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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모임에서 친해졌지만 따로 만난 후로 데면데면 해진 관계

by 무한 2013. 5. 6.
모임에서 친해졌지만 따로 만난 후로 데면데면 해진 관계
구성원이 20대 후반~30대 초반인 동호회는 유연하다는 얘기를 먼저 해주고 싶다. 그곳에서 이성 회원들에게 찝쩍거린다 하더라도, 대개 다른 구성원들 네트워크에 경계경보만 발령될 뿐 당사자에게 누군가 나서서 따지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세 번 찝쩍거리셨으니 아웃입니다. 더는 동호회에 참석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말을 직접 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 까닭에,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지 않다간 겉으로만 친할 뿐 속으론 기름처럼 겉돌다 자진 퇴출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다. 댄스동호회를 예로 들어 보자. 동성 동호회원들이,

"형, 근데 춤출 때 형이 하는 스킨십에 여자들이 좀 불쾌해 하는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이미 이성 동호회원들 사이에선 퇴출 말고는 답이 없는 '손버릇 나쁜 아저씨'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얘기다. 동호회 활동엔 '친목'이라는 목적도 있기에 정색하며 따지지 않을 뿐이지, 다들 멍청하다거나 눈치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이걸 모른 채

"야 왜 내가 번개하면 다들 바쁘다는 거야~ 협조 좀 해줘~ 놀아줘~"


따위의 이야기만 하고 있는 분들이 몇몇 있기에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상황을 망쳐 놓고는 동호회의 어린 동성 회원들 불러다 술을 사며,

"야, 근데 니들이 봤을 때 내가 어떤 점을 고쳐야 할 것 같냐?
난 진짜 선의로 그러는 건데, 그게 그렇게 부담스럽나?
나 C양 마음에 드는데, 니들이 형 좀 도와주라. 진짜 잘 되면 크게 한 턱 쏠게."



따위의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남들이 미소로 대한다고 정신 줄 놓은 채 거기서 혼자 쇼하지 말자. 그거, 다들 머리 굵은 사람들이니 알아서 조심할 거라 생각하며 베푸는 친절과 호의지, 그대의 매력에 빠졌다거나 개인적인 호감이 있어서 베푸는 게 아니다. 내가 동호회에 나간다 하더라도, 그대에게 "아, 은행 다니세요? 어디 은행이요?"라고 묻는 건 그냥 '예의상' 묻는 거지, 큰 관심이 있어서 묻는 게 아니다. 솔직히 그대가 은행을 다니든 은행(은행나무 열매)을 따러 다니든 난 관심 없다. 립서비스 몇 번에 정신줄 놓아 버리는 대원들이 있기에 하는 얘기니,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동호회 생활을 돌아보길 권한다.

자 그럼, 오늘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간만 봐도 아웃카운트는 올라간다.


여자는 바보가 아니다.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연락하고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들이대느라 자꾸 계기를 만드는 건 확실히 구별할 줄 안다. 물론, 이것에 대해

"제가 사교적이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해서요.
모르는 사람한테도 자연이 말 잘 걸고, 대화하는 것도 즐거워요."



라고 얘기를 하면, "친화력이 뛰어나시네요."라는 대답을 들을 순 있다. 하지만 속마음도 그럴까? 아마 그녀는 속으로 'A양에게도 얼마 전까지 만나자고 카톡 보냈다고 하던데, 이런 식으로 들이대는 남자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직접 저 말을 꺼내진 않는다. 동호회 활동을 하며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인데, 괜히 저런 얘기를 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사연을 보낸 J씨는

"A양과는 일주일 정도 카톡을 주고받으며 관심을 표현하다가,
그녀가 별로 적극적이지 않아 저도 연락을 하지 않는, 흐지부지 된 상황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것도 아웃카운트에 포함된다. 고백을 하지 않았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J씨가 A양 이후로 관심을 갖게 된 썸녀와 따로 만나고 있을 때, 'A양과 친한 언니인 B양'이 그녀에게 카톡으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왜 그 사람하고 같이 있어?"


이후 B양이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솔직히 난 J씨의 '이번 썸'말고, '다음 썸'이 더 걱정 된다. J씨는 데면데면해진 이 관계에 실망해 들이댐을 접으려는 것 같은데, 그랬다간 A양, B양, 그리고 이번의 썸녀까지도 J씨의 적이 될 것이다. 나중에 뉴페이스가 들어와 다시 J씨가 들이대려 할 때, 그녀들은 뉴페이스에게 'J씨의 찝쩍거림'에 대해 폭로할 것이다.

"제가 사귀자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호감이 좀 있어서 친해지려 하다가 실패한 상황인데
이런 것도 문제가 되나요?"



J씨는 저렇게 억울함을 토로할지 모르지만, 동호회 모임에서 술 마시다가 누군가 리액션을 잘 해주거나 눈빛교환이 이루어지면 번호를 따고, 그 이후 계속 연락하며 자리를 만들고, 그러다가 흐지부지 될 것 같으면 발을 빼는 것. 그것도 아웃카운트에 포함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그래놓고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해서 친해지려 그랬을 뿐이다."라는 말로 열심히 자기변호를 해봐야, 변명으로 보일 뿐이다.

J씨의 연애에는, 현재 J씨와 썸녀 둘의 직접적인 관계보다, 동호회에서의 'J씨 평판'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 얘기를 하는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이성을 대할 때에는 보다 신중한 모습을 갖추길 권한다.


2. 카톡대화에서의 문제.


동호회 활동을 오래 해서 그런지, J씨는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편이다. 유머감각과 센스를 갖추고 있는 까닭에 '접대용 멘트'들을 잘 날린다.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슬쩍 사생활에 대해 묻기도 하고, 만나자는 얘기도 자연스레 꺼낸다.

치명적인 문제는 없지만, 눈에 띄는 문제가 두 개정도 있어 적어두기로 한다.

ⓐ 분위기가 좋아지면 방방 뜨는 문제.
(J씨가 동호회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셨으니)사진동호회라고 가정한 뒤, J씨의 대화패턴을 살펴보자.

J씨 - <사진> 이런 느낌으로 찍으시면 돼요.
상대 - 우와, 이거 직접 찍으신 거예요?
J씨 - 네. 좀 허접하게 찍긴 했는데, 배경은 저런 식으로 날릴 수 있어요.
상대 - 엄청 잘 찍으셨는데요? 멋져요!
J씨 - 부끄러운 수준인데 자꾸 비행기 태우시면 ㅎㅎㅎ
상대 - 정말 잘 찍으셨어요.
J씨 - <사진> 이런 느낌으로 찍으셔도 좋고.
J씨 - <사진> 저녁땐 이런 느낌으로 찍으셔도 돼요.
상대 - 잡지에 나오는 사진 같네요.
J씨 - 하핫, 왜 그러셔요~ 썸녀님도 잘 찍으시던데.
상대 - 전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ㅠ.ㅠ
J씨 - 아녜요. 처음 치고는 느낌 있는 사진 많이 찍으시던데, 조금만 더 배우시면 돼요~
상대 - 감사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세요~
J씨 - 카메라가 니콘이라고 하셨죠? 카페렌즈 써 보셨어요?
J씨 - <사진> 이게 카페렌즈로 찍은 사진입니다~



J씨는 상대에게 "멋져요! 신기해요! 대단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꼭 관심사에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J씨는 '은근한 잘난 척'을 자꾸 한다. 방청객 앞에 놔두고 토크쇼 하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수습하긴 했지만, 그녀가 야구를 보러 간다는 얘기를 했을 때 어느 팀을 좋아하냐고 묻지도 않은 채 J씨가 자기 할 말만 하는 부분에서 난 좀 놀랐다.

ⓑ 변명의 문제.
이거 위에서도 얘기한 부분인데, J씨의 자기변호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다 해결된 게 아니다. J씨가 금사빠라는 게,

"제가 원래 남녀관계에 대해선 복잡한 거 싫어해서,
복잡해 질 것 같으면 엄청 쿨하게 포기하고 그러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 생각은 조금씩 다른가 봐요."



따위의 말로 정당화 되지 않는단 얘기다. 간 보다가 가망 없으면 접고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는 걸 '쿨한 것'이라고 생각할 여자는 이 세상에 많지 않다. 그리고 저 말에 대놓고 반박을 할 사람도 많지 않다. 특유의 까칠함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이쪽에서 아니면 되는 거죠~"


정도의 리액션만 할 뿐이다. 저 말을 들으면 J씨는 '됐어! 얘는 나를 이해하는 군. 내가 작업하기 딱 좋은 토양이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저건 J씨를 온전히 이해해 진심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괜히 저 말에 부정해 적을 만들 필요 없으니 일단 긍정적인 리액션 하는 거지, B양에게 몇 마디 듣기만 해도 그녀의 생각은 한순간에 바뀔 것이다.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것으로 증명하면 된다. 말로는 백 번 "난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해 놓고, 실제로는 이성으로 느껴지는 동호회원들에게 연락해 들이대면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3. 결론


우선, J씨와 썸녀는 사실 '썸'을 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동호회에서 신입회원들에게 지도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번개를 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에겐 누구나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음 날 "어제 잘 들어갔어요?"라는 물음에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개인적인 연락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라고 말 할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지도해 주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주목을 받고자 개인기를 보여주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번개를 친 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 노래를 부르면, 노래 부르는 사람을 쳐다보는 게 당연하단 얘기다. 그걸 관심으로 착각하는 건 '자뻑'일 뿐이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편입니다. 나름 노래엔 자신 있는 편이고,
그 이전 연애도 다 노래로 어필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제 노래 듣고 여자 쪽에서 먼저 접근한 적도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J씨의 썸녀는 J씨의 노래에 반한 게 아니다. J씨는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아래와 같은 질문을 J씨에게 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그녀가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죠?
카톡대화는 J씨가 묻는 말에 그녀가 대답하는 게 전부이며,
그 대화도 '네 그럼 다음 번개에서 또 봬요~'정도로 그녀가 마무리 짓는데,
이게 어떻게 반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J씨는 그냥 현재 상황에서 그녀와 맺어질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니-그녀가 신입인데다가, 말을 걸면 성실히 대답해 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들이대는 것일 뿐이지, 그녀에게 특별히 인간적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아마 J씨가 몇 주 전 들이댔다는 A양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J씨는 자신의 들이댐에 A양이 성실히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을 접었으니 말이다.)  

동호회 활동을 하며 최소한 계절 하나는 함께 보내보고 마음을 결정하길 권해주고 싶다. 지금과 같은 J씨의 태도는 '찝쩍이'로 낙인찍히기 딱 좋은 태도다. A양에게 들이댄 것이 일주일, 그러고 나서 지금의 썸녀에게 들이댄 것이 일주일이다.

'꽤 오랜기간 활동했으며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신입회원의 신뢰'를, 관심으로 착각해 엎지르지 말길 권한다. 만약 뉴페이스인 C양이 등장해,

"사진 정말 잘 찍으시네요! 저도 좀 가르쳐 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면, J씨는 또 그녀에게 마음을 돌려 "신촌에서 번개할 건데, 퇴근하고 올래요?"라는 이야기를 할 것 아닌가. 그녀의 번호를 딴 이후로는 열심히 "<사진>이거 내가 찍은 건데 한 번 보세요. 아, 그리고 접사 배우고 싶다고 하셨죠?"라는 이야기들을 카톡으로 보낼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에 C양이 지금의 썸녀와 친해진다면, J씨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그저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상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실력이 되면서 그저 카톡으로만 깔짝이고 있는 게 사실 좀 답답하다. 내가 J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상대 쉬는 날에 맞춰 '교육 계획'을 세울 것이다. 상대가 배우려는 열의를 갖고 있는 걸 내가 할 줄 아는데, 망설일 게 뭐 있겠는가. 술 마시자고 불러내는 것 대신, 단독으로 가르쳐 줄 기회들을 만들 것이다.

또, 상대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니 야구장도 함께 갈 것이다. 가서 치맥 먹으며 응원가 좀 부르고 나면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아직 저녁엔 좀 추우니 무릎담요 준비해가서, 열심히 응원하고 돌아올 것이다. 단, 그렇게 가까워졌다고 바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팥빙수 먹자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친해지는 걸 목표로 할 것이다. 

J씨가 '가능성'만 따지며 고백할 기회만 노리고 있으니 저런 걸 생각도 못한 채,

"단둘이 만나고 난 이후에 대답이 의무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요?"


따위의 말만 하게 되는 거다. 동호회에서 제일 친한 오빠동생이 되는 걸 목표로 다가가길 권한다. 지금처럼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노래 한 곡 부르곤 "그녀가 저를 계속 쳐다보는 게 느껴졌어요." 따위의 말만 하면 방법 없다.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하는 대신, 그녀와 눈을 맞추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권한다. 나중에 같이 산책하자며 아무 관련도 감동도 없는 일로 떠보는 짓은 그만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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