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글모음/작가지망생으로살기

경찰차 쫓아가는 아주머니와 소화전 여는 청소년들

by 무한 2012. 9. 2.
경찰차 쫓아가는 아주머니와 소화전 여는 청소년들
지난 글 [파주의 갱스터들, 경찰이 출동한 아파트 사건 정리 1부]의 후속편을 좀 다른 제목으로 발행하기로 한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제목이 긴 까닭에 맨 마지막의 '부'라는 글자가 두 번째 줄로 내려오는 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글이나 열심히 쓰지 왜 그런 걸 신경 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줄 바뀜이 신발에 들어간 돌멩이처럼 자꾸 마음에 걸렸는데 제목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나란 남자, 이런 남자. 출발해 보자.


2. 경찰차 쫓아가는 아주머니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밖에서 고성이 들렸다. 발코니에 서서 내다보니 단지 입구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진 듯 했다. 요즘은 돈 내고 영화나 드라마, 쇼프로그램 등에서 싸움을 보는데 공짜로 싸움을 볼 수 있는 기회라니, 이런 건 직접 나가서 봐 줘야 한다.

물론 그냥 나가서 구경을 하면 곤란하다. 싸우느라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왕성해진 사람은 멀쩡히 서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줄넘기를 챙겨 나간다. 의도적으로 구경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줄넘기를 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그 자리에 가게 된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게다가 상대가 아무리 흥분했다 해도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사람에겐 쉽게 시비를 걸기 힘든 법이다.

줄넘기를 들고 싸움이 난 곳으로 다가가니 이미 경찰이 와 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택시를 타고 왔다가 택시비가 많이 나왔다며 못 내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아저씨는 그간 밀린 짜증을 모두 택시기사에게 풀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경찰 두 명이 택시기사와 아저씨를 떨어뜨려 놓으려 애쓰고 있었다. 아저씨가 웃통을 벗어가며 계속 택시기사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너 이 색히, 나 무시해? 어디 눈 똑바로 뜨고, 너 몇 살이야?"


C급 싸움이다. 길거리 싸움은 세 단계로 분류된다. A급은 말은 짧게, 행동은 크게 하는 타입이다.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대화를 안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B급은 말은 조리있게, 행동은 적당하게 하는 타입이다. 주로 아주머니들의 싸움이 이에 속하는데, 보다보면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기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C급은 말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위협만 하는 싸움이다. 화가 난 까닭에 상대를 몰아세우며 꼼짝 못하게 만들고 싶은데 언어구사능력이 떨어지니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만 하고, 때리면 일이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 먼저 맞을 작정으로 들이댄다. 주로 소속이나 나이를 묻거나 욕설을 하는 등의 일만 반복되다가 끝난다.

위의 경우가 딱 그렇다. 눈은 똑바로 안 뜨는 게 더 힘든데, 눈을 똑바로 뜬다고 시비를 거니 택시기사는 황당해 한다. 열 받은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며 자길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내다가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나이'를 앞세운다. 이와 비슷한 싸움 중 서울에서 목격한 재미있는 싸움이 있었다. K대 학생끼리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은 싸움이었다.

A - 야, 너 몇 학번이야?
B - 97학번이다. 넌 몇 학번이야?
A - ……
B - 몇 학번이냐고.
A - 나와. 나와서 얘기하자.



A는 99학번 이었다. 난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둘을 따라 나갔는데, A는 B에게 사과를 하며 담배를 권하고 있었다.

여하튼 택시기사와 아저씨는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했다.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사람들이 꽤 많이 창밖으로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저씨의 부인도 있었다. 주인공이 자기 남편임을 깨달은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왔다. 얼른 택시비만 달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경찰이 아주머니에게 택시비를 얼른 주고 상황을 마무리 하라고 권했다.

"주지 마. 저 색히한테 돈 주면, 오늘 다 끝이야. 다 죽어."


그 자리에서 돈을 주고 상황이 끝나버리면 스스로가 바보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들어 가. 집에 들어가 있어. 주지 마. 돈 주지 마."


돈을 건네려는 아주머니를 아저씨가 밀어서 넘어뜨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옆에 있던 경찰도 손을 쓰지 못했다. 경찰이 아주머니를 일으키느라 아저씨 옆에서 물러나자, 아저씨는 택시기사에게 돌진했다. 택시기사 근처에 있던 다른 경찰이 아저씨를 제지했다. 아저씨가 몸부림을 치는 까닭에 경찰의 안경이 떨어졌다. 아주머니를 일으킨 경찰이 달려와서 다시 아저씨를 붙잡았다. 아저씨를 붙잡은 경찰은 안경을 떨어뜨렸던 경찰을 힐끔 본 후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 - 택시비 못 주시겠다는 거죠?
아저씨 - 못 줘. 내가 왜 줘?
경찰 - 못 주시겠다는 거죠?
아저씨 - 안 줘.



경찰은 잽싸게, 몸부림치는 아저씨를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라며 아저씨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아저씨는 바닥에 엎어진 상태에서도 "그래, 가. 경찰서 가."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달려와서 택시비 줄 테니까 얼른 풀어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아저씨를 경찰차에 태웠다. 택시기사에게는 어디로 오면 된다고 말을 했다. 아주머니가 경찰을 붙들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애원했지만 경찰은 경찰차에 타 차문을 닫았다.

경찰차가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 아주머니는 울면서 경찰차를 따라갔다. 단지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느라 경찰차가 잠시 섰을 땐, 창문을 두드리며 얼른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이어 신호가 바뀌었고, 경찰차는 단지 앞 도로로 사라졌다. 경찰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울면서 터벅터벅 돌아왔다. 집으로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경찰서로 가야하는 건지 갈피를 못 잡고 서서 울던 아주머니는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내 마음이 시큰시큰 거리는 게 느껴졌다.


1. 소화전 여는 청소년들


오후 다섯 시쯤, 간디(애완견)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여중생이 내 옆을 지나갔다. 강아지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질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에 사람이 다가오면 난 최대한 간디의 목줄을 내 쪽으로 당기는데, 그 여중생은 간디가 있는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왔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쳐다보았다.

'흐익! 침을 흘리고 있잖아!'


그 여중생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눈을 한 채 중얼거리며 침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딘가가 아픈 학생일 거라고 난 생각했다.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까닭에 스스로도 힘겨워하는 그런 학생 말이다. 침을 흘리고 싶어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여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삶에 대한 경건함, 뭐 그런 게 잠시 스쳐가며 이를 한 번 꽉 물었다.

그런데 잠시 후, 여중생의 또래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몹시 지친 기색으로 아파트 현관에서 나왔다. 마라톤을 끝낸 사람보다 더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계단 난간에 기대 여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난 여학생이 지나간 쪽을 돌아보았는데, 여학생은 길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다가가서 일으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었을 때, 남학생이 나왔던 아파트 현관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경비아저씨가 나왔다. 경비아저씨는 남학생의 소매를 잡으며 내게 소리쳤다.

"개 좀 잡아줘요."


난 그 말을 듣고 즉시 간디를 품에 안았다. 묶여 있어서 안전한데 개를 잡아달라는 걸 보니, 경비아저씨가 강아지를 많이 무서워하는 타입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비아저씨는 남학생을 계단에 앉히고는 내 쪽으로 뛰어왔다. 아니, 내 쪽으로 뛰어오는 줄 알았는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곤 여학생에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겨우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학생의 소매를 잡았다.

'아, '개'가 아니라 '걔'를 잡아달란 얘기였구나.'


여학생을 잡은 경비아저씨는 다시 못 마땅한 얼굴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남학생에게로 갔다. 경비아저씨는 정신이 없는 듯 보이는 남학생도 강제로 일으켜 여학생과 함께 아파트 뒤 관리사무소로 끌고 갔다. 뒤이어 아까 그 아파트 현관에서 다른 경비 아저씨가 한 무리의 남녀 중학생들을 이끌고 내려왔다. 그 중 세 학생의 옷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들 몹시 지친 기색이었고, 눈은 풀려 있었다.

'집단 난투극 같은 걸 벌인 건가?'

 
무슨 일인가 궁금해 나도 관리사무소로 따라갔다. 관리사무소 앞엔 주저앉은 학생들과 벽에 기댄 학생들, 그리고 경찰과 경비아저씨들이 있었다. 

경비 - 꼭대기에 피 범벅이야. 
경찰 - 여기 애들이 아니라는 거죠?
경비 - 소화전도 죄다 열어 놓고. 
경찰 - 얘들이 다에요?
경비 - 이거 부모들을 잡아가야 돼.

 

서로 자기 얘기하기에 바쁜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계속 듣다보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한 무리의 중학생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뭔가를 하려 했다. 그런데 옥상 문이 잠겨 있자, 꼭대기 층과 옥상 사이에 있는 비상계단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거기서 환각제를 복용했다. 경비아저씨가 '피'라고 했던 건 소위 '빨간약'이라고 부르는 상처 치료제인데, 무리 중 하나가 상처치료를 위해서 소지하고 있다가 환각제를 한 후 바닥에 엎지른 것이다. 때문에 정신줄을 놓은 몇이 뒹굴다가 옷에 빨간 물이 들었다.

계단 쪽이 소란스럽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비아저씨가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올라가보니 꼭대기 층의 소화전이 모두 열려 있고, 옥상 쪽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거기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침을 흘리고 있는 걸 발견한 경비아저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곤 녀석들을 관리사무소로 끌고 내려왔다. 그 와중에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 녀석 중 하나가 '빨간약'을 가지고 있었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도망가려 하다 빨간약을 쏟은 것이다. 뒤이어 올라온 다른 경비아저씨는 당황한 나머지 그게 '피'라고 생각했고,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생각해 무전으로 위급상황을 알렸다. 내가 봤던 여학생과 남학생은 그 소란 속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온 까닭에 경비아저씨가 놓쳤던 것이다.

경찰이 녀석들을 잡아가는 것으로 사건이 모두 해결된 뒤, 경비아저씨들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자신들의 목격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중 아까 내게 여학생을 잡아달라고 말했던 경비아저씨도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다가가서 "아까 '걔'라고 하신 걸, 제가 '개'라고 잘못 들어서 그랬던 거였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선 빈 상자 하나를 찾아 안에 종이를 가득 담은 뒤 테잎으로 포장했다. 그러고는 현관문 밖의 소화전 안에 상자를 넣어 두었다. 행여 녀석들이 다시 찾아와 우리 집 소화전을 열어보게 되면, 잠깐이라도 설레라는 의미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 그 일을 잊고 있을 때쯤, 생각지도 않았던 반응이 왔다.

"누가 택배로 종이를 잔뜩 보내놨더라."


엄마 낚는 아들이 되고 말았다.


최근엔 우리 동 7층에 귀신이 산다는 얘기도 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아직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할 말이 없다. 사람이 안타는데도 불구하고 7층에서 문이 꼭 한 번 열리고, 1층에서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가 아무도 안탔음에도 불구하고 7층까지 올라가서 멈춰 선다는 소문이다. 밤엔 7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춘 후 차례대로 복도에 불이 켜진다고 한다.

우리 집이 701호라, 내가 요즘 이 소문 때문에 밤에 나가질 못하고 있다.



▲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추천은 무료!



<연관글>

오토바이 타고 무리지어 위협하는 무리 혼내주기 1부
열혈 구직 할머니와 귀농 할머니 이야기
아파트 하자보수 신청하러 갔다가 생긴 일
정든 일산 할렘가를 떠나며
피부관리사가 되려는 H양에게 벌어진 일들


<추천글>

남자에게 먼저 반한 여자가 지켜야 할 것들
연애에 관한 여자의 심한 착각들 Best 7
여자들이 연애하면 힘들어지는 남자유형 세 가지
남자들이 반하는 여자의 매력적인 모습들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자메시지' 공략방법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