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노력해도 솔로인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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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넌 <솔로부대 탈출 매뉴얼>이라는 책까지 냈으면서, 왜 친구는 탈출 안 시켜주냐?"라고 울부짖던 H군에게 바친다.

H군은 "이제는 누군가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고, 그냥 이렇게 내 할 거 하면서 지내는 거에 익숙해 진 것 같아. 이게 해탈인가?"라고 했지만, 그건 '솔로의 7단계' 중 4단계로 진급한 것뿐이다.

<솔로의 7단계>

1단계 -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고 애쓰거나, 잡으려고 애쓴다.
2단계 - 자유로운 솔로라 자부하며 새로운 이성을 만나고자 애쓴다.
3단계 - 현실이 시궁창임을 깨닫고 변화를 위한 계획을 짠다.
4단계 - 연애라는 태풍이 지나갔다 생각하지만, 사실 태풍의 눈 속에 있다.
5단계 - 이러다 평생 솔로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온다.
6단계 - '날자, 다시 한 번 날자꾸나' 하며 2단계부터 다시 시작한다.
7단계 - 6단계 까지 여러 번 진급한 후, 결국 실버타운 독거노인동 입주.

지구별 소풍 중 '보물찾기'시간이 되었는데, "그냥 남들 많이 찾으라 그래. 난 보물 같은 거 안 찾아도 상관없어."라며 쿨한 척 하지 말고, 함께 찾아보자. 자, 그럼 보물을 찾기 위해 알아야 할 <당신이 노력해도 솔로인 세 가지 이유> 지금 바로 출발하자.

1. 연애의 시작, 맺고 끊기가 8할이다.

지인 중에 민통선지역에서 복숭아 농장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 농장의 복숭아는 (거짓말 좀 보태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꿀물이 입술을 타고 줄줄 흐른다. 그 복숭아를 맛 본 뒤 마트에서 파는 복숭아를 사 먹으면, "이게 복숭아야? 이건 그냥 복숭아 향 과일이지."라고 할 정도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소문을 듣고 몰려 든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 까닭에 판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지만, 그 맛있는 복숭아도 이렇게 알려지기 전 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판매 루트가 확보되지 않았던 과거엔 '수익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갈 것 같아서' 떨어지는 복숭아를 마냥 두고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H군은 내 친구 중 유일하게 '내게 여동생이 있다면 소개시켜줄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친구'지만(다른 친구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무조건 소개시켜주지 않는다.), 루트가 없어서 그냥 나무에 매달려 있는 복숭아다. 이 시점에서 H군이 해야 할 것은, '아무도 날 찾는 사람이 없다 이거지? 내가 별론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루트를 개척해야 할까?'라는 생각이다. 

요즘은 희로애락도 컴퓨터나 TV, 스마트폰 등을 사용해 '혼자'즐길 수 있기에 연애도 그냥 방 안에 앉아 시작하려는 대원들이 많은데, 아무리 번지점프에 대한 후기를 읽고, 동영상을 본다 해도 '번지점프 경험 없음'이란 꼬리표를 뗄 수 없듯, 연애 역시 현관문을 나가지 않고는 시작되기 어렵다. 동호회 정모에 참석하든, 종교 모임에 나가든 일단 자신을 노출시키라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선뜻 시작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 시작이 그대의 삶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도전하자.

그리고 '맺기'에 열을 내는 것만큼 '끊기'에도 힘을 쓰자. 당장 만나는 이성이 없기에 그냥 만나는 '아는 이성'을 정리하자. 뭐, 둘 다 친구라 생각하며 만나는 거라면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저 외로움의 킬러로 서로를 고용하는 관계라든지, 친구라는 이름표를 붙여 놓고 각자 '얜 내 어장에 언제나 있는 참치야.'라고 생각하는 관계라면, 그 공갈빵 같은 관계를 과감히 정리하길 권한다. 그건 영어시험이 내일인데, 수학책 펴 놓고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니 말이다.

2. 말을 걸자.

언젠가 웹에 본 솔로부대원의 고백 중에,

"남자끼리 있으면 '스티브 잡스'인데, 여자 오면 '스티븐 호킹' 되는 건 나뿐인가?
남자끼리 있으면 분위기 메이커고 달변가인데, 여자 앞에선 말 못하는..."

이런 글이 있었다. 공감하는 남성대원들이 많으리라 생각하는데, 공감하는 대원들 중 모태솔로 계급장을 달고 있는 대원들은 우선 '이성과 대화하기'부터 시도하길 권한다. 컴퓨터 타자가 계속 쳐야 느는 것처럼, 말도 계속 해야 는다. 특히, 이성과의 대화에는 동성과 대화할 때 보다 좀 더 많은 단어사용과 욕설필터링, 그리고 리액션이 필요하므로 되도록 많은 이성들과 대화를 나누길 권한다.

단, '친구처럼 지내는 이성'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이성과의 대화법'을 익히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직장에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여직원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그들과의 대화는 이미 '동성화'의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관계로 '어색한 침묵'이 끼어들 틈이 없고, 둘 간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라 늘 나누는 대화 패턴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

그런 대화를 계속 나누는 건, 컴퓨터 타자연습을 하며 '말머리, 마나님, 어머니, 아니, 어머나' 따위의 단어만 계속 치고 있는 것과 같다. 이젠 치는 데 아무 문제없는 '기본자리'만 계속 연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단 얘기다. '맑은, 끄트머리, 붉게, 빠지다, 쏘아올린' 같은 단어들도 막힘없이 칠 수 있도록, 길을 걷다 괜찮은 이성을 만나면 길이라도 물어보며 말을 걸어보고, 음료수나 햄버거를 살 때 이성이 주문을 받고 있다면 짧은 인사라도 해 보자. 길을 묻거나 인사 했다고 따귀를 올려붙일 여자는 없으니 말이다.

"아, 오늘 지하철에서 마주친 그 여자 진짜 완전 내 이상형 이었는데..."

평소 난생 처음 보는 이성에게 말을 걸어 본 경험이 없다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괜찮은 이성과 마주쳐도 말을 걸기 어렵다. 그렇게 그냥 지나치면 또 위와 같은 얘기를 하며 후회할 것이고, 이런 후회를 수백 번 해봐야 전화번호 하나 안 남는다. 말을 걸자. 불러 세웠는데 할 말이 없으면,

"말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서 불렀는데, 지금 다음 말이 생각이 나질 않네요."

라고 솔직히 말해도 된다. 그 이후로는 "아, 제 이름은 솔로남이구요, 경기도 일산에 살아요."정도로 이끌어 가도 좋고, "제가 이어폰을 사러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이거든요. 방금 산 건데, 그거 드릴 테니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이어폰 비싼 건데."라며 호기심 떡밥을 던져도 좋고, "음, 눈을 자주 깜빡이시던데요, 미간에서 눈썹 끝까지 라인을 따라서 손으로 꾹꾹꾹 눌러 주시면 좋아요. 이렇게요. 한 번 해 보세요."라며 시범을 보인 뒤 따라하게 만드는 방법도 좋다. 겁먹지 말고, 부딪치자.

3. 제발, 시나리오는 그만 쓰자.

 

주변에서 "넌 눈이 너무 높아. 눈이 높아서 연애하기 어려운 거 아니야?"라고 이야기들 해 대니까, 정말 그대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눈이 높아서'라고 생각하는가? 눈이야 아무리 높아 봤자, 솔로부대에 오래 복무하다보면 알아서 하향조정 될 것이고, 진짜 문제는 그대가 연애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거다.

한 번 콩깍지가 씌워졌다 벗겨진 경험이 있으면, 그 후에는 본능적으로 콩깍지에 대한 방어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다. 만나게 되는 상대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연애 시나리오'를 쓴단 얘기다. '지금의 모습'만을 기준으로 한 '연애 시나리오'는 절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둘 중 하나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며 삐걱거리는 스토리가 되든가, 아니면 지금 바로 콩깍지가 씌지 않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한 채 결국 연애가 좌초되는 스토리가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 주변에 찾아왔던 괜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채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 일을 겪고도 '아, 역시,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애였어. 시작하지 않길 잘했어.'라며 스스로 위안만 할 뿐이다. 그리곤 '나에게 콩깍지를 씌워 줄 나의 여신님은 언제쯤 찾아올까?'라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한다. 

그대가 시나리오를 쓰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오 나의 여신님'을 만나게 될 가능성은 0.23%이하다. 그 시나리오를 쓰는 습관 때문에, 여신님이 나타나도 '난 안될 거야.'라며 상대의 주변만 맴도는 인공위성 자리를 예약하거나, '기회를 잡아야 해.'라며 조급증에 시달리다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만 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골드미스들을 위한 매뉴얼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엔 "시나리오 그만 쓰고, 촬영부터 들어가야 합니다."라는 얘기만 적어두기로 한다. 앞선 걱정, 나 홀로 상상 등을 하며 뒷걸음질 치는 짓은 이제 그만 집어 치우자.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받는 소개팅은 '영양가'가 없다는 걸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다리를 놔 주겠다는 지인의 제안이야 얼마든 받아들여도 되지만, 내 연애를 그저 운에 맡긴 채 누군가 밥상을 차려주길 바라는 건 그냥 돈 낭비,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성인 지인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면 그 지인보다 괜찮은 이성을 만나기 힘들고, 동성인 지인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면 자신이 복무하고 있는 어장(응?) 주인이나 자신의 어장에 있는 이성을 소개시켜 주는 까닭에 역시 연애로 발전하긴 어려워진다.

연애의 우기가 찾아오면 생각지도 못했던 이성의 관심을 받거나 애정전선이 하루가 멀다 하며 형성되어 기쁨의 비를 뿌리는 것처럼, 연애의 건기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애의 건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긴장의 끈과 정신줄을 아예 놓아 버리거나 권태에 빠져 허우적대진 말자. 그러다간 훗날 '연애가 뭐였지? 아, 누군가와 사귄다는 거였지. 근데 누군가와 사귄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 아닐까?'라며 실버타운 독거노인동에 입주신청서를 낼 위험이 있으니 말이다.

오늘, 잠시 후에라도 사랑에 풍덩, 빠질 준비가 된 모습으로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를 보내보자. 그대는 손 뻗어 잡고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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