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를 만나면 벌어지는 일들

by 무한 2012. 11. 15.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를 만나면 벌어지는 일들
프린터를 하나 잘못 사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2년 전 난 프린터 때문에 힘겹던 당시의 상황을 [A/S 때문에 고통받은 적 없으신가요?]라는 글로 옮긴 적이 있다. 이후 세 번의 A/S를 받았지만 그 프린터는 여전히 컬러인쇄가 안 된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프린터 때문에 센터에 자꾸 전화를 걸자 담당자가 날 '블랙컨슈머(보상을 목적으로 악의적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 취급했다는 것이다. 수리를 받아도 인쇄가 안 되어 전화를 한 것인데, 담당자는 거기에 대고 '원하는 게 뭐냐'는 얘기를 했다.




▲ 내가 원하는 첫 번째. (출처 - MBC 무한도전)


남들과 불화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큰일에도 오순도순 얘기하며, 온순한 성품을 미덕으로 하는 안동 장(張)씨인 나는, 참았다.(응?) 그래서 지금은 흑백인쇄만 하며 살고 있다.

연애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난다.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를 만난 여성대원들은 상대에게

"너 성격 진짜 이상해."
"너랑 나랑은 진짜 성격 안 맞는 것 같아. 내가 어디까지 맞춰야 해?"
"너 어느 때 보면 사이코패스같은 거 알아?"



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분명 원인제공은 상대가 한 것이고, 이쪽은 상대에게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반응이라곤 블랙컨슈머 취급인 것이다.

한 두어 달 만나다 상대가 저런 이야기를 꺼낸 거라면 집어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이쪽을 성격파탄자라고 말하는 사람과 무슨 연애를 하겠는가. 그런데 저게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잠복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 프린터도 무상수리기간에는 됐다 안 됐다를 반복하며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무상수리기간이 끝나자 프린터는 배 째라며 드러누워 버렸다. 

이 년쯤 만나다 저런 소리를 들으면 눈앞의 상황을 수습하려 애만 쓰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살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게 된다. 그로인해 재기가 불가능 할 정도로 마음 곳곳이 부서진다. 오랜 기간 우리에 갇혀 조련사의 채찍을 맞던 곰과 비슷해진다고 하면 될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훗날 자유가 주어져도 뭘 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그런 대원들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대원들이 재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오늘 이야기를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1. 나 진짜 화났다?


연애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남자 - 전화 온 줄 몰랐어. 미안해. 애들이 딱 한 판(당구)만 더 치자고 해서.
여자 - 됐어.
남자 - 계속 폰 보고 있다가 마지막 판에 잠깐 주머니에 넣어놔서….
여자 - 그럼 늦어진다고 말해주면 되잖아. 
         난 회사는 끝났는데 집에 가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화하고 톡 계속 보내잖아. 약속해 놓고 어떻게 그래?

남자 - 진짜 미안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화 풀어.
여자 - (침묵)



이런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모범답안에 대해서는 나중에 커플생활매뉴얼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선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남자가 위의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살펴보자. 그는

"아무리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말을 안 하고 있는 건,
날 무시한다는 거 아냐? 넌 지금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는데,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됐다, 됐고. 그냥 집에 들어가라."



라고 말한다. 이게 참 당황스런 부분인데, 일종의 맞불작전이라고 할까. 여자친구가 화를 내면 남자친구는 얼른 화 풀라며 달래다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도 화를 풀지 않으니 더 큰 화를 내 상황을 엎어버리는 것이다.

여자친구가 화를 내는 건 '달래면 풀어져야 할 일'이고, 자신이 화를 내는 건 '이건 진짜 큰 문제라 화를 내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내가 한 실수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네가 한 실수는 '그래선 안 되는 일'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대원들이 저 이상한 '논점 옮기기'에 쉽게 휘둘린다. 때문에 먼저 아픔을 겪는 것도 본인이고, 정당하게 따지다가 상대의 '논점 옮기기'에 당해 상처를 입는 것도 본인이며, 나중에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것도 본인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사람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또한 무슨 불만이 있든 그 불만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상대가 상황을 엎어버리니, 늘 위축되어 지내게 된다. 둘의 연애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클수록 더욱 낮은 자세로 사과를 하게 된다. 매달리기도 하며 말이다. 심한 경우, 상대가 폭력을 휘둘러도 헤어지지 못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다.


2. 똥 묻은 남자, 겨 묻은 여자


위의 대화를 나눈 남자는 여자친구를 강남역 10번 출구에 놔두고 그냥 집에 가 버렸다. 자길 무시하는 거냐고 화를 내던 사람이, 상대를 무시하고 집에 가 버린 것이다. 남자가 대화에서

"넌 지금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잖아!"


라고 했던가. 그런데 사실 따져보면, 그건 남자친구의 주특기였다.

- 지하철에서 싸우다가 그냥 내려서 가 버리기
- 좀 생각해 봐야겠다며 폰 꺼 놓고 잠수타기
- 버스 타고 가면서 귀에 이어폰 꽂고 노래 듣기
- 기분 상했다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 나 화났으니까, 넌 집에나 가라고 윽박지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판단기능이 약해진 여자친구는, 사과하고 만다. 헤어지긴 싫으니까. 지키고 싶으니까. 간혹 이 무겁고 답이 없어 보이는 관계를 내려두려고 하는 대원들도 있는데, 그런 대원들에게는 또 상대가 약을 들고 찾아온다. 병 주고 약 주고.

- 택시요금 할증 붙는 시간에 "자?" 라고 연락하기
- 어떻게 우리 만남을 단번에 끝내냐고, 연락하라고 하기
- 생각해 보니 자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며 사과하기
- 네가 승낙만 하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다며 여지 남기기
- 정말 헤어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되묻기



감정에 호소하며 앞선 일들을 그냥 덮어버리거나, '이별도 네 책임'이라는 듯 요상하게 말을 바꿔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여자가 좀 단호하고 명확하게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아픈 나머지 여자는 남자가 내민 약부터 받아먹고 만다. 늦은 밤 그렇게 연락하다가 택시를 타고 달려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영화를 한편 찍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둘의 앞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다시 튀어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에 금이라도 내 놨어야 하는 건데, 그냥 덮어두고 모른 척 했으니 재회의 기쁨이 걷히고 나면 다시 그 모습이 드러난다.


3. 유아적 반응


"됐어. 몰라. 안 해. 마음대로 해." 식의 유아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바로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들이 저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 남자친구 어머니 생신에 선물을 사가지고 갔던 한 대원의 사연을 보자. 나오는 길에 나눈 둘의 대화다.

여자 - 나 좀 챙겨줄 수 있는 거잖아. 난 멀뚱하게 앉아만 있었는데.
남자 - 뭘 챙겨? 또 뭐가 불만이야?
여자 - 자기 혼자 과일 먹고, 티비만 보고, 대화도 안 했잖아.
남자 - 얘기 잘 하고 나와서 왜 그래?
여자 - 어머니 앞에서도 왜 그래? 화난 사람처럼? 내가 다 무안하게.
남자 - 뭐가? 나 원래 그래. 지금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가겠다는데 밥 먹고 가라고 계속 그러니까 짜증나잖아.
         그게 불만이야? 진짜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너 가야 해서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잘못이라고?
         됐고, 그냥 집에 가라.
         너 내가 전에도 그랬지, 분위기 깨는 거 너라고.
         지금도 기분 좋게 웃으며 갈 수 있었는데,
         또 네가 분위기 깼잖아. 아 진짜, 넌 성격이 왜 그러냐?



물론, 위의 대화는 쌍방과실이라 할 수 있다. 여자가 '다음부터는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부드럽게 얘기했으면 저렇게 극단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 대화가 마치 상대가 발을 밟았다고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저 대화의 마지막엔

"누가 너보고 선물하래?"


라는 말까지 나왔다. 역시나 저 싸움은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여자친구가 사과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결말이 났는데, 나중에 또 다른 문제로 싸움이 있었을 때 남자는 이런 말을 했다.

"넌 내가 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거야? 너는 왜 말을 안 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황당할 수가 없다. 말을 하면 "나더러 어쩌라고."라는 반응을 보였으면서, 나중엔 "왜 말을 안 해?'라고 묻는다. 전에 말한 이상한 직장상사 얘기 기억하는가?

A. 왜 나한테 말 안 물어보고 임의대로 처리해?
B. 이런 것까지 내가 다 말해줘야 해? 알아서 못 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시달리다 못 견디겠어서 헤어지려 결심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상대가 약 들고 찾아오고, 다시 만나면 또 이런 일이 발생하고. 미운 정도 정이라 한 해 두 해 만나다 보니 정들고, 이 만남이 잘못되면 연애고 뭐고 영영 다시 못 할 것 같고, 그렇게 총체적 난국에 접어들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인내하겠다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건 완전 잘못된 생각이다.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갔으면 돌멩이를 빼 내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참고 견디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다.

가르쳐 주자. 상대의 어느 부분이 날 아프게 하는지에 대해 꺼내놓고 말해야 한다. 그 말을 꺼내면 상대가 떠날 것 같다고 걱정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 얘기 해서 떠날 사람 같으면 얘기 하지 않아도 떠난다. 여자친구의 이해와 인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내다가, 나중엔 어떻게든 단점을 들추어 내 헤어질 구실을 마련할 것이다.

아, 혹시 오해할까봐 하는 얘긴데, 가르쳐 주라는 게 J양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J양의 구남친은 외롭고 심심해서 계속 찔러보는 거지,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 말이다. 아직까지도 그는 J양이 하는 말은 회피하고 자기감정이 어떤지만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네가 만나자고 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라며 끝까지 고자세를 취하고 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모른 척 하며 살진 말자는 얘길 하며 '내 편한 세상'을 구축하려 할 뿐이다.

함께 했던 시간이 더는 우스워지지 않도록, 거기서 그만 손 흔들자. 안녕.



▲ 퀴즈킹 하시는 분들은 카톡 아이디 normalog 추가해 주세요. 코인 상부상조!




<연관글>

연애할 때 꺼내면 헤어지기 쉬운 말들
바람기 있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접근루트
친해지고 싶은 여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찔러보는 남자와 호감 있는 남자 뭐가 다를까?
앓게되면 괴로운 병, 연애 조급증


<추천글>

유부남과 '진짜사랑'한다던 동네 누나
엄마가 신뢰하는 박사님과 냉장고 이야기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