게 도착한 '짝사랑사연'의 8할 정도는 대답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좀 잔인한 답변이지만, 기둥 없이 상상이나 공상으로만 만들어 낸 사연들엔 그 '근본'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남자분의 사연을 잠시 들여다보자.
그녀가 저에게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그런 것인지
요즘은 옆 자리의 박대리와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예전처럼 제 옆자리를 지나갈 때면 기침을 하거나 발자국 소리를 크게 내는
그런 신호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때에도, 예전엔 제가 쳐다보면 눈을 피하며 안 보는 척 했는데
요즘은 아예 벽 쪽만 바라보며 물을 마시더군요.
용기를 내서 "희진씨 혹시 제가 실수한 거 있나요?"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네? 그런 거 없어요;;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추석 잘 보내세요."
이런 형식적인 답장을 보내더군요.
저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이게 어장관리 일까요?
아니면 얼른 고백하라는 무언의 암시인가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답답합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이 여자가 저에게 보내는 신호가 무슨 뜻인지,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옆 자리의 박대리와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예전처럼 제 옆자리를 지나갈 때면 기침을 하거나 발자국 소리를 크게 내는
그런 신호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실 때에도, 예전엔 제가 쳐다보면 눈을 피하며 안 보는 척 했는데
요즘은 아예 벽 쪽만 바라보며 물을 마시더군요.
용기를 내서 "희진씨 혹시 제가 실수한 거 있나요?"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네? 그런 거 없어요;;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추석 잘 보내세요."
이런 형식적인 답장을 보내더군요.
저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이게 어장관리 일까요?
아니면 얼른 고백하라는 무언의 암시인가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답답합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이 여자가 저에게 보내는 신호가 무슨 뜻인지,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사연 주신 분을 만나서 순댓국에 소주 한 잔 같이 하고 싶은 글이다. 깍두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니, 희진씬가 하는 여자사람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지금 뭐 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다.
위와 같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대원들을 모으면 대학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그 대원들이 보낸 사연들도, 중간부분만 떼어내면 당장 스릴이 가득한 추리 연애영화 한 편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탄탄하다. 특히 "남자사람이 보낸 문자 이모티콘에 대한 72가지 해석"이 담긴 여자분의 사연을 읽을 땐 손에서 땀이 나 마우스를 놓쳤을 정도다.
그러나 이 사연들이 공통적으로 포함한 가장 큰 오류는 '사실의 부재'다. 현실에서의 상대와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일이 아닌, 상상 속 상대와의 일을 얘기하고 있다는 거다.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이미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놓곤, 왜 답은 '그 사람'에게 얻으려고 하는가.
"그동안.. 제가 오해했었나 보네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고백은 해보고 싶어요."
저 문장만 놓고 보면 순애보와 풋풋함에 응원을 보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간 주인공이 현실의 그 사람에게 벌인 잔혹하고 엽기적인 일들을 안다면 그 응원은 쏙 들어갈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부재중 전화 남기기, 방금 무슨 뜻으로 농담한 거냐며 추궁하기, 예의상 한 인사말을 둘이 한 약속이라고 여기기, 질투심을 유발한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하기 등등, 그렇게 둘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왜 마지막까지 고백이란 이름으로 부담만 떠넘기려 하는가. 그렇게 떠 넘겨놓고 받아주지 않는 상대를 계속 저주하며 괴롭히고 있는 대원들을 모으면 또 학과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만 하자.
3. 택배가 빨리 오면 행복할까?
지난 주, 번호이동으로 주문한 핸드폰을 기다리며 '추석택배 희망고문'을 당했다. 매뉴얼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대전물류센터에 묶여 있는 핸드폰 때문에 배송조회 새로고침으로 며칠간 하루를 열고 닫았다. 같이 신청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폰을 받은 상태라 조급함이 더해졌다. 혹시 배송 중 분실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택배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신세계를 발견했다.
그 커뮤니티에는 '택배'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택배가 오지 않아 시작된 불안은 무럭무럭 자라나 그들의 생활을 좀먹고 있었다.
"배송기사님 차량이 사고난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제 물건만 어디 구석에 떨어져서 배송이 안 오는 건 아닌가요? 찾아봐 주세요."
"익일배송 아닌가요? 책이 오지 않아서 공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전화도 안 받고. 여기 내가 다시 이용하나 봐라. 가서 받아와도 이것보다 빠르겠다."
"동네 영업점에라도 왔으면 얘기 좀 해주세요. 직접 찾으러 갈게요. 제발 좀..."
"제 물건만 어디 구석에 떨어져서 배송이 안 오는 건 아닌가요? 찾아봐 주세요."
"익일배송 아닌가요? 책이 오지 않아서 공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전화도 안 받고. 여기 내가 다시 이용하나 봐라. 가서 받아와도 이것보다 빠르겠다."
"동네 영업점에라도 왔으면 얘기 좀 해주세요. 직접 찾으러 갈게요. 제발 좀..."
어느 분이 한 시간 간격으로 남긴 글들이다. 불안이 상상력과 만나 시나리오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상상 속 이야기'를 '사실'과 혼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혼동은 '불안'을 '불만'으로 만든다. 그리고 상대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불만'이 '저주'로 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욕설이나 막말이 옵션으로 따라붙는다.
결국, 이러한 사이클을 마친 후에는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애원하게 되는 것이다. 택배를 먼저 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택배가 빨리 오면 행복할까? 빨리 받았다는 놀라움이나 기쁨은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한 행복감은 휘발성이 강해 금방 사라진다. 초점은 '택배'에서 '받은 물건'으로 넘어가 새로운 감정들을 발굴하니 말이다.
상대가 문자의 답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또는 메일에 대한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상상력을 증폭시키며 의미부여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면 자신의 행동을 이 사이클에 대입해 보기 바란다.
불안 -> 상상 -> 불만 -> 저주 -> 애원
현재 위의 사이클을 경험하고 있는 대원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는 절대 상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중요한 선택들도 보류해 두길 권해주고 싶다. 이 사이클은 현재 당신이 마음을 쏟고 있는 것에서 한 발짝만 물러나면 흔적도 없이 부서질 '공상'이다. 택배가 오지 않을 때에는 온 신경이 택배로 쓰였지만, 물건을 받고 나니 택배와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존슨(38세, 무직)과 나의 관계처럼 된 것 아닌가.(아무 관계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집착에 시달릴 경우, 커플부대원이라면 상대와 대화를 통해 도움을 구하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지만 솔로부대원의 경우 상대에게 "그러니까 내가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딱 말해."라며 울상이 된 얼굴로 협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 집착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 역시, 잠이 오지 않을 때 자려고 애쓰면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 때에는 자신의 상황을 '주인공시점'이 아닌 '관찰자시점'에서 바라보길 권한다. 상황에 대처하는 입장을 바꿔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나'와 '상대'만 생각하며,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서운함은 그만 드러내고 둘과 전혀 관계없는 제3자가 되어서 자신의 모습과 둘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온통 마음이 쓰이는 상대 말고, 새로운 관심거리 찾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이 결국 '관심의 전이'를 설명하고 있듯, 한 발로 서 있기 위태위태한 집착을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게 집착에 '다른 관심'이란 다리를 달아주는 것이다. 앞에 놓인 문제를 그저 방치한다거나 회피할 생각으로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다.
"저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런 건 구별할 수 없는 건가요?"
관심을 측정해 물건 구매하듯 하는 연애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관심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는 것 보다 당신에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더 가지게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손에 염려와 불안과 의미부여라는 카드만 든 채 연애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그 카드를 버리지 않는 한 연애는 계속 어려울 테니 말이다.
▲ 즐거운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결혼 언제 하냐고 누가 물으면, 도와 달라고 하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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