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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연애 조급증을 앓는 남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by 무한 2013. 2. 25.
연애조급증을 앓는 남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나까지 부담스러워지고 말았다. 그나마 W씨는 메일로만 조급증의 에너지를 내게 쏟아 붓고 있지만, 다른 몇몇 남성대원들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심지어 새벽 두 시에도) 카톡을 보내 나를 잠 못 들게 만든다.

"개별 상담은 안 해주신다고 블로그에서 봤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관계로 시작하고 싶다면 저 '하지만' 부터 좀 어떻게 하길 난 그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대개 사람을 당혹스럽게, 또 부담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부 대원들은 저 '하지만' 뒤에 매뉴얼을 올린 후 자신에게 매뉴얼을 올렸다는 메일을 보내달라느니, 사연 소개가 늦어질 것 같으면 늦어진다고 알려 달라느니, 심지어 매뉴얼을 공개하지 말고 메일로 보내달라느니 하는 얘기를 한다. 이쪽의 부탁 같은 건 '하지만'으로 물리쳐 놓고, 자기본위의 얘기만 해 대는 것이다.

물론 나에겐 그래도 된다. 조급증 앓는 대원들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니, 난 그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다 생긴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호감의 대상인 상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편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저러면 그냥 '아웃'된단 얘기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불철주야 "내가 말한 거 생각해 봤어?", "네가 내린 답은 뭐야?", "거절해도 괜찮아. 그냥 솔직한 마음을 말해줘." 따위의 말로 계속 몰아붙이는데, 그 부담폭풍을 견뎌 낼 여자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매뉴얼로 발행하지 않을 거면 발행하지 않는다는 답메일이라도 보내달라는 요청. 그 요청에 내가 응답하지 않은 건 양해 부탁드린다. 전에 몇 번 답장을 보내봤는데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자신은 긴 사연을 보냈는데 겨우 짧은 거절의 답장을 보냈냐고 화를 내는 대원이 있었고, 그럼 그 질문 말고 다른 질문에라도 답해 달라며 계속 매달리는 대원이 있었다. 내가 짧게나마 개별답장을 보내면, 그때부턴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는 대원도 있었다. 적다 보니 내 고충 토로가 되어버렸는데, 엄살은 그만 부리고 매뉴얼을 시작해 보자.


1. W씨 인간관계의 문제


전에 발행한 매뉴얼들에서 우선 상대와 친구가 되기를 권했다. 그랬더니 그 글들을 읽은 W씨는 자신이 친구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대하면 연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전 친구들과 카톡도, 문자도, 전화도 거의 안 합니다.
대신에 용건이 있거나 친구가 연락을 해 오면
만나서 몇 시간이고 즐겁게 대화합니다.
혹시 이런 식의 우정을 친구들이 불편해하는지 물어 본 적 있습니다.
어느 친구는, 예전엔 그런 태도가 짜증 났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일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을 땐,
죽었나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제 자신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제 입장이 이해가 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면, 아무래도 연애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효율성 따지는 남자'와 관련된 매뉴얼에서 이야기했지만, 우정이나 애정 등은 주로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인 일들을 함께할 때 자라나는 법이다. '용건만 간단히'의 토양에선 절대 그 감정들이 자라나지 못한다. 둘의 관계에 발목, 또는 무릎 정도만 잠기길 바라는 거라면 그런 태도도 문제가 없지만, 풍덩 빠지고 싶은 거라면 상대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고 해보자. 난 친구에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고, 이 책 읽은 적 있냐며 내 책장에서 책을 꺼내 내밀지도 않는다. 그냥 멀뚱멀뚱 각자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친구가 불만을 표시하며 그만 가겠다고 한다. 내가 반기지도 않고,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으니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난 정색하며 말한다.

"배고프면 나한테 밥 좀 달라고 말하면 되잖아?
책은 내가 권하는 것보다, 네가 읽고 싶은 거 꺼내서 읽으면 되잖아?
당연히 너랑 놀고 싶으니까 집에 오라고 한 건데, 내가 애써 반기기까지 해야 해?"



저게 타인을 대하는 W씨의 태도다. 연애를 하며 W씨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남성대원들도 몇 있다. 그중 어느 대원은 여자친구와 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중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듣기도 했다. 여자친구가 그 태도에 실망을 하자, 역시 그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 우리 대화 안 하고 있었잖아?
너도 그냥 창 밖 구경하면서 가는 중이었는데, 난 음악 좀 들으면 안 돼?
왜 이것 갖고 화내는지 이해가 안 가네?
귀에 이어폰 꽂았다는 차이밖에 없는데 대체 뭐가 실망스럽다는 거야?"



지인들이 W씨의 태도에 대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길 바란다. 폰에 전화번호 저장해 둔 채 일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관계로 충분할 땐 괜히 가타부타 할 필요 없기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닌, 한참 지난 뒤 안부처럼 말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에겐 딱 그 정도의 대답만 해 주는 법 아닌가. 보통의 사람들은 W씨가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그 연락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하며 살고 있다.


2. 뻘소리(허튼소리) 인 거 알 면 하지 마세요.


소제목을 과격하게 단 까닭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W씨는 충동을 행동으로 옮길 때 별 생각을 하지 않는 타입이다. 개인적으론 그런 유형의 사람을 '에피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이며 판도라의 남편. 이름은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 타입'이라 정의해 두었다. 에피메테우스 타입의 사람들은 일단 마음이 동하면 일을 저지른다. 때문에 금방 후회하게 되며, 자신의 말이나 글을 정정해야 하는 일이 잦다.

근 일주일 째 하루에 몇 통씩 메일을 보내는 W씨를 보자. 그냥 차분히 좀 생각을 했으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그는 잔뜩 써서 내게 보냈다. 그래놓곤 다음 메일로 그 전 메일을 부정하거나 후회한다. 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W씨 혼자 이랬다가, 또 저랬다가 하는 것이다. 방금 한 말을 자신이 다시 부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중한 태도를 갖길 권한다.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사람에게선 진중함을 찾아볼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둘째, W씨는 남에게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 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사연에도 '개그 폭투'라 할 수 있는 '설레발'의 흔적이 가득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소란을 피우다가, 혹시 그 모습이 좋지 않게 보일까 봐 "제가 너무 시끄러웠나요?"라며 급히 자신이 한 얘기들을 가볍게 만든다.

"아아, 이건 그냥 뻘소리. 신경 쓰지 마세요."


식의 말로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늘 얘기하지만, 그런 태도는 '재미있는 사람'이란 평가가 아닌, '우스운 사람'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앞서 한 실수들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실수를 저질러 버리는 행동. 그게 몸에 습관처럼 박이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둘의 관계를 점점 시궁창처럼 만들고 마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 본인이 타인에게 재치와 위트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바람을 가진 것과 달리, 현실에서는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W씨가 상대에게 보낸 '대책 없는 개그들'을 굳이 옮기진 않겠다. 어느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상대가 "어쨌든 ~라는 거죠?"라며 열심히 화제를 돌린 부분에 주목하기 바란다. 삼천포로 빠져 횡설수설하는 W씨를, 상대가 애써 수습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녀가 먼저입니까, 연애가 먼저입니까?


W씨에게 전에 발행한 [여자에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남자, 이유는?]이라는 매뉴얼을 권해주고 싶다. W씨의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그 매뉴얼에 나온 '딴 얘기만 하는 남자'와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 매뉴얼에 적어 둔 대화를 잠시 가져와 보자.

남자 - 퇴근했어?
여자 - 네. 지금 정류장이에요. 나얼 노래 듣고 있어요. ㅋ
남자 - 내일 뭐해?
여자 - 내일은 친구네 집에서 책 좀 가져오려고요. 맡겨둔 책이 있거든요.
남자 - 친구네 집이 어딘데?
여자 - 행신동이요.
남자 - 몇 시쯤 집에 오려고?
여자 - 글쎄요. 저녁 먹고 돌아올 것 같아요.
남자 - 그렇구나. 난 너 내일 한가하면 영화나 볼까 했는데….



'내일 영화 보자고 말해야지.'라는 생각만 하느라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날려버린 것이다. 무슨 노래 듣는 중인지, 맡겨둔 책은 어느 장르의 책인지 등의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는데, 남자는 오로지 내일 시간이 있는지, 저녁에 영화 같이 볼 수 있는지만 묻는다.

W씨 역시 그녀와 '밥 먹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까닭에, 정작 '그녀가 하는 말'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래서 주말에 나랑 밥 못 먹는다는 거네?'


라는 결론을 내릴 뿐이다. 현재 W씨는 상대가 보려고 하는 시험의 합격자고, 상대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모르는 문제를 설명해 주거나 공부에 관한 조언을 하며 친해지는 것이 제일 좋은데, W씨는 그런 상황마저 못마땅해 한다.

"제가 과외선생도 아닌데, 그녀가 저에게 묻는 건 시험에 관한 게 전부네요.
이거 뭐죠? 저 그냥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그녀는 절 그냥 과외선생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은 거라면, 상대에 대한 관심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W씨는 그녀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 없이 그저 빨리 상대와 연애하고 싶다는 충동만 가지고 상황을 대한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건 W씨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메일엔 날 띄워주는 '꿀 바른 얘기'가 잔뜩 써있지만, 정작 W씨는 모든 메일에서 나를 '노말로그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신의 메일을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것이다.

연애가 창업이라면, 둘이 연인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건 간판을 내거는 것이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내부를 준비하는 일이다. 운이 좋아 간판을 걸더라도 내부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연인 코스프레'만 하다 몇 달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자신의 외로움과 심심함을 상대가 달래주길 바라며 하는 행동들을, '상대를 향한 열정'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면, 상대는 앞으로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시험을 준비하는 중 아닌가. 거기다 대고 공부하는 상대 불러내 수다 떨고 싶어 하는 건 W씨의 욕심일 뿐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지극히 자기본위적인 행동이란 얘기다.

"그녀와 카톡대화를 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의미 없는 대화잖아요. 진전도 없고.
그냥 그녀 시험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고 있다가, 시험 끝나면 고백해 볼까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상대는 '진심'으로 W씨를 대하고 있는데, W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상대와의 대화를 '의미 없는 대화'로 여기고 있다. 내가 W씨라면 허리가 아프다는 상대에게 '이거 써보니까 좋던데'라며 메모리폼 방석이라도 권할 것 같은데, W씨는 그런 얘기들은 다 흘려듣고 연락을 하네 마네 하는 얘기만 하고 있다.

연인이 되는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은인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사촌동생에게 마음을 쓰는 것 정도로 다가가면 W씨가 원하는 그 '친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자기 생활을 돌보지 않고 마구 퍼주는 것만 주의한다면, 은인이기도 한 연인은 그 어느 관계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질 수 있다. 간판만 내건 연인들은 <I.O.U>라는 노래 가사에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영원히 갚아야 할 가장 달콤한 빚. W씨가 그녀와 저 노래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달콤한 빚 말고, 진짜 채무관계가 있는데 어쩌죠? 큰돈인데…." 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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