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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애처럼 구는 남자, 이별이 필연적인 이유는?

by 무한 2013. 5. 29.
애처럼 구는 남자, 이별이 필연적인 이유는?
A라는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녀는 S씨를 향해

"오빠 뭐 하고 싶어? 오빠가 하고 싶은 거 같이 하자."
"오빠를 위해서 내가 이러이러한 것도 했어."
"오빠만 좋다면 난 상관없어.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빠 나랑 안 헤어질 거지? 오빠 나 버리지 마."



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저렇게 구는 여자에게 S씨는 계절 하나가 바뀌기도 전에 질릴 것이다. 긴장감이나 생동감이 전혀 없는, 주차장 B4구역에 세워져 있는 아무개씨네 자동차처럼 여겨질 테니 말이다. 

저 이야기를 뒤집으면 S씨의 이야기가 되는데, 이렇듯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감동'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부푼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100일도 지나지 않아 무덤덤하게 끝난 S씨의 이전 연애들은, 맹목적인 헌신과 과한 배려 때문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S씨의 사연에는 위험한 지점들이 많으니, 오늘은 짧게 잘라서 여러 테마들을 다루는 식으로 살펴보자.


1. 연애 경험이 없진 않습니다?


S씨는 말한다.

"제가 연애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는 아닙니다. 이제껏 네 명의 여자를 사귀어 봤습니다."


애처럼 구는 연애는, 100번을 했다 하더라도 연애를 한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건 좋은 첫 느낌으로 힘들이지 않고 시작해, 서서히 관계의 붕괴를 경험한 것일 뿐이다. 현재 알고 있는 지식만 가지고 모의고사를 본 것과 같단 얘기다. 기대하던 성적이 안 나왔으면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자신이 뭘 모르고 있어서 문제를 풀지 못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S씨는

'이번에도 또 불합격이네. 다음 시험엔 꼭 합격해야지.'


라는 생각만 한 것이다. 때문에 S씨와 최근에 헤어진 여자친구도

"오빠는 여자는 많이 사귀어 봤다고 하는데, 여자를 모르는 것 같다."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버스 100번 넘게 타 봤다고 버스 운전 할 수 있는 것 아니잖은가. S씨는 다가오는 연애에 '탑승'했던 것뿐이고, 종점에 도착해서 '하차'한 것일 뿐이다.


2. 공수표 남발과 채무.


연애를 이제 막 시작한 까닭에 상대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수표를 남발하기 시작하면, 상대에게 바람만 잔뜩 집어넣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우리 나중에 사파리 보러 가자."
"와인 마시면서 칼질 하는 거 어때? 스테이크!"
"내가 나중에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약속은 현재의 사정과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약속은 '일주일, 혹은 한 달 내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주말에 같이 야구보러 가서 치맥 먹으며 응원하자." 정도의 약속이 적당하다. "나 시험 합격하면 뭐뭐 하자."같은 건 '공수표'가 될 확률이 높다. 서로의 스케줄 및 재정상황도 고려하지 않은데다가, 합격 여부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표 남발'은 아직 실천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상대의 반응을 본 뒤, 그 반응에 대한 즐거움에만 만족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대화를 하나 만들어 보자.  

남자 - 나중에 우리 유럽여행 가자~ 자기는 나만 따라오면 돼~
여자 - 유럽? 신난다~ 가이드 없이 우리 둘이 자유여행?
남자 - 응. 당연하지. 내가 열심히 영어공부 하고 있잖아 ㅎ
여자 - 멋져~
남자 - 좋아?
여자 - 응응.



저렇게 말해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천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티셔츠 하나, 신발 하나 사기도 벅찰 정도로 쪼들리는 상황인데다, 영어공부는 중학교 수준부터 시작하겠다고 해놓고 문제집 몇 장 읽다가 덮어버렸다면, 저건 '공수표'가 되고 만다.

공수표를 남발하며 상대에게 바람을 넣고 그 반응을 즐길 땐 좋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면서 이미 다 해준 듯한, 이상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발행한 공수표는 훗날 그대에게 반드시 '채무'가 된다. 쳐 놓은 큰소리와 달리 현실이 시궁창이면,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남자는 행동이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앞으로는 '오늘, 주말에, 이번 달 말에' 실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란다.


3. '너를 위해'가 아니라 '우릴 위해'가 되어야 한다.
 

'너를 위해' 살기 시작하면, 서두에서 말한 문제가 발생한다. '감동'이 아닌 '부담'이 되는 문제 말이다. S씨의 멘트를 하나 가져와 보자.

"난 네가 편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좋은 거고, 너한테 주도권이 있는 거니까…."



연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S씨는 저런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 여자친구가 기뻐할 만한 것을 하려 했고, 여자친구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으려 했으며, 데이트를 하면서도 여자친구의 표정이 '점수판'이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안절부절하며 만족하는지, 불만족하는지를 살폈다.

심지어 S씨는 진로변경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재취업 할 지역을 '상대를 위해'결정하려고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인천지역에 취직을 하는 게 S씨에게 도움이 되는데, 상대를 위해 상대가 있는 서울로 취직을 하려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S씨의 맹목적인 헌신과 호의에 질려있던 상대는, 이 지점에서 폭발한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 하지 말고, 오빠를 위해 갈 길 있으면 선택했음 좋겠다."


여자친구의 저 말을 두고 S씨는 또, 자신의 희생을 여자친구가 알아주는 것 같지 않는다며 시무룩해 한다. 이건 또 다른 형태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일 뿐이다. S씨는 상대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고 헌신하며, 여자친구는 그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동하고 기뻐해야 하는, 그런 '답정너'말이다.


4. 확인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남자.
  

그간 종종 '여자친구의 마음을 확인 하려는 남자'에 대해 소개한 적 있는데, 그런 남자들은 S씨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S씨는 '확인 종결자'다. '불안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S씨는 끊임 없이 여자친구에게 다짐을 받아내려 한다. 연애 초반 S씨의 멘트를 보자.

"갑자기 나 뻥 차면 안 돼.
너한테 버림받음 나 이제 아무도 못 좋아해."



저 정도 멘트는, 한두 번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S씨는 틈만 나면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고, 헤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질투를 하기도 한다.

S씨 -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맛난 거 마시고 있나 보네.
상대 - 오빠랑 같이 밥 먹으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본인과 밥 같이 먹을 때 찍은 사진인 걸 모르곤,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과 맛있는 걸 먹고 있는 줄 알고 질투가 섞인 멘트를 하는 것이다. 당황스럽다.

이 외에도 S씨는 커플티, 커플속옷, 커플링 등 다양한 주제를 꺼내며 여자친구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다. 그걸 다 실천했는지는 사연에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커플 용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뒤 상대의 반응을 보고 일희일비 한 것은 분명하다. 커플링과 관련된 대화를 보자.

S씨 - 커플관련 액세서리 하나 할까?
상대 - 액세서리?
S씨 - 반지.
상대 - 커플링 하자고?
S씨 - 언젠가는 하자고 ㅎ
상대 - 나 반지 목걸이 같은 거 잘 잃어버리는데 ㅋ
S씨 - (상대가 연애한 적 없다는 말을 했음에도)커플링 해본 적 있다는 건가?
상대 - 아니, 없지. 
         나 피아노 쳐서 반지 끼기 좀 그런데…. 잃어버리기도 잘하고. 
S씨 - 나에 대한 마음이 진실이면, 신경 약간만 써주면 안 잃어버리지 싶은데 ㅎ



저 대화엔 '떠보기', 그리고 'YES라는 대답 받아내 안심하기'가 섞여 있다.

넌 내 마지막 여자다, 난 변하지 않는다, 네가 날 차지 않는 이상 우링 헤어질 일 없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상대로부터도 같은 말을 들으려는 남자. 앞으로는 자기 마음에 대해 장담하지도 말고, 그렇게 장담하며 상대로부터도 같은 말을 들으려 하지 말길 바란다. 그렇게 수도 없이 다짐 받아봐야, 지금처럼 헤어지면 끝나는 게 연애다. 커플링 열 손가락에 다 낀다고 안 헤어지는 거 아니잖은가.

또, 다짐과 관련해 난 개인적으로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말 그럴 생각이면 묵묵하게 그러면 된다. 팝업창 수십 개 띄우듯 계속해서 "난 안 변해. 넌 내 마지막 사랑."이라고 공지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길 바란다.


5. 재능교육 안 하셨어요? 자기의 일은 스스로!


S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두 번 경악했다. 처음으로 경악한 지점은, 과거에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연락이 온 것을 상대에게 보여준 부분이다. 그 카톡엔

"걔랑 헤어지고 나한테 와라.
어차피 걔랑 결혼도 못할 거, 소꿉놀이 그만 하고 나랑 다시 만나서 결혼하자."



라고 적혀있었다. 저런 연락이 왔었다고 S씨가 카톡을 보여주자, 상대는 울며 화를 냈다.

제정신이 아닌 거다. 구여친의 연락을 받은 것도 당황스럽지만, 그녀에게 현여친의 프로필 및 연애상황을 설명한 것도 황당하다. 게다가 그걸 가지고 현여친에게 보여주며 "이러이러한 연락이 왔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S씨가 어리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어린마음에, 저런 걸 내세우는 게 '질투심 유발'이나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S씨는 떡국 한 그릇 더 먹으면 서른 아닌가. 그 나이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건, 맺고 끊음 및 주변정리를 못하고, 우유부단하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일 뿐이다.

또 하나는, 직거래하기로 했는데 판매자가 나오지 않아 쩔쩔매는 부분이다. 판매자와 연락이 닿지 않자 S씨는 여자친구에게 "어쩌지?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나?"라고 말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S씨에게 판매자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했고, 연락이 닿아 S씨는 판매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난 6살 연하의 여자친구가 저 일을 대신 해결해 주도록 놔뒀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저 우유부단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은 사연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디를 가자고 말을 꺼냈다가, 여자친구의 반응이 기대와 다르면 얼른 다른 곳으로 장소를 변경하는 모습. 그리고 데이트 코스 짜는 걸, 배려한답시고 여자친구보고 짜라고 하는 모습. S씨에게선 어른스러움을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이 하나도 없다.


자기 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어떻게 든든함을 느끼겠는가? 뭐 하고 싶냐고 묻고, 하고 싶은대로 자긴 다 따르겠다는 남자에게 어떻게 리더십을 느끼겠는가? 네가 떠날까봐 불안하다며 계속 확인받으려 하는 남자에게 어떻게 편안함을 느끼겠는가? 당장의 일은 접어둔 채, 먼 미래의 일에 대해 공수표만 남발하는 남자에게서 어떻게 비전을 볼 수 있겠는가?

"난 너 만나면 좋은데, 넌 아닌가 보네."


저런 얘기가 나왔을 때 이미 둘의 관계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저건 짝사랑 하며 '비련의 주인공'놀이 할 때 사용하는 멘트다.

헤어진 지금도 S씨의 위와 같은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멋진 모습으로 널 다시 만나려면…."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재회 가능성을 확인하려 하고, 상대의 카톡 남김말이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의미부여를 한 뒤 종종 말을 걸기도 한다.

기댈 곳, 혹은 기대할 곳 찾아 방황하는 생활은 그만 청산하고, 스스로를 위해 좀 살길 권한다. S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클럽이나 나이트 다니면서 하룻밤 인생 즐기는 쓰레기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데, 기대거나 기대할 곳 없이는 한 순간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가 옆에 없다고 의미 없는 삶은 아니잖은가.

스스로 몰아내지 못하는 외로움은, 그 누가 오더라도 몰아내 주지 못한다. 때문에 S씨가 연애를 하면서도 계속 조급함과 부족함, 염려와 불안을 느낀 것이고 말이다. 외로움을 몰아내 줄 타인을 고용하는 건 이제 그만 두고, 자신의 힘으로 서길 바란다.



"연락하면 네가 싫어할까봐, 난 그냥 기다린 거지." 여자친구가 잡아먹나요? 때리나요?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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