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사귈 것처럼 다가오다 마음이 식는 남자, 이유는?

by 무한 2012. 10. 25.
사귈 것처럼 다가오다 마음이 식는 남자
놀이터에서 함께 숨바꼭질 하다가 말도 없이 집에 가 버리는 남자. 이런 남자들 때문에 가로등이 꺼지는 시간까지 놀이터에 남아 상대가 어디 숨었나 찾는 여성대원들이 있다. 김소월의 <초혼>이었던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오늘은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대원들에게

"추운데 옷도 얇게 입고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세요."


라고 말하는 오지랖 넓은 동네 아저씨의 마음으로, 외투 벗어주듯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렇게 집에 간 사람 찾다 지쳐 밖에서 잠들면, 입 돌아간다. 입 돌아가면 연애가 더 어려우질 수 있으니, 더 고집부리지 말고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를 살펴보며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보자.


1. 사탕은 공짜가 아니다


맛있는 거 사줄게 잠깐 같이 좀 가자고 말하는 아저씨를 따라가지 말라고, 우리는 꼬꼬마 시절 모두 배웠다. 저걸 연애에 적용하면 이런 말이 된다.

"상대가 공짜로 주는 호의가 좋다고 덥석덥석 받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상대에게 "고마워요."라는 말을 할 일이 많아진다면, 뭔가 좀 잘못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연애는 일방적일 수 없으니까. 그 호의 이면에 검은 음모가 있을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라 하더라도 상대는 그대가 아닌 자신이 만든 '그대의 이미지'에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거나, 원하는 것이 있어서 베푸는 중일 수 있다.

"그렇게 저에게 잘 해준 사람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저런 얘기는 상대와 크리스마스를 두 번 정도 보내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상대는 자신이 베풀던 호의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헬스장을 하루 두 번씩 나간 적 있는 K군이 후회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K군은 몇 주간 자신의 모든 생활을 운동에 투자했다. 출근하기 전 일어나 헬스장에 가 운동을 했고, 퇴근하면 또 곧바로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빨리 몸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코피를 쏟는 것으로 과한 운동에 항의했고, 현저하게 떨어진 업무능력과 만성피로로 고통 받다가 결국 그는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매일 한 시간 이상 통화를 하거나, 퇴근하고 돌아와 자기 직전까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장담하는데, 그런 식으로 맺는 관계는 계절 하나도 버티지 못하고 지구력의 한계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로 저 시점에서 많은 여성대원들이 착각을 한다.

'그래, 이런 남자와 함께라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어.'
'나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보이고 챙겨주는 사람은 또 없을 거야.'



이건 마치 '이 사람은 100미터를 10초에 뛰네? 그러면 마라톤을 뛰어도 1시간 10분밖에 안 걸리겠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현재 마라톤 세계기록은 2시간 3분 38초다.) 마른 나뭇잎이 더 빨리, 그리고 맹렬히 타는 법이다. 그간 외로움에 더 지독하게 질려 있던 상대일수록 초반에 전력질주를 한다. 대개 이쯤에서 여성대원들이 '뭐라고 하시든 따르겠어요.'의 마음으로 자신이 완전히 반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린다. 그러면 그 사실을 확인한 상대는 거북이와 경주하던 토끼처럼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다. 이미 경기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2. 부담스러운 해바라기


소개팅 이후 가까워지는 그런 '중앙선' 정도의 만남이 아닌, 거의 연인과 다름없이 지내는 '골대 앞' 정도의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처음엔 이렇다.

남자 - 너 또 보고 싶다.
여자 - ^^
남자 - 보고 싶고, 생각나고, 왜 이러지?
여자 - 내일 또 보잖아요~ 오빠 얼른 자요. 늦었어요~
남자 - 칫. 싫어 안 잘 거야!
여자 - 귀여워 ><
남자 - 귀여우면 뽀뽀해줘~
여자 - 꺄아악-



얘들 카톡으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상대의 저런 드립을 다 받아주는 관계라면, 몇 주 지나지 않아 여자 쪽이 완전히 무장해제 되기 마련이다. 그냥 해제만 되면 그나마 나을 텐데, 그간 같이 살고 싶다느니, 안아 달라느니, 목소리 듣고 싶다느니 하며 달아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 까닭에, 거기에 맞춰 여자는 '해바라기' 포지션을 맡는다. 저 커플의 3주 후 대화를 보자.

여자 - 오빠 자?
여자 - 오빠 목소리 듣고 싶다.

남자 - 잠깐 잠들었다 깼어.
여자 - 피곤할 텐데 미안. 얼른 자~
남자 - 응
여자 - 오빠 달콤한 꿈 꿔요 ^^ 쪼옥~
남자 - 너도~
여자 - 오빤 나 뽀뽀 안 해줘?
남자 - 쪼옥~



시키지 않아도 이젠 먼저 쪽쪽 거리는 '해바라기'가 되고 만 것이다. 사실 저런 대화는 연인들이 연애 초반에 나누기 마련인데, 저 둘은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도 저런 대화를 나눴다. 물론 저건 둘의 '상상연애'인 까닭에 벌어진 일인데, 그건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보다 여기선 전력질주 하는 남자에게 길들여진 여자는 그 속도가 남자와 같아진다는 걸 유심히 보기 바란다.

속도를 수정한 남자와 달리 여자는 심장이 터질듯이 달린다. 계속해서 안부를 묻고, 예전엔 통화하던 시간만큼 통화를 하려 한다. 고작 한 주 전까지 '사랑의 대화'였던 두 사람의 통화는, 남자가 속도조절을 한 한 주 만에 '여자의 조잘조잘'로 변해버린다. 사실 이거 참 슬픈 얘기다. 같이 살고 싶다느니 어쩌느니 먼저 옆구리 찌르던 상대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라며 돌변해 버리는 것. 그렇게 혼자 집에 가 버리면, 남은 사람은 어떡하라고. 상대가 화장실 들어갈 때 한 약속들만 붙잡고 '해바라기' 하면 저렇게 된다.


3. 외로움 방지용 관계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관계,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내다 상대가 멀리 떠난 후에 가까워진 관계, 그리고 문자나 카톡 또는 통화 등으로만 친해진 관계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건 뭐 길게 적을 필요도 없는 게, 상대가 애정결핍 증상을 나타내면 100% '외로움 방지용 관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아래와 같다.

- 안부 물은 뒤 나머지 대화는 문자 스킨십으로 끝남.
- 뚜렷한 약속이나 계획 없이 허황된 이야기(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나눔.
- 대화의 대부분이 유아적 감정표현에 그침.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웃고 떠들 땐 별 문제 없지만, 저런 관계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한 방에 훅 간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 한 쪽이 지겨움을 느끼자 다른 한 쪽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끝.
- 힘들다고 해서 위로했더니 계속 힘들단 얘기만 하다가 끝.
- 외로움에서 벗어난 한 쪽이 이제 '진짜 연애'할 대상을 찾아가서 끝.
- 만났다가 현실과 상상의 절대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눈으로 확인하고 끝.
- "나 가면 재워줄 거야?" 라는 드립이 계속되자 눈치 채고 끝.
- 위의 드립이 황당하게도 받아들여 진 뒤, 재워주자 그걸로 끝.



전에도 한 번 말했지만, 한 달이 넘게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는데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건 감정만 열심히 소비했다는 증거다. 그건 불을 피울 때 장작은 넣지 않고, 계속 종이에만 불을 붙인 것과 같다. 종이가 금방 활활 타오르니 마음은 들뜨겠지만, 장작이 없으면 그 불을 유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상대가 종이만 넣는 것 같으면 이쪽에서라도 장작을 넣어가며 조절했어야 하는데, 위에서 소개한 커플은 안타깝게도 가진 종이 다 태워가며 불놀이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건 그냥 받아주는 이성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한 뒤, 남자고 연애고 등산을 통해 모든 걸 잊겠다는 대원이 있었다. 그 대원에게는 이생진 시인의 <핸드폰 속의 그리움>이란 시를 소개해 주고 싶다.

내가 뭐 이럴 필요가 있나
전 같으면
핸드폰이 없었던 전 같으면
그저 물소리나 새소리를 들으며 걸어갔을 산길인데
쉴 때마다
"여보세요 여긴 북한산인데
산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실은 지가 외로우니까
지가 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지가 빠진 사람을 핸드폰 속에 집어넣고 지가 빠진 것이니까
(중략)
"여보세요 여긴 북한산인데 산이 깊어질수록 당신이…"
혹시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당신이 자꾸 산보다 커져요"

- 이생진, <핸드폰 속의 그리움> 중에서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좋고, 조용하지 않아도 좋다. 번외편을 쓰다보면 자꾸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못된 습관이 생긴다. 그 자리에서 온 몸으로 맞서보자. 어디에도 기대지 말고. 찬바람이 다 불 때 까지만 버티고 나면, 어느 새 옆에 봄일 것이다.



▲ "그럼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떡하나요?" '교각살우'란 말이 있죠. 무소의 뿔처럼 갑시다!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