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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연하남과 반동거를 하게 된 L양, 문제는?

by 무한 2013. 4. 17.
연하남과 반 동거를 하게 된 L양, 문제는?
제목을 이렇게 바꾼 것에 대해 먼저 L양에게 양해를 부탁하고 싶다. L양이 보내준 제목은

"자기 일에 빠지면 일에만 올인하는 남자"


였는데, 저걸 이야기 하려면 L양과 상대가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는지 까지를 다 살펴봐야 한다. 지금 단추가 하나 남는 건, 앞에서 뭔가 잘못 되었다는 얘기니 말이다.

아직 L양 커플이 연애중인 까닭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L양이 이십대 후반만 되었어도 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머지않아 시간이 그 결과를 L양에게 알려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L양은 삼십대 초반이고, 앞서 노멀로그에 매뉴얼로 소개된 적 있는 힘겨운 연애를 한 적 있기에, 난 이 글을 적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한다. 출발해 보자.


1. 이게 친구 얘기라면 뭐라고 말해 주겠는가?


친구가 자취를 시작했다. 구질구질했던 연애까지를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서른인 그녀는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들떠 반년쯤을 자취방에서 기쁘게 살았다. 하지만 자유의 기쁨을 다 누리고 나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가서 놀고 싶은데 같이 놀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찾은 곳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한 온라인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성스러운 게임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게임에서 남초현상이 심하다. 때문에 그곳에서 여자는 '홍일점'이 되어 남자들의 관심과 추파를 한 몸에 받는다. 그것에 대해 친구는,

"같이 놀게 된 사람들이 맘이 너무 잘 맞고, 개그도 잘 통하고."


라고 표현했다. 그런 표현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중 한 연하남과 '게임 커플'이 되어 사귀기도 했다. 접속하면 함께 게임을 했고, 오프라인에서는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게임 커플'이 된 일주일 후, 친구에게 그 연하남이 '프로필 사진 본인 사진이냐'고 물었다. 그 사진은 친구가 컴퓨터에 저장해 둔 모델 사진이었다. 모델사진이라고 답하자 연하남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휑한 바람이 부는 듯 행동했고, 심지어 실망했다는 걸 그대로 내비치기도 했다. 친구는 이 부분에 대해,

"실망까지 할 일인가 싶어서 나도 얘기를 했어.
꼭 자신을 등록해야 하는 거 아니잖냐고."



라고 말했다.

+ 여기서 잠깐.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저 '프로필 사진'건은 반칙으로 보는 게 맞다. 확연하게 구별되는 외국 연예인을 올려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모델의 사진-그것도 화보사진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찍은 직찍 사진-을 올려두는 건, 반칙이다. 나도 스무살 땐가 <친니친니>에 나왔던 '금성무가 음악 듣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둔 적 있었는데, 당시 어느 독자 분이 하루가 멀다하고 메일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사진 때문에 오해한 것 같아서 내 사진이 아니라고 밝히자, 그녀는 그 이후로 단 한 통의 메일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연하남에게 사람 외모 보고 판단하는 거 아니다, 내면의 소중함이 어쩌고저쩌고 하다, 하는 얘기를 해줬고. 그 연하남은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누나인 줄 알았는데, 생각이 깊은 것 같다. 조언 고맙다."라는 대답을 했다.(저 대답은 '한심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한심하기만 한 건 아닌것 같다.'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특별한 여자인 것 같다는 칭찬이 아니다.)

여하튼 그렇게 지내다 친구와 연하남은 만났고, 만난 첫날 술을 마시다가 연하남이 옆자리로 와서는 허리를 끌어 안으며 부비부비도 하고, 누난 너무 예쁘다며 사귀자고 했다. 그간 연하남의 들이댐으로 들떠있던 그녀는 승낙했다. 다른 비슷한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서도 '그러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연하남이 그날 집에 데려다 주다가 그녀의 자취방에 오게 되었고….

이런 도입부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에게, L양은 뭐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주모


L양은 지금과 같은 '반동거' 형태의 연애를 이제 한 달 정도 했다고 하는데, 좋을 때다. 그때는 뭐 남자도 신혼부부 놀이하는 것처럼 요리한다며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럼 또 L양은 그걸 엄마미소로 바라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는 그의 모습에서 자상함도 느끼고, 뭐 그럴 때다.

그런 생활에 중독된 내 지인 J양(34세, 병원근무)이 있다. 그녀의 '반동거 형태의 연애'는 대략 5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대개 연애상대는 학생 아니면 백수다. 여자의 집에서 함께 지낸다는 호기심에 들뜬 꼬꼬마들, 혹은 도피처로 알맞은 공간을 골랐다며 그녀의 자취방을 잠식해 들어가는 무기력한 남자들, 그런 사람들이 늘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다.

'주모'라고 보면 꼭 맞다. 뜨내기들이 찾아오면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얼마간 연애를 한다. 4주 정도는 이제야 제짝을 만난 사람처럼 '신혼부부 놀이'를 한다. 처음엔 집안 청소 및 꾸미기를 하는데, 칫솔을 새로 사거나 남자의 물건을 하나씩 그녀의 집에 들여다 놓으며 행복을 느낀다. 위에서 말했듯 같이 장을 보고, 서로를 위한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서로 먼저 하겠다며 아웅다웅 하며 잘 지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하는 것 대신 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시기가 오고, 좀 더 지나면 나가기도 귀찮아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단계로 접어든다. 함께 지내며 드는 여러 지출로 인해 재정적인 압박이 오며, 같이 살 때 느끼는 불편한 것들이 생겨난다. 슬슬 질리기 시작한 남자가 함께 있는 순간에도 인터넷만 하고 있다든지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보통 이쯤에서 '우리의 연애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상대에게 이렇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생활을 좀 더 존중하고, 경우에 따라 독립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당황스럽고 멋쩍은 느낌을 받지만 티를 내진 않는다.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냐며, 그럼 앞으로 자신이 주말에만 찾아오겠다든지 하는 말을 할 뿐이다. 그나마 저런 말을 하는 남자는 괜찮은 편이다. 그런 액션을 취하기도 귀찮아 대답만 해 놓고 행동에 아무 변화 없는 남자가 대부분이다.

이후엔 둘의 연애가 그녀의 자취방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그냥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그녀가 화내고, 타이르고, 졸라 보지만 변하지 않는다. "누나랑 나는 안 맞는 것 같다.", "누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누나는 내게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따위의 황당한 대답만 돌아온다.

그러면 또 J양은 이별이 너무 힘들다며 지역또래 모임에 참여해 술로 잊으려 하고, 그러다가 또 위로를 건네는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는 J양의 자취방에 오게 되고…. 그렇게 J양은 5년을 살았고, 지금은 '동두천 쪽에 신혼집을 마련하겠다는 어느 남자'와 사귀고 있다. 난 그 남자가 신혼집보다 직업을 먼저 좀 가졌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안타깝다.

L양은 "아직 그에 대해 잘 모르니, 일 년은 만나보려고 해요."라고 했는데, 그것까지 굳이 말리진 않겠다. 다만, 계속 사귀더라도 '자취방 데이트'만 하는 생활에서는 벗어나길 권한다. 사연만 놓고 보면, 현재 L양의 자취방은 그냥 돈 안 받는 숙박업소 같아 보이니 말이다.


3. 그러든지 말든지.


L양은 현재 "우리, 이렇게 지내는 건 아닌 것 같다. 주중에라도 서로 독립적으로 시간을 갖자."라는 말로 상대와의 거리감을 좀 둔 상태인데, 딱 L양이 밀어낸 만큼 두 사람에겐 거리감이 생겼다. 그녀의 남친은 L양이 무슨 얘기를 해도

'그러든지 말든지'


정도의 태도만 보이고 있다.

늘 얘기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 그간 진행되어 온 이야기를 보면, L양은 그냥 '쉬운 여자'에 속한다. 게임 하다가 온라인 커플이 되고, 실제로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고, 만나서 자취방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고, 그날부터 반 동거 형태로 지낼 수도 있다.

L양이 아래와 같은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무한님도 아시겠지만, 전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게임 하면서 남자 만나려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게임은 스트레스 풀려고 한 거예요.
남친과는 같이 게임하다가 코드가 잘 맞아서 사귀게 된 거고,
제 자취방에 남친이 온 건, 남친이 데려다 준다고 왔다가 들어오라고 하게 된 거고, 
자취방에서 같이 지내게 된 것도, 남들처럼 진짜 동거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서로 음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재미있는 이슈가 있으면 공유하며 그렇게 지냈어요."



저 말에 내가,

"어익후, 죄송합니다. 로맨스가 확실하군요.
온라인 게임으로 만난 연하남과 반 동거 하는,
그런 가벼운 연애 얘기와는 레벨이 다릅니다."



라는 대답을 해야 할까? 위에서 말한 내 지인 J양도, 남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진짜 사랑'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녀가 하는 동거는 잠깐 같이 살다가 쫑나는 다른 커플들과는 레벨이 다른 동거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5년간 그녀는 '잠깐 같이 살다가 쫑나는 연애'만 해 왔을 뿐이다. 그녀와 함께 살았던 남자들, 처음엔 그녀의 빨래까지 손수 다 할 정도로 다들 자상한 사람들이었다.


지난 매뉴얼을 읽고 새 출발을 다짐하며 서울로 올라왔다는 사람이, 서울에 와서는 더 당황스런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라고 자꾸 의미부여만 하지 말고, 그 일을 다른 친구가 겪고 있다면 뭐라고 말해 줄 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여기서 보기엔 L양의 이야기가, 2박 3일 한국 여행 온 사람에게 집을 팔려는 이야기 같아 보인다. L양은 '자기 일에 빠지면 일에만 올인하는 남자'라고 말하는데, 사연은 읽어 보면 그냥 '주말엔 여자친구 자취방에 가서 놀고, 평일엔 게임과 서핑, 과제를 하는 남자'로 보인다. 게임할 때 자꾸 톡 오면 짜증나니까, L양이 퇴근한다고 하면 "어, 들어가서 쉬어~"정도의 톡만 보낸다. 그걸 두고 L양이 표현을 더 하라고 지적하면, 아마 속으로는 '주말에 가서 놀아주면 됐지,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은지….' 정도의 생각을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L양의 그간 모습이, '그래도 되는 여자'였던 것이다. 별 생각이 없이 그저 감정에 따라 상황을 대하다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 사연을 보낸 한 독자도, 그저 호기심에 친구 따라 클럽 한 번 가 봤을 뿐인데, 같이 술 먹자는 어떤 남자를 따라가고, 차가 끊긴 까닭에 아무 짓 안 한다는 그를 믿고 모텔까지 갔더니, 자기를 '쉬운 여자'인 줄 알더라는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지 않은가? 

L양의 나이, 서른이다. 지금 그러고 있어도 되는 상황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어차피 책임은 L양이 지는 것이니, 난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

L양 - 난 오늘따라 우리 자기생각이 많이 나네~
남친 - ㅋㅋㅋ그래?



가슴이 아프다, 아주 그냥 내 가슴이 아파.



"내년까지 지내보면 알 수 있을까요?" 여름이 오기 전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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