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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다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도 헤어지자는 남자

by 무한 2013. 9. 9.
다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도 헤어지자는 남자
H양의 사연을 소개하지 않았던 건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해리 포터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가정사'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하면,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것에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H양의 사연이 자세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상대에 대해 철저히 비밀로 해달라는 H양의 요청 때문에 그간 매뉴얼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사연을 보내시는 H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기에 이렇게 매뉴얼을 작성합니다. H양에게서 발견되는 문제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가 그 모든 말을 다 하면


H양의 가장 큰 실수는 모든 걸 다 털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남자친구는 상담사가 아닙니다. H양의 과거 연애사는 H양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 그걸 다 털어 놓고 남자친구에게 위로 받으려 하거나 털어 놓는 것으로 후련한 감정을 얻으려고 해선 곤란합니다.

제 지인 K군의 과거 연애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 만난 아홉 살 연상의 여자와 첫 연애를 했는데, 흔히 말하는 '애완남'이 되어 2년간 그녀의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K군은 아직도 그녀를 '은인'이라고 말하곤 합니다만, 당시엔 그녀가 계속해서 결혼을 요구한 까닭에 헤어졌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K군은 한 살 연하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버는 돈을 모두 그녀와의 데이트에 쏟아 부을 정도로 열정적인 연애를 했습니다만, 받을 줄만 알던 그녀에게 지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K군은 이때 하도 돈을 써서 신용불량자가 될 뻔 했는데, 부모님이 돈을 갚아주셔서 위기는 넘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K군의 세 번째 연애는 한 편의 영화와 같았습니다. 다단계와 보험설계사, 영업사원을 거친 뒤 백수가 되어버린 K군은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주도에서 그는 인생을 정리하려고 제주도로 마지막 여행을 온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로움과 절망의 극단까지 몰려 바짝 말라있던 두 사람은 거침없이 불타올랐습니다. 서로를 삶의 구원이라 생각하며 사귀었습니다. K군은 매일 일산에서 그녀가 사는 남양주까지 출석을 했습니다.

그렇게 잘 만나나 싶었는데, 연애 초반의 설렘과 즐거움이 사그라들자 그녀가 다시 인생을 정리하려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그녀는 K군이 옆에서 달래줄 때에만 잠깐 괜찮을 뿐, 떨어져 있을 때에는 다시 까닭 없는 절망에 빠져 암울한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녀가 울 때면 K군이 늘 남양주로 달려갔기에 K군의 일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자세히 적지 않겠습니다. 응급실과 경찰서를 몇 번 들락거렸다고만 적어두겠습니다. 남들은 연애하며 한 번 겪기도 어려울 일을, K군은 그녀와 연애하며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그 이후엔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사귀다가 그녀의 5년 된 남친이 나타나 싸우다 경찰서에 가기도 했고, 어플로 만난 여대생과 사귀다가 그녀의 자취방에서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본 뒤 헤어지기도 하는 등 맨정신으로 버티기엔 힘든 연애들이 이어졌습니다.

H양이 소개팅에 나가 정말 괜찮다 싶은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K군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K군은 H양과 친해지자 위의 저 이야기들을 다 털어 놓습니다. 제가 짧게 정리한 것과 달리, 그는 과거의 여자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적 있다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 다룬 에피소드를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서

"너에게 솔직해지고자 다 털어 놓은 거고, 이렇게 털어 놓으니 힐링 되는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십니까?


2. 만약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넌


서른이 넘은 남자들은 살짝 겁쟁이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객기나 치기를 부리기엔 세상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이십대에는 사랑 하나만 가지고도 결혼하는 커플이 꽤 있습니다. 그들은 상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니까, 무슨 어려움이든 함께 헤쳐 나가며 둘이 오래오래 같이 살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삼십대에는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여자와 결혼해서 함께 살면, 결혼생활이 행복할까?'


라는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은 사건 하나로도 연애를 계속 이어갈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이 여행 때문에 싸운 이야기를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둘이 만약 이십대였다면, 서로 생각하는 여행지가 달라 싸운 것은 다음 날 바로 화해가 가능합니다. 그저 놀러가고자 하는 곳이 달라 싸우게 된 작은 해프닝처럼 여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둘 다 삼십대고,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지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고 짜증내는 H양의 행동은, 훗날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똑같은 갈등을 되풀이 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겨우 여행지 선정에 대한 일로도 이렇게 짜증을 내는데 더 큰 문제를 둘이 처리하게 되었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넌
나를 탓할 거야.'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H양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한님이 잘못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탓하다뇨? 전 그를 지원해 주려고까지 했고,
결혼하게 되면 그 이후에도 그가 잘 되기 전까진 제가 가정을 책임질 생각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H양이 말하는 그런 호의들로 인해 상대는 계속 '을'의 입장이 되고 맙니다. 이 만남 자체가 그에게는 계속 빚지는 느낌이란 얘깁니다. 또 저렇게 베푸는 호의와 달리 상대가 H양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H양은 짜증을 냅니다. 그 태도로 미루어, 훗날 H양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상대는 H양에게 끔찍한 시달림을 겪게 될 거라 생각할 겁니다.

평소 정색하시는 일도 많고 또 잔소리도 많이 하시는 시어머니께서, 학비를 지원해 줄 테니 대학원을 다녀보라고 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성적에 참견하며 동시에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넌 나에게 무조건 순종해야지."라고 하실 그림이 그려지시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다 상관없고 괜찮으니 돌아와만 달라는 H양의 외침이 공허한 이유입니다.


3. 남은 몇 가지 이야기들


상대가 헤어지고 나서

"널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진 것 같다.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걱정된다."


라고 하자 H양은 그 말에

"그게 좋아하는 거야."


라고 답했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건 그냥 매달리는 여자를 찼을 때 느끼는 남자들의 공통된 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맙다는 건 사귀는 동안 이해해준 부분들이 고마운 거고, 미안하다는 건 잘해주지 못한 부분들이 미안하기도 하며 동시에 이렇게 매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게 미안하다는 얘깁니다. 걱정된다는 건 차인 후로 폐인처럼 지내거나 혹은 그 충격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진 않을지 걱정된다는 얘기고 말입니다.

설렘도 없고 이제 네가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남자의 말을 '날 떼어내려고 일부러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물론 이걸 H양이 착각하고 있는 게 이해가 되긴 합니다. 상대가 맺고 끊음에 소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귀면서 빌려줬던 걸 받으려고 했을 때, 불편하면 택배로 보내달라는 H양의 말에

"난 만나서 줘도 아무렇지 않은데?"


라고 말하는 남자니, H양이 계속 가능성을 생각하며 여지를 부여잡고 있는 게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결혼을 생각할 만큼 좋아할 수 있었던 여자는 네가 마지막…."


같은 부분은 희망고문 3단계에 나오는 멘트인 까닭에 H양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런 말을 그 남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우유부단한데다가 감수성 풍부한 남자들은 대개 마지막까지도 저런 말을 하곤 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난 연애만 하며 살 거다. 결혼 같은 거 하기 싫고, 마음 주지 않고 연애만 할 거다."


따위의 얘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또 여자는 저 말에 휘둘려 기다린다느니, 그렇게 인생을 망치며 시간낭비 하지 말고 자기에게 오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상대는 보통 저러다 어느 날 불쑥 결혼하는 일이 많습니다. 다른 연애를 이어가면서도 애인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성적인 부분의 욕구를 이쪽에다 해소하는 일도 있고 말입니다. 밥은 여기서 먹고 충성은 다른 곳에 가서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거, 살짝 감수성 풍부하고 약간의 센스만 가지고 있어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남자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그런 남자들 많습니다. 헤어지고 난 뒤 옷 사러 나왔다며 어느 옷이 어울리나 봐 달라고 사진을 보내는 남자도 있습니다. 여자는 그 행동이 남자가 자신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매달리는데, 남자는 그냥 어디 물어볼 곳도 없고 여자에게 패션센스가 있으니 골라 달라는 의미에서 사진을 보낸 것뿐입니다. 미리 면허를 따 놨다면 우리 사귈 때 드라이브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며 이제 막 딴 면허증 사진을 보내는 남자도 있습니다. 역시 그런 행동만 할 뿐 재회의 제스처는 취하지 않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사은품으로 네가 좋아하는 장난감 주니 가 보라고 톡을 보내는 남자, 네가 읽으라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며 톡을 보내는 남자 등, 감수성 꾸러기들 참 많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더 이상의 진전이 있는 경우는 없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아니면 그를 이해해 줄 여자가 없을 것'이란  H양의 생각, 착각입니다. H양의 사연을 파일로 저장한다면 저는

- 데릴사위 실패한 얘기.hwp


라는 제목으로 저장할 것 같습니다. 상대는 자신의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앞으로 결혼이든 연애든 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그건 데릴사위 과정에서 그가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은 적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멘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에게 감사하며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것과, 내가 도움을 주거나 감내하는 대가로 내게 맞추길 요구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에게 사과하길 권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서두에서 밝혔듯, H양의 요구대로 여기다간 상대에 대해 길게 적지 않기로 한 까닭에 H양의 문제점만을 살펴본 것뿐입니다. 데릴사위를 하려는 태도는 H양의 이전 연애들에서도 보이는 문제점이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거나 남자친구의 경제적 어려움을 모두 감내해야만 할 수 있는 연애들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겁니다. 다음번에 연애를 한다면, 도움을 주거나 감내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하시길 바랍니다.



"제 육감으로는 재회하게 될 거 같은데…." 오감은 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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