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출몰하는 지역에 사는 초등학생들은 왜 그렇게 뱀을 때릴까? 개인적으론, 뱀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득 보다는 해를 입은 경험이 많은 인간의 유전자가 '뱀은 해로운 동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전자는 유전자고, 아무튼 나도 초등학생 시절 동네 형, 친구들과 열심히 뱀을 때렸다.
논길을 걷다가 뱀을 만나면 질겁해 도망갔지만, 포장된 도로에서 만나면, 녀석은 우리의 소중한 완구가 되어 주었다. 포위된 뱀을 긴 막대기로 후려치는 것은 주로 고학년 형들이 맡았고, 우리는 뱀이 정신 줄을 놓았을 때에야 작은 막대기를 들곤 "야, 뱀이 8자로 죽으면 안 돼. 8자로 죽으면 저주야."라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뱀을 길게 펴기에 힘을 쏟았다.
군대에 가서 이 '뱀 이야기'를 공유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뱀을 때려죽이는 건 우리 동네만의 얘기가 아니라 전국의 남자들이 그 시절 치러야 하는 '유년식(응?)' 같은 거란 걸 알았다. 뭐, 군대인 까닭에 나중엔 자기 동네에 아나콘다가 살았다는 얘기도 나오긴 했지만, 아무튼 "뱀이 8자로 죽으면 분명 저주가 찾아온다."는 믿음은 다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솔로부대 여성대원들이 보내는 사연에는 마치 위의 이야기에서 등장한 '막대기'같은 남자들의 멘트가 나온다. "나를 남자로 어떻게 생각해?"라든가,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 거야?"라는 물음, 그리고 그 후엔 "난 원래 자유분방하니까."라든가 "다음에 만나자."라며 취소되는 약속과 끊기는 연락. "그 남자는 왜 잘 살고 있는 절 흔드나요?"라고 묻는 대원들을 위해 이번 매뉴얼을 준비했다. 달려보자.
"그냥 외로운 마음에 찔러본 거 였을까요?"라고 묻는 대원들이 많은데, 그대가 생각하는 그 답이 맞을 확률이 가장 높다.
그대가 졸업앨범을 보거나, 학창시절에 짝사랑했던 상대의 근황을 수소문 하거나, 얼마 전까지 괘 진전이 있었던 상대에게 다시 연락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 외로울 때다. 외로움 때문에 연락한 다는 것이 결코 나쁜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의 치명적인 단점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대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싶을 때가 없는가? 난 일 년에 한두 번쯤 주머니를 비우고 비를 맞으며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옷을 다 입은 채 비를 맞으면 수영장에서 남 몰래 실례를 할 때의 그 뜨뜻한 기분(응?)이 드는데(이런 기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아무튼 그건 그 때 뿐이고 평상시엔 나도 남들처럼 우산을 들고 다니며 비 오는 날 자전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위의 이야기에서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싶을 때'를 '외로움에 질려 이성과 연락하고 싶을 때'로 바꿔보면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다급하니,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내가 너랑 사귀자고 하면, 넌 뭐라고 답할 거야?"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만, 당신의 답에 충분히 젖은 후엔 다시 샤워를 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 거다. 그런 까닭에, 매뉴얼을 통해 늘 "그 순간만을 가지고 전부를 파악하려 하지 마세요."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길게 보자. 그럼 상대의 들이댐이 충동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팁을 하나 적자면, 그간의 연락이나 약속 없이 즉흥적으로 만나자는 얘기를 하는 상대에게 '선약'등을 핑계로 거절했을 때, 선약 같은 거 취소하고 어떻게든 나오라고 하거나, 실망한 기색을 보란 듯이 드러낸 뒤 연락을 끊는다면, 그건 '충동적인 들이댐'인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 이후로 연락도 없고, 만나자는 얘기도 다시 안 꺼낸다고 절대 뭘 잘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말길 권한다. 상대에겐 그저 감정의 소나기가 지나갔을 뿐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흔들바위를 왜 그렇게 흔들어 대는가? 아주 단순하게 답하자면, 흔들리니까 흔든다. 밀어도 흔들리지 않고 박혀 있는 돌이라면 아무도 그 돌을 흔들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다.
이전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간 이성에게 친절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는 여성대원들은 상대의 관심이나 배려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친오빠에게 "야, 너 내 컴퓨터 만졌어?"따위의 얘기를 듣거나, 직장동료에게 "아, 머리 뭐야. 숙희씨 배 포장지 뒤집어 쓴 것 같아." 따위의 이야기만 듣다가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해 오고 안부를 묻는 남자를 만났다고 해 보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계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모태솔로의 향기'를 기가 막히게 맡는 남자들이 있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영원'이나 '인연' 따위의 단어 몇 개만 늘어놓으면, 상대가 자석처럼 달라붙게 된다는 걸 아는 것이다. 자신이 보낸 문자가 상대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이런 남자를 만났다면, 머지않아 그 남자에게 삼보일배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벗어날 방법은 흔들리지 않는 것밖에 없다. 종종 "그런 남자라고 해도, 나중엔 마음을 잡고 저와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가 변해 당신과 진지한 관계를 맺길 원한다면 당신은 더욱 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가 찾아와 자신을 묶을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지, 자신의 뿌리를 뽑아가며 그에게 달려가선 안 된단 얘기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생활에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자신의 생활은 돌보지 않으면서 오직 상대와의 관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
"제가 쉽게 보여서 그러는 걸까요?"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만나자고 하면 순순히 응해 줄 거라 생각한 걸까요?"
이런 얘기를 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내게 사연을 보내는 남성대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여자는 "자신의 생활이 분명한 여자."다. 그게 교회든, 일이든, 시험준비든 그녀가 자신만의 분명한 생활을 가지고 있기에 그 생활로 끼어들 방법을 찾고 있단 얘기다.
그런 '자신의 생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자는 언제든 끼어들 수 있기에 상대는 '팬클럽 모집' 식의 대우를 하게 된다. 별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관심과 사랑을 바치는 상대를 찾는단 얘기다. 자신의 뿌리까지 뽑아가며 무작정 달려가 팬클럽이 되고 싶은가? 뿌리 뽑힌 나무는 장작으로 불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물론, 모든 남자가 이런 이유로 당신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정지용 시인이 시 <고향>에서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는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당신의 과도한 방어본능이나 오랜 솔로 생활로 인해 달게 된 가시,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당신의 이미지와 실제 당신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며 물러서는 경우도 있다.
그게 관해서는 내일 후라이데이 특집으로 이뤄질 매뉴얼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 자 매뉴얼과 관련해 좀 더 적어 두자면, 그가 감정의 소나기를 맞으며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적은 글이나, 메신저의 대화명, 그리고 당신에게 밤늦게 보낸 문자 등을 "주민생명 위협하는 고가 건설 철폐하라. 우리 죽어 귀신 되면 너부터 데려간다."라는 현수막 정도로 보고 넘기자. 저 현수막을 보곤 '죽겠다는 얘긴가? 정말 귀신 되어서 찾아올까?'라며 며칠간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당신의 별에다 사랑을 걸지 말자. 별은 해가 뜨면 보이지 않는다. 밤에만 찾아와 속살거리는 별은 그 먼 데에 그냥 두자. 밤이든 낮이든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사람은 분명 있으니 말이다. 그대의 밤과 낮 모두 행복 그득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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