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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오늘 저녁 마지막 만남을 갖는 커플, C양에게

by 무한 2013. 2. 26.
오늘 저녁 마지막 만남을 갖는 커플, C양에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C양은. 이별을 예감한 근 4개월의 시간동안 둘은 아래와 같은 대화를 참 지루하게도 이어왔다.

남친 - 퇴근 했어요~
C양 - 저녁 같이 먹을까?
C양 - 버스 탔어?

남친 - 응. 버스 탔어.
C양 - 저녁 나랑 먹고 싶지 않은가 보네.
남친 - 무슨 저녁?
C양 - 내가 위에서 저녁 같이 먹자고 물어봤는데.
남친 - 아아. 미안. 버스를 이미 타서...
C양 - 알았어.

남친 - 나 집 도착이요.
C양 - 응. 나도 집에 가는 중.

남친 - 나 씻어요.
C양 - 네.

남친 - 나 잘게요.
C양 - 네.

(다음날 아침)
남친 - 나 일어났어요~
C양 - 응.

남친 - 나 출근 했어요.
C양 - 네. 오늘도 화이팅~


C양 남친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무슨 군대에서 경계근무 간다고 보고 하는 것도 아닌데, 동선의 정류장들을 지날 때마다 툭툭 말만 던져 놓는다. 저래 놓고는

"뭐 할 때마다 연락하기로 해서 약속 다 지켰잖아.
근데 나보고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정말 숨 막힌다."



따위의 얘기를 한다. 아아 미운 사람.


1. 남자친구의 태만이 만든 여자의 조급증.


무뚝뚝한 말투, 의무적인 연락,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남, 말을 흘려듣는 태도, 궁금한 게 없는지 절대 먼저 하지 않는 질문, 거기다가 이젠 손잡는 일도 없으며 스킨십을 언제 했는지 이전 달력을 들춰봐야 하는….

태엽이 다 돌아간 오르골 같다고 할까. 모양은 분명 그대로인데 예전처럼 소리는 나지 않는다. 태엽을 다시 감아야 딱 감은 만큼의 소리가 날 뿐이다. 태엽을 감다 지친 C양은 말했다.

"날 사랑해? 정말로 사랑하긴 하는 거야?"
"표현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좋아한다면,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먼저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노력하자. 나도 징징거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니까, 오빠도 노력 좀 해줘."



아무리 얘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가 되자, C양은 힌트를 주기도 했다.

"오빤 이제 내가 집에 잘 들어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보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택시 번호판도 적고, 밤길 위험하다고 전화도 걸더니…."



물론 저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늘 얘기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시간이 지난 후 '네 탓이야.'라는 얘기를 남자에게 하면, 남자는 '미안해' 말고는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 '미안해'도 몇 번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얘 또 시작이네.'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일을 공/수로 나눠 생각하는 까닭에, 저 서운함의 토로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C양의 남친도 처음엔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그 후엔 공격에 대한 방어를 하기 위해 '변명'을 준비했다.

"나 원래 무뚝뚝한 거 알잖아. 그래도 노력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넌 하나하나 다 짚어가며 나보고 자꾸 더 노력하라고 하면,
정말 나도 힘들어. 이럴 때마다 우리는 맞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멋없는 사람. 나라면 "지금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야?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며 택시라도 잡아타고 달려가, 여자친구의 손을 내 왼쪽 가슴에 댔을 것 같은데.

"봐봐. 여전히 열심히 뛰고 있지?"


우심실 좌심방 고마워. 너희들 덕분에 살았어.


2. 불만을 꼬는 여자.


C양의 결정적인 단점을 꼽으라면, 난 이 '불만을 꼬아서 말하는 습관'을 들겠다. C양이 연애 초반의 카톡대화는 첨부하지 않았기에 둘의 초반 대화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보낸 카톡대화만 갖고 보면 대화의 8할에서 저 모습이 보인다. 

C양 - 오늘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려고~
남친 - 잘 됐네. 나 오늘 동기들 만나는 날이라 자기 심심할까 걱정했는데.
C양 - 그래서 애들 만나기로 한 거야.
C양 - 애들이랑 밤새 놀아야지~
남친 - 너무 늦게까지 놀진 마ㅋ
C양 - 봐서~



그러니까 '봐라 이 좌식아. 이게 복수닷!'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서운함을 풀려고 하며,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상대를 대한다. 과장해 예고하며 상대에게 겁을 주는 거다. 친구들 만나서 밤새 논다고 그게 C양에게든 남자친구에게든 '복수'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건 뻔한 일인데 말이다.

하나 더 보자. '마음이 식었다는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C양이 집요하게 대화에 파고드는 부분이다.

C양 - 그런데 자기 카톡 프로필 보면 꼭 싱글인 사람 같네~
남친 - 왜?
C양 - 그냥 한 번도 우리 사진 올리거나 그런 적 없으니까.
남친 - 우리 사진으로 올릴까?
C양 - 아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올리고 싶은 거 올려.
남친 - (커플사진으로 바꿈) 됐지?
C양 - 됐냐고 물어보는 건, 그냥 내가 징징거리니까 날 위해서 바꾼 것 같은 느낌이네.



C양의 저런 언어습관은, 남자친구의 '부족한 언어사용'과 맞물려 점점 시궁창인 상황을 만든다. 꼬꼬마인 학생들을 보면 심심해도 짜증난다고 하고, 외로워도 짜증난다고 하고, 배고파도 짜증난다고 하고, 버스가 늦게 와도 짜증난다고 하고, 지치는 일이 생겨도 짜증난다고 하지 않는가. 이후 나이가 들고 여러 경험을 통해 배워가며 '상황에 알맞은 감정표현'을 하게 된다. 그런데 C양의 남자친구는 아직 그 부분에서 부족하다. '귀찮아서'라든가 '그냥', 또는 '됐어' 등의 뭉뚱그려진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C양 - 그럼 아무 의미 없이 그랬던 거라고?
남친 - 응. 그냥 귀찮아서 그런 거야.ㅎㅎ



감정표현을 위해 풍성한 어휘를 사용하는 C양의 입장에서 보자면, 저 얘기는 둘의 관계가 귀찮다거나, C양이 귀찮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 불만이 쌓이게 되고, 그걸 또 꼬아 말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만다. 이런 악순환을 몇 달 반복하며 둘은 지칠 대로 지쳤다.


3.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


우선, 둘이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밥은 지인들과 먹고, 술은 친구들과 마시고, 노래방에 가거나 극장에 가는 것 역시 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면 대체 둘이 함께 하는 건 뭐가 있다는 걸까. 둘은 전철 타고 삼십 분 내외로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는데, 연애는 장거리연애처럼 하고 있다.

데이트를 하면 늘 C양이 남자친구 집 근처로 와서 했다는 것 역시 일반적인 커플의 데이트와 좀 다르다. 누가 누구네 집 쪽으로 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만날 약속을 잡으면 으레 남자친구 집 근처에서 보는 걸로 굳어져 버렸다는 게 안타깝다. 돈이든 노력이든 연애에서 6:4를 벗어나면 일방적인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길 권한다.

서로에게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얘기를 해가며 점수를 매기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저건 하더라도 속으로 해야 하는 거지, 대 놓고 말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칭찬도 계속 들으면 감흥이 없는 법인데, '마이너스'라는 지적을 계속 받으면 당연히 불쾌하지 않겠는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장난으로라도 상대에게 '넌 이런 점 때문에 마이너스'라고 말해선 안 된다.

결국 C양 커플이 오늘 '마지막 만남'을 갖게 된 것도, 그 '마이너스' 때문이 아닌가. 서운함이 축적된 상태에서 남자친구가 C양에게 '네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마이너스.'라고 하니, C양이 폭주해 소맥을 말아 먹곤 새벽 내내 장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엔

"우리 당분간 연락하지 말고 지내보자."


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장난으로 꿀밤 때리는 게 재미있다며 서로에게 꿀밤을 놓은 커플 같다. 그러다 결국 한 쪽이 빡쳐서 풀스윙을 했고…. 하아, 왜 둘이서 열심히 본인들의 무덤을 팠는지, 참 안타깝다.


C양은 짐짝이 되고 말았다. 그게 C양이 짐짝처럼 굴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 C양을 짐짝처럼 취급했기에 그렇게 된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둘은 꽤 오래 전부터 위와 같은 상황을 유지해 왔는데, C양이 첨부한 카톡대화는 그 '유지기간'의 것이 전부다.

아마 그 '유지기간' 직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둘의 관계가 기울어 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C양의 남자친구는 연애를 '주말연속극' 정도로 여기게 되었고, C양은 연애가 '일일드라마'처럼 되기를 바랐다.

오늘 저녁의 만남이 '빌려간 물건 다 돌려주며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C양은 사과를 하려고 준비 중이다. 마음 한편엔 '사과를 해서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시궁창일 것 같은데 과연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쨌든 당장 헤어진다는 것이 겁나니 사과를 해서 붙잡으려는 거다.

난 그 사과에 반대한다. C양은 이미 남자친구에게 애써 무관심해지려 노력도 해 보고, 허벅지 찔러가며 연락도 줄여봤지만 그는 거기서 해방감만 느꼈을 뿐이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긴커녕 남자친구의 의무감만 좀 가벼워진 것이다. 게다가 C양의 사연에선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나, 그 사람만의 매력도 찾아볼 수 없다. C양이 이전 연애를 끝냈을 때 그가 옆에 와서 위로를 해줬다는 것 말고는 둘의 연결고리가 없다.

사과를 꼭 하고 싶다면, '용서의 의미로 다시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 사과를 하길 권해주고 싶다.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들 얘기하고, 상대가 돌려주는 거 받고, 작년 한 해와 올해 초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또 고마웠다고 말하자. 어린애처럼 구는 건 지금까지 충분히 많이 했으니, 오늘만큼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감당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자. 아무것도 결론짓지 말고 딱 그 정도만 말하면 된다. 그 후엔 normalog@naver.com 으로 다시 사연을 주길 바란다.



▲ 긴장감, 위기감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생긴다. 사과와 눈물은 예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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