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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100일을 못 넘거나 흐지부지 되고 마는 그녀의 연애

by 무한 2013. 9. 12.
100일을 못 넘거나 흐지부지 되고 마는 그녀의 연애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맺은 내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몇을 제외하고는 그들과 얕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뭘 전공했는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난 잘 모른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거나, 놀러 가거나, 고기를 구워 먹거나 하는 일들은 많이 했는데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렇다고 친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경조사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달려가고, 취미가 비슷하면 함께 어울리며,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최대한 돕는 사이다. 다만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서로가 무슨 노래를 예약할지 알고 있으며, 달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일이 언제인지를 알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그들과의 관계는 매우 얕다. 

사연을 보낸 K양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귀는 남자들과 저런 '얕은 관계'밖에 맺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 100년을 사귀어도 좁혀지지 않는 관계.


친구 A와 나의 관계를 예로 들어 보자. A와 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A와 난 같은 모임의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간 적이 있고, 같이 낚시도 다녀왔으며, 내가 A의 부모님 회사 일을 도와드린 적도 있다. 지금 A가 내게 전화해 오늘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사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나의 관계는 얕다. 항상 서로 격식을 차리고 만나는 느낌이랄까. 저녁식사까지는 함께 할 수 있지만, 밤새워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이런 저런 주제를 꺼내 대화 하려면 할 순 있지만 그게 정말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드는 일은 아닐 것이다. 분명 친하긴 한데,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A와 난 서로 카톡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저 대인관계일 뿐이라면 저런 관계엔 별 문제가 없다. 대인관계엔 속옷 같은 관계가 있는 반면 겉옷 같은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K양처럼 '연인'으로 지내면서 상대와 저런 겉옷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분명 문제가 된다. 저런 형태로라면 100년을 사귀어도 둘의 관계가 좁혀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남친 - 저녁에 잠깐 볼까?
K양 - 나 오늘 요가 가는 날이야. ㅠ.ㅠ



이게 좀 말하기 애매한 부분인데, 내가 일반적인 여성대원들에게 "상대가 전력질주 한다고 정신줄 놓은 채 같이 뛰지 마세요. 일상을 팽개치고 연애에 올인하면 곤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K양에겐 "그렇다고 처음부터 누워서 꿈쩍도 안 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라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10개의 초콜릿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연애에 올인하는 사람들은 자기 것도 남겨두지 않은 채 상대에게 10개를 다 줘 버린다. 반면 K양은 상대에게 1개를 주곤 9개를 자신이 갖는다. 사귀는 사이니 예쁜 말 해주고 연인 사이에 할 애정표현도 하긴 하는데, 애정이 피부로 느껴지진 않는다. 남자친구보다 일, 취미생활, 친구를 우선순위에 둔 여자.

"남자친구가 하도 집착해서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연애중으로 해 두기도 했네요."


보통의 경우라면 남자친구가 말하지 않아도 기쁜 마음에 SNS에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알릴 텐데, K양은 남자친구가 요구하기 전까진 솔로부대원일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K양이 남자친구에게 "넌 나한테 온 가장 큰 선물이야."라고 말하긴 하는데, 그게 행동에서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그냥 '표현을 위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내가 만약 K양 남자친구인데

"정말 너라는 여자를 만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아."


라는 말을 해 놓고는, K양이 오늘 저녁에 보자고 했을 때 오늘은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 안 되고 내일은 별사진 찍으러 가야 하니 넉넉하게 주말쯤 얼굴 보자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이번 남자친구의 문제.


K양과 사귀기 전까지 그는 많이 외로웠으며 연애에 대한 환상을 키웠왔던 것으로 보인다. 사귀게 되면 서로의 사생활도 없이 모든 걸 공유하며 오로지 연애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살짝 위험한 남자다. 금방 달아오르고 또 금방 식기도 하는 좋지 않은 연애습관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간 매뉴얼을 통해 이런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으니 여기다간 짧게 적도록 하자. 아래는 K양 남자친구의 문제점이다.

-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미래(결혼)를 약속하는 남자.
- 여자친구의 사생활을 뒤지는 남자.
- 칭찬 받기 위해 전력질주 하는 남자.
- 드라마틱한 애정표현 및 이벤트를 자주 하는 남자.



쉽게 말해 그는, '내가 널 위해 오늘 파스타 데이트를 계획해 놨으면 넌 돈가스가 더 먹고 싶더라도 나랑 파스타를 먹어야 해.'라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다.

솔직히 난 이 이별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K양은 사연에다 첫 만남에서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적었고, 그는 K양에게 "처음엔 가볍게 만나게 될 줄 알았다."라고 고백했다.(이건 앞서 그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연기'였다는 얘기가 된다.) K양은 남자친구를 '남자친구로 나쁘진 않으니까' 사귄 거고, 남자친구는 '일단 연애가 고프니' 사귄 거다. 둘 다 그런 속마음을 품고 있는데 겉으로 아무리 하트 날리고 '하늘이 준 선물' 운운해서 뭐하겠는가. '남자친구로 나쁘지 않은 사람'과 다시 만나 애써 양보해가며 사귀는 것보다, 보고 싶어서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의 사람과 만나 연애하길 권해주고 싶다.


3. 좋아하는 남자 만나면 해결될 문제.


'나 좋다는 남자'와 사귀는 게 아니라, K양도 정말 상대에게 반했을 때 연애를 시작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K양은 지금까지 8번의 연애를 했는데, 상대가 사귀자고 말했기에 사귄 연애가 대부분이다. 그 중 세 번은 K양이 상대를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단순히 상대가 대시한 까닭에 사귀기도 했다. K양의 연애의 래퍼토리를 보자.

ⓐ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있으면 K양 역시 상대에게 관심이 있는 듯이 행동함.
ⓑ 상대가 사귀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 없이 연애를 시작함.
ⓒ 상대가 달아올라 사랑한다고 말하면 K양 역시 사랑한다고 말함.
ⓓ 말만 그렇게 할 뿐이지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기에 갈등이 생김.
ⓔ K양이 생활의 10% 밖에 자신에게 할애하지 않는 것을 보고 상대는 마음을 접음.
ⓕ 흐지부지 되거나, 변한 상대에게 K양이 확인을 받으려 하다가 이별통보를 들음.



상대와 '아는 사이'이거나 썸을 타는 관계일 때, K양은 상담센터 직원처럼 행동한다. 상대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호응도 잘 해준다. 여기까진 정말 좋다. 하지만 여기서 K양이 상대에게 별로 마음이 없다면, 그가 대시를 한다고 해서 덜컥 사귀면 안 되는 거다. 안타깝게도 K양은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일단 연애를 승낙하는 까닭에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별로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귄 까닭에, K양의 연애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식의 연애가 되어 버린다. 다만 연애를 시작하긴 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K양도 나름 노력하긴 한다. 상대가 하트를 보내면 K양도 하트를 보내고,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K양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여자친구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응, 사랑해. 잘자용~"도 하루 이틀이지,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저런 말로 계속 붙잡고 있는 건 그냥 의무일 뿐이지 않은가. 겉으로는 사랑한다 말해도 속으로는 별로 마음이 없으니, 데이트 와중에도 남들과 카톡하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고, 데이트를 하지 않을 땐 솔로일 때처럼 남녀구분 없이 지인들의 페이스북 파도 타고 돌아다니며 댓글놀이를 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남자친구가 보면 자연히 이별을 결심할 것이고 말이다.

그 연애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 'K양이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길 권한다. 그럼 더 고민할 것도 없이 K양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건, 카톡 대답은 제발 빨리빨리 해주자는 거다. 

오후 6:09, K양
오후 6:09, 남자친구
오후 6:41, K양
오후 6:56, 남자친구
오후 6:56, 남자친구

오후 7:11, K양
오후 7:11, 남자친구
오후 7:12, 남자친구

오후 7:20, K양



몇 마디 나누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대답을 하기 곤란할 땐 "1시간 후에 내가 전화할게."라고 말을 하든가, 아니면 일을 다 마친 후에 메시지를 확인하자. K양 나름대로는 중간중간 대답을 한다고 한 거겠지만, 대화를 하다가 자기 말만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선 또 자기 말만 하고 사라지면 기다리는 사람은 신경이 말라 비틀어 질 수 있다. 나중엔 말 걸고 싶지 않아질 수 있고 말이다. K양은 평균 6~7분의 텀을 두고 대답을 하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면 반드시 고치고, 모르고 그러는 거라도 앞으론 '중요한 연락'이라고 생각하며 좀 더 긴장하길 권해주고 싶다.



"남자친구가 나중에 웃는 얼굴로 보자고 하던데…." 우는 얼굴로 보자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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