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편한 연애 하려는 남자를 만난 여자
아직까지 속이 울렁거린다. A4용지 300장에 가까운 사연을 다 읽었다. 한 커플이 나눈 5개월간의 카톡대화를 전부 읽었더니, 그들과 친구가 된 것 같다. 함께 밥 먹으러 가면 남자가 어느 자리에 앉을 지, 여자가 무슨 메뉴를 고를 지까지 알 것 같다.
어쩌면 좋을까. 난 두 사람이 곧 헤어질 거라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남자가 이쪽에게 호감을 가진 건 맞는데, M양(32세, 사연의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임하는 순간 이 연애는 폭파될 것이다. 남자가 M양에게 반한 건, M양이 수동적이고 얌전하며, 이끄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M양이 적극적으로 나가면 연애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결혼? 그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둘이 어쩌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연애에 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K씨는 다른 여자와 7년을 사귀다가 헤어졌다. 7년을 사귀고 헤어졌다는 건, 상대의 막장까지 온몸으로 겪어봤단 얘기다. 옛여친이 보였을 여러 행동들에 대해 '그녀 인간성의 문제, 혹은 한계'라고 결론짓는 것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포기하고, 참고, 양보한 까닭에 그나마 오래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성격 결함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를, 의리와 정으로 견딜 만큼 견뎌냈다고 말이다. 그녀와의 연애는 비전도, 희망도, 즐거움도, 기쁨도 없다고 생각해 남자는 이별을 선고했다.
K씨가 맞다고 하자. 저 둘 중 하나가 내게 사연을 보낸 게 아니니 누가 누굴 어떻게 말하든 가타부타 할 생각은 없다. K씨의 말대로 그녀가 '성격 결함과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자. 여하튼 그는 그 연애와 이별로 인해 지쳤고, 이제 누구를 만난다면 그 여자는 무조건 '헤어진 그녀와는 반대인 여자'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M양을 만났다. M양은 그를 만나기 전에 '책임회피 하는 폭력남'과 연애했었다. M양의 구남친은 아무 대책 없이 즐거움만 좇는 생활을 하고, 갈등이 일어나면 모든 문제가 M양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며, 연애의 끄트머리엔 폭력까지 휘두른 남자였다.
M양도 지쳐 있었다. 이전 남친의 독설들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난데다가,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상황에 이제야 '새로운 남자를 만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에 나름 세워 두었던 '내 남자의 기준' 같은 건 집어치워 버리고, '열린 마음(응?)'으로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K씨를 만나게 되었다.
M양에게 K씨는 축복이었다. 그는 안정된 기반을 마련해 두었고, 여느 남자들처럼(M양은 K씨를 만나기 전 몇 번 2~3주짜리 썸을 탄 이력이 있다.) 들이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정중했다. 사실 난 M양이 '정중함'을 말하는 부분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전 남자친구가 워낙 형편없었기에 K씨가 정중해 보인 것이지, 내가 보기엔 딱히 정중하다고 할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M양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셈 치자.
K씨 역시 M양이 마음에 들었다. M양이 온순하며 순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여자친구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 같은 걸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거나, 잔소리를 해대며 K씨가 하려는 일들에 발목을 잡았다. K씨는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매사에 호응해주길 바랐는데, 그녀는 그냥 비평가였다. 그가 이전 여자친구를 가리켜 '정말 기 센 여자'라고 한 것을 보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어느 타입의 여자를 말하는지 딱 알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5개월 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순하게 생각해 "남자도 원하는 여자를 찾았고, 여자도 원하는 남자를 찾았으니 된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 대원이 분명 있을 텐데, 왜 그게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성을 짝사랑하는 대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친절한 표정으로 말을 몇 마디 시키면, 그 디자이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대원들이 많다. 자신이 본 그 이미지만을 가지고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그 헤어디자이너는 그런 식의 태도를 취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갈등을 겪을 일도 없고, 언제나 이쪽에게 신경을 집중하며 재미없는 얘기를 해도 웃어줄 거라 상상한다.
K씨의 착각은 위에서 말한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착각'과 닮아 있다. 그는 M양이 '원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5개월 간 그에게 친절한 미소만 지었고, 대부분의 대화가 그를 중심으로 둔
따위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사실 M양이 그에게 반해서 한 행동이나 말이 아니다. 그녀의 위기의식이 불러온 맹목적 친절이며, 이번 만남에선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헌신이다. 다시 말해 '서비스'라 할 수 있다.
M양이라고 해서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녀 역시 그렇지 않으면서도, '서비스'를 베풀지 않으면 당장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열심히 헌신한다. M양은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M양이 한 거의 대부분의 멘트가 '오빠를 위한 주례사'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상대를 챙긴다. 거의 납작 엎드려서는 '헤헤' 웃는 표정으로 상대를 대한다. 상대는 그걸 'M양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중이고 말이다.
반대로 M양은 상대가 자신에게 거창한 선물들도 망설임 없이 사 주고, 조건으로만 따지면 더 나은 여자들이 있을 텐데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에 행복해 하고 있다.
참 많이 고민하고 하는 얘긴데, 어쨌든 한 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니 적도록 하겠다. 내가 보기에 그 선물들은 "나 이 정도의 선물도 팍팍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M양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했다기 보다는, '내가 이걸 주면 감동하겠지?'라는 생각에 선물을 산 것이다. 난 그의 선물이 '팬서비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M양을 사람으로서 알아가려는 태도가 아닌, 대충 그렇게 조금 쥐어 줘 놓고 이제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려는 것 같다고 할까. 내가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를 훈련시킬 때 하던 것과 비슷하다. "앉아!"라고 말해서 간디가 앉으면 간식 하나 주는 그런.
시간이 지나며 M양도 이 사실을 서서히 눈치 채고 있다. 때문에 육감으로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애써 부정하고 싶기에 사연을 보낸 것이리라. 쿨하다고 생각한 그의 모습이 사실은 편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것이며, 그에게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그가 연인을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한다는 단점도 발견했다. 그는 M양이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관계가 결혼해도 쭉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중이다. 반면, M양은 "이제 제 원래성격 대로 해도 되나요?"라며 '서비스'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가?
우선, M양이 바보연기를 하루빨리 그만 두어야 한다. 만점짜리 여자처럼 보이려고 하는 거, 그게 바보연기다. 한 직장상사가 자기가 원하는 '부하직원상'에 대해 얘기 한다고 해보자.
저 말대로 하면 '까라면 까고, 알아서 기는 직원'이 좋은 부하직원이 될 수 있다. '남자가 바라는 여자'같은 조건을 다 갖추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그냥 알아서 집 잘 지키며, 언제든 간식 주면 꼬리 흔드는 애완동물 되기 십상이다.
무슨 마음으로 저런 얘기를 한 건지는 잘 안다. 그런데 데이트는 늘 동네 식당에서 하면서, 상대가 카메라도 바꾸고, 차도 바꾸고 하며 취미생활에는 돈과 열정을 쏟고 있다고 해보자. 그래도 M양은 만족 하겠는가? M양은 사랑 받는 여자가 된다면 나머지는 다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한 거지만, K씨는 저 말을 오해했다.
라며 M양과는 '편한 연애'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예전 여자친구는 취미생활에 돈과 시간 쏟는다고 길이길이 날뛰었는데, M양이라면 이해해 줄 것 같다고.
바보연기를 하니 바보로 본 거다. K씨는 이제 연애에 풍덩 뛰어들지 않고 발만 좀 담그고 싶어 하는 건데, M양은 거기에 만족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과 행동을 하니,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연애에 임한 것이다. 앞으로 M양이 진짜로 원하는 것들과 상대가 고치길 바라는 점들을 얘기하면, 장담하는데 그 즉시 이 연애는 폭파될 것이다.
하아. 솔직히 난 이 연애를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남자가 이미 '외모 지적질'의 단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이쯤 진행되었으면 화타가 와도 고치기 힘들다. '내 말 잘 듣고 따르는 여자면 돼'의 상태에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았던가!'의 배부른 단계까지 온 것이다. 내가 M양이라면, 살 빼라는 K씨의 말에 스트레스 받아 혼자 열 내기보다는 살 대신, 이 황당한 관계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할 것 같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M양의 말을 다시 가져와 보자.
이젠 K씨가 언제 만나자고 말도 안 하고, 그저 살 빼라는 얘기만 덩그러니 하니 M양은 조급해 진 거다. 이런 상황에서 M양이 마음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면, 아쉬운 여자(늘 강조하듯 아쉬운 여자가 쉬운 여자다.)가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저런 얘기는 앞으로 90세가 되기 전까지는 다시 하지 말길 권한다. 90세가 되면 마음껏 해도 좋으니 그때까지만 참길 바란다. 사랑 받기 바쁜 여자들은 저런 걸 물을 시간이 없다. 한가한 여자들만 저런 걸 묻는다. 90세가 되면 좀 한가해져도 괜찮으니, 그때까진 참도록 하자.
▲ "80세에 해도 되잖아요? ㅋㅋ" 아직 게이트볼장에서 꽃피는 사랑얘기를 모르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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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속이 울렁거린다. A4용지 300장에 가까운 사연을 다 읽었다. 한 커플이 나눈 5개월간의 카톡대화를 전부 읽었더니, 그들과 친구가 된 것 같다. 함께 밥 먹으러 가면 남자가 어느 자리에 앉을 지, 여자가 무슨 메뉴를 고를 지까지 알 것 같다.
"무한님께서 괜찮다고, 잘 되고 있다고 해주시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좋을까. 난 두 사람이 곧 헤어질 거라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오빠가 절 좋아하는 게 맞는 거죠?
이제 저도 제 마음을 표현하고, 연애에 적극적으로 임해도 괜찮은 거죠?"
이제 저도 제 마음을 표현하고, 연애에 적극적으로 임해도 괜찮은 거죠?"
남자가 이쪽에게 호감을 가진 건 맞는데, M양(32세, 사연의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임하는 순간 이 연애는 폭파될 것이다. 남자가 M양에게 반한 건, M양이 수동적이고 얌전하며, 이끄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M양이 적극적으로 나가면 연애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결혼? 그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둘이 어쩌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연애에 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지친 남자와 순종적인 여자
K씨는 다른 여자와 7년을 사귀다가 헤어졌다. 7년을 사귀고 헤어졌다는 건, 상대의 막장까지 온몸으로 겪어봤단 얘기다. 옛여친이 보였을 여러 행동들에 대해 '그녀 인간성의 문제, 혹은 한계'라고 결론짓는 것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포기하고, 참고, 양보한 까닭에 그나마 오래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성격 결함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를, 의리와 정으로 견딜 만큼 견뎌냈다고 말이다. 그녀와의 연애는 비전도, 희망도, 즐거움도, 기쁨도 없다고 생각해 남자는 이별을 선고했다.
K씨가 맞다고 하자. 저 둘 중 하나가 내게 사연을 보낸 게 아니니 누가 누굴 어떻게 말하든 가타부타 할 생각은 없다. K씨의 말대로 그녀가 '성격 결함과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자. 여하튼 그는 그 연애와 이별로 인해 지쳤고, 이제 누구를 만난다면 그 여자는 무조건 '헤어진 그녀와는 반대인 여자'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M양을 만났다. M양은 그를 만나기 전에 '책임회피 하는 폭력남'과 연애했었다. M양의 구남친은 아무 대책 없이 즐거움만 좇는 생활을 하고, 갈등이 일어나면 모든 문제가 M양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며, 연애의 끄트머리엔 폭력까지 휘두른 남자였다.
M양도 지쳐 있었다. 이전 남친의 독설들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난데다가,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상황에 이제야 '새로운 남자를 만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에 나름 세워 두었던 '내 남자의 기준' 같은 건 집어치워 버리고, '열린 마음(응?)'으로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K씨를 만나게 되었다.
M양에게 K씨는 축복이었다. 그는 안정된 기반을 마련해 두었고, 여느 남자들처럼(M양은 K씨를 만나기 전 몇 번 2~3주짜리 썸을 탄 이력이 있다.) 들이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정중했다. 사실 난 M양이 '정중함'을 말하는 부분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전 남자친구가 워낙 형편없었기에 K씨가 정중해 보인 것이지, 내가 보기엔 딱히 정중하다고 할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M양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셈 치자.
K씨 역시 M양이 마음에 들었다. M양이 온순하며 순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여자친구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 같은 걸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거나, 잔소리를 해대며 K씨가 하려는 일들에 발목을 잡았다. K씨는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매사에 호응해주길 바랐는데, 그녀는 그냥 비평가였다. 그가 이전 여자친구를 가리켜 '정말 기 센 여자'라고 한 것을 보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어느 타입의 여자를 말하는지 딱 알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5개월 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순하게 생각해 "남자도 원하는 여자를 찾았고, 여자도 원하는 남자를 찾았으니 된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 대원이 분명 있을 텐데, 왜 그게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 내가 그린 사람 VS 원래 그런 사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성을 짝사랑하는 대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친절한 표정으로 말을 몇 마디 시키면, 그 디자이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대원들이 많다. 자신이 본 그 이미지만을 가지고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그 헤어디자이너는 그런 식의 태도를 취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갈등을 겪을 일도 없고, 언제나 이쪽에게 신경을 집중하며 재미없는 얘기를 해도 웃어줄 거라 상상한다.
K씨의 착각은 위에서 말한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착각'과 닮아 있다. 그는 M양이 '원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5개월 간 그에게 친절한 미소만 지었고, 대부분의 대화가 그를 중심으로 둔
"오빠는 어쩜 그런 것도 잘해요?"
"오빠 밥 먹었어요? 꼭 챙겨 드세요~"
"오빠 이건 홍삼 내린 건데, 아침저녁으로 드시면 돼요."
"오빠 밥 먹었어요? 꼭 챙겨 드세요~"
"오빠 이건 홍삼 내린 건데, 아침저녁으로 드시면 돼요."
따위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사실 M양이 그에게 반해서 한 행동이나 말이 아니다. 그녀의 위기의식이 불러온 맹목적 친절이며, 이번 만남에선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헌신이다. 다시 말해 '서비스'라 할 수 있다.
M양이라고 해서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녀 역시 그렇지 않으면서도, '서비스'를 베풀지 않으면 당장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열심히 헌신한다. M양은
"제가 뭘 그렇게 헌신한 거죠? 많이 챙겨주거나 그런 건 없는데요?"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M양이 한 거의 대부분의 멘트가 '오빠를 위한 주례사'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상대를 챙긴다. 거의 납작 엎드려서는 '헤헤' 웃는 표정으로 상대를 대한다. 상대는 그걸 'M양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중이고 말이다.
반대로 M양은 상대가 자신에게 거창한 선물들도 망설임 없이 사 주고, 조건으로만 따지면 더 나은 여자들이 있을 텐데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에 행복해 하고 있다.
참 많이 고민하고 하는 얘긴데, 어쨌든 한 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니 적도록 하겠다. 내가 보기에 그 선물들은 "나 이 정도의 선물도 팍팍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M양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했다기 보다는, '내가 이걸 주면 감동하겠지?'라는 생각에 선물을 산 것이다. 난 그의 선물이 '팬서비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M양을 사람으로서 알아가려는 태도가 아닌, 대충 그렇게 조금 쥐어 줘 놓고 이제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려는 것 같다고 할까. 내가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를 훈련시킬 때 하던 것과 비슷하다. "앉아!"라고 말해서 간디가 앉으면 간식 하나 주는 그런.
시간이 지나며 M양도 이 사실을 서서히 눈치 채고 있다. 때문에 육감으로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애써 부정하고 싶기에 사연을 보낸 것이리라. 쿨하다고 생각한 그의 모습이 사실은 편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것이며, 그에게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그가 연인을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한다는 단점도 발견했다. 그는 M양이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관계가 결혼해도 쭉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중이다. 반면, M양은 "이제 제 원래성격 대로 해도 되나요?"라며 '서비스'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가?
3. 해결책은?
우선, M양이 바보연기를 하루빨리 그만 두어야 한다. 만점짜리 여자처럼 보이려고 하는 거, 그게 바보연기다. 한 직장상사가 자기가 원하는 '부하직원상'에 대해 얘기 한다고 해보자.
ⓐ 다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도적으로 하는 직원.
ⓑ 항상 예의를 갖추며 자기생활 보다는 직장을 우선으로 두는 직원.
ⓒ 자기 계발에 힘쓰며 항상 배우려는 태도로 일하는 직원.
ⓓ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고 늘 신속한 보고가 습관화 된 직원.
ⓔ 말대꾸 하지 않으며 지시한 업무를 웃는 얼굴로 하는 직원.
ⓑ 항상 예의를 갖추며 자기생활 보다는 직장을 우선으로 두는 직원.
ⓒ 자기 계발에 힘쓰며 항상 배우려는 태도로 일하는 직원.
ⓓ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고 늘 신속한 보고가 습관화 된 직원.
ⓔ 말대꾸 하지 않으며 지시한 업무를 웃는 얼굴로 하는 직원.
저 말대로 하면 '까라면 까고, 알아서 기는 직원'이 좋은 부하직원이 될 수 있다. '남자가 바라는 여자'같은 조건을 다 갖추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그냥 알아서 집 잘 지키며, 언제든 간식 주면 꼬리 흔드는 애완동물 되기 십상이다.
"전 오빠에게 비싼 레스토랑 안 다니고 동네 식당에서 밥 먹어도 좋다고…."
무슨 마음으로 저런 얘기를 한 건지는 잘 안다. 그런데 데이트는 늘 동네 식당에서 하면서, 상대가 카메라도 바꾸고, 차도 바꾸고 하며 취미생활에는 돈과 열정을 쏟고 있다고 해보자. 그래도 M양은 만족 하겠는가? M양은 사랑 받는 여자가 된다면 나머지는 다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한 거지만, K씨는 저 말을 오해했다.
'아, 얘는 그 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 한다는 얘기구나. 원래 그런 애야.'
라며 M양과는 '편한 연애'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예전 여자친구는 취미생활에 돈과 시간 쏟는다고 길이길이 날뛰었는데, M양이라면 이해해 줄 것 같다고.
"제가 소박하고, 순박하며, 착해서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바보연기를 하니 바보로 본 거다. K씨는 이제 연애에 풍덩 뛰어들지 않고 발만 좀 담그고 싶어 하는 건데, M양은 거기에 만족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과 행동을 하니,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연애에 임한 것이다. 앞으로 M양이 진짜로 원하는 것들과 상대가 고치길 바라는 점들을 얘기하면, 장담하는데 그 즉시 이 연애는 폭파될 것이다.
하아. 솔직히 난 이 연애를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남자가 이미 '외모 지적질'의 단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이쯤 진행되었으면 화타가 와도 고치기 힘들다. '내 말 잘 듣고 따르는 여자면 돼'의 상태에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았던가!'의 배부른 단계까지 온 것이다. 내가 M양이라면, 살 빼라는 K씨의 말에 스트레스 받아 혼자 열 내기보다는 살 대신, 이 황당한 관계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할 것 같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M양의 말을 다시 가져와 보자.
"오빠가 절 좋아하는 게 맞는 거죠?
이제 저도 제 마음을 표현하고, 연애에 적극적으로 임해도 괜찮은 거죠?"
이제 저도 제 마음을 표현하고, 연애에 적극적으로 임해도 괜찮은 거죠?"
이젠 K씨가 언제 만나자고 말도 안 하고, 그저 살 빼라는 얘기만 덩그러니 하니 M양은 조급해 진 거다. 이런 상황에서 M양이 마음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면, 아쉬운 여자(늘 강조하듯 아쉬운 여자가 쉬운 여자다.)가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오빠는 뭐뭐뭐한 여자(자신이 해당되는 얘기) 어떻게 생각해요?"
"난 이런 부분이 별로고 저런 부분도 별로인 여자인데, 오빤 내가 왜 좋아요?"
"오빤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전 하루 종일 오빠 생각 했는데."
"난 이런 부분이 별로고 저런 부분도 별로인 여자인데, 오빤 내가 왜 좋아요?"
"오빤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전 하루 종일 오빠 생각 했는데."
저런 얘기는 앞으로 90세가 되기 전까지는 다시 하지 말길 권한다. 90세가 되면 마음껏 해도 좋으니 그때까지만 참길 바란다. 사랑 받기 바쁜 여자들은 저런 걸 물을 시간이 없다. 한가한 여자들만 저런 걸 묻는다. 90세가 되면 좀 한가해져도 괜찮으니, 그때까진 참도록 하자.
▲ "80세에 해도 되잖아요? ㅋㅋ" 아직 게이트볼장에서 꽃피는 사랑얘기를 모르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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