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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사귈 생각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남자의 행동들

by 무한 2012. 5. 18.
사귈 생각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남자의 행동들
후라이데이 매뉴얼답게 밝고, 희망차며, 씐나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한 달이 넘도록 서로 호감만 가진 채 뜸들이고 있어요."


라는 내용의 사연을 골랐다. 하지만 사연에 포함된 100페이지가 넘는 카톡 대화를 세 번 정독한 결과, 매뉴얼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사귈 생각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남자의 행동들.

사연을 보낸 N양이 설렌 건 충분히 이해한다.

"고마워. 이 시간까지 나랑 얘기해줘서. 깨어있어 준 것도 고맙고."


라며 챙길 줄 아는 남자에게 흔들리지 않을 솔로부대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ㅋㅋㅋㅋ'를 남발하는 대화를 몇 시간 하다가 저런 얘기로 똭! 마무리를 하니,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도 들며 내일 또 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저게 저 사람에게 "사랑합니다. 고객님."처럼 몸에 익어 있는 립서비스라면 어떨까?

립! 서! 비! 스!


저 말을 립서비스라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으며, 믿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현재 며칠 째 연락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N양은 이 상황을 '밀당'이라 믿고 싶어 한다. N양의 주관적 해설이 담긴 상황설명을 들은 지인들은 "적극적으로 대시해라."라는 강경파와 "좀 더 기다려 봐라."라는 온건파로 나뉘어 있다. 사실 N양이 내게 사연을 보낸 이유도 둘 중 어느 의견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는 거였는데, 난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대신 아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1. 어리광으로 유도하기


연애에 소질이 없는 대원들은 대략 아래와 같은 어리광을 부린다.

"나 밥 사줘~"
"뭐해? 나 심심해~ 놀아줘~"



상대가 외로움에 찌들어 있는 상태라면 저 어리광도 먹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런 어리광은 '찌질함'으로 해석되고, 반복될 경우 상대에게 날 선 소리 한 번 들은 뒤 알아서 잠수를 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프로는 다르다. 그들은 부담의 선을 넘지 않고 어리광을 부린다.

"뭐야~ 나 버리고 그냥 가려고?"
"지금 나 재우는 거지? 나 재우고 뭐하려고~"
"어젠 나 버려두고 가더니, 잘 잔거야?"



딱 저 선 까지만 어리광을 부린다. 다음 대화로도 매끈하게 이어지는 어리광이다. 뭐, 반하지 않았기에 저런 절제가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저런 어리광을 사용해 이성과 대화를 하는 남자들은 꽤 많다. 그들은 친분이 있거나, 그냥 사회적인 관계로 만나는 사람에게도 어리광을 부린다. 흑심을 품고 저런 어리광을 부린다기 보다는, 사실 그냥 좀 능청스러운 거다. 그런데 일부 여성대원들은 저 어리광을 관심이나 호감이라고 착각한다. 마음이 없다면 저런 얘기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N양 역시 그러한 착각을 했다. 그녀는

"영화 보러 누구랑 가는데? 설마, 날 놔두고 다른 남자랑? ㅠ.ㅠ"


이라는 상대의 말을 질투로 해석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건 그냥 N양이 알고 지내는 남자가 없다는 걸 재확인하기 위한 질문이거나, "나랑은 영화 언제 보려고?"라는 말을 하기 위한 포석에 가깝다. '질투 역할극'이란 얘기다. 정말 질투심에 불타고 있다면 저런 장난을 칠 여유가 없다.

N양이 '서로 호감을 가진 채 뜸들이며 나눈 이야기'라고 말한 것 중 절반은 상대의 어리광이다. 내가 솔로부대원이고, 현재 심심한 상태고, 그런 와중에 이성과 꾸준히 카톡을 하고 있다면, 별 부담 없이 화장실에 앉아서도 보낼 수 있는 얘기들이다. "뭐야~ 난 주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 혼자 노래방 가야겠다. JK김동욱 모창이나 해야지. 미룐한 솨뢍이쥐~ 돱돱한 솨뢍이쥐~" 노래방 갈 약속을 잡는 건 일도 아니다.


2. 애칭으로 유대감 형성하기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기 가장 쉬운 방법은 둘 만의 호칭을 만드는 것이다. 이걸 눈치 챈 철학자 알튀세르는 '호명'에 대해 긴 이야기를 했고,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겸둥이, 꼬마, 잠순이, 고양이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대원들이 많을 것이다. 둘만 아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애칭이 생기고, 그 애칭을 부르면 처음엔 낯설어 하다가도 금방 적응이 된다. 짓궂은 애칭인 경우 상대가 복수하겠다며 이쪽에게도 애칭을 지어주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우리'가 형성되게 된다.

위에서 예로 든 애칭을 보면 알겠지만 전부 귀엽고 사랑스럽다. 상대가 최근 농가에 자주 출몰해 문제가 되는 멧돼지를 닮았다고 해도 '멧돼지'라는 별명은 붙이지 않는다. 그저 '여우'같은 별명을 붙여 줄 뿐이다. 한 지인이 그런 식으로 이성들에게 별명을 지어주며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그 지인은 낙타를 닮았는데, '여우'라고 불린 여성분은 그를 '아지오빠(강아지 오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난 그들이 동물의 분류를 왜곡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서로에게 애칭을 지어주는 것은 연애를 하는 대부분의 커플들이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게 '연애를 하게 될 징조'라고 생각하진 말길 바란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 너 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뭐 이런 동요도 있잖은가. 애칭은 그냥 애칭이다. 난 친한 지인들에게 모두 애칭을 지어줬는데, 그들과 연애를 하려고 애칭을 지어준 건 아니다.('주얼'같은 애칭을 지어줬다가 멀어진 지인도 있긴 하다. 비쥬얼의 약자냐, 쥬얼리의 약자냐 묻기에 '주먹을 부르는 얼굴'의 줄임말이라 설명했더니, 그 지인은 결혼식에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야구 보러 갔다가 옆 사람이 휘두른 팔에 맞은 적 있어서 붙여 준 별명이었는데.) 이성이 애칭으로 부른다고 무작정 사귈 준비를 하진 말길 권한다.


3. 칭찬으로 띄우기와 모성애 자극해 떠보기


N양의 사연에서 이상한 징후를 느낄 수 있는 것은 28페이지 이후부터의 진행이다. 상대의 '칭찬으로 띄우기'가 선을 밟는다. 립서비스에서 떡밥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너 귀여워. 그리고 너만큼 착한 여자 없을 걸. 내가 아는 여자 중 제일 괜찮아."


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이후의 대화에서 "넌 날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을 꺼내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N양이 당황하자 상대는 순발력을 발휘해 '기브 앤 테이크'의 칭찬이었다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 후에도 상대는 몇 번 '칭찬으로 띄우기'를 한 후 "난 어때?"의 말로 N양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한다.

진짜 문제는 N양의 사연 59페이지부터 시작된다. "나한테 좀 잘 해줘."라든가 "날 설레게 해줘."식의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뽀뽀'나 '포옹'등의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70페이지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상대가 하소연을 시작한다. 

상대 - 오늘은 그냥 내 얘기들 다 털어 놓고 싶다.
N양 - 말해요.
상대 - 카톡으로 무슨 말을 해. 그냥 술이나 마셔야지.
N양 - 술 먹지 말고 말해요. 다 들어 줄게요. 지금 어디에요?
상대 - 집이야. 올 수 있어?
N양 - 아, 이따가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요.
상대 - 친구랑 몇 시까지 있을 건데? 끝나고 우리 집으로 올래?
N양 - 친구랑 저녁 먹기로 한 거라서...
상대 - 그럼 친구랑 놀아. 난 그냥 술이나 마셔야지. 젤 독한 걸로.
N양 - 왜 그래요? 흠, 술 얘기 하니까 나도 마시고 싶네.
상대 - 그럼 지금 우리 집으로 와.



자취를 하고 있는 상대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N양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려 한다. 인스턴트만 먹는다는 얘기를 하다가 N양에게 집에 와서 요리를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88페이지에선 독립하고 싶다는 N양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상대는 그간 요리 할 줄 모른다며 징징대던 것과 달리, N양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면 먹고 싶은 요리를 다 해준다는 얘기도 한다.

상대가 집으로 오라고 한 이유는 정말 술 마시며 고민을 털어 놓기 위해서였고, 요리를 해달라고 한 건 정말 요리를 할 줄 몰라서였으며, 동거에 대한 이야기나 뽀뽀, 포옹 등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휘두른 일들 중 하나를 N양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연에 나타난 N양의 기세를 보아, 우리는 며칠, 혹은 몇 주 후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아이돌 그룹과 그들에게 게임을 선물한 팬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 그 이야기엔 오늘 매뉴얼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또 다른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디아블로3 한정판 구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ㅠ"


이라는 노골적인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N양에게 그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 보길 권한다. 모성애를 발휘해 게임을 선물했던 팬이, 아이돌 그룹 소속사의 뒤통수 가려운 해명 이후 어떤 글을 트위터에 올렸나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

"나도 병신이었다. 옘병."


이라는 그 팬의 말. 난 N양이 며칠, 혹은 몇 주 후 저 팬과 똑같은 깨달음(응?)을 얻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난 N양을 걱정하고, N양은 상대를 걱정하는 상황. 제가 상대 걱정 할 테니, N양은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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