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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결혼 전제로 사귀다 감당할 수 없다며 떠난 남자, 왜?

by 무한 2013. 5. 21.
결혼 전제로 만나다 감당할 수 없다며 떠난 남자, 왜?
Y양 커플의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람 모두 결혼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을 전제로' 만났다는 점이다. 결혼해서 아이는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 결혼식은 어디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싶다 등의 얘기는, 집에서 놀다가 치킨 먹으러 나가서도 할 수 있다.

결혼해서 어떻게 살겠다는 얘기는, 8년 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내 지인 K군도 잘 한다. 전에 K군이 어플로 만난 이성이랑 대화하는 걸 보여준 적 있다. 그는 상대에게 나중에 결혼하면 요트를 사서 애들 방학하면 가족과 함께 항해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현실에서 K군은 폰 요금 밀려서 정지 풀려고 부모께 손 벌리는 처지다.

꿈을 꿔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꿈만 꿨다는 게 문제다. 미안하지만 Y양과 남자친구가 세웠다는 계획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열심히 방학계획을 짠 까닭에 '잠잘 시간'을 미처 집어넣지 못한 초등학생의 계획표가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아침이 될 때까지 공부, 운동, TV시청, 학원, 놀기 등의 빼곡한 일정만 적어둔 계획표 말이다.

"넌 너무 어리며, 현재 상황에서 난 널 감당할 수가 없다."


남자친구의 저 마지막 말이 둘이 헤어진 원인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저 말이 왜 나왔는지, 세 가지 시각에서 함께 살펴보자.


1. 볼펜으로 열심히 그린 밑그림.


늘 얘기하지만, 결혼은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때 해야 알맞다. 그게 안 되면 결혼 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리거나, 결혼이 '함정'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라도 낳게 되면, 준비 되지 않은 결혼의 그 시행착오들을 아이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다음에야 결혼하란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벌이를 할 수 있고, 부모에게든 친구에게든 정신적으로 기대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을 때(이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함께 하라는 얘기다.

Y양을 보자. 졸업반 이십대 후반의 늦깎이 여대생이다. Y양이 모아두었다는 돈으로는 소형차 한 대를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다. 이번엔 상대를 보자. 그는 회사를 그만 둔 후 진로변경을 생각 중인 서른두 살의 재취업 준비생이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 결혼자금으로 모아 둔 집 보증금을 사기 당했다.

"저는 올해 안에 취직을 할 생각이고, 만약 재학 중 취직이 안 된다면
정말 어떤 일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커피숍에 앉아 얼큰한 카푸치노 마시면서 계획을 짜면, 그냥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나도 자전거 타고 일산에서 잠실 다녀올 계획을 짤 때 '안장에 젤 패드도 끼웠고, 출판단지까지도 무리 없이 왔다 갔다 하니까, 잠실이야 뭐 시간만 좀 길어지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잠실에 출발했을 땐,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난 지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한강의 맞바람'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장의 젤 패드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별 효과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 말이다.

거기다가 Y양은 취직 후 돈을 모아 몇 년 후에는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내 시각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이도 낳아서 기를 거라고 했는데, 아이를 기르는 건 강아지를 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관심과 정성과 시간과 돈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필요하다.

Y양은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까닭에 결혼해서 '전세'를 얻으면 몸만 옮겨가서 살면 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월세든 전세든 거기서 생활하는 모든 비용은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겨울에 뜨끈뜨끈하게 난방 좀 돌린 뒤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보면, 왜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추우면 옷 입고 지내면 되죠." 따위의 마리 앙투아네트식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살아보면 안다. 아끼고 아껴도 "퍼가요~♥"라며 통장에 흔적을 남기는 공과금 및 관리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관련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기저귀와 분유 값을 한 번 검색해 보기 바란다.

남자친구는 오랜 기간 자취를 한 까닭에 이걸 안다. 때문에 Y양이 '대출' 얘기를 꺼냈을 때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며, 결혼 후의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Y양이 밝힌 남자친구의 월급은 중소기업 초봉에 좀 못 미치는 정도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온다. 게다가 현재 남자친구는 결혼자금으로 모아 둔 집 보증금을 사기당한 상태. 이 와중에 Y양은 결혼식 어디서 할 건지 이야기 하고, 대학원에 갈 계획을 세워 두었으며, 아이에게 붙이고 싶은 이름까지 정해서 말한다. 이쯤 되면 그는, 'Y양이 어린 까닭에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2. 가득한 불만을 생중계 하는 여자.


위에서 말한 '돈'과 관련된 문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든 로또에 당첨 되든 해서 해결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둘 사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Y양이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는 문제다. 남자친구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것 중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불만의 생중계'를 Y양은 저지른다.

- 잠이 안 온다.
- 힘들다.
- 학교 가기 싫다.
- 때려치우고 싶다.
- 일어나기 싫다.
- 버스 놓쳤다.
- 택시 기사가 길을 모른다.
- 얼른 집에서 나가 살고 싶다.
- 가족 때문에 자다가 깼다.
- 피곤하다.
- 짜증난다.
- 우울하다.
- 중간고사라 싫다.
- 공부 하나도 안 해서 걱정이다.
- 지각할 것 같다.
- 체한 것 같다.
- 새벽에 일어나서 과제해야 한다.
- 과제 잘못해서 망했다.
- 배고픈데 나가서 먹을 거 사오기 싫다.
-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



헤어지기 전 2주간 Y양이 상대에게 중계한 불만들이다. 저걸 딱 한 번씩만 한 건 아니고, 중복으로 여러 번 이야기 한 것도 있다.

저 중에서 남자친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찾아보자. 내가 봤을 땐 '배고픈데 나가서 먹을 거 사오기 싫다'를 제외하곤 전부 남자친구가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문제들이다. 아마 Y양은,

"전 어떻게 해 달라고 한 게 아닌데요? 그냥 제 기분이나 상황이 그렇다는 걸 말한 건데…."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걸 '동성친구'가 Y양에게 토로한다고 생각해 보길 권한다.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징징 거리는 그 소리에 짜증이 날 것 같지 않은가?

Y양의 말 8할이 저런 '불만 생중계'다. 그리고 바보 같은 Y양의 남친은 또, 남자 특유의 '문제해결 프로세서'를 작동시켜 저 불만들을 해결하려 했다. 힘내라는 얘기, 결혼하면 나가서 살 테니 조금만 참으라는 얘기, 미안하다는 얘기 등으로 Y양을 위로하려 든다.(물론 Y양이 그 위로를 가볍게 쳐내는 까닭에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

내가 만약 솔로부대원이고 누군가 내게 "너라면 Y양을 감당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머리로는 '그래, 이건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감정토로일 뿐이야. 그렇게 받아들이자.'라며 이해할 수 있겠지만,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부정에너지에 결국 나도 만세를 부를 것 같다.

"야, 그냥 너랑 나랑 모르는 사람 하자. 됐지? 이제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살아.
나한테 다시는 뭐가 짜증난다느니, 마음에 안 든다느니,
때려치우고 싶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안 해서 걱정, 공부를 안 했으니 시험을 못 볼까봐 걱정,
시험을 못 봤으니 학점이 안나올까봐 걱정…,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저런 이야기를 해버릴 것 같단 얘기다. 미안하지만 차라리 그렇게라도 인연을 끊어 마음 편히 지내는 게, 계속 사귀면서 고문당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3. 기분 상하면 판을 엎어버리는 문제.


명심하기 바란다. 남자친구는 Y양을 기쁘게 할 의무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데이트가 즐겁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한 절반 정도의 책임은 Y양에게도 있다. 만날 약속을 잡는 것 역시 남자친구 혼자서만 해야하는 게 아니며, 만나서 뭐 할 건지도 남자친구 혼자 정해야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기분이 좋을 땐 저런 게 문제될 일이 없다. 만나서 수다 떨고, 영화 보고, 밥 먹고, 뭐 그러고 돌아와선 굿나잇 인사하고 잠자리에 들면 훌륭한 데이트다. 하지만 데이트로 인한 작은 갈등이 생겼을 경우, Y양은 일단 날을 세운 뒤 판을 엎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대화를 보자.

남친 - 내일 저녁에 만날까?
Y양 - 만나서 뭐하지? ㅎㅎ
남친 - 편한 카페 갈까?
Y양 - 힝.. 그래..
남친 - 싫어?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Y양 - 아냐. 오빠 봐서 좋아.

(이후 사적인 대화를 하다가 Y양 기분이 상함.)
Y양 - 내일은 그냥 쉬자. 나 그냥 집에서 과제 할게.



기분 좋을 때 애정표현하고 사랑한단 얘기하는 건 쉽다. 어려운 건, 저렇게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의 판을 엎지 않는 것이다. 

아래는, 둘이 놀이동산에 다녀오는 길에 다투다 Y양이 한 말이다.

"이렇게 힘들 것 같았으면 미리 얘기를 하고 오질 말든가. 휴일만 버리고 이게 뭐야?"


불면증 때문에 남자친구는 잠을 얼마 못 잔 상황이었고, 운전까지 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때문에 놀이동산에서 남자친구는 기구 몇 개를 타고 나오려고 했고, Y양은 오랜만에 와서 제대로 놀지 못한 까닭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결국 저 말을 하고 만 것이다.

Y양의 남자친구는 이타적인 사람이며, 여자친구에게 헌신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Y양이 저렇게 판을 엎어도 그는 먼저 사과를 하거나 Y양을 달래려고 한다. 그런 2년간의 피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이별을 통보한다.

(Y양이 감정이 상해,
"차라리 오빠 안 보는 게 낫겠다."는 말로 판을 엎은 후, 상대가 한 대답.)
"나도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힘들어서 뿐만이 아니라, Y양에게 Y양이 바라는 역할을 내가 못 하니까.
시간을 가지는 것보단 헤어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 카톡으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괜찮다면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얼굴 보고 말하는 게 힘들 것 같으면 메일이든 편지든 내 생각을 전해줄게.
그저 욱해서 그러는 건 아니야."



둘 다에게 '토닥토닥'을 해주고 싶다.


난 Y양에게, 졸업과 취직을 하기 전까지 만이라도 혼자 지내보길 권해주고 싶다.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세우고, 그걸 타파해 나가는 연습을 해보자. 주변에서 친구들이 Y양에게 '이별 위안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하는데, 누군가를 다시 만나도 위에서 말한 문제는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서는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대화도 줄이길 바란다. 모녀지간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Y양이 자신의 사생활을 전부 어머니께 말씀드린다는 것은, 계속해서 보호자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지내다간 영영 보호자라는 보조바퀴를 떼지 못한 채 인생을 전부 어머니의 코치대로만 살게 될 위험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우자. Y양도 떡국 한 그릇 더 먹으면 이십대 후반 아닌가. 진작 했어야 할 '홀로서기'를 지금이라도 해보길 권한다.

현재 상태로 잠깐 연락 안 하고 지내다가 다시 만나면,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Y양은 의존하고, 이타적인 남친은 그걸 거부하지 못한 채 계속 받아주는 악순환. Y양은 학업과 과제에서 연애로 도피하는 까닭에 고민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남친은 그 얘기를 전부 다 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둘 다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다리에 힘주고 버티길 바란다.



▲ 오늘은 무슨 말로 마무리를 할까 고민하다 30분이 지나갔습니다. 패스.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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