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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헤어지고 싶은 남자의 연애

by 무한 2013. 6. 24.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헤어지고 싶은 남자의 연애
사연을 보낸 J양이 1년간 한 것은, 연애가 아니라 남자친구 개조작업이다.

"오빠, 이런 식의 약속은 배려가 없어서 싫어요.
밑도 끝도 없이 난 계속 기다리기만 해야 하고,
오빠가 나오라고 해야 나가는 거 너무 일방적이에요.
시간과 장소를 먼저 정해요. 그리고 그 시간에 오빠가 맞춰요.
상황에 따라 변경해야 할 때는 최소 2시간 전에 미리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틀린 말은 아닌데, 이거 어디 무서워서 만나자고 말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남친은 이사 끝나고 생각보다 정리가 일찍 될 것 같아서 저녁 같이 먹자고 한 건데, 이건 뭐 집까지 찾아가서 밥 사주겠다고 말해도 J양은 잔소리만 하고 있으니….

남자친구에 대한 지적은 사귀는 동안 J양이 실시간으로 충분히 했으니, 난 오늘 J양에 대한 지적을 좀 해볼까 한다. J양은 매뉴얼에 있는 글들을 남자친구에게 내밀기도 하며 남자친구가 변하기를 꾀했던 것 같은데, 자신이 변할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지금과 같은 태도로는 누구를 만나든 잔소리만 하다 버림받을 수 있으니, 오늘은 스스로를 위한 잔소리를 좀 들어보길 권한다. 출발해 보자.


1. 서운함 끝판왕.


내가 J양의 남자친구라고 가정해보자. J양이 하는 행동을 내가 그대로 따라하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먼저, J양이 동창모임에 갔을 경우.

"늦게까지 술 마실 거야? 친구들이랑은 9시까지만 마시고
나 만나면 안 돼? 주말인데 네 얼굴도 못 보고…."



마음 편히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내가 저런 말을 한다면, J양은 무조건 "어, 알았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저 말의 겉모습은 '부탁'이나 '제안'이지만, 그 가면을 벗겨보면 '답정너'일 뿐이다. 만약 저 말에 J양이 "아무래도 늦게까지 마실 것 같은데…. 내일 만나자."라고 한다면, 난 실망을 덕지덕지 바른 말들로 J양을 나쁜 사람 만들거나, '화났다는 걸 보여주는 화 안 난 척.'을 할 것이다. 심한 경우,

"그래, 앞으로 나도 친구들이랑 약속을 좀 잡아야겠다.
내 생활은 내가 먼저 챙겨야지. 그게 우선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무 연애만 바라보고 살았네…."



라며 '복수 예고'를 할 수도 있다.

이번엔 저녁 8시쯤, 밥 먹고 잠시 쉬고 있을 상황이다. 대화를 보자.

나 - 뭐해?
J양 - 잠깐 TV보고 있었어. 이거 엄청 웃겨 ㅎㅎ
나 - 밥 먹었어?
J양 - 응. 아까 먹었지. 오빠는?
나 - 나도 먹었어.

(잠시 침묵)
나 - 왜 말이 없어?
J양 - 응?
나 - 대화 하다가 갑자기 끊기면, 나는 그 시간이 답답하고 불편하고 기분 나쁘고 힘들어.
J양 - 아, 미안해.
나 - 내가 뭐하냐고 안 물어봤으면 넌 아직도 나한테 연락 안 했겠지?
J양 - 아냐. 연락 하려고 했어.
나 - 언제? 내가 더 기다릴 걸 그랬네.
J양 - 진짜 좀 이따가 연락하려고 했는데….
나 - 이따가? 내 속 다 뒤집어지고 다 포기했을 때쯤?
J양 - 음… 미안해.
나 - 넌 아무 생각 없고, 그냥 나 혼자 화났다가 속상했다가 답답했다가….
      그러다가 혼자 푸는 것 같다.



지문을 읽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오지 않는가? 하나 더 보자.

나 - 좀만 수고해~
J양 - 응, 오빠도 오늘 화이팅!
나 - 이렇게 인사하면 무섭더라. 이렇게 인사하고 나면,
       네가 정말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니까….



이렇듯 입장을 바꿔 보면,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굴었나를 잘 알 수 있다.


2. 남자친구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일주일 간 J양이 남자친구에게 꺼낸 '주제'들을 모아봤다.

"나 이거 복구가 안 돼요."
"충전기가 안 맞아요."
"뭘 다운로드 못 한다고 메시지가 왔어요."
"나 배 아파요."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이 없어요."
"나 병원 가서 모라고 말해요? 잇몸에서 피난다고 말해요?"



만약 남자친구가 이 사연을 보냈다면, 나는 그에게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해 줬을 것이다.

"보호본능을 어떻게든 묶어두어야 합니다.
여자친구가 곤란함을 토로할 때마다 나서서 대신 해결해 주려다 보면,
그녀는 평생 정신적인 독립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일만 생겨도 자신이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이 습관화 될 것입니다.
연애할 땐 어느 정도 그걸 맞춰주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도 계속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아마 미쳐버릴 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런 건 좀 알아서 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여자친구는 몸을 의지하고 있던 기둥이 무너진 듯 붕괴될 겁니다.
그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남자는 버거워서 대화를 단절해 버리고,
여자는 우울증에 걸려 비참하게 사는 부부들.
"내가 봐 줄게.", "내가 해 줄게."를 줄이시길 권합니다."



오로지 남자친구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여자는, 자신의 희로애락까지도 모두 남자친구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아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학교 갈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등의 행동으로 엄마 옆에 계속 붙어 있으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J양의 남자친구는 '착한남자 컴플렉스'가 있는 까닭에, J양이 조금이라도 서운해 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내색을 하면 자신이 죄인이 된 듯 군다. 그럼 또 J양은 그걸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더욱 마음대로 하려 들고, 결국 남자친구에겐 과부하가 걸려버린다. 남자친구는 견디지 못하겠으니 헤어질 생각으로 잠수. 그러다 마음이 잔잔해지면 다시 다가오는데, 다시 만나도 둘은 달라진 게 없으니 계속 위의 레퍼토리만 반복하게 된다.


3. 감사의 부재.


J양은 남자친구인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 그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든지 하는 마음 말이다. 

사연과 카톡대화에선 그런 마음을 1g도 찾아볼 수 없었다. J양은, 

'우리는 사귀는 사이니, 남자친구가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는 게 당연해.'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J양이 매뉴얼 신청서 '궁금한 점 및 바라는 점'에 적은 이야기를 보고 놀랐다. 세 가지를 적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남자친구를 탓하는 내용이고, 한 가지는 연애가 어렵다는 푸념이었다. 남자친구는 강철로 만들어져서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고, J양만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이 없어 보이는 부분은 대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오빠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 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오빠가 '넌 가족인데, 장례식장에서 손님 같았다.'면서 서운해 하더라고요. 
저도 좀 당황스러웠어요. 사실 전 손님으로 간 게 맞거든요. 
가족들한테 인사도 한 번 한 적 없고, 남친 누나도 장례식장에서 처음 뵀어요."



평소 고쳐라, 사과해라, 서운하다, 화난다, 실망이다, 라면서 지적질을 하던 여친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와서는 손님상에 앉아 눈 껌뻑껌뻑 하면서 육개장을 먹고 있다. 하아, 이걸 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남자친구가 똑같이 행동했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남자친구가 J양 가족의 장례식장에 와서, 부조하고 육개장 먹은 뒤 힘내라고 토닥토닥 하곤 그냥 가 버렸다.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하루 종일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오빠 가게에 문제가 생겨서 경찰서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전화 받자마자 경찰서 다녀왔다고 자기 얘기만 급하게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저도 쌔한 반응으로 있었죠.
그랬더니 이따 연락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어버리더군요."



J양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연락 >>>넘을 수 없는 벽>>> 남자친구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참 나. 연락도 안 했으면서 교통사고 당했다는 얘기만 하고 있네. 머리 다친 게 대순가? 자기 얘기만 급하게 하고 있으니 내가 화났다는 걸 '무반응'으로 보여줘야겠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J양에게 가장 실망했던 부분은, 자신은 온갖 지적질을 하면서, 상대가 뭔가를 부탁하면 방패부터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J양 커플은 남친 친구 커플들과 자주 만났는데, 모임에 다녀온 후)
남친 - 내 친구들 여자친구, 부인들과도 네가 좀 다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J양 - 다들 결혼 얘기, 시댁 얘기 하는데 내가 어떻게 끼어드나요?
        그리고 그 사람들, 오빠랑 헤어지면 다신 못 보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과 막 친해지려 노력하는 것도 좀 그래요.

 

읽기만 해도 정이 팍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얘기하는 J양을 "에이, 그게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난 네가 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라는 말로 너그러이 토닥인 J양 남친의 멘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는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말길 권한다. 한 달 째 잠수를 타는 남자친구에게 J양은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를 그만 괴롭히자.

"내가 말해봐야 소용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애였나?"
"오빤 내가 좋을 때만 좋은 사람인가?"
"난 그냥 작게라도 미안하단 말을 기다렸을 뿐인데…."
"이렇게 잠수타는 이유가 뭘까요?"
"생각이 많아요? 바쁜가? 이렇게 연락 하나 못할 만큼?"
"나 때문에 맘 상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우리 일단은 만나서 얘기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린 헤어지는 중인건가요?"



제발 그만. 이거 완벽하게 헤어진 거 맞고, 당장 되돌릴 가능성도 없다. 당장 J양이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면 상대 마음이 약해져 잠깐 만날 수는 있는데, 만나서 두 사람이 왜 헤어졌었는지를 다시 깨닫는 건 시간문제다. 위에서 말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건 두 사람 모두에게 저주와 같은 만남이 될 것이다. 

"친구들은 그냥 헤어지라고 하더라고요. 
일 년이나 만났는데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보면 책임감도 없고 별로라고.
편지도 보내지 말고, 사과도 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무한님이 보시기에도 오빠가 단지 서툴러서가 아니라,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작아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숫자로 말하자면 이 이별은 J양 과실 7, 남친 과실 3으로 벌어진 것이다. 친구들 '내 편' 만들어 정신승리 하는 건 그만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저 위에서 말한 '오빠 친구 여친들, 부인들'만 하더라도, J양이 그들과 가까웠다면 지금쯤 그들이

"J양이랑은 안 만나는 거야? J양 정말 괜찮은 여자던데, 그러지 말고 얼른 연락해."


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J양은 그들과 선을 그어 놓고 지냈고, 아마 지금쯤 그들은 

"잘 헤어졌네. 걔 저번에 와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데.
가만히 앉아서 주는 거 먹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별로더라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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