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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바쁘며 냉소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B양, 해결책은?

by 무한 2012. 5. 14.

바쁘며 냉소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B양, 해결책은?
연애 매뉴얼을 발행하다보니, "그럼 무한님은 얼마나 연애를 잘 하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잘'이라는 기준이, 아무 갈등도 없으며 언제나 행복과 즐거움만 가득한 연애를 하는 것이라면, 그닥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잘'이라는 기준이, 자신의 형편없음을 깨달으며 문제의 해답을 함께 구하는 연애를 하는 것이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본선에 진출할 정도는 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테렌티우스의 말이다. 연애 사연을 읽으며 나는 종종 저 말을 떠올린다. 사연에 등장하는 남자들에게서 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연을 보낸 여자의 모습에서도 나와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가끔 거친 어조로 이야기 하는 매뉴얼이 있다면, 그건 내 형편없음을 가장 많이 닮은 사연이라 그렇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남에게서 보게 될 때 우리는 부끄러움까지도 분노로 승화시키지 않는가.

뜬금없이 일기 비슷한 글로 매뉴얼을 시작하게 된 것은, B양이 짝사랑을 하며 발견하는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들을 근거로 스스로를 '루저'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60점짜리 시험지를 손에 쥔 채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에게, 이번 시험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다음번에 같은 문제를 안 틀리면 되는 거다. 알고 있었지만 실수를 해서 틀린 거라고 변명하거나, 이 점수로 합격을 할 가능성이 있냐고 묻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시험지를 펼쳐, 틀린 문제를 하나하나 함께 살펴보자.


1. 수강생 벗어나기

 

그러니까 B양처럼

"그 친구는 좋은 학교를 나왔고, 저보다 아는 것도 훨씬 많아요.
제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인 줄 알고 저에게 세밀한 부분들까지 얘기하는데,
솔직히 두려워요. 제 머리가 텅텅 비었다는 걸 들킬 것 같아서..."



라는 얘기를 하면 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B양은 수강생의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는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모든 결정을 그에게 맡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로 부터 받아야 할 존중을 스스로 내팽개칠 위험성이 크단 얘기다.

지식이라는 건 해당 분야에 둥지를 틀고 호기심을 가진 채 오래 머물면 얻게 되는 것이다. 낯선 동네에 처음 가면 저 버스가 어디에 가는 버스인지 근처에 세탁소는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그 동네에 오래 살며 버스나 세탁소를 자주 이용한 사람은 잘 아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버스 노선도를 외우거나 드라이클리닝 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서 내 저녁식사 메뉴 결정권까지 그에게 위임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독 '교양'과 연관된 지식에 대해선 많은 대원들이 겁을 먹는다. 옥타비아누스나 헤겔, 단테, 바그너 같은 얘기를 하면 너무나 쉽게 "내가 졌어."라며 백기를 든다.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언젠가 술자리에서 묻지도 않은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지인이 있었다. 그는 '1895년 8월 20일'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늘어놓으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지인들이 그 이상한 강의 분위기를 바꿔보려 안주도 더 시키고 맥주도 리필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조선 말기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 누군 줄 알아?" 등의 질문을 해 가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질문을 하나 했다.

"혹시 친할아버지 생신이 몇 월 며칠 인지 알아?"



지식의 무용론 같은 걸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 호기심은 나도 닮고 싶고, 하나 둘 꿴 노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 누구라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글로 적어 DVD는커녕 CD 한 장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삶을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대에게 필요한 건, 자살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들려 줄 뒤르캠이 아니라, 그대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한 사람일 수 있으니 말이다. 


2. 냉소에 거울로 답하기



98년도 신춘문예 당선시집에서 읽었던 시가 떠오른다. 문채인 시인의 시인데, 제목은 '몸'이다.

몸은 쥐어짜 봐야
각설탕 하나만큼의 당분과
닭장 하나 칠할 수 있을 정도의 석회질과
장난감 카메라 플래시 한 방 터트릴 칼륨과
감기약 일회분 정도의 마그네슘
그리고,
성냥개비 2200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인과
비누 일곱 장을 만들 수 있는 지방으로
기껏 이루어져 있다는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캄캄하게 앞산을 가로막는
이 그리움의 질량은......

-문채인, <몸>



B양의 그 남자는 사회의 가식적인 인간관계를 비웃고, 사랑을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라 말하고, 믿음이라는 건 이기적인 속성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게 인간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긴 하다. 위의 시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을 생화학적으로 환원하면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엔 의식이 두뇌 세포에서 일어나는 양자물리학의 결과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역시 재미있지 않은가? 재미있긴 재미있는데, 그 '뿐이다'나 '불과하다'에 발목을 잡히면 다른 재미들을 맛보러 다니기가 힘들어 진다. 이에 관해선 빅터 프랭클이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뜨겁게 얘기하고 있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도록 하자. 유전자 풀에 뛰어들어 즐거움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 <가타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추천해 둔다.

여하튼 사람들의 모든 행위나 유대를 기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에게는 거울을 보여주자. 남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있을 뿐인 그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의 냉소마저 학습하려는 태도로 다가가선 곤란하다. 그의 '뿐이다'나 '불과하다'라는 말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대답해 주도록 하자.


3. 그 사람은 바쁘니까?



'퍼주는 여자'에 대한 글을 여러 편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은 바쁘거든요, 전 그 사람보다 좀 프리한 편이니까
제가 그 사람 사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서 만나고 있어요.
그가 자취를 하고 있어서 갈 때마다 과일이나 과자 등을 사가요.
그런데 혹시 제가 이렇게 해도 그 사람이 다른 여자랑 사귀는 거 아닐까요?
제가 고백을 해서 잡아야 하나요? 그 사람은 우리 관계를 친구로 생각해요.
이렇게 지내다 나중에 그가 다른 여자와 연애라도 하면 
여자친구와의 고민 뭐 그런 것도 들어줘야 하나 걱정도 되고..."



라는 얘길 하는 여성대원이 있다는 게 슬프다. "오늘 스승의 날이니까, 그에게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줘서 고맙다고 선물을 하세요."라고 얘기하면, "아 정말요? 뭘 사주는 게 좋을까요?"라고 물어 볼 기세다.

상대와 발걸음을 맞추자. 그가 '바쁜 남자'라면 그대도 '바쁜 여자'가 되어야 한다. 아는 것 많은 그에게 일종의 열등감까지 느낀다고 말한 그대 아닌가. 한 달에 책 한 권만 읽어도, 크리스마스 때쯤이면 진화론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신한 얘기가 아니란 걸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구처럼 "그럼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은 왜 사람으로 변하지 않아?"라는 갑갑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란 얘기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겠다면, <대학생이라면 읽어야 할 도서 100선>,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타임즈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 <노벨연구소 100대 작품> 등 다양한 추천 메뉴 중 하나를 골라서 읽길 권한다.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뭐야, 얘는 일기에 날씨도 안 쓰네?' 라는 생각만 들더라도 일단 읽자.

그리고 하나 더. 상대가 "넌 나에게 동성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고, 좋고, 편하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건 인터넷 채팅방에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오래 나눈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마냥 가깝고 좋고 편해서만은 안 된다. 어려운 부분이나 불편한 부분도 존재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예의나 존중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고, 그대의 호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대가 같은 행동을 하던 선배 대원들이 "넌 내게 엄마 같아."라는 말로 관계의 종말을 통보받았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직장생활에선 비전이 안 보인다며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할 거라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꺼내며 지인은

"그런데 내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이 자격증 따면 비전이 있는 걸까?"
"영어도 꽤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영어공부도 해야 되겠지?"
"오프라인 학원과 온라인 강의가 있던데, 어느 게 더 나을까?"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험이라 기출문제가 얼마 없던데, 어쩌지?"



등의 걱정을 함께 쏟아 놓았다. '한 번에, 완벽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거니 걱정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B양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오차 없이 실행해 나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일단 지금처럼 연락하며 지내다가, 변수가 나타나면 얼마든 수정해도 되는 일인데 말이다.

B양과 현재 가장 친한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를 곰곰이 살펴보길 바란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베스트가 되겠지.', '저렇게 하면 걔가 좋아하겠지.', '열심히 퍼주면 분명 보답하겠지?'라며 친해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허락되고 마음이 맞으면 만나고, 전할 이야기가 있으면 연락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가장 친해진 것 아닌가.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 넘어질까 두려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마음껏 달리길 바란다. 그대가 넘어지면 상대가 일으켜 주는 것, 그게 연애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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