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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썸남,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by 무한 2013. 10. 28.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썸남, 진심은 어디까지일까?
중고거래에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자 '안심거래' 서비스가 시작된 것처럼, 조만간 소개팅 사이트나 만남 어플 등을 이용할 때 상대에게 자신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속이는 건 애교 수준이고, 상대가 학력이나 직장, 자신의 현 상황 등을 숨겼다가 나중에 발각된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사연뿐만 아니라 내 지인들에게도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자신을 '늦깎이 의대생'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와 사귄 지인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남친 자랑'을 했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듣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여기다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의대생이라는 그 남자는 학교생활 말고도 다른 일을 더 하고 있었다. 난

'의대생이 그렇게 한가할 리 없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두고 그 지인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썸남이 졸업했다고 말한 고등학교와, 썸남이 고등학교 친구들이 산다고 말한 지역이 달랐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날카로웠다고 생각하는 건 내 '예비군 훈련에 관한 오류'였는데, 여하튼 이 외에도 이상하게 생각되는 몇 가지 점들을 모아 그녀에게 전달했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자백을 듣긴 했는데, 그 과정도 쉽진 않았다. 계속해서 그가 '다른 거짓말'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입학을 하고 휴학한 상태다."라고 했다가, "합격했지만 당시 사정이 어려워 등록을 못 했다."라고 했다가, 나중엔 "입학하려고 공부했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당황스럽게도

"내가 의대생이 아니라니까 싫은 거냐. 그럼 지금까지 넌 내 학력만 보고 날 만난 거냐."


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녀는 저 말에 혼란스러워 하며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난 그녀에게 "그럴 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주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상대의 신분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장치가 '상대의 양심' 뿐인 소개팅 사이트나 만남 어플 등에선,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노멀로그 독자 분들을 꼭 기억해 두시길 바란다. 총각행세를 한 유부남도 있었고, 친구의 이력을 자신의 이력처럼 말한 사람도 있었으며, 자신이 일하고 있는 가게에 데려가 자기 가게 인 것처럼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글로 적어 놓으니까 저게 어설픈 거짓말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현실에선 눈치 채기가 정말 어렵다. 특히 사랑에 눈이 멀어 달콤함만 좇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눈치 채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내 메일함에

"그가 제게 거짓말을 했다는 건 확실하지만, 전 그래도 그 사람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라는 내용의 사연이 차고 넘친다. 그들은 전부 '남들은 사기꾼에게 당한 거지만, 난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사람에게 잠깐 속은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어느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분은 S본부 <궁금한 이야기 Y>의 '본적 없는 여자를 사랑한 순정남, 그는 왜 매일 돈을 부쳤나.'편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서두가 너무 길어져 버렸는데, 최근 도착하는 관련 사연의 빈도로 보아 더 늦기 전에 꼭 경고해 두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니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 출발해 보자.


1. 애정표현을 걷어내고 보자.


E양의 사연은 난이도 '하'의 사연이다. 아주 간단한다. 썸남이 E양에게 한

"예쁘다."
"내 이상형이다."
"보고 싶다."
"우린 운명 같다."



라는 이야기를 빼고 살펴보길 바란다. 뭐가 남는가?

"손잡고 싶다."
"뽀뽀해주고 싶다."
"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킨십 진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저 말들이 'E양 예찬'사이에 섞여 있는 까닭에 E양이 눈치 채고 있지 못할 뿐이다. 상대가 자꾸 카톡으로 진도를 빼려 하니("나에 대한 감정이 그냥 관심이야? 아니면 좋아하는 마음이야?"등의 질문으로), 다행히 E양이 브레이크를 밟기는 했다. 그러자 상대는

"그렇지 않아. 나도 원래 마음 여는데 시간 걸리고, 조심스럽고 그래.
그런데 너라서 그런지 빨리 마음이 열린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늘 얘기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을 보길 바란다. 행동만 보면 상대는, 카톡으로 계속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느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하고, 셀카사진 보내달라고 징징거리며, 다음 만남을 위해 카톡으로 진도를 빼려 하는 남자다. 그가 가자고 한 것과 하자고 한 것들은 일정이 잡혀 그대로 진행되었는가? 하나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 전부 그의 말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애정표현을 걷어내고 보자. 그는 끝까지

"너 스킨십 별로 안 좋아하지?"


라는 말만 하고 있지 않은가.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급한 남자'일 뿐이다. 상대의 거듭되는 스킨십 얘기에 짜증난 E양이 "어, 안 좋아해. 보수적인 편이야."라고 말하자,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약속에

"나 오늘 너무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집에서 쉬어야 할 듯."


이라는 말을 꺼내는 남자. 하아, 진부해도 너무 진부하다.


2. E양은 왜 휘둘렸을까?


미안하지만 E양에겐 공주병이 살짝 있다. 때문에 남자가 예찬을 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온갖 찬사와 달콤한 말들, 그리고 무조건적인 헌신을 할 것처럼 다가오는 남자가 있으면 쉽게 그와 친해진다. E양은 상대의 '립서비스'를,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정도로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미안하지만, 그래서 E양은 헛바람을 넣기 쉬운 타입이다. 꼬꼬마시절 연예계에 데뷔 하려다 안타깝게도 사회고발프로에 먼저 나온 내 지인 S양과 비슷하다. S양은 자신이 '예쁜 편에 속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S양의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데뷔 시켜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에 S양 가족은 모두 쉽게 속아 넘어갔다.

그러니까 이게, 상대방은 '답정너'에 알맞은 대답만 하면 만점을 받는다.


썸남 - E양은 예쁘니까 몸부터 챙겨야해~ 따뜻하게 입어.
E양 - 오빠는 참 칭찬도 멋지게 해~ ㅎㅎ


썸남 - 난 정말 너와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
E양 - 나를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
썸남 - 응. 그냥 운명이라는 걸 알 것 같아.
E양 - ㅎㅎ



E양 - 모든 여자들한테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썸남 - 그런 거 아니야.
E양 - 알았어. 고마워.


E양 - 정말 기대해도 돼?
썸남 - 응. 자신 있어.
E양 - 기대가 마구마구 차오른다. ㅍㅎㅎ



내가 썸남이라고 가정하고, TV보며 대충 "너랑 대화한다는 설렘에, 지금 내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 알면 놀랄 걸?"이라고만 카톡을 보내도, E양은 행복의 바다에 누워 배영을 할 것 같다. 대충 얘기를 지어내 "얼마 전에 잡지에서 이달의 운세 봤거든. 그런데 애정운이 100점이었어. 연락하고 지내던 여자도 없는 상황이라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널 만나게 되었네."라고만 말해도, E양은 친구들에게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운명 같긴 해. 생일도 10월 달로 같고, 
오빠가 그랬었거든. 잡지를 보다가 연애운을 본 적이 있는데…."



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고 말이다.

E양에게 세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첫째, 알게 된 지 몇 시간 안 된 사람이 "너는 내 이상형."이라고 말하면 그건 그의 판타지라는 걸 잊지 말기. 둘째, 까닭 없이 무조건적인 친절과 칭찬을 앞세워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 레이더를 작동시키기. 셋째, 운명처럼 만났다는 건 운명처럼 헤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하기.


3. 다음에 썸을 탈 때에는….


위의 남자는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스팸처리 하는 게 맞는 거니, 저 남자 얘기는 이쯤에서 줄이자.

썸남 - 넌 연인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E양 - 난 블라블라~. 오빠는?
썸남 -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불어 터치(스킨십)도.



그에게 '못 만져서 죽은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하며 얼른 정리하길 권한다. 썸남은 무슨 얘기를 하든 전부 '기-승-전-스킨십'의 결말을 맺는다. 그의 달콤한 친절과 칭찬을 받는 대가로 거기서 헛소리에 대꾸해주고 있지 말고 어서 벗어나자. 또 상대가 어디에 쓰려고 자꾸 E양의 셀카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으니 더는 신상을 상대에게 노출시키지 말길 바란다.

그건 그렇고. 다음에 썸을 탈 때에는 상대에게 '대우 받는 여자'가 되려고 너무 고자세를 취하지 말길 권해주고 싶다. 만약 정상적인 관계에서 위와 같은 식으로 남자를 대하면, 그는 E양에게 분명 실망할 것이다. 우선, 상대가 몸이 아프다고 하는데 '아파서 약속 취소하겠다는 건가?'라는 태도로 저기압을 형성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E양은 상대가 아프다고 해도 '데이트'를 우선시하며 상대에게 집에 가서 쉬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썸남이라면 E양의 태도를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모습이라 생각하며 실망할 것 같다. 

그리고 같은 맥락이긴 한데, "롱디는 싫다. 단, 매주 날 보러 온다면 괜찮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E양과 연애를 하려면, 상대가 누구든 그는 E양의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자고 늘 먼저 제안해야 하고, 데이트 비용도 지불해야 하고, E양이 바랄만한 얘기들을 해줘야 하며, 만나는 것도 E양의 집이나 회사 근처여야 할 것 같다. 실제로 현재 썸남이 그 역할을 하고 있기에 E양은 만족하는 중이고 말이다.

세 번 만나는 동안 E양은 언제 계산해야 할지 몰라 아직 백 원도 안 쓴 것 같은데,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만나자. 그럼 약속을 어디서 잡아야 하고, 돈을 어느 정도의 비율로 내야하며, 연락이나 리액션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분명 우정보다 치열하고 밀도 높은 감정이긴 하지만, 둘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범주 안에 있으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혜성처럼 나타나 목숨 걸고 맹목적으로 구애하는 남자를 운명이라 착각하지 말고, 계단을 하나씩 함께 올라갈 수 있는 남자와 만나길 바란다.


글은 이렇게 적었지만, E양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성을 만나면 위에서 말한 E양의 문제들도 어느 정도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E양이 방어적으로 변한 건 상대가 자꾸 함정을 파듯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E양이 E양의 몸이나 스킨십, 동거에 대한 생각 등에 관심이 있는 남자 말고, E양 일상에 관심을 갖는 남자와 만났으면 좋겠다. 현재의 썸남은 E양 일상엔 전혀 관심이 없다. E양이 직장에서 누구랑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도, 그는 "오늘 퇴근하고 만날 수 있어?"라고만 물을 뿐이다. 그런 남자 말고, "팀장이 무슨 일을 시켰길래? 팀장은 몇 살이야? 남자야?" 정도의 질문을 할 줄 아는 남자와 만났으면 한다.



▲ 글 다 썼는데 방금 '익스플로러 응답 없음' 떠써 제가 얼마나 놀란 줄 아십니까? 아신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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