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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사귈 마음도 없으면서 그 남자는 왜 그럴까?

by 무한 2011. 7. 7.

늘 얘기하지만, 이성과 만나거나 대화할 일이 별로 없었던 사람의 경우, 이성의 작은 친절에도 몸둘바를 몰라 하고 농담으로 한 말에도 가슴이 뛰어 정신줄을 놓기 마련이다. 

친오빠한테 "너 집에 오면 디졌어."따위의 문자만 받고 지내던 여성대원이, 휘트니스 클럽에서 "어젠 왜 안 오셨어요?"라고 묻는 트레이너를 만나면 다리에 힘이 풀리기 마련이고, 미용실에서 "머릿결이 많이 상하셨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영양관리는 서비스로 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면 미용실에 정신줄을 놓고 오는 경우가 많단 얘기다.

뿐만 아니라, 장난기가 많은 남자라면 얼마든 할 수 있는 이야기나, 꼭 마음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나에게 마음이 있으니 저러는 게 분명해.'라는 오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오해를 '마음이 있다는 증거'로 확신한 채 비바람에 휘둘리다 나중엔,

"왜 이렇게 된 거죠? 그가 절 좋아하는 건 분명한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라며 비명을 지르고 만다. 그 비명을 상대에겐 지르지 못하고, 계속 내게 보내는 메일에 질러대는 여성대원들이 많기에, 더는 비명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이 매뉴얼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름 하여 '좋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남자의 행동들'. 출발해 보자.


1. 마음의 병적 도벽



지인의 친구의 지인, 그러니까 나와 세 다리쯤의 거리에 있는 한 여자 분이 를 운영하고 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고 지인을 통해 얘기를 몇 번 들었을 뿐인데, 지인도 그녀를 본 순간 '이건 일반인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 분이라고 한다.

그 미모에, 직업의 특성상 발달할 수밖에 없는 미소, 경청, 리액션, 배려, 표현, 애교 등이 더해지니 그 바를 찾는 수많은 남자손님들이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에서는 매일같이 시비가 붙고 싸움이 일어나는데, 그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치열한 혈투라고 한다.

그 혈투에 참여한 수컷 중에는 친구 따라 바에 왔다가 그녀에게 반해 트렁크에 농사기구가 든 에쿠스를 타고 와 바에서 하루 종일 있는 분이 있고, 그 지역에 큰 건물을 몇 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둔 분이 있으며, 형제들을 동원해 '청혼'까지 하는 분 등이 있는데, 아무튼 그녀는 그 수컷들에겐 관심이 없고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투철한 '직업정신(응?)'으로 그 수컷들을 친절히 대하고, 늘 여지를 남기며, '세상에 남자라고는 너 밖에 몰라.'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저에게 마음이 없으면서도 그런 말,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묻는 여성대원들에게 대답으로 내주고 싶다. 그럴 수 있다. '한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기 보다는, 다양한 여자와 많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남자일수록 그런 말, 그런 표현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몰래 그 물건을 가져와봐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훔칠 때의 스릴과,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 들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뭐 그런 감정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듯, 연애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것'에만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의 병적 도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2. 돈, 빌릴 때와 갚을 때

 

꼭 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뭘 빌려줘 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 중 한 번쯤은 '돌려받기'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거나, 돌려받지 못한 일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아는 여자'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그 지인은 6개월에 걸친 사정, 회유, 협박, 부탁, 수소문 끝에 돈을 돌려받았다. '돈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던 지인이었는데, 아는 여자사람이 눈물로 애원하며 큰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철학이고 뭐고, 가까이 가면 알아서 열리는 자동문처럼- 그녀에게 돈을 빌려줬다.

훗날 그 지인은 "돈 돌려받기는, 돈 벌기만큼이나 어렵다."는 명언을 남겼다. 상대가 약속한 날짜가 다 되도록 연락이 없으면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연락을 하고, 어렵게 그 얘기를 꺼내면 상대는 약간의 미안한 내색을 하며 쉽게 다음으로 미뤘다. 그렇게 미룬 날짜가 되어서도 또 연락이 없으면 이쪽에서는 며칠 밤을 하얗게 새고 나서야 '돈 얘기'를 꺼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빌려간 상대는 오히려 당당해지고, 돈을 빌려 준 지인은 애를 태우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돈을 갚기 두 달 전엔 상대에게,

"다음 달에 꼭 갚을 테니까, 이제 이런 문자 좀 보내지 마세요. 
안 갚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사정이 있어서 못 갚고 있는 거라구요."



이런 문자가 오기도 했다. 아무튼 그 후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다가, 결국 지인이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하자,

"돈 보냈구요. 앞으론 우리 연락할 일 없을 거예요.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네요."



라는 마지막 문자가 왔다. 이게 연애에서도 그렇다. 상대에게 반한 까닭에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연애가 하고 싶어 상대를 찾는 경우, 그는 '돈 빌리는 사람'이 된다. 그는 당장 자신의 '연애'를 충족시켜야 하기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든 무릎을 꿇는 일이든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액션'에 넘어가는 여자사람이 청산리대첩에서 숨진 일본군 숫자보다 많다.

상대가 그저 어서 사귀자고 징징 거리거나, 스킨십에 목숨걸고 덤벼 든다면 무턱대고 마음을 대출해 주지 말길 권한다. 그 시기에 하는 맹세나 고백, 약속 따위는 유효기간이 짧다.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이야기들을 붙들고 아직도 눈물 흘리고 있는 솔로부대 선배대원들의 뒤를 밟고 싶지 않다면, 길게, 오래 보자.


3. 진짜 친절한 남자도 있다.



모태솔로부대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지만, 사귈 마음이 없어도 같이 영화를 볼 수 있고, 고민거리를 들어줄 수 있으며, 연락할 수 있고,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같이 영화 한 번 보고 통화 몇 번 했다고 "연애는 언제쯤 시작하게 되는 거죠?"라고 묻는 여성대원들이 많아서 적어 두는 말이다.

그리고 진짜 친절한 남자도 있다. 전에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내 지인 중에는 동성끼리 술자리를 하고 난 후 다들 취해 있을 때, 자신의 지갑을 털어 친구들을 택시 태워 보내고, 전철역으로 네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 집까지 가는 지인도 있다. 친구에게 속상한 일이 있다고 그 친구의 집 앞까지 찾아가 술을 사고, 얘기를 들어주는 지인도 있고 말이다.

그런 남자들도 있으니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거나 그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라고 해서 모두 어장관리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남자의 친절이나 배려, 능청이나 장난 등에 뿌리 뽑힐 정도로 흔들리지 말고 좀 태연해지자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특히 서비스직에 있는 남자, 그들 중 대부분은 '말'과 '표현'의 달인이다. 타자를 예로 들어, 일반인들이 300타 정도의 타자실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속기사들은 1000타 이상의 타자실력을 가지고 있듯, 그들은 '말'과 '표현'이라는 분야에 있어 다른 직종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남자들의 '말'과 '표현'에도 태연해져 보자. 수영장에서 강사가 팔 한 번 잡고, 인사 한 번 했다고 집에 돌아와 잠 못 이루며 이불에 하이킥 하진 말잔 얘기다. 

그대에게 친절하거나, 호의를 베푼 이성을 모두 연애상대로 생각하는 것만 피해도 반은 성공이다. 사연을 읽으며, "이 남잔 정말 달라요. 소울메이트 라구요!"라고 말하는 여성대원들에게 "그 남자 말고는 남자와 길게 통화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라고 묻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대원들에겐, "그건, 말이 잘 통하고 안 통하고를 떠나서, 남자를 만나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라고 묻고 싶고 말이다. 


오늘은 유난히 매뉴얼에서 지인들 얘기를 많이 했으니, 마지막도 지인 얘기로 장식해 보자.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쯤, 친구들과 내가 '자전거'에 꽂혀 엉덩이에 굳은살을 만들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며 "야, 자전거는 대체 왜 타냐? 그거 힘들고 위험하잖아. 그리고 많이 타면 전립선에도 안 좋다고 하던데. 니들 그러다 자전거 쫄쫄이 바지도 산다고 하겠는데? 아, 그 바지 진짜 쉣이야."라고 말하던 지인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지인에게 여러 차례 '샤방샤방 라이딩'을 권했지만, 그는 "니들 많이 타세요."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아무튼 그렇게 '자전거'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인이었는데, 말은 안 해도 작년엔 우리끼리 라이딩 다니는 것이 부러웠는지, 올해는 자기도 운동 삼아 자전거를 좀 타볼까 한다는 핑계를 대며 몇 차례 라이딩을 함께 다녀왔다.

아무튼 그는, 요즘 쫄쫄이 바지에 헬멧, 장갑에 고글까지 착용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작년엔 그가 자전거를 탄다는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열혈 자전거족'이 되어, 비오는날엔 자전거를 탈 수 없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정도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사귈 마음'같은 건 당장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점점 생기도록 만들면 된다. 오히려 문제는, 그 마음이 생길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당장 'YES or NO'라는 대답을 들으려 들이대다 관계를 망치는 것에서 발생한다. 상대의 팬클럽이 되어 버리거나, 맹목적으로 상대에게 헌신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되거나, 서로 다신 보기 힘들 정도의 일을 저질러 멀어지게 만드는 것 말이다. 자, 그럼 다음 매뉴얼에선 '사귈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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