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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연락에 목숨 걸다가 헤어진 여자, 문제는?

by 무한 2013. 3. 5.
연락에 목숨 걸다가 헤어진 여자, J양에게
J양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준비를 한다. 사연에도 평소의 그 태도가 묻어난다. 자신의 이야기가 매뉴얼로 소개되지 않아도 이해할 테니 내게 부담 갖지 말라고 하는 말. 진심으로 원하는 것과 달리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완충제'를 깔아두는 것이다.

물론 나로서는 그게 참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사연을 매뉴얼로 올리면 문자로 알려달라며 전화번호를 적어두거나, 개별 답장 하지 않는 건 알지만 자신의 사연은 심각하니 개별 답장으로 해달라며 '부탁'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맡겨 둔 것 찾듯 내 놓으라는 모습'이 안 보이는 사연이기 때문이다.

다만, 생활 가운데서 그렇게 완충제를 깔다보면 '불만족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언젠가 비슷한 사연을 보낸 어느 대원은 아래와 같은 일을 당하기도 했다.

여친 - 우리 데이트 때문에 오빠 너무 부담 갖지 마.
         이번 주말엔 각자 할 거 하면서 보내도 되니까 오빠 일 해요!
         연락 없다고 징징거리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마음 놓고~

남친 - 응. 이해해줘서 고마워.



깔아 놓은 완충제에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엎어지는 상대를 보며, 큰 실망과 깊은 빡침이 동시에 몰려올 수 있단 얘기다. 그렇게 불만족을 경험한 이후엔 상대가 괘씸하고 밉기 마련이다. 나만 노력하는 것 같고, 나만 간절한 것 같고, 나만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J양도 이 지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집착이다.

집착의 영역만은 가지 않으려고 상대에게 부탁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눈물로 호소도 해봤던 J양. 오늘은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1. 남자의 마음이 딱 그만큼이었다.


요즘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면, 대개 가입인사는 기본이고 글 몇 개에 댓글 몇 개를 올려야 준회원이 될 수 있다. 관심을 끄는 게시물을 보려면 준회원만으론 부족하고, 다시 글 몇 개에 댓글 몇 개를 더 달아 정회원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카페활동을 할 의사는 없지만 글은 읽고 싶을 때, 억지로 글 몇 개와 댓글 몇 개를 달아 정회원까지 오르곤 한다.
 
J양의 남자친구가 연애에 임한 태도가 이와 같다. 그 어딜 보더라도 J양을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 J양에게 '정회원'이 되기 위해 매너와 관심, 배려 등을 앞세워 헌신했을 뿐이다. 나에게 그런 헌신을 보여 달라고 하면 자다가 일어나서라도 보여줄 수 있다. 하루의 일과를 묻고, 함께 할 일들을 약속하고, 추울 때 점퍼를 벗어주고,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일들.

하지만 진심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헌신은 보름을 넘기기 어렵다. 슬슬 지구력의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이걸 몸으로 체험해 보고 싶다면 오늘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기 바란다. 그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만날 약속을 잡고, 술자리도 가져보자. 당장은 새로운 금맥을 발견한 듯 뿌듯하고 든든한 느낌이 들겠지만, 둘의 관계가 예전처럼 시들해지는 데에는 보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늘 얘기하지만 마음은 행동으로 증명된다. 연애 중인 남자가(그것도 사귄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남자가) 주말에 여자친구를 내버려둔 채 친구들과 보드를 타러 가고, 또 어느 주말엔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는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선약을 해 둔 까닭에 여자친구에게 미안해하며 간 것도 아니다. 그냥 신나서 간 거다. 그러고는 저녁 내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자? 화났어? 보드는 잠깐 탔고,
들어와서 애들하고 술 마시며 얘기하다가 연락하는 걸 깜빡했네. 미안해."



라는 톡을 달랑 하나 보냈을 뿐이다.

토요일에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면, 토요일이 되기 전까지는 여자친구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자신의 삶만 사는 남자. 만나면 금방 목숨이라도 바칠 듯이 헌신하지만, 집에 돌아간 후에는

"집 도착 했어. 씻고 잘게. 잘 자요~"


라며 톡 하나 보내 놓고, '내 할 몫은 다 했다'며 다시 자신의 삶만 사는 남자. 그의 마음이 딱 그만큼이었다는 것을 J양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연락에 목숨 거는 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2. J양의 잘못①


서두에서 말했듯 J양은 '완충제'를 깔기 위해 '그렇지 않은 척'을 자꾸 한다. 친구들과 보드 타러 간 남자친구에게도 J양은

"조심히 타고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요~"


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뿐이다. 속으로는 분 단위로 분노를 증폭시키면서 말이다.

이후 남자친구에게 '8시간만의 연락'이 왔을 때, J양은 '아닌 척'과 '그런 척'이 섞인 고문을 시작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남친 - 기분 많이 상했지?
J양 - 아니야. 노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잘 놀았으면 된 거지 뭐.
남친 - 미안해 ㅠ.ㅠ
J양 - 그냥 웃으면서 자자. 오빠도 놀러 간 건데 나 때문에 마음 쓰지 마.
남친 - 다음부터는 꼭 폰 챙기고 연락 잘 할게.
J양 - 피곤할 텐데 얼른 자.
남친 - 정말 미안해. ㅠ.ㅠ
J양 - 나 지금 오빠한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좀 진정되면 얘기할게.



대화를 읽기만 해도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 입술이 다 마른다. 도망가고 싶다. 어린 시절 엄마가 "너 집에 가서 보자."고 말했을 때 찾아왔던 그 무서운 중압감이 느껴진다.


3. J양의 잘못②


J양의 남자친구는 정말 형편없는 남자였다. 그는 일요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 놓고는, 토요일에 친구와 밤새 놀다가 새벽 네 시에 

"에구.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네. 나 10시에 좀 깨워줘요~ 우리 점심 먹어야지!"


라는 메시지를 하나 보내곤 잠이 들었다. 10시에 전화를 걸면 받지 않았다. 잠에 취해 벨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오후 2시쯤 카톡으로

"진짜 미안해. 얼른 준비할게. 밥 먹었어? 진짜 미안.
뭐할까? 영화 볼까? <베를린> 볼래? 일단 준비할게."



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4시간 동안 J양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을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냥 알아서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 건지, 전화를 해서 깨워야 하는 건지, 남자친구가 일어나면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자신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 건지….

저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차라리 하루쯤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 오후 세 시에 만나기로 해 놓고 핑계를 대며 시간을 자꾸 미루다 여섯시가 되어서야 "밥 먹고 일곱 시에 보자."고 말하는 남자. 그런 남자에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볼 수 없어요.'라는 걸 느끼게 해줬어야 한다. 아니면 만나서라도

"약속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게 책임감이잖아."


라고 명확하게 잘못된 지점을 짚어서 말했어야 한다.('나 전달법'으로 바꿔서 전달하면 더욱 좋지만, 예시로 적기엔 어색한 감이 있어 저렇게 적어둔다.) 

하지만 J양은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서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긴 했다. 만나서 남자친구가 무슨 얘기를 하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남자친구를 채무자 대하듯 대했다. 모든 게 다 못마땅한 듯이 굴다가, 남자친구가 사과를 거듭하면 그제야 기분이 좀 풀어져선 "앞으로 잘 해."식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사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남자친구에겐 연애가 의무와 부담으로 여겨지고 말았을 것이다.(원인제공을 본인이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한 것 보다는 당한 것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적어두겠다.)


4. J양의 잘못③


이건 J양이 '남자친구의 무관심'으로 인해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 집착의 병자가 되지 않기 위해 벌이다가 저지른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제발 도와 달라는 SOS처럼 보이지만, 남자친구가 보기엔 '집착 쩌는 여자'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대화를 보자.

남친 - (주말에 친구 만나러 가며)나 출발 합니다~
J양 - 응. 운전 중이니까 답장 말고, 도착하면 톡 줘요.
남친 - 도착! 친구 만났어.
J양 - 응. 재미있게 놀고, 이따가 자리 파하면 톡 줘요.
남친 - 술 다 마셨어. 친구랑 당구 한 게임 치고 들어가려고.
J양 - 응. 집에 들어갈 때 톡 줘요~
남친 - 대리 불렀어요. 집에 갑니다~
J양 - 응. 집 도착하면 톡 줘요.
남친 - 집 도착! 나 씼어요~
J양 - 응. 얼른 씻어요~



J양은 연락 구걸자가 되고 말았다. 물론 처음부터 J양이 저랬던 것은 아니다. 한 없이 기다려도 보고, 울며 '연락 잘 했으면 좋겠다'고 말도 해 보고, 약속도 해 봤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봤지만 '마음이 딱 그만큼인 남자친구'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톡 줘요. 톡 줘요. 톡 줘요."라며 시시각각 연락을 구걸하는 상황에 놓이고 만 것이다.

남자친구는 저런 J양을 두고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나한테 연락 하라고 하지 말고, 궁금하면 네가 전화하면 되잖아."


라며 도리어 J양에게 화를 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톡 보내면 읽지 않은 채 방치해 두고, 전화 해도 받지 않았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그런 '진짜 호감'을 가진 사람과 만나면 위와 같은 문제들은 애쓰지 않아도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이번엔 '연애'라는 간판이 필요했던 사람을 만나 J양이 고생을 했던 것이다. 나름 '연인 코스프레'는 남부럽지 않게 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진심'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그 증거는 행동으로 드러났고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J양이 상대의 '구애 시' 모습과 '연애 시' 모습을 자꾸 비교하는 점이다. '구애 시'의 모습이 씨앗에서 싹이 터 나무의 모양을 제법 갖추기 전까지 쑥쑥 자라는 시절이라면, '연애 시'의 모습은 나무의 모양을 갖춘 채 조금씩 자라는 시절과 같다. 둘을 단순비교하면 후자의 '자람'이 모자라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스스로는 계속 다급해 하고, 상대에게는 재촉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이번 사람은 '자람'에 별 관심이 없이 그저 싹을 틔우는 것에만 열중해서 문제가 된 게 맞다. 하지만 J양와 진지하게 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단순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저 위에서 '온라인 카페 등업'의 예를 든 것처럼, 매일 게시글 5개, 댓글 10개를 달아야 회원등급이 유지된다면 버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상대가 없는 자신의 생활이 무의미한 것처럼 행동하면, 상대 역시 그대의 생활을 무의미하게 여길 수 있고, 그 결과 그대는 떠맡아야 하는 짐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며!



"무한님 덕분에 연애 시작했어요!" 그럼 뭐 하노, 둘이서만 소고기 사묵겠지. 나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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