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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외로운 연애와 새로운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K양에게

by 무한 2012. 3. 27.
외로운 연애와 새로운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K양에게
비 오는 날 민박집에서 다투는 모양
같다고 할까. 두둥실 뜬 기분으로 여행을 오긴 왔는데, 비가 오는 까닭에 밖엔 나갈 수 없고, 술 마시며 얘기 나누는 것도 지겨워진 상황.

여자 - 밖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고, 그러고 싶었어.
남자 - 지금 비 오잖아.
여자 - 아니, 지금 당장 그러자는 게 아니라 그러고 싶었다고.
남자 - 갑자기 왜 그래? 지금까지 술 마시고 얘기하면서 잘 놀았잖아.
여자 -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랬던 거지, 이러려고 온 건 아니잖아.
남자 - 왜 그러는데?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여자 -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잖아.
남자 - 나가자 그럼. 지금 우산 쓰고 나가면 되잖아.
여자 - 됐어. 비오는 데 지금 나가서 뭐해.
남자 - 진짜 이해를 못 하겠다. 여기도 싫고, 나가는 것도 싫다고?



저럴 땐 셔플 댄스 좀 추며, "지금 나가서 비 좀 맞고 싶은 사람은 세이 호오~"라고 외치면 되는 건데, 안타깝다. 여하튼 저런 순간들이 잦아진 커플은 서로를 '이해 못할 사람'이라든가 '연인이지만 날 외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K양 커플도 위의 노선을 탔다. 다투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화해하다 포기하고의 연속. 주말에 만나도 둘 다 별 계획이 없고, 그저 관성처럼 함께 있다가 집에 돌아와 월요일을 준비하는 연애. 다른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어디도 놀러가고 맛있는 무엇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할 동안, K양은 호주 어느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해 듣듯 듣고만 있어야 했다.


1. 안쓰러워서 한 재회가 문제.

 

잠시 독자 분들을 위해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남자친구가 K양 몰래 다른 여자가 포함된 모임에 나갔다. K양이 남자친구 폰에 뜬 카톡 메시지를 보고 정황을 눈치 챘는데, 남자친구는 발뺌을 했다. 남자들만 있는 모임이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K양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다. 적반하장으로 화까지 내가며. 분노한 K양은 남자친구가 핑계로 대는 친구에게 그 자리에서 연락해 확인을 했다. 남자친구의 거짓말이 들통 났다. 남자친구는 K양이 의심할까봐 거짓말을 했다는 이상한 핑계를 댔다. 무너진 신뢰에 K양은 연애에서 로그아웃.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은 K양도 곡기를 끊었다.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느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별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궁금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고, 이별이 슬프지도 않고, 허전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계속해서 안부 문자를 보내왔지만 K양은 답하지 않았다.

K양은 평온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몇 주를 보냈다. 남자친구가 찾아왔다. 남자친구는 K양 앞에 엎드려 빌었다.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용서해 줄 때까지 잘못을 빌 거라고 하며 말이다.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들어, 알았다고, 용서하겠다고 했어요."



고장 난 컴퓨터를 분해했다가 그냥 그대로 조립한 느낌이라고 할까. 모양은 예전과 같아졌지만, 그대로 다시 조립만 한 까닭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둘은 다시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K양의 마음은 저 멀리 떨어져 있다. 남자친구가 열심히 애정표현을 하고 K양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럴 수록 K양은 마음이 불편하다. 억지로 뭔가를 받는 것 같아서. 저렇게 노력하는 남자친구에게 보답을 해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움, 미련, 후회가 찾아오기 전의 홀가분함. 그 홀가분함을 넘고 난 뒤에 재회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저 사과하는 상대가 안쓰럽다는 이유로 한 재회는 억지로 구입한 물건과 같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애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상대는 애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이쪽에는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쌓이고 있다는 걸 모른 채로.


2. 새로운 남자에 대한 이야기.



K양의 마음은 이미 새로운 남자에게 기운 듯 보인다.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회색인 반면, 새로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오색빛깔 찬란한 무지개 색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 K양이 사용한 긍정적 의미의 형용사가 열 개를 넘었다.

여기서 K양의 합리화를 하나하나 분해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대신 새로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적어두고 싶다.

우선, 세련된 남자가 '이런 적 처음'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의하길 권한다. 무 써는 것만 봐도 요리 초보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초보라면 칼질이 그렇게 매끄럽고 빠를 수 없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장난스레 리드하며 빠른 고백으로 흘러가는 것. 게다가 그 고백도 물기 하나 없이 빳빳한 것.

그가 물 흐르듯 자신의 의사대로 만남을 진행시키는 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K양의 의사는 그의 순발력과 위기대처능력으로 인해 모두 힘을 잃었다. 순간순간 그에게 휘둘릴 땐 알 수 없지만, 그간의 일 전체를 살피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K양에게 홀딱 반한 것처럼 이야기 하는 남자가 연락도 잘 하지 않는 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만날 땐 "세상에 너 한 사람 뿐이야."라고 말하고, 돌아서면 연락 없는 남자. 무슨 냄새가 좀 나지 않는가?

저게 다 오해고, 상대의 '살랑살랑'이 그저 타고난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아직 상대의 별자리가 물고기자리인지 불고기자리인지(응?) 모르는 상태 아닌가.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나와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살피자. 사춘기 시절 홧김에 집 나가듯, 연애 할 때도 그럴 수 있다. 남자친구의 숨소리도 짜증나는 상황에서 다른 남자가 웃으며 다가오면 흔들릴 수 있단 얘기다. 결정은 K양이 하고 싶은 대로 하되, 스스로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확인한 뒤 선택하길 권한다. 서른, 마흔, 목적지 없이 그저 '갈아타기'만 하며 흘려보내면 곤란하니 말이다.


3. 남자친구가 물러섰으면 좋겠다.

 

K양의 이야기를 들으며 K양의 남자친구가 좀 물러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양의 신뢰는 회복되지 못한 상태이고, 작은 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들썩일 정도로 둘의 기반은 약하다. 그런데 K양의 남자친구는

"나 너랑 결혼하기로 결심했어."



따위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만두를 살 생각이 아직 없는데 시식코너 아주머니가 구운 만두를 계속 먹어보라고 하고, 두 봉 사면 한 봉 더 줄 테니까 얼른 사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느낌이다. 남자친구는 아마,

'이렇게 계속 만두를 주면, 감동해서라도 사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공짜 만두가 K양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열정은 만족이 아니라 부족에서 온다는 걸 남자친구가 얼른 깨달았으면 좋겠다. 연봉을 1월에 선불로 주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가 과연 잘 돌아갈까? 아니면 일 년 치 과외비를 선불로 받은 과외선생이, 과연 마지막 달까지 수업에 열심을 낼까? 그것도 중간에 그만둬도 미리 받은 돈을 반환할 의무가 없을 때 말이다. 

만두를 계속 공짜로 주니까, K양이 "이 새로운 사람과 사귀면 처음 사랑할 때의 마음으로 사귈 수 있을까요?", "한 때의 설렘만으로 끝나지 않고, 쭉 이어가는 게 가능할까요?" 따위의 얼빠진 얘기들만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지리산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요. 지리산 말고 한라산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거긴 좀 쉽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라는 황당한 질문 하듯 말이다. 


K양에겐, 어떤 선택을 하든 "이거 내 연애야."라는 책임감을 가지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연애가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 '나를 즐겁게 하는 남자' 등을 렌트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헌신적인 모습은 잘 봤으니 이제 이벤트도 좀 하고, 싸이에 올릴 만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도 데려가 주길 '바라기만' 하는 건 철저히 소비자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상대는 요리하고, K양은 맛보고 평가하기만 하는 연애. 그런 연애라면 그 누굴 데려다 놔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카톡에 추가되어 있는 사람들의 남김말을 보거나, 지인들의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며 '다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혼자 외롭지?'라는 생각을 시작하면 답이 없다. 남자친구에게 "날 언제나 외롭지 않은 상태로 유지해줘. 너랑 사귀고 있는데도 난 외로우니까."라고 말한다고 해결될 리 없고 말이다.

"남자친구가 동반자로서 훌륭하다는 건 알아요.
저에게 헌신적이고, 저희 집에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성실하고 책임감도 있고, 제 감정을 살펴 조심한다는 것도 알아요.
이 사람과 결혼하면 평탄하게 살 수 있는 있겠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사랑을 이 사람이 채워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친구에게 대답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고..."



'책임감이 있는 남자인가.'라는 항목에서 남자친구는 만점이지만,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인가.'라는 부분에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점수표를 잠시 내려두고, '난 책임감이 있는 여자인가?', '난 상대가 존경할 수 있는 여자인가?'라는 부분을 생각해 보길 권한다. 별 노력 없이 받기만 하는 연애는, 상대가 구애하는 초반엔 즐겁지만, 그 후엔 '이 사람도 아니야.'라며 방황만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나만큼 사랑스러운 남자, 또 없어요." 정도의 능청을 떠는 남자, 검은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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