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 상대에게 간절한 것 같다는 남자 Y씨에게
보통 Y씨처럼 구는 남자에게 대부분의 여자는 '아웃' 판정을 한다.
라고 말하는 남자를, 98.72%의 여자사람이 '차단'을 한단 얘기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예외인1.28%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Y씨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상황 때문이다. 복학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연이 닿는 사람은 Y씨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는 불편한 관계고, 수강신청에 대한 조언 등을 Y씨에게 받고 있다.(Y씨는 그녀의 학교 선배다.)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 해야 하는 게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Y씨는 급격히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 없다. 애정의 감정으로 시작한 사이가 아니라도 이것 역시 Y씨에겐 좋은 기회다.
바로 전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한 부분이다. 딴 얘기만 하는 남자.
라는 속마음이라도 품을 것인지, Y씨는 대화가 무르익으면 아래와 같은 멘트를 꺼낸다.
상대가 '봄에 입을 옷' 얘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7번방의 선물 봤어?" 따위의 이야기만 꺼내는 것이다. 그녀가 '봄 옷' 얘기를 세 번이나 했다. 여자 옷 같이 보러 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도 물었다. 힌트를 이렇게 줘도 모른다. 저건 그냥 딱 봐도 동대문 데이트 하자는 얘긴데, Y씨는 7번방의 선물이 코믹 감동 영화라면서
라는 말만 해댄다.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 있을까. 가장 최근에 Y씨가 만나자고 졸라댔던 날, 카톡대화로 미뤄보면 그녀는 마법에 걸려 있었다. 감기는 아닌에 몸이 쑤시고, 나가서 놀고 싶긴 하지만 그럴 기운은 없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말, 이렇게 열심히 힌트를 줬지만 Y씨는
따위의 이야기만 해댔다. Y씨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반드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하아, 여자를 몰라도 저렇게 모를 수 있을까.
<베를린> 보기로 했으면 그대로 딱 밀고 가면 되는 거다.
본인이 권한 것에 자신 없어 하거나, 무작정 상대의 기호만 따라가려는 태도는 버리길 권한다. 백점 맞아야 하는 시험이 아니다. <베를린>을 봤는데 상대가 지루해 한다면, 앞으로 영화선택 과정에서 '액션' 쪽을 제외시켜 두면 되는 거다. 처음부터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상대가 좋아하는 것으로, 상대가 실망하지 않을 것으로 뭔갈 선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Y씨는 백점 맞으려 상대에게 계속해서 저런 것들을 물어보니, 자연히 상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데이트에서 절대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비싸고 유명한 데를 고르는 행동도 문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야 마음만 맞는다면 동네 공원에서도 만들 수 있는 법인데, Y씨는 장소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곳에 데려가면 자연히 분위기가 만들어 질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가 부담스럽다는데, 이쪽에서 백 번 괜찮다고 말해봐야 뭐 하겠는가. 내가 Y씨라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줄거리를 꺼내 활용했을 것 같다. 그 얘기로 시작해 참치회로 마무리되는 스토리텔링은 내 노하우니 공개하진 않겠다. 참치의 눈물로 만드는 참치 눈물주 얘기로 자연스레 '참치 회 약속'을 잡는 방법도 있는데, 역시 노하우는 공개하진 않겠다.
레스토랑 자리 안내까지 예로 들어가며 말하지 않았던가. 자리 안내 하는 사람이 손님을 배려한답시고 "앉고 싶은 데 마음대로 앉으세요."라고 말하면 손님이 혼란에 빠진다. 내가 A를 권하고, 그 A에 대한 책임도 내 몫으로 두는 것, 그게 한 차원 높은 배려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영화 속 명대사를 묻거나, 재미있게 본 영화를 물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계획을 위한 소스'는 준비되는 것 아닌가. 이전 대화들에서 그런 걸 위주로 상대에 대해 알아뒀어야 하는 건데, Y씨는 그 과정 없이 "교양 수업 뭐 들어? 나 듣는 거 같이 들을래? 부담스러우면 같이 안 들어도 되고." 따위의 얘기만 했다. 그 결과 "뭐 괜찮아? 뭐 좋아해? 뭐 보고 싶어? 뭐 먹을래?" 라는 질문만 하게 되었고 말이다.
Y씨가 내 친구라고 해보자. Y씨가 상대에게 같이 하자고 권한 것들을 내게 권하면, 그건 내게 큰 부담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Y씨는 이걸 또 상대에게 물은 적 있다.
상대의 저 대답은 "어, 부담스러워."를 Y씨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표현한 것이다. 부담스럽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데, Y씨는 '부담이라기보다는'이라는 말에 꽂혀
라고 생각하고 만다.
솔직히 말하자면, 봉사활동 같이 하자는 거 부담스럽다. 학원 같이 다니자고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건 모태솔로부대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연애에 상대를 맞추려 하는 것. 어느 대원은 연애를 하면 상대와 춤을 배워 함께 추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그래서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나자 그녀에게 춤을 같이 배우자고 졸라댔다. 카톡으로 안부만 묻는 사이인데 춤은 무슨 춤인가. 그렇게 거절당하면 '또 다른 희망사항'을 꺼내 같이 하자고 조르다가 세 달 만에 차단당했다. 그 전철을 Y씨가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화가 전부 카톡으로만 이루어지는 까닭에 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카톡으로는 말을 놓고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졌지만, 둘의 오프라인 진도는 걸음마 수준이다. 단 둘이 딱 한 번 만났는데, 어색해 하며 존대로 대화하고, 한국에 처음 온 사람들처럼 머뭇거리다가 집에 돌아왔다. 평소에 전화 통화라도 한 번 했다면 보다 자연스러웠을 텐데, 카톡으로만 대화를 했으니 어색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자 전력질주 하지 말고 상대의 걷는 속도에 맞추라는 얘기를 내가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둘의 연결고리는 '학교 선후배'라는 것밖에 없는데, 그걸 담보로 잡고 도박하지 말길 바란다. 상대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면 나중엔 애쓰지 않아도 상대 마음의 큰 자리를 차지할 텐데, 지금 당장 자신의 자리가 좁은 것 같다며 "큰 자리를 줄 것인가, 아닌가? 확답해 달라."고 조르진 말란 얘기다.
지금처럼 '매달리는 학교 선배오빠'의 모습을 고집하면 둘의 관계는 봄이 오기도 전에 끝나고 말 것이다. 몇 번 만난 뒤 고백을 하기 위한 그 '몇 번'을 채우려 들지 말자. 그런 태도로 백 번 만나봐야 아무 소용없다. 내가 Y씨라면,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닭강정 집만 가지고도 '가벼운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가는 닭강정 집이 생겼다고 말하고, 한 봉지 사다가 상대에게 먹어보라고 주는 것이다. 물론,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는 거 공짜 아닌가. 먼저 닭강정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자연히 메뉴에 대한 얘기를 하고, 거기서 상대의 기호를 파악한다. 좀 능청을 떨자면, 맛있는지 아닌지 먼저 먹어보고 감정을 하겠다는 얘기도 할 것이다. 간장양념 별 다섯 개, 매운양념 별 네 개, 후라이드 별 두 개 반, 뭐 이런 얘기들을 좀 하다가, 한 봉지 사서 갖다 줄 것이다. 먹어보고 별점 평가 해달라며 자연스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상대가 못 나온다고 말을 하면 나도 실망은 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Y씨처럼 "어... 알았어. 쉬어." 라는 말로 내비치진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짜증이 나서 상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거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그런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닭강정은 맥주를 사 근처에 사는 친구와 함께 먹으면 된다. 오늘만 날도 아닌데 관계가 끝장난 사람처럼 굴거나, 주눅 들거나, 상대에게 앙갚음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탁하지도 않은 호의를 베풀다가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면 돌변해서 상대를 비난하는 남자. Y씨가 그 모습에서 벗어나면, 둘은 분명히 올 봄 즐거운 벚꽃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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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Y씨처럼 구는 남자에게 대부분의 여자는 '아웃' 판정을 한다.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이렇게 내 말 씹을 거 아니라 답장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지금 나 가지고 놀아? 이거 보면 연락해."
이렇게 내 말 씹을 거 아니라 답장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지금 나 가지고 놀아? 이거 보면 연락해."
라고 말하는 남자를, 98.72%의 여자사람이 '차단'을 한단 얘기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예외인1.28%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Y씨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상황 때문이다. 복학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연이 닿는 사람은 Y씨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는 불편한 관계고, 수강신청에 대한 조언 등을 Y씨에게 받고 있다.(Y씨는 그녀의 학교 선배다.)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 해야 하는 게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Y씨는 급격히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 없다. 애정의 감정으로 시작한 사이가 아니라도 이것 역시 Y씨에겐 좋은 기회다.
1. 형식(만날 약속)에 목숨 거는 멍충이.
바로 전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한 부분이다. 딴 얘기만 하는 남자.
'지금까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줬던 건,
만날 약속을 잡기 위해 대충 비위맞춰 줬던 것이닷!'
만날 약속을 잡기 위해 대충 비위맞춰 줬던 것이닷!'
라는 속마음이라도 품을 것인지, Y씨는 대화가 무르익으면 아래와 같은 멘트를 꺼낸다.
"언제 시간 돼?"
"연극 좋아해? 미술관은? 영화 좋아해? 콘서트 가봤어?"
"수강신청 만나서 같이 할까? 학교에서도 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 볼까?"
"연극 좋아해? 미술관은? 영화 좋아해? 콘서트 가봤어?"
"수강신청 만나서 같이 할까? 학교에서도 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 볼까?"
상대가 '봄에 입을 옷' 얘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7번방의 선물 봤어?" 따위의 이야기만 꺼내는 것이다. 그녀가 '봄 옷' 얘기를 세 번이나 했다. 여자 옷 같이 보러 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도 물었다. 힌트를 이렇게 줘도 모른다. 저건 그냥 딱 봐도 동대문 데이트 하자는 얘긴데, Y씨는 7번방의 선물이 코믹 감동 영화라면서
"목요일에 시간 돼? 내가 영화 보여 줄게."
라는 말만 해댄다.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 있을까. 가장 최근에 Y씨가 만나자고 졸라댔던 날, 카톡대화로 미뤄보면 그녀는 마법에 걸려 있었다. 감기는 아닌에 몸이 쑤시고, 나가서 놀고 싶긴 하지만 그럴 기운은 없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말, 이렇게 열심히 힌트를 줬지만 Y씨는
"내가 기운 차릴 수 있게 충전 해 줄게, 나와!"
"그럼 내가 죽이라도 사다 줄게. 집 앞으로 갈게 잠깐 보자."
"나만 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네…."
"그럼 내가 죽이라도 사다 줄게. 집 앞으로 갈게 잠깐 보자."
"나만 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네…."
따위의 이야기만 해댔다. Y씨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반드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그날' 이라고 말하면 되는 걸, 왜 말 안하고 저런 거죠?"
하아, 여자를 몰라도 저렇게 모를 수 있을까.
2. 만나고 싶게, 가고 싶게 만들라니까요. 이 사람아.
<베를린> 보기로 했으면 그대로 딱 밀고 가면 되는 거다.
"근데 정말 <베를린>괜찮아? 액션 싫어할까봐."
"혹시 영화보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같은 거 더 좋아하나?"
"그럼 영화 보고 밥은 뭐 먹지? 뭐 좋아해?"
"혹시 영화보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같은 거 더 좋아하나?"
"그럼 영화 보고 밥은 뭐 먹지? 뭐 좋아해?"
본인이 권한 것에 자신 없어 하거나, 무작정 상대의 기호만 따라가려는 태도는 버리길 권한다. 백점 맞아야 하는 시험이 아니다. <베를린>을 봤는데 상대가 지루해 한다면, 앞으로 영화선택 과정에서 '액션' 쪽을 제외시켜 두면 되는 거다. 처음부터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상대가 좋아하는 것으로, 상대가 실망하지 않을 것으로 뭔갈 선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Y씨는 백점 맞으려 상대에게 계속해서 저런 것들을 물어보니, 자연히 상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데이트에서 절대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비싸고 유명한 데를 고르는 행동도 문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야 마음만 맞는다면 동네 공원에서도 만들 수 있는 법인데, Y씨는 장소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곳에 데려가면 자연히 분위기가 만들어 질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Y씨 - 내가 저녁 사줄게. ***(일식집) 어때?
상대 - 거기 비싼 것 같은데, 좀 부담스러워~
Y씨 - 안 비싸. 괜찮아.
상대 - 거기 비싼 것 같은데, 좀 부담스러워~
Y씨 - 안 비싸. 괜찮아.
상대가 부담스럽다는데, 이쪽에서 백 번 괜찮다고 말해봐야 뭐 하겠는가. 내가 Y씨라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줄거리를 꺼내 활용했을 것 같다. 그 얘기로 시작해 참치회로 마무리되는 스토리텔링은 내 노하우니 공개하진 않겠다. 참치의 눈물로 만드는 참치 눈물주 얘기로 자연스레 '참치 회 약속'을 잡는 방법도 있는데, 역시 노하우는 공개하진 않겠다.
레스토랑 자리 안내까지 예로 들어가며 말하지 않았던가. 자리 안내 하는 사람이 손님을 배려한답시고 "앉고 싶은 데 마음대로 앉으세요."라고 말하면 손님이 혼란에 빠진다. 내가 A를 권하고, 그 A에 대한 책임도 내 몫으로 두는 것, 그게 한 차원 높은 배려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영화 속 명대사를 묻거나, 재미있게 본 영화를 물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계획을 위한 소스'는 준비되는 것 아닌가. 이전 대화들에서 그런 걸 위주로 상대에 대해 알아뒀어야 하는 건데, Y씨는 그 과정 없이 "교양 수업 뭐 들어? 나 듣는 거 같이 들을래? 부담스러우면 같이 안 들어도 되고." 따위의 얘기만 했다. 그 결과 "뭐 괜찮아? 뭐 좋아해? 뭐 보고 싶어? 뭐 먹을래?" 라는 질문만 하게 되었고 말이다.
3. 솔직히, 큰 부담 됩니다.
Y씨가 내 친구라고 해보자. Y씨가 상대에게 같이 하자고 권한 것들을 내게 권하면, 그건 내게 큰 부담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Y씨는 이걸 또 상대에게 물은 적 있다.
Y씨 -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뭐 같이 하자고 하면 부담 돼?
상대 - 부담이라기보다는, 내가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서….
상대 - 부담이라기보다는, 내가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서….
상대의 저 대답은 "어, 부담스러워."를 Y씨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표현한 것이다. 부담스럽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데, Y씨는 '부담이라기보다는'이라는 말에 꽂혀
'부담스럽진 않다는 얘기네? 좋았어. 그럼 다시 기회가 오면 같이 하자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만다.
솔직히 말하자면, 봉사활동 같이 하자는 거 부담스럽다. 학원 같이 다니자고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건 모태솔로부대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연애에 상대를 맞추려 하는 것. 어느 대원은 연애를 하면 상대와 춤을 배워 함께 추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그래서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나자 그녀에게 춤을 같이 배우자고 졸라댔다. 카톡으로 안부만 묻는 사이인데 춤은 무슨 춤인가. 그렇게 거절당하면 '또 다른 희망사항'을 꺼내 같이 하자고 조르다가 세 달 만에 차단당했다. 그 전철을 Y씨가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화가 전부 카톡으로만 이루어지는 까닭에 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카톡으로는 말을 놓고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졌지만, 둘의 오프라인 진도는 걸음마 수준이다. 단 둘이 딱 한 번 만났는데, 어색해 하며 존대로 대화하고, 한국에 처음 온 사람들처럼 머뭇거리다가 집에 돌아왔다. 평소에 전화 통화라도 한 번 했다면 보다 자연스러웠을 텐데, 카톡으로만 대화를 했으니 어색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만 간절하고 상대는 간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제가 좀 기다려 보는 게 좋을까요?"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제가 좀 기다려 보는 게 좋을까요?"
혼자 전력질주 하지 말고 상대의 걷는 속도에 맞추라는 얘기를 내가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둘의 연결고리는 '학교 선후배'라는 것밖에 없는데, 그걸 담보로 잡고 도박하지 말길 바란다. 상대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면 나중엔 애쓰지 않아도 상대 마음의 큰 자리를 차지할 텐데, 지금 당장 자신의 자리가 좁은 것 같다며 "큰 자리를 줄 것인가, 아닌가? 확답해 달라."고 조르진 말란 얘기다.
지금처럼 '매달리는 학교 선배오빠'의 모습을 고집하면 둘의 관계는 봄이 오기도 전에 끝나고 말 것이다. 몇 번 만난 뒤 고백을 하기 위한 그 '몇 번'을 채우려 들지 말자. 그런 태도로 백 번 만나봐야 아무 소용없다. 내가 Y씨라면,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닭강정 집만 가지고도 '가벼운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가는 닭강정 집이 생겼다고 말하고, 한 봉지 사다가 상대에게 먹어보라고 주는 것이다. 물론,
"나올 수 있어? 내가 닭강정 사갈게 나올래? 무슨 맛 먹을래?"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는 거 공짜 아닌가. 먼저 닭강정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자연히 메뉴에 대한 얘기를 하고, 거기서 상대의 기호를 파악한다. 좀 능청을 떨자면, 맛있는지 아닌지 먼저 먹어보고 감정을 하겠다는 얘기도 할 것이다. 간장양념 별 다섯 개, 매운양념 별 네 개, 후라이드 별 두 개 반, 뭐 이런 얘기들을 좀 하다가, 한 봉지 사서 갖다 줄 것이다. 먹어보고 별점 평가 해달라며 자연스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상대가 못 나온다고 말을 하면 나도 실망은 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Y씨처럼 "어... 알았어. 쉬어." 라는 말로 내비치진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짜증이 나서 상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거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그런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닭강정은 맥주를 사 근처에 사는 친구와 함께 먹으면 된다. 오늘만 날도 아닌데 관계가 끝장난 사람처럼 굴거나, 주눅 들거나, 상대에게 앙갚음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탁하지도 않은 호의를 베풀다가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면 돌변해서 상대를 비난하는 남자. Y씨가 그 모습에서 벗어나면, 둘은 분명히 올 봄 즐거운 벚꽃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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