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트레이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푸쉬업을 하면 어깨가 아팠다. 세 세트까지는 무난하게 하는데, 그 이상을 하면 오른쪽 어깨에 끊어질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힘을 다시 줄 수 없을 정도로. 쉬었다가 다시 하면 잠깐 괜찮긴 한데, 또 통증이 느껴졌다. 혹시 나와 같은 사례의 사람들이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운동 커뮤니티를 뒤적였다. 한 커뮤니티에서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전과 달리, 손이 어깨를 벗어나지 않게 몸 쪽으로 당긴 채 푸쉬업을 했다. 아프지 않았다. 그저 손을 한 뼘 정도 몸 쪽으로 당겼을 뿐인데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내게 도착한 솔로부대원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이 '한 뼘' 얘기를 해주고 싶을 때가 많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쉬었다 한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고, 장소만 바꿔서 한다고 통증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늘 호감만 갖다가 끝나는 연애'의 문제도 같기 때문이다. 더 들이대거나 덜 들이댄다고 되는 거 아니고, 다른 이성에게 다시 대시한다고 되는 거 아니다. 오묘한 그 '한 뼘'을 수정하기 전에는 계속 재방송 같은 연애만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한 뼘'을 수정해야 할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난 매장에 들어가 옷을 많이 입어보는 편은 아니다. 둘러보고 괜찮다 싶은 옷이 있으면 사기 직전에 한 번 입어볼 뿐이다. 자기 집 옷장에 있는 옷 입듯 이 옷 저 옷 다 입어보고, 빈손으로 나오면서 인사도 잘 하는 J군 만큼의 넉살은 없다. 여린마음 동호회 회장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더 여린마음인 친구를 본 적 있다. 그는 아예 매장엘 들어가지 못한다. 멀리서 쇼윈도를 바라보고는
라며 발걸음을 돌린다. 안에 몇몇 사람들이 옷을 고르고 있는 매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옷을 구입할 때도 절대 입어보지 않는다.
라며 바로 구입한다. 집에 와서 입어보곤 옷이 크면, 다음 날 다시 가서 한 치수 작은 옷으로 바꿔올 뿐이다. 자기에게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그 자리에서 입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그는 같이 쇼핑 간 사람들에게 몇 번 물어보는 것으로 어울리는지를 판단한다. 입어보라고 하면 무슨 범죄라도 권유받은 사람처럼 당황하며 서둘러 옷을 다시 걸어둔다.
이성과의 만남이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이 연애에서 저런 모습을 보인다. '아는 이성'과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칵테일 한 잔 한다고 해서 욕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혼자 지레 겁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부족'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을 때 '미숙한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 연애가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화를 상대에게 냄.
ⓒ 함께 밥 먹고 영화 봤으니, 이젠 사귀는 일만 남았다고 착각함.
ⓓ 립서비스를 할 줄 모르며 혼자 철학자가 되어 열변을 토함.
ⓔ 상대가 살짝 튕기기만 해도 목숨을 살려 달라며 매달림.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어볼 수 있고, 또 입어보고 별로면 안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겨우 두세 매장에 들어가 입어보지도 않고 옷 골라 나오는 걸로는 '스타일'을 찾을 수 없다. 스타일이 없으면, 운 좋게 연애를 시작해도 '의사소통'과 '데이트'에서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해 본 적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방법이 없다.
다음 달로 이월할 무료통화를 남기지 말자. 동성친구와 수다 떠는 것에는 그보다 더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최적화 되어 있으니, 아는 이성에게 전화를 걸기 바란다. 다짜고짜 여도 괜찮고, 무작정이어도 괜찮다. 실수할까봐 쫄지 말자. 실수해야 배우는 게 있는 거다.
큰 에피소드 없이도 이성과 10분 이상 통화 할 정도가 되면 작은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엔 파전도 먹고, 뮤지컬도 보고, 노래방도 가보는 거다. 괜히 누가 그런 만남에 참견하려고 하면 "넌 그냥 네 일에나 신경 써. 못 생겨가지고."라며 집에 가라고 하면 된다. 쑤시고 결리는 곳 없는 이 청춘은 이월이 안 된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만나자. 그럼 뭐가 돼도 된다.
대인관계에서 한 번 캐릭터가 설정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학창시절 '친구가 이야기 하면 반응만 하던 캐릭터'였다면, 훗날 동창회나 반창회에 나가서도 그 캐릭터로 모임에 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캐릭터가 유지되어야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스스로 노력하기도 한다. 어느 모임에서 '푼수'라는 캐릭터를 얻은 사람이 계속해서 '푼수 짓'에 열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핀잔을 그만큼 들었으면 기분이 나쁠만도 한데, 그는 그래야만 안심이 된다는 듯 허튼소리를 늘어놓는다.
내 지인 중 위의 '푼수 짓'에 열중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와 진지하게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엔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게 어색했는지, 그는
라고 말하듯 계속 허튼소리를 늘어놓았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장난이 끼어들면 어색한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자 그는 진지해졌다. 모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그도 파악하고 있었다. 가벼움을 걷어내고 나니 한 사람으로서의 그가 나타났다. '들러리'가 아닌 '주연'의 그가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실제의 가치 보다 이미지에 의해 좌우된다. 십만 원짜리 가방을 길거리 좌판에서 팔면 사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백화점에 가져다 놓으면 금방 매진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애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보낸 사연을 읽어보면 최소한 3등급 이상의 매력을 자랑하는 대원인데, 첨부된 카톡대화를 보면 9등급 정도의 캐릭터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나이' 때문에 주눅이 들어 일단 상대에게 무릎 꿇고 시작하는 경우와, '호감을 가진 게 나.'라는 것 때문에 상대에게 칼자루를 준 채 판결만 기다리는 경우다.
사연을 보자. 세 살 많은 누나에게 고백을 할 예정이라며 '효과적인 고백방법'을 알려달라는 대원이 있었다. 사연에 첨부된 카톡대화를 보니, 상대는 그 대원을 '꼬꼬마'로 여기는 상황이었다. 그 대원 역시 '꼬꼬마'캐릭터를 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인 고백방법을 묻는 얘기는
전 영어 잘 못하거든요. 토익 점수 없이 입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라는 질문과 같다. 연하남과 연애 중인 여자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저것과 달리, 이쪽을 그냥 '애'로 보는 상황에서 징징거리고 보채다가 고백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 솔직히, 말도 편하게 못 하는 상황에서 뭔 고백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누나, 저랑 사귀시겠어요?"라는 멘트라도 할 생각인가? 고백은 접어두고 말부터 좀 내려놓자. 보는 내가 다 무겁다.
'나이 차이가 나니 이래야 한다.', 혹은 '내가 더 좋아하니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고수하고 있는 캐릭터를 얼른 벗어나길 바란다. "A는 짝사랑 중입니다."라고 말하면 머릿속에 진부하고 전형적인 캐릭터가 하나 떠오를 것이다. 마음고생 중인 A의 캐릭터 말이다. 그 캐릭터를 뒤집어쓰고 관계에 뛰어들지 말란 얘기다. 잘 생각해 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까닭 없이 '내 연락을 상대가 불편해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는가? 제발 그 캐릭터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글이 너무 길어진 바람에 이어지는 내용은 2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혹시 매뉴얼을 읽다가 뜨끔한 기분이 들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말길 바란다. 당장은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 번 자신의 뭔가가 들춰진 기분이 들고 나면 그 이후엔 자신을 더욱 면밀히 볼 수 있게 된다. '징징거림'이란 표현 때문에 잠깐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그렇게 한 번 기분이 나쁘고 나면 다음부터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매달릴 때마다 '징징거림'이란 말이 떠올라 알아서 주의하게 된다.
저 위에서 소개한 여린마음동호회 친구처럼,
라며 미루지 말자. 이 글을 보며 '그래. 친구한테 전화 한 번 해볼까?'라며 잠깐 마음먹었다가, 점심 먹기도 전에 '에이, 나중에 하자. 나중에 시간 되면.'이라며 미룰 대원들이 있을 것이다. 나중은 늦다. 처음에만 어려운 법이지 한 번 하고 나면 그 다음은 놀라울 정도로 쉬울 테니 꼭 해보길 권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으며, 나 혼자 풀기 벅찰 것 같던 것도 함께 풀면 금방 풀린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음'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며!
▲ "무한님, 저도 연락하고 싶은데, 연락 할 이성이 없어요."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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