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헛똑똑이 전문직 골드미스들을 위한 연애조언

by 무한 2012. 11. 14.
헛똑똑이 전문직 골드미스들을 위한 연애조언
친구가 청바지를 하나 샀다. 어디 제품이라고 하던데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상표는 기억 못 하겠고, 전통 직조방식으로 만든 청바지라고 했다. 입다 보면 자기 몸에 맞게 자연적으로 워싱이 형성되는 바지라 멋쟁이들은 다 그 바지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난 뭐 그 바지에 특별히 매력을 못 느끼겠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불편해 보였다. 친구는 앉거나 일어서는 걸 잘 못했다. 무슨 문제 있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바지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 뻣뻣하다고 했다. '멋을 내려면 힘든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식당에 들어갔을 때에는 더욱 놀랐다. 친구의 신발 발목 부분과 양말이 전부 파랗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까닭을 물었더니, 친구는 그 바지가 원래 그런 식으로 입으며 물을 빼야 하는 바지라고 했다. 몇 달 정도 세탁 없이 그렇게 입고 다니면 예쁘게 물이 빠진다고 했다.

멋을 낼 생각으로 저런 인내를 감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입는 사람의 몸짓을 바지가 고스란히 주름으로 새겨둔다는 매력 때문에 사실 나도 저 바지를 살까 고민했었다.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바지를 하나 갖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테니까. 물론, 구입하진 않았다. 저 바지를 길들이는 과정 중엔, 핏을 살리기 위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저 바지를 입은 채 들어가 있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럴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1. 전문직 골드미스와 청바지


전문직 골드미스들의 자존감은 모르겠지만, 자존심만은 대단하다. 내게 사연을 보내는 전문직 골드미스들의 대부분이 자신을

- 외모 평균 이상
- 교육 받을 만큼 받음
- 연봉 평균보다 많이 벎



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그러니까 난 대우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바닥에 깔아 둔다. 일종의 귀족의식이라고 할까. 일반적인 여성이라면 하지 않을, "어찌 네가 감히!" 라는 말을 그녀들은 어렵지 않게 사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일반 여성들과의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래에서 하겠지만, 그녀들이 가진 높은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시종'인 남자가 필요하다. 청바지로 치자면 뻣뻣함을 감수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또 그냥 '시종'이어서는 안 된다. 수준이 맞아야 하므로 같은 '귀족'이어야 한다. 역시 청바지로 치자면, 불편함과 동시에 이염(물듦)까지 다 감당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쉽게 말해, 그녀들은 자신을 인내하면서도 사랑해 줄 남자를 찾는단 얘기다.

위에서 말했지만 난 청바지를 사지 않았다. 그냥 이염 될 일 없고, 워싱처리가 이미 되어있어 입기 편한 청바지를 입기로 한 것이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남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매력을 느껴 푹 빠졌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대의 시종 역할을 하면서까지 만나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건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왕 '멋을 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청바지'를 사기로 마음먹은 거라면, 보다 조건이 좋은 청바지를 살 것이다. 전문직 골드미스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라는 걸 그대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스펙 얘기가 나왔으니 거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골드미스들이 내미는 저 조건에 추가해

- 집에 개인병원 개업해 줄 수 있는 돈이 있음
- 당진에 땅 오만 평 있음
- 내 명의로 건물이 하나 있음



따위의 조건을 내 걸 수도 있다. 기준을 세워서 커트라인 정하고 스스로가 평균 이상이라 얘기할 거라면, 그 기준의 아래만 보지 말고 위도 좀 보라는 뜻에서 하는 얘기다. 자꾸 "난 평균 이상."만 얘기하는 대원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자존심은 퍼스트 클래스에 있는데, 위축된 자존감이 이코노미 클래스에 있으면 어디에 앉아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만 하게 될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월은 계속 흐르고 말이다.


2. 발만 담그면 옷이 젖질 않는다


평균 이 주 정도, 그러니까 세 번의 만남을 가질 때까지는 거의 문제가 없다. 그녀들이 자신을 설명할 때 하는

"낯을 가리는 편이 아니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나눠요.
친구들과의 관계도 괜찮은 편이고…."



라는 말처럼, 이야기도 잘 나누고 상대와의 관계도 괜찮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들은 다양한 대화 화제와 전문성이 겸비된 이야기들로 대화를 잘 풀어 간다. 어느 피로연 자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음식만 먹고 있을 타입은 분명 아니다. 예의바르며 당당하고, 침묵이 찾아온 순간에 리드할 줄 아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저런 방식의 대화가 고객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대할 때 유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한 발짝 더 다가서서 나누는 대화가 필요하다. 7시에 만나 저녁을 먹고 10시쯤 헤어지는 게 '사회용 대화'라면, 같은 시간에 만나 10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게 '연애용 대화'다. '화기애애'한 걸 넘어 빠져 들어야 한단 얘기다. 

상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더 다가가야 한다. 상대의 머리와 발이 보이는 거리에선 눈동자가 어떻게 생겼나 살펴볼 수 없는 법 아닌가. 처음엔 전체를, 그 다음엔 상반신을, 그 다음엔 이목구비를, 그 다음엔 눈동자를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다가가야 한다. 추억 얘기로 예를 들어보자.

전     체 - 외국에 다녀온 적 있다.
상 반 신 - 견문을 넓힌다고 외국에 나간 적 있는데, 살만 쪄서 왔다.
이목구비 - 당시 우리 집은 이러이러 했는데, 그럼에도 유학을 갔다. 가서는 어땠다.
눈 동 자 - 어렸을 때부터 어떠어떠해서, 이러저러 하게 유학을 갔다. 거기서는….



일반적인 경우 '상반신' 정도의 깊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사회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 괜찮은데, 왜 연애는 어렵냐?"라고 묻는 대원들이 많은데, 연애는 '이목구비' 이상의 깊이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가족들은 모르지만 친구들은 아는 비밀, 또는 친구들은 모르지만 가족들은 아는 비밀 뭐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게 상대와도 형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대원들이 상대에게 그저 '소개팅남' 정도의 캐릭터만 부여하고 멀리 떨어져 상대의 전체만 관망한다.

저런 대화 없이 만나서 백날 고기 썰고 와인 마셔봐야, 회사 그만두면 볼 일 없어지는 거래처 직원과의 관계처럼 되어버릴 뿐이다. '소개팅'이란 업무를 해결하고자 만났다가, 가능성이 안 보이면 손 툭툭 털고 '다음 소개팅'에 나가 또 같은 얘기 반복해야 된단 얘기다. 헛도는 건 그만 하고, 이제 제대로 한번 상대와 꽉 맞물려 보자. 


3. 연애의 주적들


언젠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아 잠깐, 이걸 말하면 너무 드러나서 곤란하니까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 '예비 전문직 골드미스'라고 하자. 여하튼 그녀와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는 이상한 특권의식과 근거 없이 높기만 한 자존심을 테이블에 가득 꺼내 놨다. 난 대체 그녀가 그런 걸 어떻게 수집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그녀는

"아는 언니가 그러던데요?"
"다 그렇지 않아요?"
"제 주변에선 다 이런데요?"



라고 답했다. 거기에 그녀 자신의 생각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지인 중 '남자친구에게 짜증을 내 휘어잡은 것을 자랑이라며 말하는 언니'가 한 얘기를 듣고, 그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언니'에 대해 더 물어보니, 그녀는 딱 '시중 들 남자를 구한 케이스' 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생 때 알고 지내던 여섯 살 터울의 춘규형이 생각났다. 그 형은 고등학생 때 집을 나온 민경이 누나랑 살고 있었는데, 언젠가 운정역 근처에서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준 적 있다.

"야, 여자들은 다 내숭이야. 겁먹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형의 조언을 따랐다면, 아마 난 지금쯤 발목에 착 감기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을 거다. '아는 언니'가 한 조언은 법에 저촉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대가 '시종'같은 남자가 아닌 경우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한 대원이 들었던 '아는 언니의 연애평'을 보자.

"데리러 안 온대? 그건 좀 아니다. 너한테 반하진 않은 것 같은데?"


분명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저 말 한 마디로 인해 모든 것이 틀어졌다. 저 얘기를 들은 대원은 자신이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상대의 마음을 의심했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 날 상대가 "지혜씨, 어디세요? 지금 끝나서 출발합니다~."라는 카톡을 보내자,

'이런 건 전화로 해야 하는 말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괘씸하게 여기며 카톡 확인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상대가 전화를 해 와 둘은 만났다. 그런데 만나서는 그녀가 장갑 끼는 동안 상대가 백을 들어주지 않자, 그녀는 '참나, 도와주지도 않네.'라며 비뚤어진 마음이 되어 만남 내내 모난 소리만 해 댔다. 그게 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주적들의 연애조언은, 상대의 8할을 차지하는 장점은 못 보게 만들고 2할에 해당하는 단점만 보게 만든다. 게다가 에누리가 덧붙여진 그들의 조언을 분별없이 들으면, 그 얘기에 대한 이상한 열등감 같은 게 형성되어 자신과 상대 모두를 괴롭히게 된다. 시다, 맵다, 짜다, 달다 라는 조언에 다 맞추려다가 결국 아무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고 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상대의 단점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순간 관계는 끝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다짜고짜 대우부터 받으려고 하면, 그대에게 반해 간이나 쓸개를 내주겠다는 사람을 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하더라도 콩깍지가 벗겨지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라며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말이다.

그대가 받아야 하는 건 '대우'가 아니라 '존중'이다. 그리고 존중은 상대를 존중 할 때만 받을 수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 입기 불편하고 이염까지 되는 청바지를 입는 이유는 움직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함께 나이 먹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보상이 없다고 해도 그 바지를 입을 사람이 있을까? 대우만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 보상 없는 바지와 같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대시도 꾸준히 받는 편이에요." 모델하우스에도 사람은 많이 와요. 집이 되세요.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