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에서 집착남으로 변한 J씨, 그의 문제는?
그녀는 이십대 중후반, J씨는 삼십대 초반의 남자다. 그녀와 J씨는, J씨가 그녀에게 일본어 과외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며 전화, 온라인, 방문 등을 통해 일본어 과외를 하는 중이었다. 과외가 전화로 이루어진 까닭에 서로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며 둘은 가까워 졌다. 카톡과 이메일을 통해서도 연락했으며, 사진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달달한 썸의 분위기'를 이어가다 J씨가 고백을 했고, 그녀는 그 말을 기다렸다며 고백을 받아들여 둘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방세를 내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방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계시는데, 진작부터 그녀에게 서울생활을 접고 내려와 가게 일을 도우라고 하시는 중이었다.
그녀가 지방으로 내려간 지 몇 주가 지났을 때, 둘의 연애에는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연락이 줄어들었고, J씨는 "왜 전화도 잘 하지 않고, 통화를 하게 되어도 뚱한 듯 무덤덤하게 있냐."라며 그녀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난 서울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반대한다. 지금 가게 일을 돕고는 있는데, 이러다가 그냥 이렇게 살게 될까봐 걱정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와 싸운다. 오빠가 서울로 올라오라고 한다고 내가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올해 초의 일이고, 이 이후엔 J씨가 지방에 내려가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지금은 그녀에게서 '일본어 과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빼고는 먼저 연락도 오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J씨는 꾸준히 "우리가 연인이 맞냐, 왜 연락을 안 하냐?"라며 그녀를 찔러대고 있고, 지금은 친구들로부터도 "걘 널 이용하는 거다. 자기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워서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는 거다. 이건 연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런 와중에 J씨는 내게 사연을 보내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J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내게 동업하자고 계속 제안하던 친구 K를 떠올렸다. K는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 쇼핑몰을 할 거라면서 내게 함께 하자고 말했다. 뚜렷하게 구상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일단 오픈해 두고, 상품 신경 쓰며 마케팅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내게는 사진을 찍는 일과 쇼핑몰 제작을 담당해 달라고 했다.
당연히 난 거절했다. K는 내게 "왜 청춘의 열정도 없이 그렇게 조심스러워 하냐, 시작해 보자."며 계속 참여를 요구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열정만 훌륭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베토벤이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열정은 있다. 그러나 기본이 없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불타오르고 있는 K에게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이후 K는 계속해서 내게 동업하자고 연락을 해 왔다.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삼고초려를 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니, 제발 함께 하자."며 부담스러운 말을 해댔다. 그러다 나중엔 내게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 나쁜 친구'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흘리기도 했다. K는 쇼핑몰 제작 업체에 의뢰해서 혼자 쇼핑몰을 열었다. 외부 사진가를 고용해 제품사진을 찍고, 미디어에 돈을 주고 광고를 하다가, 세 달쯤 지나 쇼핑몰을 접었다. 내가 함께 했다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K의 구상대로라면, 그건 손님이 많이 오길 '기대' 하는 것 말고는, 운영자 쪽에서 별로 할 게 없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J씨의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급속도로 식은 건, 위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J씨는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상대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했는가? J씨는
라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저건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 것이지, 우리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일본 여행 가자는 거? 보드 타러 가자는 거? 그것 역시 같이 놀고 싶어서 하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직장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그런 것들이 얼마나 의미가 될 수 있겠는가? 그녀에겐 진통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치료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 그걸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지방에 내려간 후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연락이 없는 거냐, 이제 친구들하고 만나니 난 필요 없어진 거냐,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맞냐, 아니냐 등의 질문만 하는 남자. 그게 J씨다.
내가 만약 그녀의 오빠라고 가정하면, 난 그녀가 J씨를 따라 서울에 올라가는 것에 반대할 것 같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 지방까지 내려와 그녀의 어머니께 편지를 드릴 정도로 큰 호감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불안하다.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J씨가 거듭해서 사연을 보낸 까닭에, 난 J씨에게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냈다.
저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 없이, J씨는 상대에게 "결혼해서 같이 살자. 나랑 결혼할 거지?"라는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께 드렸다는 편지는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건 지금 친구랑 해외여행 갈 때 친구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에게는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지내는 것'에 대한 허락만 받으려 하니, 그녀의 어머니는,
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나 역시 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J씨에게 "어떻게 보살피시겠다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J씨는 그녀의 과외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답했다. 그 답을 듣고 난 더욱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가 저 말을 왜 꺼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이 관계 자체가, J씨가 지방에 내려가서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고, 오로지 그녀가 서울로 올라와야만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서울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J씨는 그걸 아주 쉽게 생각하는데,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그건 그녀에게도 '모험'이 되는 일이다. J씨가 지방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뿐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서울이 '아는 사람이 한 명 뿐인 곳.'이란 얘기다.
이젠 그녀도 지쳐 지방에서 지인에게 소개받는 곳에 취직하려 하는데, J씨는 거기에 대고 "거기에 취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그녀에겐 "그건 하지 마라."라는 얘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하자."는 얘기가 필요한 건데, J씨는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녀의 앞길만 막고 있다. 그러면서
라는 어린애 투정 같은 얘기만 해대고 있고 말이다.
그녀가 카카오톡 스토리에 올렸다는 그 글이, 현재의 상황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스스로를 꾸짖자. 그녀가 지방에 내려가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들과 만난다고 하면, 그 친구들은 어떤 친구인지,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을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J씨는
라는 얘기만 해댔다. 전화통화를 해도,
라는 얘기를 하며 확인만 받으려 했다. 이건 '오빠'가 아니라 '어린애'의 모습이다. 저런 모습들만 보여줬으니, 필연적으로 그녀가 J씨와의 연애를 불안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힘이 되긴커녕, 확인 받으려 하고 기대려 하는 남자.
그녀의 저 말 역시 그런 불안함 때문에 나온 말이다. 지금의 모습을 다 받아줘도 연락과 표현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바라는 것들을 요구하는 J씨인데, 앞으로 그녀가 힘들어 흔들리기라도 할 때에는 J씨가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J씨는 이 얘기를 동네방네 소문내며 위안을 얻으려 하고 있다. 친구, 친구의 여자친구, 아는 누나에 이르기까지 지인들에게 전부 "내가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뉘앙스로 사연설명을 하며, 그들로 부터 "정말 그런 것 같네. 네가 피해자야."라는 대답을 듣는다. 속사정을 모르는 그들은 J씨가
라고 얘기를 하면, 그 말만 듣고 그녀에 대한 비난을 한다. 그러면 또 J씨는 그 비난에 마음이 흔들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괴롭힌다. 잠깐의 위안을 얻자고 사람들에게 그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행여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어 J씨와 그녀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J씨는 그저 열심히 드리블 하는 것에 목숨을 걸다가, 결국 공을 경기장 밖으로 몰고 나간 것이다.
화나고 귀찮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 화내고 귀찮아 하냐고 묻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상대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무슨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실컷 했지만, J씨는 스스로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연애는 생활에 적당히 맞추려고 하면서, 상대보고는 생활을 연애에 맞추라고 말하는 남자. 그게 J씨의 모습이다.
연인을 연애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상대의 애정표현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몰아내려는 사람들이 J씨와 같은 실수를 벌이곤 한다.
저 말에 내가 대답해 줄 수 없었던 이유가 뭔지, 이제는 J씨도 알 거라 생각한다. 이건 밀당도 아니고, 서로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심리게임도 아니다. 인간적인 실망이며, 확신 없음에 관한 문제다.
징징거리다가 며칠에 한 번씩 상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것부터 그만 두자. 그러고 나서 상대와의 미래를 그려보고, 그런 미래가 되려면 J씨가 해야 할 몫이 뭔지 생각해 보자. 그 몫을 천천히 해 나가면 된다. J씨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상대에게 표현을 강요하고, 마음을 떠보며 확인 받으려 하는 건 상대의 몫을 침범하는 짓이다. J씨의 권한 밖의 일에 손을 대지 말자. '기대'까지가 J씨에게 허용된 범위다. '강요'는 그 너머의 일이고 말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길 권한다.
▲ 어제 "추천은 의리로 하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추천이 두 배로 늘더군요. 의리!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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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십대 중후반, J씨는 삼십대 초반의 남자다. 그녀와 J씨는, J씨가 그녀에게 일본어 과외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며 전화, 온라인, 방문 등을 통해 일본어 과외를 하는 중이었다. 과외가 전화로 이루어진 까닭에 서로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며 둘은 가까워 졌다. 카톡과 이메일을 통해서도 연락했으며, 사진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달달한 썸의 분위기'를 이어가다 J씨가 고백을 했고, 그녀는 그 말을 기다렸다며 고백을 받아들여 둘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본어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방세를 내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방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계시는데, 진작부터 그녀에게 서울생활을 접고 내려와 가게 일을 도우라고 하시는 중이었다.
그녀가 지방으로 내려간 지 몇 주가 지났을 때, 둘의 연애에는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연락이 줄어들었고, J씨는 "왜 전화도 잘 하지 않고, 통화를 하게 되어도 뚱한 듯 무덤덤하게 있냐."라며 그녀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난 서울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반대한다. 지금 가게 일을 돕고는 있는데, 이러다가 그냥 이렇게 살게 될까봐 걱정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와 싸운다. 오빠가 서울로 올라오라고 한다고 내가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올해 초의 일이고, 이 이후엔 J씨가 지방에 내려가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지금은 그녀에게서 '일본어 과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빼고는 먼저 연락도 오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J씨는 꾸준히 "우리가 연인이 맞냐, 왜 연락을 안 하냐?"라며 그녀를 찔러대고 있고, 지금은 친구들로부터도 "걘 널 이용하는 거다. 자기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워서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는 거다. 이건 연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런 와중에 J씨는 내게 사연을 보내 물었다.
"이건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예전처럼 관계회복을 할 수 없겠죠?
제가 그만 두는 게 나을까요?"
예전처럼 관계회복을 할 수 없겠죠?
제가 그만 두는 게 나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1. 기대하고 기대는 남자.
J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내게 동업하자고 계속 제안하던 친구 K를 떠올렸다. K는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 쇼핑몰을 할 거라면서 내게 함께 하자고 말했다. 뚜렷하게 구상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일단 오픈해 두고, 상품 신경 쓰며 마케팅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내게는 사진을 찍는 일과 쇼핑몰 제작을 담당해 달라고 했다.
당연히 난 거절했다. K는 내게 "왜 청춘의 열정도 없이 그렇게 조심스러워 하냐, 시작해 보자."며 계속 참여를 요구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열정만 훌륭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베토벤이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열정은 있다. 그러나 기본이 없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불타오르고 있는 K에게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이후 K는 계속해서 내게 동업하자고 연락을 해 왔다.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삼고초려를 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니, 제발 함께 하자."며 부담스러운 말을 해댔다. 그러다 나중엔 내게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 나쁜 친구'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흘리기도 했다. K는 쇼핑몰 제작 업체에 의뢰해서 혼자 쇼핑몰을 열었다. 외부 사진가를 고용해 제품사진을 찍고, 미디어에 돈을 주고 광고를 하다가, 세 달쯤 지나 쇼핑몰을 접었다. 내가 함께 했다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K의 구상대로라면, 그건 손님이 많이 오길 '기대' 하는 것 말고는, 운영자 쪽에서 별로 할 게 없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J씨의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급속도로 식은 건, 위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J씨는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상대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했는가? J씨는
"전 당장 결혼이라도 할 수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어요.
그 말에 그녀는 자신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결혼을 해도 1~2년 후에 한다고 말했고요."
그 말에 그녀는 자신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결혼을 해도 1~2년 후에 한다고 말했고요."
라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저건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 것이지, 우리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일본 여행 가자는 거? 보드 타러 가자는 거? 그것 역시 같이 놀고 싶어서 하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직장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그런 것들이 얼마나 의미가 될 수 있겠는가? 그녀에겐 진통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치료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 그걸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랑만 해서는 평생 살 수가 없어요.
믿음, 이해 같은 것들도 있어야 해요."
믿음, 이해 같은 것들도 있어야 해요."
지방에 내려간 후로 다른 남자를 만나서 연락이 없는 거냐, 이제 친구들하고 만나니 난 필요 없어진 거냐,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맞냐, 아니냐 등의 질문만 하는 남자. 그게 J씨다.
2.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만약 그녀의 오빠라고 가정하면, 난 그녀가 J씨를 따라 서울에 올라가는 것에 반대할 것 같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 지방까지 내려와 그녀의 어머니께 편지를 드릴 정도로 큰 호감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불안하다.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J씨가 거듭해서 사연을 보낸 까닭에, 난 J씨에게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냈다.
"실례지만 연봉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리고 현재 독립해서 살고 계신 건지,
또 결혼을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하실 건지와
그에 대한 대책이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현재 독립해서 살고 계신 건지,
또 결혼을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하실 건지와
그에 대한 대책이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 없이, J씨는 상대에게 "결혼해서 같이 살자. 나랑 결혼할 거지?"라는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께 드렸다는 편지는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따님은 서울로 올라오고 싶어 하고,
저 역시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는 것에 찬성합니다.
어머니께서 걱정이 크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잘 보살펴서
어머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연락을 자주 드리며 어머니께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는 것에 찬성합니다.
어머니께서 걱정이 크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잘 보살펴서
어머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연락을 자주 드리며 어머니께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이건 지금 친구랑 해외여행 갈 때 친구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에게는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지내는 것'에 대한 허락만 받으려 하니, 그녀의 어머니는,
'뭘 어떻게 보살피겠다는 건가?
그렇게 따라 올라갔다가 헤어지면, 그땐 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렇게 따라 올라갔다가 헤어지면, 그땐 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나 역시 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J씨에게 "어떻게 보살피시겠다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J씨는 그녀의 과외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답했다. 그 답을 듣고 난 더욱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빠가 혹시 지방에 내려와서 일 할 수는 없는지…."
그녀가 저 말을 왜 꺼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이 관계 자체가, J씨가 지방에 내려가서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고, 오로지 그녀가 서울로 올라와야만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서울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J씨는 그걸 아주 쉽게 생각하는데,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그건 그녀에게도 '모험'이 되는 일이다. J씨가 지방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뿐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서울이 '아는 사람이 한 명 뿐인 곳.'이란 얘기다.
이젠 그녀도 지쳐 지방에서 지인에게 소개받는 곳에 취직하려 하는데, J씨는 거기에 대고 "거기에 취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그녀에겐 "그건 하지 마라."라는 얘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하자."는 얘기가 필요한 건데, J씨는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녀의 앞길만 막고 있다. 그러면서
"연락을 자주 안 하는 건, 나에 대한 너의 마음이 그 정도라는 거겠지."
라는 어린애 투정 같은 얘기만 해대고 있고 말이다.
3. 관계를 파멸로 몰아가는 건 J씨 자신.
그녀가 카카오톡 스토리에 올렸다는 그 글이, 현재의 상황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깊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조용하고 간단하다.
깊이 없는 사람들은 맹렬하고 불안하다."
깊이 없는 사람들은 맹렬하고 불안하다."
스스로를 꾸짖자. 그녀가 지방에 내려가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들과 만난다고 하면, 그 친구들은 어떤 친구인지,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을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J씨는
"그 친구들에게 나랑 사귄다고 말 했어? 왜 다 말 안했어?"
라는 얘기만 해댔다. 전화통화를 해도,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아? 마음 변하지 않은 거지?"
라는 얘기를 하며 확인만 받으려 했다. 이건 '오빠'가 아니라 '어린애'의 모습이다. 저런 모습들만 보여줬으니, 필연적으로 그녀가 J씨와의 연애를 불안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힘이 되긴커녕, 확인 받으려 하고 기대려 하는 남자.
"난 오빠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런 날 오빠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된다."
이런 날 오빠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된다."
그녀의 저 말 역시 그런 불안함 때문에 나온 말이다. 지금의 모습을 다 받아줘도 연락과 표현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바라는 것들을 요구하는 J씨인데, 앞으로 그녀가 힘들어 흔들리기라도 할 때에는 J씨가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J씨는 이 얘기를 동네방네 소문내며 위안을 얻으려 하고 있다. 친구, 친구의 여자친구, 아는 누나에 이르기까지 지인들에게 전부 "내가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뉘앙스로 사연설명을 하며, 그들로 부터 "정말 그런 것 같네. 네가 피해자야."라는 대답을 듣는다. 속사정을 모르는 그들은 J씨가
"내가 화이트데이에 가방까지 보냈는데, 잘 받았다는 말도 없고,
일본어 온라인 과외 자리가 있다고 하면, 그때서야 연락을 한다."
일본어 온라인 과외 자리가 있다고 하면, 그때서야 연락을 한다."
라고 얘기를 하면, 그 말만 듣고 그녀에 대한 비난을 한다. 그러면 또 J씨는 그 비난에 마음이 흔들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괴롭힌다. 잠깐의 위안을 얻자고 사람들에게 그녀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행여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어 J씨와 그녀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J씨는 그저 열심히 드리블 하는 것에 목숨을 걸다가, 결국 공을 경기장 밖으로 몰고 나간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땐 외로워서 내게 연락을 했던 거고,
지금은 외롭지 않아서 연락을 안 하나?
밥 먹었냐고, 뭐하냐고, 일은 어떠냐고 묻지도 않네?
이건 일반적인 연인들의 모습이 아니잖아.
게다가 넌 예전과 달리 화내고 귀찮아하는 일이 늘었고."
지금은 외롭지 않아서 연락을 안 하나?
밥 먹었냐고, 뭐하냐고, 일은 어떠냐고 묻지도 않네?
이건 일반적인 연인들의 모습이 아니잖아.
게다가 넌 예전과 달리 화내고 귀찮아하는 일이 늘었고."
화나고 귀찮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 화내고 귀찮아 하냐고 묻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상대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무슨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실컷 했지만, J씨는 스스로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연애는 생활에 적당히 맞추려고 하면서, 상대보고는 생활을 연애에 맞추라고 말하는 남자. 그게 J씨의 모습이다.
연인을 연애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상대의 애정표현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몰아내려는 사람들이 J씨와 같은 실수를 벌이곤 한다.
"연락을 안 하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야 할까요?"
저 말에 내가 대답해 줄 수 없었던 이유가 뭔지, 이제는 J씨도 알 거라 생각한다. 이건 밀당도 아니고, 서로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심리게임도 아니다. 인간적인 실망이며, 확신 없음에 관한 문제다.
징징거리다가 며칠에 한 번씩 상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것부터 그만 두자. 그러고 나서 상대와의 미래를 그려보고, 그런 미래가 되려면 J씨가 해야 할 몫이 뭔지 생각해 보자. 그 몫을 천천히 해 나가면 된다. J씨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상대에게 표현을 강요하고, 마음을 떠보며 확인 받으려 하는 건 상대의 몫을 침범하는 짓이다. J씨의 권한 밖의 일에 손을 대지 말자. '기대'까지가 J씨에게 허용된 범위다. '강요'는 그 너머의 일이고 말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보길 권한다.
▲ 어제 "추천은 의리로 하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추천이 두 배로 늘더군요. 의리!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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