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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확신이 안 들어서 결혼 못 하겠다는 남자, 왜 그럴까?

by 무한 2014. 1. 28.
확신이 안 서서 결혼 못 하겠다는 남자, 왜 그럴까?
보라야. 네가 원하는 '오빠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너에게 알려주려면 사연을 읽는 내가 일단 너에 대한 확신이 들어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나도 확신이 안 들어. 솔직히 그 긴 카톡대화 읽으면서 난 몇 번이나 창을 닫으려고 했거든. 읽는 것만으로도 꽤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어. 난 사연을 읽으며 매뉴얼 작성을 위해 메모를 하는데, 네 사연을 읽으며 한 메모가 A4용지 앞뒤로 두 장이야. 보통의 사연은 A4 한 장으로 충분한데 말야.

물론 너만 잘못한 건 아냐. 그냥 다 오냐오냐 넘겨 놓고 속으로만 불만을 품는 남자의 치명적 문제도 있어. 아닌 것 같으면 아니라고 말을 하면 되는 건데, 보라의 남친은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해놓고 뒤돌아서서 '이건 아닌데….'하는 타입이야. 그런 생각을 몇 년간 축적하다가, 부모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제 정말 결혼 날짜가 잡힐 것 같은 상황이 오니 "확신이 안 선다. 생각할 시간을 갖자."라고 한 거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든든한 지원군인 내가 있잖아. 우선 '보라에게 확신이 안 드는 이유'를 몇 가지 알아보고, 그 다음에 '이 상황을 풀어나갈 방법'을 살펴보자. 출발!


1. 수단과 목적의 전도.


내가 사연과 카톡대화를 읽으며 메모해 둔 첫 번째 문장은

"여자의 소셜커머스 중독문제. 해결 시급함."


이야. 보라가 좋아하는 ㅋㅍ,ㅇㅁㅍ,ㅌㅁ 이런 거 있잖아. 보라는 저런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우리 연애의 내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앞으로 둘이 뭐 할지, 뭘 살지, 어디를 갈지 등을 전부 저런 사이트에서 찾으려고 해. 저건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인데, 보라에겐 저게 목적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작년 한 해 동안 보라가 소셜커머스에 올라온 상품들을 남친에게 몇 번이나 보냈는지 살펴봐봐. "우리 이거 할까? 우리 이거 살까? 우리 여기 갈까?" 하는 얘기가 대화의 절반 이상이야. 작년 4월의 대화를 봐봐. 그 달엔 한 달 내내 여행 얘기밖에 없어. 그리고 여기서 너와 남친의 다른 성향이 충돌하기도 해.

보라 - 경우의 수를 모두 꺼내 놓고 함께 살펴보는 것을 좋아함. 
남친 - 경우의 수를 최대한 줄여 최선책을 정하는 것을 좋아함.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곤 할 수 없는 건데, 내 경우라면 보라의 방법이 내게 좀 벅찰 것 같아.

"찾아보니 이런 것도 있어요. 살펴보고 말해줘요~"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오빠 생각은요?"
"그건 그대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이건 어떤지 봐봐요."



차라리 주말 어느 날 딱 정해서 둘이 살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주말엔 주말이라 놀아야 하니까 또 시간이 없고, 그래서 평일에 저런 이야기들로 '선택'할 것을 요구 받으면, 난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 보라는 여행을 간다는 것에 마음이 들떠서 뭘 하든 다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여행과는 별개로 살아야 할 삶이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반대로 생각해봐. 내가 보라 남친인데, 얼음낚시 가자고 해놓곤 보라가 일하고 있는 와중에

"지금 바로 펜션 예약해야 하니까 살펴보고 말해줘."
"송어랑 빙어 두 가지인데, 뭐 할 건지 카톡으로 답해줘."
"방한화도 필요할 것 같은데 A모델이랑 B모델 중 뭐가 나은지 말해줘."
"근데 우리 가려던 포천 쪽 말고 파주 쪽에 더 괜찮은 곳 있다는데,
변경하는 건 어떤지 생각해 보고 말해줘."
"미끼로 닭 간을 쓰면 좋다는데,
자기 혹시 닭 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말해줘."
"낚시 끝나고 근처에 들깨칼국수 맛집 가는 건 어떤지 말해줘."
"알아보니까 근처에 스파 펜션도 있다는데, 스파로 바꾸는 건 어떤지 말해줘."



라고 하면 짜증날 것 같지 않아? 아차, 보라는 이런 거 좋아하니까 전혀 짜증나지 않고 기쁘려나? 흐음….

여하튼 보라가 뭔가를 하면 결국 이쪽에서 재검토를 해야 하고, 뭐 하나 하기로 정하면 그것에 따른 경우의 수를 모두 살펴봐야 하는 게, 나라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심지어는 이 연애가 '커플용 쇼핑과 데이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을 것 같고 말야. 보라 카스에 올라온 사진들 보면야 화려하긴 하겠지. 근데 그게 겉모습만 요란할 뿐 알맹이는 부실한 거잖아.

보라야 그리고 진짜 미안하긴 한데, 너 모아 놓은 결혼자금 많아? 적금은 넉넉하게 들어놨어? 문제없이 갚긴 했지만, 급전이 필요해서 남친에게 빌린 적 있다고 한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데, 너 그렇게 덮어놓고 지르다 보면 곤란해질 수 있어. 저런 데서 7만원짜리 3만원에 나오니까 막 엄청 이득 보는 거 같지? 절대 아냐.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적자 보며 장사하는 곳 없고, 50프로 세일이든 70프로 세일이든 지르면 결국 나가는 건 네 돈이야. 이거 네가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연약한 경제력을 가진 상황에서 대게 먹으러 놀러 갈 생각을 하는 건, 내가 보기엔 구멍 난 독이야. 부어도 부어도 다 새어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확신을 가지기가 힘들지.


2. 밥상 엎어버리듯


보라 넌 평소에 참 발랄하고 유쾌하고 애교도 많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네 기분이 좋을 때까지만 이야.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바로 밥상 엎어버리듯 다 뒤집어 버려. 위에서 말한 여행 얘기를 나누다가, 네 기분이 나빠졌을 때 한 말들을 보자.

"같이 가자고 하지 말 걸 그랬나 싶네."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돼요."
"취소하게 되면 얼마 물어야 하나 체크 해볼게요."



산 넘어 산이야. 앞에서 '경우의 수'에 한 번 시달렸는데, 이번엔 또 '여행 취소 협박'에 다시 한 번 시달려야 해. 저것뿐만이 아니야. 여행을 앞두고 들뜬 보라의 기분에 남자친구가 성실하게 리액션을 해주지 않으면,

"나 혼자서 너무 신난 것 같네요."


라는 '갈등 암시'의 상황에 접어들게 돼. 저건 "난 오빠랑 여행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나는데, 오빠는 신나지 않은가보네?"라는 뜻이잖아.

"우리 커플사진 찍어요. 요즘 둘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어요."


라는 멘트도 마찬가지야. 저런 건 그냥 1절만 해도 충분하거든. "오빠 주말에 우리 커플사진 찍자~"하면 되잖아. 그런데 보라 넌 "요즘 둘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네. 애정이 식은 건가? 오빠는 왜 커플사진 찍자고 먼저 말하지 않는 거지?"하는 뜻을 내비치며 압박을 해. 카톡대화엔 자세한 상황이 나와 있지 않지만, 만나서 얘기하다가 "오빠가 요즘 성의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해서 다투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난 그런 부분들이 그로 하여금 연애를 '의무'로 느끼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해.

둘의 카톡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봐봐. 보라 넌 남친의 카톡이 마음에 안 들면 "오늘 안 만날래."하며 약속장소로 오다가 돌아가 버리기도 하고, 선물 받고 좋아하다가도 남친의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며 "아무 것도 받지 않을게."하면서 다시 돌려주기도 했잖아. 그래서 남친도 너에게 완전히 쫄아 있어.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남친이 곧바로 아래와 같은 얘기부터 하잖아.

"자기 또 화나거나 그런 거 아니지?"


남친이 왜 저러냐고? 보라 네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거든. 회사에 찾아온 진상고객에게 너 욕먹었던 날 생각해봐. 남자친구가 토닥토닥 하면서 그 진상고객 사이코 같다고, 똥 밟은 셈 치고 넘기라고 하니까 네가 남자친구에게 그랬잖아.

"오빠는 여자친구가 어떤 미친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잘 넘어가 주네요.
오빠 가족이 욕먹어도 그랬을까요?"



이래서 내가 보라 너에게 확신을 못 가지는 거야. 넌 남친만 만나도 충전이 된다고 했지? 근데 넌 남친을 충전시키긴커녕 방전되도록 만드는 것 같아. 위에서 말한 문제들 외에도 넌 아파서 짜증, 아파서 땡깡, 악몽을 꿔서 짜증, 회사 분위기 안 좋아서 짜증, 잠이 안 와서 짜증, 친구들과 놀러 갔는데 놀이기구 혼자 타서 짜증, 갑자기 울고불고 등의 행동을 하잖아.

밖에서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나도, 혹시 둘이 결혼한 이후 갈등이 생기면 다투다 보라 네가 집을 나가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남편에게 내가 서운한 점', '연애할 때와 달라 섭섭한 점', '집안일에 대해 불만인 점'등을 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만 감정 상해도 문 쾅 닫고 나가버리는 듯한 너의 태도로 인해 그간 남자친구에겐 많은 피로가 축적되었을 거야. 그럴 때마다 너를 향해 열려 있던 그의 마음도 조금씩 닫혔을 거고.  


3.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오빠가 날 버리려고 한다'는 생각을 우선 머릿속에서 지워야해. 지금 보라 너는 결혼도 물거품, 연애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 때문에 너 스스로를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있거든. 그렇게 되면 남자친구만 가해자가 되는 거고, 넌 그에게

"오빠한테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나요?"
"날 사랑하긴 했던 건가요?"
"오빠 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나에게는 통보만 하는 건가요?"



따위의 말만 하게 될 거야.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면 내가 대답해 줄게. 그의 감정이 사랑이었던 게 맞아. 그렇지 않고서는 너에게 맞춰가며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는 아직 이별통보를 하지 않았어.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거야. 그러니까 이걸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며 '오빠 탓'을 할 생각은 하지 마. 지금처럼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징징거리고만 있을 필요 없어. 바짝 달려들어서 풀어볼 생각을 해. 술 마시고 전화해서 주정부리는 건 절대 도움 안 되니까 술은 입에도 대지 말고.

가장 먼저 네가 왜 '결혼'에 대해서 최근 더 압박을 가하게 되었는지를 그에게 설명해. 네 주변의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이 다 결혼을 하다 보니까 너도 '나도 얼른 가야하나보다.'하는 생각을 했잖아. 더불어 부모님들께서 결혼 이야기를 하시니 얼른 날 잡고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와중에 너의 '경우의 수' 찾는 버릇이 발동해 계속 남자친구에게 확인을 받으려 했던 거야. 뭐가 얼마고, 뭐는 어떻고, 어디는 그렇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말이야. 그런 속사정들이 있었다는 걸 자세하게 밝혀. 그렇지 않으면 남자친구는 네가 그저 결혼에 들떠서 쇼핑하듯 결혼식 준비를 하려 했던 것처럼 오해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위에서 말한 부분들에 대해 공감을 한다면, 그것에 대한 사과를 남자친구에게 해. 모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오빠도 아팠겠구나, 하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해. 그에게 투정을 부리면 이것저것 다 들어주는 게 좋았기에 계속 투정만 부린 것 같다고. 그 투정을 받는 입장에서는 열두 번도 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을 텐데, 그걸 모르고 그저 달콤한 호의와 헌신에 기뻐하기만 했던 것 같다고. 어리광을 받아주느라 오빠가 참 많이 고생한 것 같다고.

보라 넌 결혼을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싼 항공권 떴다고 "오빠, 우리 놀러 가자~ 왕복 10만원 밖에 안 해!"라고 말하듯 얘기한 거고, 남친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거야. 놀러가는 데 둘이 20만원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2박 3일 간다고 해도 최소한 저 금액의 세 배는 들잖아. 꼭 돈 하나만 문제가 된 건 아니야. 앞서 말했듯 관계 자체가 불안정해. 당장 여자친구는 카톡대화 하다가 말 한 마디에 삐쳐서 "오늘 안 만날래."라고 말하는 형편인데, 덜컥 결혼했다가 좀 더 심각한 갈등이라도 생기면 "나 오빠랑 이혼할래."할 것 같잖아. 너 이번에 남자친구가 생각할 시간 갖자고 하니까 불안하고 무섭고 답답하고 두렵다고 했지? 남자친구는 그 감정을 이전에 몇 번이나 느껴왔던 거야. 이 문제에 대해서도 보라 네가 돌아보며 느낀 점들을 남자친구에게 털어 놓길 바라.


보라야 내가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건, 오늘 당장 카스를 탈퇴 하라는 거야. 혹시 페이스북을 하고 있으면 그것도 탈퇴해.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지를 요란하게 알리기 전에 네 삶 자체가 행복한지를 봐봐.

결혼 박람회를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 스키장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 오빠랑 대게 먹으러 가서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 경우를 돌이켜 보면 특별히 사진을 찍어 알릴 것 없는 시간들이 연애의 대부분을 차지하거든. 그리고 그 시간들이 관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말야. 줄기와 뿌리와 이파리는 열매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게 튼튼해야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잖아. 난 두 사람의 관계가 줄기와 뿌리와 이파리라고 생각해. SNS에 사진을 올려 알리는 건 그 관계에서 맺은 열매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열매가 먼저가 아니라, 나무가 깊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 게 먼저 아닐까?

남자친구에게는 네가 먼저 설 전에 만나자고 해. 가능하다면 오늘 저녁에라도 만나. 만나서 울지 말고 위에서 이야기 한 부분들을 남자친구에게 말해. 이거 이대로 설 넘기면 더욱 상황이 나빠질 뿐이니까, 이번엔 보라 네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조율을 해봐. 사과도 하고. 그럼 이번 설에는 웃으면서 둘이 서로의 부모님 댁에 인사드리러 갈 수 있을 거야. 화이팅!



▲ 화해하고 나면 자기들끼리만 대게 먹으러 가겠지. 나도 대게 되게 좋아하는데…. 추천은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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