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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났는데 예전 같지 않은 남친

by 무한 2013. 9. 4.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났는데 예전 같지 않은 남친
올 여름에 집에 운동기구를 하나 들여 놓을 생각을 했었는데, 들여놨으면 빨래건조대로 사용될 뻔 했다. 집에 있던 덤벨과 짐볼도 그때만 잠깐 반짝 사용했지 지금은 먼지만 먹고 있는데, 기구를 들여 놓았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처치곤란의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기구를 사려고 알아볼 때에는 글을 쓰다가도 생각이 나 검색해 보고, 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후기도 찾아 읽어 보고,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도 체크해가며 거기에 온통 마음을 뺏겨 있었다. 대전에서 기구를 직거래로만 판매한다는 판매자가 있었는데, 파주에서 대전까지 내려가 기구를 사올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지금은 기구를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받아오는 걸 망설일 것 같다. 전과 달리 운동보다는 사진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적도의와 천체망원경이 더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별로 궁금하지 않을 내 취미생활 이야기를 서두에 이렇게 깔아 두는 건, 사연을 보낸 Y양이 남자친구에게 저 '운동기구'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옛날엔 제 마음에 들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시 잘 해보기로 하고 만나서 겉으로는 괜찮은데, 속으로는 답답함만 쌓여요."



왜 둘의 사이가 그렇게 되었는지, 재회해서 잘 만나는 다른 연인들과 둘은 뭐가 다른지, Y양은 그런 남친의 태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1. 달콤하지만 책임감 없는 남자.


어제 저녁 우리 단지 내 공원에서 사위로 보이는 남자와 장모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긴 토론을 했다. 담배 사러 잠깐 나갔다가 보게 되었는데, 난 반팔을 입고 나간 까닭에 한 시간 가량 오들오들 떨면서 엿들었다. 그런 걸 왜 엿듣느냐며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겐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요.(응?)"라는 대답을 드리겠다. 여하튼 아내가 집을 나가 친정에 가 있는 와중에, 둘을 중재하려 장모님이 오신 상황이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대화내용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사위 - 저도 아직 어리고….
장모 - 어리다고 하지 마. 자네가 뭐가 어려. 내일 모래 서른이야.
         요즘 고등학생들도 자기가 사고 치면 자기가 책임져.

사위 - ….
장모 - 은진이(딸, 남자의 아내) 임신했을 때 자네가 뭐라고 했어.
         오백 벌어올 테니까 집에서 애 키우면 된다고?
         내가 그 소리 듣고 기가 막혀서….
         오백 벌기가 쉬워? 그때 내가 자네 철없는 거 알았어.
사위 - 전 열심히 해서 벌겠다는 거였죠. 몇 년 안에….
장모 - 몇 년이고 뭐고, 지금 어떤지 봐봐.
         지금 은진이가 왜 저러는데? 왜 그런지 생각을 좀 해봐.



요약하자면, 결혼 전 남자가 허풍을 좀 떨어가며 큰소리 쳐 놓곤 막상 결혼 이후엔 "돈 없다 소리만 하지 말고, 너도 나가서 돈 벌어."라며 여자를 떠민 상황이었다. 대화하다 남자가 "애는 장모님이나 저희 엄마가 좀 봐 주셔도 되고…."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최선책만 생각하는 사람인 듯 보였다. 애를 봐 달라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뭐든 자기 생각대로 다 잘 될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는 철부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대로 진행이 안 되면 남을 탓하는. 

Y양의 남자친구에게서도 저런 모습이 보인다. 그는 둘 다 아직 취업 전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임신해서 결혼해버리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극복해 보통의 사랑 너머에 있는 사랑을 하자." 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진지하게 생각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 놓는 게 아니라,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네가 만족해 할만한 답'만 내놓는 것이다. 

그간 매뉴얼을 통해 "그 사람에게 책임감이 있는지를 보세요."라고 말한 건, 바로 그런 부분을 보란 얘기였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상대가 싫어져 헤어질 이유 찾을 때에나 '책임감'이 있는지를 볼 뿐, 데이트 하느라 바쁠 때에는 상대의 '책임감 없음'이 명확하게 드러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기에 안타깝다. '당구 치는데 Y양이 전화를 거니 "어. 어." 하며 성의 없이 대답하고, 카톡을 보내도 대충 읽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남자. 그러면서 말은 잘한다. 대화로 극복?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상황인데 무슨 극복을 할 수 있겠는가. 
 

2. Y양의 문제들.


주제별로 Y양의 문제를 살펴보자.

ⓐ 취업준비생.
자기 생활이 없으면 계속 어딘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그 나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Y양은 취업 준비를 하며 자신이 원할 때 멍하니 있을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계속해서 연애에 집착하고 있다. 그럴 땐 상대에게 분 단위로 서운해 할 위험이 있다. 만나서 놀고 전화로 사랑을 속삭이는 건 나중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당장은 취업을 Y양 인생의 제1목표로 두길 권한다.

ⓑ 조절.
위의 문제와 이어진 부분이라고 해도 좋은데, Y양은 연애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까닭에 시험에서 한 차례 형편없는 결과를 낸 적이 있다. 남자친구는 그 부분에 대해 Y양에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렇다는 얘기를 했고, Y양은 "너랑 싸우느라 공부를 못 한 거다."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 연애가 인생를 책임져 주는 게 아니니, 달콤함에 빠져 주말에 놀러 갈 생각만 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자. 나도 공쥬님과 영화 보러 가거나 어디 가서 고기 구워 먹는 게 재미있다는 거 아는데, 적당히 조절하지 않으면 나중에 베짱이 신세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기에 상황과 형편에 맞춰서 하고 있다. 남자친구에게 "남들은 스터디까지 해가며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오기를 품고서라도 제대로 해보자. 남자친구의 관심이 줄은 것 같다고 계속 징징거리고 있다간, 이번 시험도 망치고 남친은 Y양을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 눈물.
일 년에 한두 번 울어야 눈물도 가치가 있는 법이다. 툭 하면 우는 여자는 피곤한 여자일 뿐이다. 남자친구가 Y양의 눈물에 질려 버렸다는 건 카톡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헤어짐의 이유를 말할 때에도 그는 "난 너 우는 게 보기 싫어서 헤어지고 싶은 것 같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전화해서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큰 거냐?"라며 끊지도 않고 계속 우는 거, 그거 고문이다. 그리고 울 거면, 만나서 남자친구가 충분히 달래줄 수 있는 상황일 때 울자. 남자친구가 학교 사람들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 전화해 울며 전화 끊지 않고 있는 건, 남자친구 무장해제 시킨 채 전쟁터 한복판에 세워두는 것과 같다. Y양이 눈물을 사용해 그 전투에선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쟁에선 반드시 지게 된다.

하나 더. Y양이 바라는 연애에 상대를 끼워 맞추지 말길 권한다.

"난 내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통화를 했으면 좋겠어."
"잠들기 전엔 카톡으로 말고 전화로 잘 자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



저렇게 바라는 것만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남자친구가 "난 네 기분 맞춰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마는 것 아닌가. 두 사람 모두가 즐거운 연애가 아닌 'Y양만 즐거운 연애'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3. 재회할 때 한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두 사람이 재회할 때 한 그 따뜻한 약속들을 하나씩 지켜나간다면, 두 사람 사이에 현재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애틋한 감정은 지금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한 약속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

ⓐ Y양 "내가 그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널 안아줄게."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후 Y양은 '내가 다시 잡아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저런 얘기를 해서 다시 만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남친 "내가 너 안 울게 하면 돼. 울리지 않을게."
그러면서 '공부 열심히 한 전여친' 토익점수를 Y양에게 말해주는 건 뭘까.

ⓒ Y양 "떨어져 있다고 확인 받으려 하고, 너의 진심에 상처 줘서 미안해."
하지만 현실에선 남자친구에게 '얼씨구', '멍청아' 등의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 남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하며 극복…."
친구랑 술 마시러 가다가 인형뽑기 해서 인형 뽑은 얘기를 길게 한다고 대화가 아닌데, 하아.



헤어졌을 때에만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더 잘하겠다고 생각할 뿐, 다시 만나게 되면 Y양은 구속하고 남자친구는 도망치려 한다. 

둘은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느니, 서로에게 힘이 되자느니 하는 얘기를 했지만, 남자친구는 Y양이 무슨 계획을 가진 채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Y양 역시 얘기하지 않았고 말이다. 미안하지만 둘은 그냥 연애를 위해서 연애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오늘 아침에 뭐 먹었고, 점심엔 뭐 했고, 저녁엔 누구 만날 거고…."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락이 없으면 연락이 없다며 삐지고, 다른 한 쪽은 "우리 부모님도 날 터치 안 해."라면서 구속하지 말라고 하고. 결핍과 의무감 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 있다면 하나만이라도 내게 메일로 보내줬음 좋겠다. 


둘은 조만간 헤어질 것이다. 서로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채 결혼 운운하며 만나던 커플은 필연적으로 헤어진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 재회하기 전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던 점들을 실천하길 권한다.

"나랑 있는 시간만큼은 맘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보듬어줄게."


재회를 위해서만 저런 얘기를 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하잔 얘기다. 다시 만나고 있는 지금은 서로 "네 탓이지."하며 감정싸움만 하고 있지 않은가. 갈등이 없을 땐 인형 뽑은 얘기나 친구 커플이 싸운 얘기로 서로 수다만 떨고.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남자친구 아는 형 커플 싸운 얘기를 할 때 Y양이 그 커플에 대해 "그럴거면 왜만나ㅋㅋ"라고 한 말. 그 말이야 말로 내가 Y양에게 묻고 싶은 얘기다. Y양은 지금 그 연애를 왜 하고 있는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겠다. 이번 시험도 망치면 Y양은 취업과 연애 둘 모두를 놓치게 될 것이다.



▲ 책임감 없는 남자가 초반에는 엄청 달콤하거든요. 공약을 남발하니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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