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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덤덤해지는 썸녀, 남자의 잘못은?

by 무한 2013. 10. 21.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덤덤해지는 썸녀, 남자의 잘못은?
재구야, 너의 문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대화문을 아래에 옮겨 적어둘게.

재구 - 너랑 잘 어울려. 넌 **도 열심히 할 것 같고, **도 즐길 것 같고. ^^
썸녀 - ㅡㅁㅡ;; 아닌데…. 넘 좋게 봐주네 ㅠㅠ
재구 - 내가 받은 느낌이 그렇다고 ㅎㅎ
썸녀 - ^^;;
재구 - 진짜로 그럴 것 같기도 하고 ㅎ



카톡대화 대부분이 저런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재구는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더라.

"제가 좀 더 도도하게 굴고 연락을 자제했다면…, 하는 후회가 듭니다."


아냐 재구야. 이건 혼자 밀당한다고 될 일이 아냐. 상대를 대하는 태도 자체의 문제거든. 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아래에서 함께 살펴보자.


1. 오 나의 여신님?


재구야, 보통의 사람이 음악회와 전시회를 찾아다니고, 종종 여행을 떠나며, 회를 즐겨 먹고, 늘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삶을 살면, 거지가 돼.

'내 주변의 여자는 그렇지 않지만, 썸녀는 왠지 그런 삶을 살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건 네 환상일 뿐야. 넌 썸녀가 빗소리에서도 음악을 발견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땐 클래식 틀어 놓고 와인을 즐길 거라 생각하더라?

재구 - 혼자 집에서 뭐 하고 있어?
썸녀 - 그냥 쉬고 있어. 아무 것도 안 하고.
재구 - 사색을 즐기는구나.
썸녀 - 아냐 ㅎㅎ 그냥 누워 있는데.
재구 - 차분한 너랑 잘 어울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넌 지금 너 혼자 '얘는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곤, 상대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도 "왠지 그럴 것 같아. 너랑 잘 어울려."따위의 얘기를 하고 있잖아.

"하지만 그녀도 제 칭찬에 '좋게 봐줘서 고맙다'고 했는데요?"


좋게 봐주는 게 고마운 것도 한두 번이지, 동네 슈퍼에서 스크류바 사서 들어가는데 "응, 넌 왠지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것 같았어."따위의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은 오그라들고 닭살 돋고 그런다고. 넌 계속 저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잖아. 그러다가

"당신은 이 글을 읽은 후 행복해집니다. 레드썬!"


따위의 손발 로그아웃하게 만드는 멘트까지 꺼내고.

그냥 툭 터놓고 말할게. 재구 넌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것 같아. 상대를 '완벽한 여자'로 설정해두고 너 혼자 매달리는 시나리오로. 게다가 넌 '상대는 이러이러한 여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너 역시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라는 걸 보여주려고 애써.

"썸녀님은 스파게티 같은 거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렇죠?
<사진> 이건 오늘 제가 저녁으로 먹으려고 만든 봉골레 입니다. ^^"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저렇게까지 하면 상대가 당연히 리액션은 해주지. 전혀 관심 없어도, 맛있어 보인다거나 요리도 잘 하시는 것 같다는 얘기를 예의상 해준다고. 재구 넌 그걸 듣고 나선 또 용기 백배 해서 자꾸 그런 쪽으로 어필하려고 하잖아.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그런 태도는, 미안하지만, 부담스럽고 느끼하거든.


2. 이십대 중반 맞아?


썸녀에게 특별해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말야, 이게 좀 구별이 있어야 하거든. '해 본 것'과 '즐기는 것'을 모두 동일시해서 말하면 곤란해.

나도 그랬었어. 친구네 집에 가서 친구 삼촌이 남긴 '잭 다니엘' 한 번 마신 적 있었는데, 그걸 두고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땐 잭 다니엘을 즐기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 딱 한 번 마셔봤을 뿐인데 말이야. 대단하고 특별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클 땐 다들 그러는 것 같아. 내 친구도 외국으로 어학연수 3개월 다녀왔을 뿐인데, 거기서 30년쯤 살다가 온 사람처럼 굴더라고. 스물두 살 때 같은 나이의 친구가 "내가 음악한지 15년차에 접어든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 그는 엄마 손 붙잡고 피아노학원 등록했던 날부터 '음악인생'이 시작된 걸로 치기로 한 거지.

재구랑 썸녀 둘 모두에게 그런 모습이 보여. 그런 모습 자체는 나쁠 게 없는데, 서로 에누리 붙여가며 얘기하다가, 결국 '상대는 정말 그런 사람인가 보다'하게 되니 문제가 발생해. 위에서 말한 재구의 '판타지'에도 영향을 끼치고 말야. (어느 부분이 그렇다고 찾아서 여기다 옮겨 적진 않을게. 이렇게만 말해도 재구는 눈치를 챌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태도가 불러오는 부작용만 좀 보자. 상대가 취미를 '전시회 관람'이라고 말해. 그러면 그 얘기를 들은 나도 맞장구를 쳐야 하니까, 내가 전시회를 보러 갔던 경험을 총동원해서 말하지. "우린 맞는 게 많은 것 같아."따위의 얘기를 하면서, 딱 두 번 가봤던 전시회의 경험을 풀어놔. 그러다 다음에 만나면 전시회를 보러 가잔 약속을 잡고, 실제로도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지.

상대는 '내 취미는 독서'라고 말하듯, 그냥 에누리를 좀 붙여서 종종 전시회에 간다는 얘기를 했던 거야. 나 역시 전시회를 찾아다닐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진 않은데, 상대가 좋아한다고 하니 코드가 맞는 것처럼 말하기 위해 얘기를 꺼낸 거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사실은 둘 다 원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원한다는 생각에 자꾸 전시회에 가게 돼. 썸녀는 내가 전시회를 좋아하는 줄 알고 가는 거고, 나는 썸녀가 전시회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가는 거고.

그리고 재구야, 내가 말했잖아. 그냥 커피숍에 앉아 대화만 나눠도 즐거울 수 있어야 친한 사이가 된 거라고.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쓴 돈이 얼마인질 봐봐. 너 복학생이잖아. 썸녀도 사회생활한지 얼마 안 되었고.

"그녀 씀씀이가 저보다는 큰 것 같아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건 뭐랄까, 둘이 '통 커 보이기 치킨게임'하고 있는 느낌이야. 또 썸녀는 술을 마시게 되면 정신줄 잠깐 놓고 막 지르는 타입인 것 같은데, 이건 네가 말리는 게 맞는 거야. 만나서 저녁 먹기로 하곤 술집만(그것도 비싼 술집으로) 4차까지 가는 거, 분명 정상적인 게 아니거든. 그녀는 그날 일을 기억도 못 한다는데, 다음날 카드 명세서 보고 경악할 수 있으니까 이 부분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할게.


3. '더 많이 사랑' 하지 마.
  

조금만 사랑하라는 뭐 그런 얘기가 아니고, 재구 넌 '더 많이 사랑'한다면서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타입이라서 하는 얘기야.

일단은 좀 '친한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정도만 하면 안될까? 따지고 보면 썸녀랑 재구는 이제 막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된 거잖아. 그런데 재구는 그냥 뭐든 다 해주려고 하네? 안마는 부모님부터 좀 해드려. 먹을 건 여동생부터 좀 챙겨주고. 모닝콜도 내가 제발 하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잖아.

썸녀가 한 말을 봐봐.

"지금도 넘 잘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 ㅠㅠ"


하루에 몇 번씩 연락해서 안부 묻고, 줄 게 있다면서 잠깐 보자고 하고, 저 위에서 말했듯 계속 '폭풍칭찬'해가면서 호감을 표시하니까 부담스러워서 한 말이잖아. 저걸 두고,

재구 - 음, 해석하기 좀 난감한 말인데...
썸녀 - 아, 그냥 고맙다고 ㅎ
재구 - 그래? 기분 좋은 말이네 ㅎㅎㅎ 고마워 ^^
썸녀 - ^^



라는 대화 하고 있으면 '눈치 없는 남자' 인증하는 거야.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으면 부담스럽게 느낄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맞아. 그걸 두고 "혹시 내가 이러는 게 부담스럽다면 말해줘, 그러지 않도록 조금 줄여볼게."하고 있으면 더 부담스러워 지는 거라고. 확인 받아 백점 맞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

하나 더. 매번

"~해서 힘들었겠다."
"~해서 피곤했겠다."
"~할 테니 푹 자."



같은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 상대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재구 넌 상대를 무슨 환자 돌보듯이 돌보려고 해. 썸녀도 이십대 중반이야. 애가 아니라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내 지인 중에 남자친구가 '점수 따기 중독자'라서 헤어진 친구가 하나 있거든. 걔가 연애할 때, 걔 남자친구가 SNS에 돌아다니면서 자기소개하고 인사하고 해서 걔가 진짜 울면서 말렸어. 그 남자가 병적으로 사람들한테 점수 따려고 했거든.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누구누구 남자친구라면서 자기소개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한다고 댓글 달고 다녔는데, 그걸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남자 왜 저래?"라고 생각했지. 그가 여자친구 지인들에게 친구신청하면, 사람들이 예의상 받아줬거든. 그러면 그 남자는 카스에 올라오는 글마다 댓글을 다는 거야. 자기 딴에는 그렇게 댓글 달아 점수 따려고 그러는 거지. 자기 여자친구 카스에 지인들이 댓글 달면, 그는 거기다가도 자기가 답글을 달았어. 그런 일이 쌓여서 결국 헤어지긴 했지만, 워낙 특이했던 캐릭터라서 여전히 기억이 나.

'너를 위한 말'이나 '점수따기 위한 말'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해. 그렇다고 네 나약한 부분(썸녀에게 말해야 되냐고 물었던 부분)까지 모두 고해성사 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그건 네가 해결하면 되는 일인데 그것까지 전부 털어 놓을 필요는 없잖아. 만나면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약속을 잡아. 할 말이 있으면 전화를 걸어서 말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네 삶도 미뤄두지 말고 달라붙어서 살아. 안 그러면 썸녀에게만 올인 하게 되니까.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건,

"그녀가 했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따위의 얘기를 하지 말고 그냥 만나 보라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 연락 끊기면 끝인데, 거기서 왜 '그녀도 제게 호감이 있는 것인지?' 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하루에 몇 번씩 톡 보내며 칭찬만 하지 말고, 그녀가 먼저 너에게 연락을 하는지도 좀 살펴봐. 반반씩 채워가야 하는 걸 너 혼자 다 채워가고 있으니, 상대는 할 일이 없잖아. 그녀에게 채울 생각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고 말야.

그리고 카톡대화를 보면 둘이 저녁에 몇 시간씩 대화를 하던데, 카톡만 붙들고 있지 말고 통화를 좀 해. 내가 보기엔 문자로만 대화하니까, 재구 네가 상대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말만 더 하게 되는 것 같아. 더불어 진짜 말로 할 수 있는 문장들만 카톡에 적어 보냈으면 좋겠어.

"사실 그대로를 숨김없이 진솔하게, 하나의 가감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거야 ^^"


저런 멘트 하지 말라고. 그냥 단순히 대답해도 되는 걸, 재구 넌 너무 거창하게 말해. 저건 "난 솔직하게 얘기한 거야~"라고 해도 되는 거잖아?

"목걸이였어? 줄이 좀 짧아 보이기도 하고,
넌 이미 예쁜 목걸이를 가지고 있으니, 난 팔찌인 줄. ㅎㅎ"



되도록이면 3형식 이내의 문장으로 말하자. "목걸이야? 난 팔찌인 줄 알았어.ㅎㅎ"하면 되잖아. 재구 네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하니까, 썸녀도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웃고 말거나 다른 얘기로 넘기는 거야. "A라서 B하겠다. C하도록 해. D해서 좋겠다~"하는 '할 말 모아서 한꺼번에 전송하기'도 자제하고. 알았지? 그럼 행운을 빌게!



▲ 생일맞이 포스팅에 남겨주신 댓글, 모두 감사합니다. 답글 열심히 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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