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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남자친구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여자, 문제는?

by 무한 2013. 2. 14.
남자친구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여자, 문제는?
이 커플에게 벌어진 참사의 최초 발화지점은, 대략 10분 정도의 '잠들기 전 나눈 카톡대화'다.

J양 - 그럼 난 내년쯤 드레스를? (부끄)
남친 - 헛, 그게 결혼 얘기는 아니었는데….
J양 - 응 나두 장난친 거~ ㅎㅎ
남친 - (놀람)
J양 - 뭘 그리 놀라! 오빤 결혼 얘기 나오면 불편해 하더라?
남친 - 음, 좀 진지하게 해야 하는 얘기잖아 결혼은.
J양 - 결혼은? 그럼 나랑 연애만 하고 결혼은 생각 안 한다는 얘기?
남친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연애라는 게 사귀면서 서로가 어떤지도 보고
남친 - 또 결혼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후에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J양 - 그러니까 오빠 말은 나한테 확신이 없다는 거잖아.
남친 - 확신이라는 건…,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천천히 생기는 거 아닐까?
J양 - 난 늦어도 3년 정도 후에는 결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J양 - 그럼 지금까지 나 혼자 꿈꾼 거네?
남친 - 음…. 너도 알다시피 내 지금 상황도 그렇고, 아직 공부 중이라….
J양 - 암튼 알았어. 오빠도 생각할 게 많겠지. 나 졸려. 먼저 잘게~
남친 - 응, 잘자용~



저 대화 이후 J양의 자아는 급속도로 분열한다. 겉으로 "그랬쪄용? 우쭈쭈쭈~"하는 상냥한 '핑크'와 속으로 '지금 나를 재고 있다 이거지? 확신이 천천히 생겨? 웃기시네. 지금 없는 확신이 시간 지난다고 생기냐? 즐길 것 즐기고 복잡한 건 나중에 생각하시겠다?'라고 생각하는 '그레이'로 나뉜다.

난 이 이야기를 '대화 이후'를 중점으로 풀어가고 싶었다. 분열된 J양이 벌이는 끔찍한 일들을 예로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J양이 이미 이 만남은 포기했고, 스스로 자신의 '날 선 모습'을 반성하고 있는 까닭에, 그걸 또 얘기하는 건 (독자들에겐 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J양에겐 지겨운 반복만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그는 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J양을 부담스러워 했나?'에 대한 이유가 담겨있는 '대화 이전'을 중점으로 살펴볼까 한다. J양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상대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그 얘기를 좀 해보자.


1. 별 생각 없이 던진 불평들


남자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여자가 꺼낸 문제에 대해 '그걸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곧 자신의 능력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장갑 안 끼고 나왔는데 오늘 날씨 장난 아니야. 손 얼겠어~"
"아침에 찬바람 쐬어서 그런지 감기기운 있는 것 같아. 목도 아프고."
"내 폰 자꾸 멈춘다. 또 재부팅 했어. 이거 왜 이러지?"



J양은 저런 말들을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리액션을 바라며 건넨 것이지만, 남자는 본능적으로 저 말을 듣는 즉시

'그래서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단 얘기다. 못 믿겠다면 지금 즉시 시험해 보기 바란다. 주변의 아는 남자에게

"점심시간에 우체국 가서 택배 부치고 왔는데,
택배박스가 엄청 무거운데다가 날도 추워서 지금 몸이 얼었어."



라고 톡을 보내면 된다. 그럼 열에 아홉은

"요즘엔 택배회사에 전화하면 가지러 오는데, 뭐 하러 가서 부쳤어?"


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참 멋없지만 어쩔 수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남자는 대개 저렇다. 그대가 바란 대답은 "에구, 고생했네. 얼른 몸 좀 녹여." 정도의, '정보는 담겨있지 않아도 좋으니 다정한 대답'일 텐데 말이다.

J양 커플의 대화는, 8할이 'J양이 불평을 던지면 남자친구가 받는 식의 캐치볼'로 시작되었다.(물론 그 이후엔 웃긴 사진 서로 주고받으며 크크크 흐흐흐 하는 대화가 이어지긴 한다.) 이런 상황은 남자로 하여금 여자친구를 '늘 돌봐주며 챙겨야 하는 어린아이'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

"연인이라면 당연히 돌봐주고 챙겨주는, 그런 부분도 감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난 그런 독자에게 "그대가 한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가 계속해서 엄마를 불러댄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TV채널을 바꿔 달라거나, 휴지를 갖다 달라거나, 과자 봉지를 열어달라면서 부른다면?"이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2. 확인 받으려는 태도


위에서 말한 '아이'의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아이의 경우 '내 아이'라는 모성애와, 일정기간 돌보면 아이 자신에게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을 능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기쁜 마음으로 돌볼 수 있다. 휴지를 갖다 달라는 요청에 "휴지 식탁 위에 있잖아."라고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 스스로 휴지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위에서 말한 '늘 돌봐주며 챙겨야 하는 여자친구'의 경우에선 좀 다르다. 이전과 달리 '스스로'를 강조하면 마음이 식었다고 받아들이거나, 남자친구의 냉정한 태도에 상처부터 입는다. 더 큰 문제는 아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게 원천봉쇄를 한다는 것이다. 봉쇄작업은 '확인 받기'를 통해서 이뤄진다.

J양의 경우를 보자. 위에서 소개한 그녀의 "아침에 찬바람 쐬어서 그런지 감기기운 있는 것 같아. 목도 아프고."라는 멘트와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 말에 남자친구가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보이자 J양은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나 아프면 오빠가 간호해 줄 거지?"


남자는 저 말을 듣는 순간,

'하아, 이거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감기기운 있고 목도 아프다는 얘기가 뭘 바라고 꺼낸 건지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거기다가 나중에 또 아프면 간호까지 해달라고 한다. 이건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이니 당연히 "Yes."라고 대답은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엔 의무감과 부담감이 쌓이게 된다.

상대에게 계속 확인받으려 하는 태도는, 아무 영양가도 없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질문공세로 이어진다.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

"근데 오빠 안 내키는데 나 땜에 한 건 아니지?"


저 물음에 "사실 안 내키는데 너 때문에 한 거야."라고 대답할 남자가 지구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내가 한 요리 다 맛있게 먹어줄 거지?"같은 물음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서로 지긋지긋 하다며 헤어지면 먼지보다 가벼워지고 마는 게 약속인데, 그런 약속 계속 하느라 상대에게 의무감과 부담감을 주진 말자. 약속해서 될 일 같으면, 내가 노멀로그 상단에 "사귀면 바로 약속 리스트 만들어서 공증부터 받으세요!"라고 적어두었을 것이다.


3. 이상적 연애를 위한 연출


우선, J양이 "더욱 상냥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J양이 사연에서 보인 태도는 상냥함이 아니다. 아, 7~8세 기준에서 보면 그게 상냥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J양이 남자친구에게 베풀었다는 상냥함은 그냥, 유치원교사의 약간 억지스러운

"강힘찬 어린이~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 줄래요→오↗?"


라는 태도와 비슷할 뿐이다. 유치원교사 코스프레 한 거지, 상냥함을 베푼 게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J양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어 무섭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여자가 아닌 이상, 언제나 유치원교사가 아이들 대하듯 남자친구를 대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런데 J양은 일반적인 여자라면 서운함을 표시할만한 상황에서도 웃으며 애교를 부린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좀 더 참자.'


라며 뭔가를 벼르고 있는 사람의 느낌이랄까. 사향은 아무리 여러 겹으로 싸도 냄새가 난다는 말처럼, 분명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속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남자가 단순하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아주 가끔씩 부렸다는 J양의 성질. 그것만 봐도 남자친구는 어렵지 않게 J양이 '본심'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J양의 '지킬'이고, 감추고 있는 것은 '하이드'라는 걸 눈치 챘단 얘기다.

"그날 내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어이없었어."


남자친구는 J양의 저 말을 듣는 순간 '얜 두 마음으로 연애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간 J양이 보였던 웃음과 애교는 전부 유치원교사 코스프레라는 것 역시 눈치 챘을 것이다. 몇 번의 다툼으로 인해 막연하게 혼자 품었던 의혹(J양이 본심을 숨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까지 발견했는데,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J양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연애에 대해 말은 잘 한다. 그런데 말만 잘 할 뿐이지, 실제 J양의 연애를 들여다보면

[내 이상적인 연애, 결혼을 위해 필요한 것]

나 : 유치원교사 코스프레 하는 것. 

상대 : 내 이상에 들어맞는 남자일 것. 다 갖춰야 함. 
         (내게 확신을 가지고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는 것 필수.)



라는 괴상한 공식이 보인다. '상대와 많은 것을 함께 이뤄간다'는 게 겨우 식당예약 상의해서 하는 것인가? '생활을 공유한다'는 게 고작 마트에서 세일하는 물건 사왔다는 얘기를 상대에게 풀어놓는 것인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계속 참고만 있다가, 남자친구가 결혼에 대해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니, J양은 그간의 코스프레가 다 헛고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담아 둔 말들을 모두 쏟아낸 것이다. 그 중에는

"크리스마스엔 무슨 쓰레기 같은 걸 선물이라고 주질 않나. 진짜 황당하더라."


라는 말도 있다. 저 말 나오기 하루 전에 "나중에 나 아프면 오빠가 간호해 줄 거지?"라는 말이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솔직히 좀 소름끼친다. 화가 난 까닭에 말투가 달라지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기분이 상하자 이전과는 정반대의 태도로 치닫는 건 그저 무서울 뿐이다. 어차피 J양도 재회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고 하니 길게 적진 않겠다. 다만, 다음 사람에게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고만 적어 두겠다.

J양은 결혼을 염두에 둔 채 '연애 할 상대'를 신중히 고르는 까닭에, 그 기준에 대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사람만 J양의 기준에 맞을 게 아니라, J양 역시 그 사람의 기준에 맞아야 한다는 거다. 예컨대 누군가와 사귀던 중 그가 화났다고 '네가 준 쓰레기 같은 선물'이란 말을 하면, J양은 그 말을 듣고도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겠는가? 이제 '구남친'이 된 J양의 남자친구는 J양이 화가 나서 모진 말을 할 때마다

"화가 나더라도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돌변해서 날카로운 말을 할 때마다 솔직히 견디기 힘들다."



라며 J양에게 호소했다. 내가 J양이라면 상대에게 상처 줬던 게 너무 미안해서 지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것 같은데, J양은 "이 남자의 속마음은 뭔가요? 확신이 없다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맞는 거겠죠?"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아아 그대여! 이상적인 연애를 말하며 왜 손엔 계산기를 들고 있는가?



"나도 피곤하게 이렇게 싸우는 거 이젠 싫어." 연출의 피곤함은 본인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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