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다 다시 만났다를 반복하는 커플, 문제는?
얼마 전 블로그를 후끈 달구었던 [결혼문제로 옥신각신하다 헤어진 커플, 문제는?]의 뒷얘기를 잠시 해보자. 그 사연의 남자 주인공은 현재 '화내다 달래고 협박하다 사과하기'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사연의 주인공인 선희양이 이제 그가 찔러대도 반응하지 않자, 그는
라는 떡밥을 던져 자극했다. 하지만 이제 무관심해진 선희양이 역시 반응하지 않자, 그는
라며 다른 떡밥을 내밀었다. 이전의 선희양이었으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저 말에 겁먹어 다시 연락을 했을 텐데, 이미 복근이 단단해진 후라 그녀는 또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그는
라며 변화무쌍한 떡밥들을 던지고 있다. 선희양이 애원을 해도 팽개치던 남친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해 선희양을 불러대니, 선희양은 이게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난 절대 그게 '기회'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저건 함부로 내쳐도 꿋꿋하게 매달리던 여자가 자기 살 길 찾아 돌아가는 것 같으니, 아쉬워진 입장에서 막 던지는 떡밥들일 뿐이다.
선희양이 매뉴얼을 읽지 않았으면 초반에 그가 던진 '결혼' 떡밥을 덥석 물곤 따졌을 거고, 그는 선희양을 인생의 걸림돌 취급하며 발로 차듯 대했을 것이다. "대답 안 하면 이게 진짜 마지막이 될 거다."라는 협박을 내밀다가도, 대답이 없으면 결국 다시 "1분 만 통화하자. 마지막으로 얼굴 딱 한 번 보자."라며 태도를 바꾸는 남자. 뻔히 보이는 그 얕은 수에 넘어가서 <매달리는 여자 시즌2> 찍지 말고, 행복했던 작은 기억이라도 간직할 수 있도록 더는 망가뜨릴 빌미를 주지 말길 바란다. 이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 사연 출발해 보자.
이전의 카톡대화는 H양이 첨부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다시 만난 이후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는 98.72% H양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H양은
라는 말을 할 것 같다. H양은 날카로운 공격과 철벽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니 말이다. 그녀의 공격은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저 말은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저 말에 상대가 '내가 널 더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101가지 이유.'를 대도, H양은 만족하지 못한다. 사실 저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 꺼낸 디딤돌 같은 질문이고, 진짜 하려는 말은
이니 말이다. H양은,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너는 내가 왜 화나는지 몰라?"의 여러 변형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남친이 전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H양이 한 말을 보자.
읽고 있는 내 심장이 다 덜컹, 할 정도로 무서운 질문이다. 저건 멱살 잡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이제 무차별 폭격이 이어질 것이고, 상대가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봐도 "몰라. 우린 진짜 그냥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봐."라는 철벽수비에 막히고 말 것이다.
H양은 평균 5일에 한 번 꼴로 저런 '푸닥거리'를 한다. 그런데 H양의 남자친구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 푸닥거리를 다 받아낸다. 그래서 난 이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H양의 푸닥거리는,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로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미소는, '얘 또 이러네, 내가 감당해야지 뭐. 오늘은 몇 대나 맞아줘야 하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 지을 수 있는 미소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혹자는,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주는 위로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맹목적인 사과는 둘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킬 뿐이다. 그건 사랑스런 내 아이를 위해, 아이가 푼 문제를 답지와 맞춰보지도 않고 모두 동그라미를 치는 것과 같다.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만약 H양의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셨다고 말하면, H양의 남자친구는
라고 말할 것 같다. 어떤 병인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를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에 대해 H양이 불같이 화를 내면, 그는 또
라며 사과를 할 것 같다.(위의 멘트들은 내가 순수하게 지어낸 것이 아니라, 둘의 카톡대화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 재구성 한 것이다.)
글쎄 이건, 남자친구가 철이 없는 건지, H양의 공격과 수비에 지쳐 무신경해 진 건지, 아니면 연애엔 딱 이 정도의 신경만 쓰기로 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H양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신경을 그 쪽에 쓰고 있는 건지 확실히 구별하기가 어렵다. 둘은 3년을 연애했는데, 카톡대화는 최근의 것만 첨부 되었으니 말이다.
사연을 보낸 H양의 말대로라면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의 이런 '말만 잘하는 모습', '사과만 하고 고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H양이 갈등을 증폭시켜 위기를 만들고,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남자친구가 당장 떠오르는 공약을 말하고, 그게 또 지켜지지 않아 다시 반복되는 갈등을 겪어 온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남자친구의 이런 태도로 인해 H양의 날카로운 공격과 철벽수비도 결국 하나의 '쇼'가 되어 버리고 만다.
헤어지라는 얘기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친구와 어울리는 걸 엄마에게 허락 맡듯 여자친구에게 "나 좀 놀다 올게."라고 허락 맡는 연애는 계속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너도 이성인 친구 만나라, 난 너에게 원하는 거 없으니 너도 나에게 바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시간낭비 아닌가.
라는 이야기로 재회를 하지만, 그렇게 다시 몇 번을 사귀어도 또 똑같은 이별만 반복하게 되는 연애는 영혼에 상처만 낼 뿐이다. 다시 만나 몇 주 반짝 옆에 붙어 있다가 다시 저 멀리 팽개쳐 두는 연애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간 사귄 정이 있어 또 만나게 되지만, 다시 헤어지고 나면 둘의 재회가 남긴 건 나이와 주름살이라는 걸 깨달을 뿐이니 말이다.
내가 걱정되는 건 둘의 이별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H양의 태도다.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시 고개를 들 것이고, -H양과 오랜 기간을 같이 지내 정이 든 것도 아닌-그 새로운 사람들은 쉽게 H양을 떠날 것이다. 치명적인 문제 세 가지를 보자.
ⓐ꼬투리 잡기.
상대의 연락이 없어서 서운하면, 연락이 없어서 서운하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H양은 이 '핵심'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트집을 잡아 상대를 괴롭힌다. 여자친구랑은 어디 한 번 놀러도 안 가면서 친구들이랑만 다니는 것에 서운했던 건데, H양은 이걸 두고 "내 선물은 안 사왔어?"라며 남자친구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같이 설치해서 사용하고 싶은 어플이 있으면 말하고 깔면 되는 건데, H양은 '난 깔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아 자존심 상해 말 안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 할 뿐이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일어나자마자 연락하기로 한 거 안 지켰다'는 것으로 또 푸닥거리를 시작한다. 화가 난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면서, 남자친구를 지켜보며 화 낼 구실만 찾는 것이다.
ⓑ이상한 요구하기.
위에서 말한 '화 낼 구실 찾기'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H양이 화를 내면, 늘 그렇듯 남자친구는 습관적으로 사과를 한다. 그러면 거기다 H양이 뭔가를 요구하는데, 그 요구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페이스북에 내 사진 올리기'가 있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그건 일도 아니라며 올리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H양 역시 진짜로 바라는 게 아니므로 다시 요구를 취소한다. "그냥 올리지 마."라면서 말이다. 요구를 하려면 차라리 둘에게 도움 되는 요구를 하자. 잘못을 용서해 주는 대가로 영화를 보여 달라거나, 남친 발 마사지 쿠폰을 발급해 달라고 하면 된다.
ⓒ자신의 결론만 고집하기.
대화를 통해 조율을 하고 싶은 거면,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길 권한다. H양은 대화를 할 때 "그래도 어쨌든 네가 잘못한 거야."라며 모든 결론을 '네 탓'으로 낸다. 상대는 잘못했다고 말하기 전까지 H양과의 대화에서 타협을 볼 수 없는 것이다. 2시간 16분의 마라톤 대화를 해도, H양은 "어쨌든 결론은 네 탓."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 모습에 상대가 지쳐서 "우리 화 좀 삭이고, 이따가 다시 대화하자. 내가 전화할게."라고 말하면, H양은 "회피하는구나."라고 답한다. 배수진을 친 채 상대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밀어 붙이는 것. 그러다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다시 상대 탓에 박차를 가하는 것. 왜 H양은 상대를 악당으로 여기며 고문을 해 '듣고 싶은 자백'을 받아내는가? 고문을 통해 얻어낸 자백을 두고 '이것 봐. 내 의심이 맞았어.'라고 정당화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가? 더 괴로울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이래서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그래서 이렇게 된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건, 현재 H양의 마음속엔 의심과 질투와 집착이 가득하고, 그게 이상한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악에 받친 선인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무도 H양을 안아줄 수 없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H양의 나쁜 습관은 사연 신청서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의 말을 보자.
저건 H양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가 조금만 더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신뢰를 주길 바라고 있지만, H양은 저런 이야기를 한 뒤 누군가에게서 부정 받고 싶어 한다. 재회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H양은, 남자친구에게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H양은 최악의 멘트를 하고 그걸 상대가 부정해주길 기다리는데, 그 모습에 상대 역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걸, 난 그녀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위의 매뉴얼은 H양이 전해준 이야기들만을 가지고 작성한 까닭에, 최대한 필터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의 단점이 부각된 면이 있다. 난 둘의 카톡대화에서 그가
라고 한 말에 그의 비명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H양은 저 말에도 "그러니까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네가 잘 하라고. 네가 그동안 잘 못했으니까 내가 혼란스럽고 속상해 하는 거잖아."라며 철벽수비를 해 버리고 말았는데, 한 번 쯤은 막아내지 말고 그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길 권한다. 늘 내가 이기는 연애만 하려 한 까닭에 그가 H양에 대한 마음을 잃어 간 것은 아닌지도.
▲ 여자친구 두고 놀러가는 것, 여행가는 것, 술 마시는 것에 허락만 받을 거면 연애를 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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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블로그를 후끈 달구었던 [결혼문제로 옥신각신하다 헤어진 커플, 문제는?]의 뒷얘기를 잠시 해보자. 그 사연의 남자 주인공은 현재 '화내다 달래고 협박하다 사과하기'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사연의 주인공인 선희양이 이제 그가 찔러대도 반응하지 않자, 그는
"나 결혼한다. 나한테 피해주지 마라."
라는 떡밥을 던져 자극했다. 하지만 이제 무관심해진 선희양이 역시 반응하지 않자, 그는
"얼굴 한 번만 보자. 답 없으면 절대 연락 안 하겠다.
이게 마지막일 수 있으니 마지막 인사도 아예 적겠다.
진심으로 항상 좋은 일 있기를 기도하겠다.
잘 살고, 행복하길 바란다."
이게 마지막일 수 있으니 마지막 인사도 아예 적겠다.
진심으로 항상 좋은 일 있기를 기도하겠다.
잘 살고, 행복하길 바란다."
라며 다른 떡밥을 내밀었다. 이전의 선희양이었으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저 말에 겁먹어 다시 연락을 했을 텐데, 이미 복근이 단단해진 후라 그녀는 또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그는
"마지막으로 딱 1분만 통화하자."
"미안했고, 고마웠고, 사랑했다."
"넌 잘 해 보고 싶은 마음 없는 거지? 네 맘 잘 알겠다."
"미안했고, 고마웠고, 사랑했다."
"넌 잘 해 보고 싶은 마음 없는 거지? 네 맘 잘 알겠다."
라며 변화무쌍한 떡밥들을 던지고 있다. 선희양이 애원을 해도 팽개치던 남친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해 선희양을 불러대니, 선희양은 이게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난 절대 그게 '기회'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저건 함부로 내쳐도 꿋꿋하게 매달리던 여자가 자기 살 길 찾아 돌아가는 것 같으니, 아쉬워진 입장에서 막 던지는 떡밥들일 뿐이다.
선희양이 매뉴얼을 읽지 않았으면 초반에 그가 던진 '결혼' 떡밥을 덥석 물곤 따졌을 거고, 그는 선희양을 인생의 걸림돌 취급하며 발로 차듯 대했을 것이다. "대답 안 하면 이게 진짜 마지막이 될 거다."라는 협박을 내밀다가도, 대답이 없으면 결국 다시 "1분 만 통화하자. 마지막으로 얼굴 딱 한 번 보자."라며 태도를 바꾸는 남자. 뻔히 보이는 그 얕은 수에 넘어가서 <매달리는 여자 시즌2> 찍지 말고, 행복했던 작은 기억이라도 간직할 수 있도록 더는 망가뜨릴 빌미를 주지 말길 바란다. 이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 사연 출발해 보자.
1. 날카로운 공격과 철벽수비.
이전의 카톡대화는 H양이 첨부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다시 만난 이후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는 98.72% H양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H양은
"그건 남친이 예전에 했던 행동들이 떠올라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그러지도 않겠지요."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그러지도 않겠지요."
라는 말을 할 것 같다. H양은 날카로운 공격과 철벽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니 말이다. 그녀의 공격은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성열아. 네가 날 더 좋아할까, 아니면 내가 널 더 좋아할까?"
겉으로 보면 멀쩡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저 말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말고, 내가 때리는 대로 맞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땐 진짜 끝인 줄 알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땐 진짜 끝인 줄 알아."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저 말에 상대가 '내가 널 더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101가지 이유.'를 대도, H양은 만족하지 못한다. 사실 저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 꺼낸 디딤돌 같은 질문이고, 진짜 하려는 말은
"몰라. 우린 진짜 그냥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봐."
이니 말이다. H양은,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너는 내가 왜 화나는지 몰라?"의 여러 변형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남친이 전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H양이 한 말을 보자.
"나 왜 너에게 전주 얘기 많이 못 들은 거 같지?"
읽고 있는 내 심장이 다 덜컹, 할 정도로 무서운 질문이다. 저건 멱살 잡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이제 무차별 폭격이 이어질 것이고, 상대가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봐도 "몰라. 우린 진짜 그냥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봐."라는 철벽수비에 막히고 말 것이다.
2. 쇼가 되어 버린 H양의 공방전.
H양은 평균 5일에 한 번 꼴로 저런 '푸닥거리'를 한다. 그런데 H양의 남자친구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 푸닥거리를 다 받아낸다. 그래서 난 이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H양의 푸닥거리는,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로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미소는, '얘 또 이러네, 내가 감당해야지 뭐. 오늘은 몇 대나 맞아줘야 하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 지을 수 있는 미소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혹자는,
"다 받아주는데도 문제가 되나요?
남자친구가 보살이라 다 이해해 주는 것 같은데?"
남자친구가 보살이라 다 이해해 주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주는 위로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맹목적인 사과는 둘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킬 뿐이다. 그건 사랑스런 내 아이를 위해, 아이가 푼 문제를 답지와 맞춰보지도 않고 모두 동그라미를 치는 것과 같다.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만약 H양의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셨다고 말하면, H양의 남자친구는
"그래? 어쩌다 그런 일이…. 힘내! 분명 꼭 나으실 거야!"
라고 말할 것 같다. 어떤 병인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를 자세히 묻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에 대해 H양이 불같이 화를 내면, 그는 또
"미안해. 내가 세심하지 못했던 것 같아.
놀라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랬어."
놀라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랬어."
라며 사과를 할 것 같다.(위의 멘트들은 내가 순수하게 지어낸 것이 아니라, 둘의 카톡대화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 재구성 한 것이다.)
글쎄 이건, 남자친구가 철이 없는 건지, H양의 공격과 수비에 지쳐 무신경해 진 건지, 아니면 연애엔 딱 이 정도의 신경만 쓰기로 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H양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신경을 그 쪽에 쓰고 있는 건지 확실히 구별하기가 어렵다. 둘은 3년을 연애했는데, 카톡대화는 최근의 것만 첨부 되었으니 말이다.
사연을 보낸 H양의 말대로라면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의 이런 '말만 잘하는 모습', '사과만 하고 고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H양이 갈등을 증폭시켜 위기를 만들고,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남자친구가 당장 떠오르는 공약을 말하고, 그게 또 지켜지지 않아 다시 반복되는 갈등을 겪어 온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남자친구의 이런 태도로 인해 H양의 날카로운 공격과 철벽수비도 결국 하나의 '쇼'가 되어 버리고 만다.
3. H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헤어지라는 얘기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친구와 어울리는 걸 엄마에게 허락 맡듯 여자친구에게 "나 좀 놀다 올게."라고 허락 맡는 연애는 계속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너도 이성인 친구 만나라, 난 너에게 원하는 거 없으니 너도 나에게 바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시간낭비 아닌가.
"헤어지고 나니 네 소중함을 그제야 알겠더라."
라는 이야기로 재회를 하지만, 그렇게 다시 몇 번을 사귀어도 또 똑같은 이별만 반복하게 되는 연애는 영혼에 상처만 낼 뿐이다. 다시 만나 몇 주 반짝 옆에 붙어 있다가 다시 저 멀리 팽개쳐 두는 연애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간 사귄 정이 있어 또 만나게 되지만, 다시 헤어지고 나면 둘의 재회가 남긴 건 나이와 주름살이라는 걸 깨달을 뿐이니 말이다.
내가 걱정되는 건 둘의 이별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H양의 태도다.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시 고개를 들 것이고, -H양과 오랜 기간을 같이 지내 정이 든 것도 아닌-그 새로운 사람들은 쉽게 H양을 떠날 것이다. 치명적인 문제 세 가지를 보자.
ⓐ꼬투리 잡기.
상대의 연락이 없어서 서운하면, 연락이 없어서 서운하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H양은 이 '핵심'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트집을 잡아 상대를 괴롭힌다. 여자친구랑은 어디 한 번 놀러도 안 가면서 친구들이랑만 다니는 것에 서운했던 건데, H양은 이걸 두고 "내 선물은 안 사왔어?"라며 남자친구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같이 설치해서 사용하고 싶은 어플이 있으면 말하고 깔면 되는 건데, H양은 '난 깔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아 자존심 상해 말 안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 할 뿐이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가, '일어나자마자 연락하기로 한 거 안 지켰다'는 것으로 또 푸닥거리를 시작한다. 화가 난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면서, 남자친구를 지켜보며 화 낼 구실만 찾는 것이다.
ⓑ이상한 요구하기.
위에서 말한 '화 낼 구실 찾기'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H양이 화를 내면, 늘 그렇듯 남자친구는 습관적으로 사과를 한다. 그러면 거기다 H양이 뭔가를 요구하는데, 그 요구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페이스북에 내 사진 올리기'가 있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그건 일도 아니라며 올리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H양 역시 진짜로 바라는 게 아니므로 다시 요구를 취소한다. "그냥 올리지 마."라면서 말이다. 요구를 하려면 차라리 둘에게 도움 되는 요구를 하자. 잘못을 용서해 주는 대가로 영화를 보여 달라거나, 남친 발 마사지 쿠폰을 발급해 달라고 하면 된다.
ⓒ자신의 결론만 고집하기.
대화를 통해 조율을 하고 싶은 거면,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길 권한다. H양은 대화를 할 때 "그래도 어쨌든 네가 잘못한 거야."라며 모든 결론을 '네 탓'으로 낸다. 상대는 잘못했다고 말하기 전까지 H양과의 대화에서 타협을 볼 수 없는 것이다. 2시간 16분의 마라톤 대화를 해도, H양은 "어쨌든 결론은 네 탓."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 모습에 상대가 지쳐서 "우리 화 좀 삭이고, 이따가 다시 대화하자. 내가 전화할게."라고 말하면, H양은 "회피하는구나."라고 답한다. 배수진을 친 채 상대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밀어 붙이는 것. 그러다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다시 상대 탓에 박차를 가하는 것. 왜 H양은 상대를 악당으로 여기며 고문을 해 '듣고 싶은 자백'을 받아내는가? 고문을 통해 얻어낸 자백을 두고 '이것 봐. 내 의심이 맞았어.'라고 정당화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가? 더 괴로울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 이래서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그래서 이렇게 된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건, 현재 H양의 마음속엔 의심과 질투와 집착이 가득하고, 그게 이상한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악에 받친 선인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무도 H양을 안아줄 수 없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H양의 나쁜 습관은 사연 신청서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의 말을 보자.
"전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 생각도 없고, 결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너무 상처 받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기 때문에…."
제가 너무 상처 받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기 때문에…."
저건 H양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가 조금만 더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신뢰를 주길 바라고 있지만, H양은 저런 이야기를 한 뒤 누군가에게서 부정 받고 싶어 한다. 재회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H양은, 남자친구에게
"그럴 거면 취업 준비나 하지, 왜 또 다시 와서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H양은 최악의 멘트를 하고 그걸 상대가 부정해주길 기다리는데, 그 모습에 상대 역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걸, 난 그녀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위의 매뉴얼은 H양이 전해준 이야기들만을 가지고 작성한 까닭에, 최대한 필터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의 단점이 부각된 면이 있다. 난 둘의 카톡대화에서 그가
"내 입장은 생각해 봤어?
넌 네 입장만 생각하고 너 서운한 거, 너 섭섭한 것만 생각하잖아.
너의 편견과 선입견 안에서, 난 왜곡되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넌 네 입장만 생각하고 너 서운한 거, 너 섭섭한 것만 생각하잖아.
너의 편견과 선입견 안에서, 난 왜곡되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라고 한 말에 그의 비명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H양은 저 말에도 "그러니까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네가 잘 하라고. 네가 그동안 잘 못했으니까 내가 혼란스럽고 속상해 하는 거잖아."라며 철벽수비를 해 버리고 말았는데, 한 번 쯤은 막아내지 말고 그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길 권한다. 늘 내가 이기는 연애만 하려 한 까닭에 그가 H양에 대한 마음을 잃어 간 것은 아닌지도.
▲ 여자친구 두고 놀러가는 것, 여행가는 것, 술 마시는 것에 허락만 받을 거면 연애를 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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